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79화 (379/1,303)

379화 귀국 (1)

“아, 저기 오네요.”

주말이라 그런지 인천 공항은 무척 붐볐다.

그 사이에 낀 이현종과 남지연 사장은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수혁과 신현태를 가리켰다.

좋든 싫든 눈에 띌 수밖에 없는 모양새였다.

신현태가 한 덩치 하기도 하거니와 수혁은 아예 지팡이를 짚고 있어서 그랬다.

“내 새끼, 우리 복덩이.”

이현종은 남지연 사장이 있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말을 아끼지 않았다.

원래도 남 눈치 잘 안 보는 사람인 데다가 지금은 기분이 너무 좋아서이기도 했다.

“어어.”

남지연 사장이 당황한 사이, 이현종은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듯이 달려 수혁을 번쩍 안아 들었다.

아무래도 힘이 신현태나 조태진 같지는 않아서 모양새가 썩 좋지는 않았다.

안아 들었다기보다는 앞으로 밀어내는데 더 가깝다고나 할까?

하여간 보는 사람도 당하는 사람도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아빠.”

“허허, 그래.”

그나마 수혁은 이미 이현종에게 익숙해진 지 오래 아니던가.

덕분에 표정 변화 없이 아니, 심지어 웃으며 이현종을 마주할 수 있었다.

‘진짜 아들도 아니면서.’

이미 뒷조사를 통해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는 남지연으로서는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헷갈릴 지경이었다.

‘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김다현 사장과 여러 차례 토의한 바 있지 않은가.

수많은 안건이 산적해 있는 가운데, 그 모든 것을 밀고 테이블 위로 올라왔던 계약서가 시작이었다.

세상에 별로 돈 들이지도 않은 프로그램에 애플과 구글이 붙을 줄이야.

그렇게 로비해도 거들떠보지 않던 놈들이라 놀라움이 더했다.

[회장님께서도 관심을 보이셨다고 합니다.]

심지어 태화 전자 측에서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자 입장에서 애플은 둘도 없는 숙적이었고, 구글은 가장 거대한 고객 중 하나였으니.

‘거기에…… 리홍이도 꼈지.’

여기까지만 했어도 남지연 사장이 직접 공항에 나오는 시간이 아깝지 않을 지경인데, 리홍이와의 연까지 쌓고 돌아오는 마당이었다.

김다현 사장도 시간만 되면 오고 싶어 했을 지경이었다.

아직 태화 바이오의 모든 조직이 김다현 밑으로 편입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반드시 왔을 터였다.

“이수혁 선생님. 오시는 길은 편안하셨어요?”

남지연은 생각을 정리한 후, 아직도 이현종에게 안긴 채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수혁에게 다가갔다.

[역시 태화 생명 사장이 나왔네요.]

‘일등석 보내 준 게 남지연 사장이니까.’

[그런 거 보면 좀 치사하네요? 성과를 냈더니 이코노미가 일등성이 되네?]

‘뭐……. 병원이 아직은 그룹 내에서 위치가 좀 그렇잖아.’

이런 말이 있을 지경이었다.

태화 그룹의 계열사는 전자와 후자로 나뉘는데 그중에서 병원은 서자다.

다른 계열사에서 놀리려고 만든 말이 아니라, 병원 사람들이, 그중에서도 원장단에 속하는 인원들이 자조적으로 떠드는 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단 회의에 참석하면 원장 자리가 맨 구석이지 않은가.

다른 계열사들은 심지어 부사장 또는 임원들도 참석할 수 있는데, 병원은 오직 원장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나마도 발언권도 거의 없었다.

‘이제 달라지겠지. 바이오 내에서는 병원이 주역이야.’

[그런 건 저는 잘 모르겠지만, 수혁이 잘하겠죠. 쇼하는 건 잘하잖아요. 타고난 쇼닥.]

‘너 그거 별로 좋지 않은 말인 건 알고 있지?’

[한 열 번 정도 들은 거 같습니다.]

‘이 새끼가 진짜.’

수혁은 칭찬도 욕처럼 하는 바루다에게 한소리 한 후, 남지연 사장을 돌아보았다.

