소설리스트

A.I 닥터-377화 (377/1,303)

377화 호흡곤란 (4)

[잡음(Murmur)이 있군요.]

‘그래, 역시……. 이럴 줄 알았어.’

잡음이라는 게 어디서 나건 성가시겠지만.

심장에서 난다면 성가신 수준이 아니라 아주 심각할 수 있었다.

해서 수혁은 만에 하나 있을 실수를 배제하기 위해 조금 오래 소리를 들었다.

슉.

슉.

암만 들어도 잡음이 맞았다.

수혁도 바루다도 동의하고 난 이후엔 더 들을 이유가 없었다.

해서 수혁은 손을 뗐다.

“환자분.”

“아, 네.”

심장 청음은 아무래도 뒤로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은가.

때문에 할리마는 급히 옷매무새를 정리한 후, 수혁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부끄러움 따위는 느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자신을 그저 환자로 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서였다.

‘왜...... 리홍이가 추천을 했는지는 알 거 같군.’

짧은 시간 내에 이만큼의 신뢰도를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것도 가뜩이나 예민해져 있는 아픈 사람에게는 더더욱 어려울 터였다.

그걸 수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고 있었다.

대단한 일이었다.

“환자분의 청음에서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제...... 폐렴 때문 아닙니까?”

“폐렴도 있긴 하지만, 그 부위가 아니에요. 폐렴은 사실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네?”

할리마는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를 냈다.

지금까지 폐렴 때문에 입원하고 치료받고 몇 번을 왔다 갔다 했는데 이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니.

그럼 대체 뭔가 문제란 말인가.

수혁은 할리마의 얼굴에 뜬 의문을 그대로 마주한 채 말을 이었다.

‘조금 서두르는 게 좋겠지?’

[네. 분석 결과 답변을 종용하고 있습니다.]

평소보다 조금 빠른 말투로였다.

“지금 환자분이 앓고 있는 병은 특발성 기질성 폐렴과 굉장히 헷갈릴 수 있는 질환입니다. 아마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악화와 그때마다 찍었던 CT 그리고 방금 청음까지 종합해 보니 역시 제 생각이 맞군요. 환자분의 질환은…….”

수혁은 말끝을 흐리며, 잠시 병실을 둘러보았다.

할리마도 물론 아주 중요한 사람이긴 할 터였다.

저 리홍이가 신경 쓰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리홍이만큼일까?

그건 아닐 것이 분명했다.

적어도 싱가포르에서 퍼스트 패밀리에 우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완전 빠져들었네요.]

‘좋아.’

리홍이는 수혁의 이야기에 심취해 있었다.

뭘 모르는데도 그랬다.

당연히 뭘 아는 신현태는 기다리던 영화라도 보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말하진 않았지만, 눈만 봐도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역시 이수혁!

뭐 이러고 있을 터였다.

“타카야수 혈관염입니다.”

반응에 흡족해진 수혁은 얼른 진단명을 말했다.

그러자 할리마는 더더욱 혼란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나는 숨이 찬데 웬 혈관염이란 말인가.

솔직히 개소리 같았다.

“네?”

“환자분. 혈관은 아시다시피 우리 몸 모든 곳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혈관염이 생기면 아주 다양한 증상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죠. 타카야수 혈관염은 그중에서도 특히 심장과 가까운 혈관에 염증을 일으킵니다. 가령 폐동맥이 그렇죠.”

“폐…… 동맥이요?”

“네. CT 영상은 보신 적이 있나요?”

여전히 얼떨떨한 얼굴의 할리마에게 수혁은 자신이 들고 온 노트북을 보여 주었다.

화면에 아까 리홍이가 보내 준 영상이 떠 있었다.

“아, 본 적은 있죠. 설명도 들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다.

병원 입장에서 할리마 의원 정도면 충분히 VIP 아니던가.

아니, VIP가 아니더라도 영상 검사는 시행했으면 한 번쯤 설명을 해 주는 것이 도리였다.

대상이 VIP라면 더더욱 성심성의껏 보여 주었을 터였다.

“자, 여기에 대한 설명도 들은 적이 있습니까?”

하지만 단 한 번도 지금 수혁이 가리킨 부위를 설명해 준 적은 없었다.

