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83화 (383/1,303)

383화 복수가 차는 원인? (1)

수혁은 지팡이를 짚은 채, 하윤의 안내를 받아 가며 병실로 이동했다.

둘 사이에 대화는 딱히 없었다.

서먹해서가 아니라, 수혁이 너무 바빠서였다.

‘환자 정보 간추려 봐.’

[되게 당당하시네요?]

‘네가 이런 건 잘하잖아. 추론은 내가 나을 때도 있으니, 그건 내가 할게.’

[흠.]

바루다는 잠시 입을 비죽거리다가 결국은 수혁의 지시에 따랐다.

듣다 보니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니기도 해서였다.

최근 수혁의 타율은 바루다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조금 높은 수준까지 올라와 있었다.

[우선 34세 여자, 기저 질환은 없습니다. 내원 1주 전부터 발생한 복부 팽만을 주소로 외래 내원하였고……. 시행한 CT상 복수 관찰되었습니다. 초음파에서는 경한 정도의 간경화 소견을 보였습니다. 혈액 검사에서 바이럴 마커는 모두 음성입니다. 또 윌슨 병에 대한 표지도 음성입니다.]

‘흠. 어렵네…….’

[네, 의심 가능한 병이 거의 다 음성입니다.]

‘일단 환자를 좀 볼까?’

[네. 그러시죠.]

대화를 나누다 보니 마침 병실 앞이었다.

아니, 이미 우하윤은 안으로 들어가서 환자에게 이수혁의 도착을 알리고 있었다.

“아시죠? 이수혁 선생님.”

“네? 이수혁이요?”

팬클럽 부회장답게 입 터는 솜씨가 좋았다.

“모르세요? 저번 집단 감염 사태에서 활약하셨던……. 저희 병원이 자랑하는 인재세요.”

“어…….”

환자야 당연히 이름만 듣고는 수혁이 누군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부센터장으로 내정되어 있다고 해 봐야 지금은 교수가 아니지 않은가.

대학 병원 오면서 레지던트 이름 외우는 환자가 있다면 그 사람이 이상한 것일 터였다.

하지만 하윤은 모르는 게 정상인 환자를 이상하단 눈으로 바라보았다.

“엘리베이터에도 사진 붙어 있는데.”

“사진이요? 아……. 음.”

“아무튼, 진짜 훌륭한 선생님이세요. 도움 될 겁니다.”

“알겠…… 알겠습니다.”

그렇다 해도 환자는 딱히 불만이 생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원래도 열심인 하윤이 수혁에게 밥 얻어먹고 나서부터는 정말이지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었다.

내과 병동은 그 특성상 다양한 교수 환자가 있고 또 다양한 주치의가 있기 마련인데, 한눈에 봐도 우하윤처럼 자세히 묻고 오래 시간을 들이는 주치의는 없었다.

라포가 아주 긍정적으로 쌓여 있단 얘기였다.

“안녕하세요, 환자분. 소화기내과 수석 전공의 이수혁입니다.”

수혁은 그런 분위기를 써먹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최대한 여유 있는 표정을 지으며, 있어 보이는 단어로 수식한 자기소개를 해 대었다.

병원 사정에 밝은 환자라면 수석이니 뭐니 해 봐야 전공의는 전공의라는 걸 알겠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이 그러하듯, 지금 침대에 앉은 환자 또한 뭐가 뭔지 몰랐다.

전공의보다는 수석이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아, 네.”

그래서 그런가 표정이 조금 좋아졌다.

[잘 먹히네요. 역시 이수혁…….]

수혁은 바루다의 칭찬을 들어 가며 환자를 관찰했다.

여전히 황달은 없었다.

하긴 검사상에서도 황달을 일으킬 만큼 빌리루빈이 높아져 있거나 하지는 않았더랬다.

다만 복부는 여전히 조금 튀어나와 있어 보였다.

이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뇨제 말고는 별로 해 준 것이 없었으니까.

“우선 뭘 좀 여쭙겠습니다.”

“네.”

수혁은 여전히 환자의 전신을, 그러니까 지금 육안으로 관찰 가능한 부위를 훑으며 질문을 이어 나갔다.