부장일 때부터 본 사람인데, 확실히 사장이 되고 시간이 좀 지나서 그런가 사람이 되게 높아 보였다.

나이만 따지면 이현종보다 열 살은 아래일 텐데.

뭐라고 해야 할까.

품위가 있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만만한 인상은 결코 아니었다.

“덕분에 편하게 왔습니다, 사장님.”

“하하. 가는 길도 신경 썼어야 했는데……. 미안하게 됐습니다.”

“아뇨, 아닙니다. 레지던트한테 일등석이라니……. 과분합니다.”

“보통 레지던트인가요? 이렇게 공을 많이 세우는 사람은 임원 중에서도 드뭅니다.”

아니, 없다고 해야 옳을 터였다.

어찌 된 게 해외만 나갔다 하면 홈런을 터뜨리고 오고 있지 않은가.

두바이에서는 왕자랑 어떻게 연을 만들더니 이번엔 리홍이였다.

‘퍼스트 패밀리…….’

싱가포르에서 사업 하려면 일단 그 일가와 얘기가 되어야만 했다.

다국적 기업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압도적으로 싱가포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면, 일가와의 관계가 절대적이라 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특히 카지노 사업의 경우가 그랬다.

국내 모든 기업들이 고배를 마시는 사이, 일가에서 내세운 사업가 하나가 싱가포르 내 카지노 사업권을 따냈는데 지금 그 기업은 세계 굴지의 기업이 되어 있었다.

현금 유동성이 마약 제외하면 제일 좋은 사업이라 할 수 있는 카지노를 독점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 이쪽으로 오시죠. 리무진 대기시켜 놨습니다.”

그런 사람과 긍정적인 연을 튼 마당이었다.

태화 바이오와 생명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뭐든지 해 줄 용의가 있었다.

일단 시작은 대우의 개선이었다.

남지연 사장은 수혁의 짐을 비서들이 싣는 동안, 수혁을 자기 옆자리에 태운 후 입을 열었다.

언제나 그러하듯 아나운서처럼 또박또박한 발음이 인상적이었다.

“원래 부센터장에 대한 대우는 각 과 과장 바로 아래입니다. 부센터장이 있는 센터가 지금까지 없었고, 이수혁 선생의 나이를 고려한 대우였습니다.”

“아, 네. 저는 그것만으로도…….”

딱 감이 왔다.

뭔가 더 주려고 하는구나.

[연기 중이죠?]

‘당연하지.’

물론 수혁은 겸양을 떨었다.

그래야 상대가 더 자신을 높게 평가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였다.

적대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강하게 나오는 게 좋겠지만, 아득히 높은 곳에 있는, 그러면서도 우호적인 사람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김다현 사장님께서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아직도 이수혁 선생을 과소평가하고 있었습니다. 이수혁 선생처럼 유능한 의사는 아마 없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이현종 원장님, 신현태 과장님.”

예상대로 남지연 사장은 더 수혁을 띄워 주기 시작했다.

이현종과 신현태에게 사과해야 할 필요성이 느껴질 정도였는데, 당연하게도 둘은 껄껄 웃기만 했다.

“아뇨, 아뇨. 우리 수혁이가 최고지.”

“네네. 우리 조카……. 아니지. 이수혁 선생이 최곱니다.”

“조카? 뭔 소리야 인마.”

“그런 게 있습니다. 흠흠.”

심지어 신현태는 팔불출 티까지 냈다.

남지연은 역시나 이 분위기는 삭막한 회사에서만 지내 온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란 생각을 하며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

“그래서 대우를 개선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이현종 원장님에 대한 대우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직함이 센터장일 뿐, 앞으로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센터이니만큼 원장 대우를 하겠습니다.”

“오. 아들 잘 둔 덕에 이거야 원.”

솔직히 이현종은 대우가 어쩌니저쩌니해 봐야 별 감흥이 있진 않았다.

원장에게 기사 딸린 차가 나오긴 하는데, 어차피 회의 참석할 때는 거의 신현태를 대동하고 가지 않는가.