일부러 누락한 것 같지는 않았다.

병원에서 자신을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는 할리마도 잘 알고 있었다.

몇 번인가는 내과 의사가 아니라 영상의학과 의사가 와서 설명을 해 주었을 정도였다.

“아뇨.”

“아마 그랬을 겁니다. 이걸 알았다면 지금까지 계속 이런 치료를 했을 리가 없어요.”

“이게 뭡니까?”

할리마는 새카만 가운데 굵게 지나가고 있는 하얀 덩이를 가리켰다.

방금 전까지 수혁이 가리키고 있던 곳과 정확히 같은 곳이었는데, 해부학적인 지식이 없을뿐더러 영상에도 익숙지 않다 보니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게 바로 환자분의 심장에서 폐로 들어가는 동맥입니다. 폐동맥이죠. 좌우로 뻗어 들어가는데……. 여기, 여기를 보시죠. 좌우가 다르죠?”

“음…….”

“아주 미세한 차이지만 전후를 비교하면 더 확연해집니다. 이게 환자분이 처음 왔을 때 찍은 영상이에요, 이건 이번에 찍은 거죠. 어떤가요?”

“아……. 좁…… 좁은가?”

“네, 좁아졌죠. 혈관염이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이 때문에…… 여기 이게 우심실인데요. 폐 쪽으로 피를 보내는 일을 하는 심장 부위입니다. 여기가 조금…….”

“어, 커졌나.”

그냥 볼 때는 솔직히 하나도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수혁의 말을 듣고 또 전후 혹은 좌우 비교를 하며 보다 보니 차이를 알아낼 수 있었다.

엄청난 차이까지는 아니더라도 확실한 변화가 있었다.

‘그렇구나……. 저기에 이상이 있었어. 하긴 치료에 반응을 잘해야 하는 병인데……. 그렇지 않았다는 게 진짜 이상한 일이지.’

일반인도 이렇게 잘 알아먹을 만한 설명이 이어지고 있는 마당 아닌가.

의사들 중에서도 뛰어난 툭에 속하는 신현태야 말할 것도 없었다.

“네, 커졌습니다. 이게 있으면 숨이 차요.”

“아……. 그렇군요. 이게…… 이게 내 병인가.”

“네. 그렇습니다. 진단이 틀려서 치료가 안 되었던 거예요.”

“중간에…… 확실히 좋아졌었는데…….”

“고용량으로 썼을 때만 좋아졌죠? 타카야수 혈관염에 대한 치료도 스테로이드입니다. 다만 용법이 달라요. 이건 킬로그램당 1mg 써야 해요. 고용량이죠.”

“아…….”

그제야 할리마는 아까 수혁이 말했던 양 종류가 같아도 용법이 다르면 아예 다른 치료라고 말했던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환자분만 알면 소용이 없습니다. 주치의를…… 불러 주실까요?”

“그래야겠군요.”

할리마는 허리를 폈다.

주치의만 딱 믿고 있었는데 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틀린 답에 확신을 갖고 계속 버틴 탓에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한 셈이었다.

“호출…… 하셨다고요.”

그래서였을까.

콜하자마자 거의 10분도 지나지 않아 달려온 담당 의사를 바라보는 할리마의 표정이 그리 밝지 못했다.

의사 또한 뭔가 심상찮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방 안에 사람이 너무 많지 않은가.

게다가 그중 하나인 수혁이 들고 있는 노트북에는 할리마의 영상이 떠 있었다.

자신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집중해서 보지 않은 컷이라는 게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이수혁 선생님, 방금 제게 설명해 주셨던 걸…… 이분에게도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응급실로 실려 올 때보다는 훨씬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할리마는 아직 완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할리마 의원은 허리를 꼿꼿이 편 채 힘 있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그 모습엔 위엄마저 서려 있어서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거 좋아하잖아요?]

‘그렇긴 하지.’

거절할 이유가 없기도 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마당에 이현종을 닮았네, 어쩌네 하는 건 좀 이상한 일이지만.

하여간 수혁은 이현종을 닮아 가고 있었다.

남 갈구는 걸 좋아하게 됐다, 이 말이었다.

“네, 환자분.”

해서 수혁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노트북을 집어 들었다.