처음에는 간과 관련한 아주 기본적인 질문들이었다.

음주량은 어떻게 되냐, 혹 꾸준히 먹는 약은 없냐, 배가 붓기 전에 뭔가 이상 소견은 없었냐 등등이었다.

‘하윤이가 아주 꼼꼼하네.’

[그러니까요. 결과가 달라지는 게 없네?]

‘하긴 이 질문 벌써 두세 번은 반복했던 거 같아.’

[대단하군요.]

의학 질문은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환자에게서 보다 고급 정보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놈의 병원은 왜 간호사도 묻고 주치의도 묻고 교수도 묻나 화가 날 수도 있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조금씩 구체화되거나 기억나지 않았던 정보를 얘기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을 터였다.

‘근데…… 이 환자 손가락이 유난히 창백하네?’

[음? 아, 그렇네요.]

‘분석해 봐. 정상인지 아닌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환자는 이미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으로 제공한 참이었다.

음주량은 심지어 지난달에 언제 얼마나 마셨는지까지 차트에 기록되어 있었을 지경이었다.

[비정상이군요. 현재 병원 기온을 고려할 때, 저 정도의 창백함은 이상합니다.]

‘오케이.’

하윤이 얼마나 꼼꼼하게 환자를 봤는지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었는데, 그럼에도 놓치는 부분은 있었다.

1년 차라 그런 거라고 하기도 뭐 했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이러지 않겠는가.

간 문제로 입원한 환자의 손가락을 유심히 볼 수 있는 사람은, 환자를 보는 데 있어 도가 텄거나 이미 여러 가지 질환을 소거하고 또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일 터였다.

“환자분?”

수혁은 바루다의 분석을 통해 새롭게 데이터화한 환자의 문제 목록, 즉 손가락 끝의 창백함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어쩐지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르단 느낌이 들었다.

뭔가 확신에 차 있는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이제 시작이구나.’

하윤은 이 패턴을 알고 있었다.

해서 기대를 품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환자는 그저 수혁을 바라보았다.

“네?”

“혹시 손가락 끝…… 언제부터 이랬나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상온에서도 창백해 보이는데, 세수하거나 찬물이 닿았을 때 따끔거리거나 지나치게 차가워진다거나 하는 증상은 없었나요?”

“어, 아…….”

환자 입장에서는 더없이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이 사람이 나를 계속 지켜봤나 싶을 지경이었다.

지금 수혁이 말한 그대로의 증상을 얼마 전부터 겪었기 때문이었다.

“아……. 맞아요. 세수할 때 손이…… 아프더라고요. 그 후로는 일부러 따뜻한 물로 하는데, 무심결에 찬물 마시려고 컵에 손을 대거나 할 때도 그래요.”

“언제부터였죠?”

“음……. 열흘?”

“열흘이요?”

“네. 아니…… 한 2주?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최근에 발생한 증상이네요?”

“네.”

레이노 현상(Raynaud phenomenon).

손끝이 차가운 기온 또는 스트레스에 과한 반응을 보이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류마토이드 질환이나 혹은 혈행장애와 연관이 있을 수 있었다.

[자가면역질환에서도 동반될 수 있습니다.]

‘이미 윌슨 병에 대한 검사는 음성이 나왔지만, 류마토이드 팩터를 비롯한 여러 검사에서는 그렇지가 않지?’

[네. 검사 나가지 않았습니다.]

‘일단 이걸 나가 보자.’

[간과는 딱히 관계가 없어 보이는데요?]

‘우선은 문제 목록을 하나씩 지워 나가 봐야지. 여전히 짚이는 게 없다는 게 이상한 일이니까, 차차 생각을 더 해 봐야 할 필요가 있어.]

[그것도 그렇습니다. 간만에 헷갈리는 케이스로군요.]

단서를 잡은 거 같기는 한데, 조금 애매한 단서였다.

지금 환자가 가지고 있는 주된 증상, 즉 복수를 비껴 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수혁은 지금까지 이러한 단서들이 모여 결국, 진짜 진단명을 가리켰던 경험을 수도 없이 해 온 몸이었다.

“우선 환자분, 이 현상도 질환에 의한 겁니다. 이에 대한 검사를 해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 어려운 검사인가요?”