원장 아닐 때도 신현태가 기사 노릇을 해 주었다, 이 말이었다.

게다가 다른 사장단들은 골프 치거나 다른 개인적인 용무에 있어서도 은근슬쩍 기사를 썼는데, 이현종은 그런 걸 싫어하는 인간이었다.

애초에 제약 회사 로비도 원천 차단함으로써 수많은 원성과 지지를 동시에 받은 인간이라 그랬다.

그럼에도 수혁 칭찬은 잊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수혁 선생에 대한 대우도 격상됩니다. 태화 그룹의 임원진 대우를 해 드리겠습니다. 부원장보다도 대우가 좋다는 얘기입니다. 이는 월급뿐 아니라 기사, 각종 편의 시설 및 할인 등이 다 포함됩니다. 해외 출장 시에는 비즈니스 권을 무상으로 지급할 겁니다.”

“오……. 그건 좀…… 너무 과한 거 아닐까요? 지금도 질투하는 분들이…….”

“하하.”

질투라는 말에 이번에는 남지연 사장이 웃었다.

병원이라는 곳이 특수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의사들이란 다들 저 잘난 맛에 사는 위인들 아닌가.

그중에서도 의학의 첨단을 달리고 있다 자부하는 대학 병원 교수들은 더했다.

그래서 그런지 자꾸 본인들이 누군가에게 월급 받는 사람들이라는 걸 잊는 듯했다.

마치 대체 불가한 사람들인 양 군다고 해야 할까?

‘뭐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긴 하지. 그래도…….’

특수 직군이니만큼 대체가 아주 어렵기는 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말은 어폐가 있었다.

이수혁이나 이현종, 김승규 같은 사람도 있기는 했지만, 대다수 의사들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그룹 차원에서 내린 결정입니다. 병원 내에서 왈가왈부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에요.”

“반발이 없을까요?”

그건 수혁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나오는 건 확답을 듣기 위해서였다.

뭣도 아닌 놈들이 까불면 짜증 나지 않은가.

박상헌이 그랬고, 회개 전의 김문재가 그랬다.

앞으로도 그런 놈이 아주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터였다.

의사 집단에 속한 사람이기에 더 잘 알았다.

외길만 파는 전문직들일수록 외골수들이 많았다.

“반발이요? 걱정 마십시오. 제가 다 누르겠습니다. 센터 개소식 때 오는 사람들을 보면, 아마 아무도 감히 나서지 못할 겁니다.”

“아…….”

감히라는 말까지 쓴 마당이었다.

여기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좋아요?]

‘좋지.’

[진료에 도움이 되는 방향이겠죠?]

‘당연하지. 아무것도 신경 안 쓰고, 어려운 환자 실컷 볼 수 있을걸.’

[그럼 저는 무조건 찬성입니다.]

‘그래.’

해서 수혁은 바루다와 함께 더없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응?”

“왜 그러죠?”

“아, 아뇨.”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차는 달리고 있었다.

하도 부드러운 주행이 가능한 차량이다 보니, 그것도 몰랐더랬다.

“아무튼, 도착하시면 김다현 사장님과 구글 관계자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아, 역시 구글로 정해졌나요?”

“네. 아무래도……. 전자의 이득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이수혁 선생에게 가는 인센티브는 최고로 받기로 했습니다. 아예 전자 측과의 계약서를 조금 수정할 겁니다. 아마…….”

남지연 사장은 앞으로 수혁이 받게 될 인센티브를 떠올려 보았다.

못해도 연간 4, 5억은 될 터였다.

플랫폼 사업이라는 것이 영원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10년간 먹고살 걱정은커녕, 대다수 직장인이 꿈꾸지 못하는 돈을 손에 거머쥐게 될 거란 얘기였다.

“충분히 만족하실 만한 금액일 거라 생각합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정말 큰 공을 세워 주셨어요. 이 전자 차트 앱은 북미 지역 안드로이드 폰에 무조건 시작 앱으로 들어갈 겁니다. 파급력은 이루 말할 수 없겠죠. 거기에 태화 마크가 박히게 해 주신 겁니다. 광고 효과만 해도 어마어마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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