여전히 담당 의사는 단 한 번도 집중하지 않았던 부위가 떡 하니 떠 있었다.

심지어 이 컷에서는 폐의 병변은 보이지도 않았다.

“뭘…… 뭘 설명한단 말씀이십니까? 이 사람이 대체 누군데요?”

“나는 숨이 차니, 이수혁 선생님과 얘기하시죠.”

“무슨…….”

수혁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담당의에게 일단 명함부터 쥐여다 줬다.

“안녕하세요. 저는 대한민국 태화 의료원 통합의료센터 부센터장 이수혁입니다.”

“태화…… 의료원?”

“네.”

태화 의료원의 이름값이 엠디 앤더슨이나 메이요, 존스 호킵스에 준하는 것은 물론 아니긴 했다.

하지만 적어도 동북아에서는 가장 선진화된 병원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었다.

적어도 임상에서는 이미 중국 상해는 물론이거니와 일본 유수의 병원들조차 대한민국의 빅5를 따라오기 어렵지 않은가.

“여기 환자분 담당의시죠?”

“그…… 그렇습니다만.”

물론 이름을 안다고 해서 태도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는 것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뭐란 말인가.

지정의는 못마땅한 얼굴이 되었다.

“환자분은 특발성 기질화 폐렴으로 치료하시고 계셨고요?”

“네?”

“지난 8개월간 쭉 그랬던 거 맞습니까?”

“그…… 그렇습니다.”

“원래 질병 경과가 그런가요? 특발성 기질화 폐렴이?”

“아니……. 그렇지는 않아요.”

때문에 수혁은 할리마 의원에게 얘기할 때보다 훨씬 독하게 질문을 이어 나갔다.

환자야 혹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그랬다간 치료에 영향이 있을 테니 조심해야겠지만.

이 양반은 아니지 않은가.

치료를 잘못한 의사만큼 혼내는데 죄책감을 안 가져도 되는 존재도 드물었다.

특히 그 대상이 인턴도 레지던트도 아니라면 더 좋았다.

흔치 않은 기회다, 이 말이었다.

“치료가 잘 듣지 않았다면 진단이 틀리진 않았는지 의심해 봐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 조직검사까지 한 걸 왜 의심합니까.”

“조직검사가 100% 다 맞습니까? 단 한 번도 틀린 걸 본 적이 없어요?”

“그…….”

“조직검사 또한 임상 정보에 영향을 받는다는 거 모릅니까? 치료가 잘 안 되고 있다는 걸 병리과에 알려 주신 적이 있나요?”

“그건…… 그…….”

의사는 할리마의 눈치를 보았다.

할 말이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그냥 수혁만 있었다면 안면 몰수할 수 있을 텐데.

이걸 할리마가 보고 있다는 게 더 난처했다.

“왜 절 보나요? 답변이나 하시지.”

“아, 그.”

보아하니 할리마는 이미 이놈에게 넘어간 듯했다.

화가 났다.

“근데 당신은 그럼 무슨 진단을 생각합니까? 틀린 거 같다고 치료를 하지 마요? 대체가 있어야…….”

“타카야수 혈관염이 있죠. 초기엔 아주 비슷한 경과를 보이지만 치료 용법에 따라 아예 다른 경과를 보일 수 있는 병이죠.”

“어…….”

“설마 못 들어 봤다는 말을 하진 않겠죠. 그렇다면 실망인데.”

“근거…… 근거는…….”

“여기 보시면 바로 보일 겁니다.”

수혁은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의사에게 노트북을 보여 주었다.

컷을 따로 떼서 시간 순서로 나열해 두었는데 어떻게 봐도 폐동맥이 좁아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

“지금 바로 처방 바꾸겠습니다. 환자분 kg에 맞춰서 kg당 1mg으로 프레드니솔론 처방할 거예요. 그리고 흉부외과에 협진 내서 혹 물리적인 처치 필요치 않은지 확인하세요. 지금 봐서는 필요 없을 거 같지만, 혹시 모릅니다. 조영술에는 어떻게 나올지 몰라요.”

“어…….”

“멍하니 있지 말고요. 댁이 허비한 시간만 해도 몇 개월입니다. 거기서 더 허비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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