어려운 검사라.

아마 CT나 이런 뭔가 이동해야 하는 검사를 의미하는 것일 터였다.

가뜩이나 배가 불러 거동이 불편한데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 하면 힘들었겠지.

수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혈액 검사입니다. 지금 오전이니까……. 푸시하면 오후에 결과 볼 수 있을 겁니다.”

“아……. 혈액. 음.”

알고 보니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아픈 게 싫은 것이었다.

이해가 안 간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수혁도 본인이 의사면서 동시에 피 검사 하는 건 그리 즐기지 않으니까.

“아, 그것도 힘드시구나. 그럼…… 제가 뽑아 드릴까요? 저 안 아프게 잘 뽑는 편입니다.”

“정말요? 그래 주시면…….”

“네, 제가 바로 하겠습니다.”

해서 수혁은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혈액을 뽑아냈다.

장담했던 것처럼 통증은 거의 없었을 터였다.

귀신같이 피부 표면에서부터 혈관까지의 거리가 가장 짧은 부위를 골라 최소한만 찔러서 뽑았으니까.

“오…….”

“안 아프죠? 이거 결과 나오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아직은 비껴 있는 단서일 뿐이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하여간 몰랐던 문제를 확인한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표정이 아까 수혁을 보기 전보다 훨씬 밝아져 있었다.

다만 하윤은 그렇게까지 밝지는 못했다.

“선생님. 음……. 레이노 병이 있다고 해도 딱히 간경화랑 연관이 있는 건 아니겠죠?”

“그렇긴 하지.”

“그럼 여전히 불명인가요?”

“아직은 그렇지. 아직은 그런데…… 간 생검은 생각 없으시대?”

환자의 뜻을 묻는 게 아니라 지정의인 김승욱의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생검이란 조직검사를 뜻하는데, 사실 조직검사 자체가 막 위험한 것은 아니긴 했다.

하지만 부위가 문제였다.

간은 달리 말하면 핏덩이이지 않은가.

푹 찔렀다가 피가 왕창 나면 그거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다.

해서 임상의들은 어지간하면 자제하는 편이었다.

단지 호기심을 억제하기 위한 방편으로 간생검은 지나치기 때문이었다.

“아……. 이게 윌슨도 아니고 해서…… 그리고 처음에는 술 안 마신다고 했었는데, 자꾸 물어보니까 실토하셨거든요.”

“응, 바뀐 기록 봤어. 꾸준히 드시긴 하던데?”

“그래서 아무래도……. 지방간에 의한 간경화 아니겠나 하시는 거 같아요. 이뇨제가 일단 듣고 있기도 하고요. 그게 아니더라도 사실 치료 방침이 달라지지는 않잖아요? 이유 불명의 간경화도…… 치료는 비슷하니까요.”

이유 불명의 간경화가 맞다면 그럴 터였다.

아니라면 확 달라지겠지만.

하여간 아직은 수혁도 명확하게 이거다라는 게 없는 상황이라 별말을 꺼내진 못했다.

“그럼 생검 생각은 없으시겠네?”

“네.”

“뭐……. 위험만 있고 이득이 거의 없어 보이긴 하네, 지금 상황에서는.”

“네.”

“그럼 결과 나올 때 다시 보자.”

“네, 선배. 감사합니다.”

“아냐, 아직 뭐 나오는 게 없는데.”

해서 수혁은 그대로 병실을 빠져나와 우선 당직방으로 향했다.

침대에 걸터앉은 채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뭘까?’

생각의 주제란 뻔하디뻔했다.

방금 본 환자의 진단명은 과연 무엇일까.

이뿐이었다.

[아까에서 추가된 것은 레이노 현상뿐입니다. 이게 딱히…… 연관이 있지는 않죠.]

‘그건 그래. 음.’

한데 오늘은 고민을 해 봐도 뭐가 나오는 것이 없었다.

그만큼 오리무중이었다.

문제가 많이 튀어나오는 환자도 어렵지만, 죄다 음성이 환자는 더 어렵다더니 이 환자가 딱 그 짝이었다.

증상은 있는데 검사는 음성.

의사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전화 오는데요?]

하다 하다 안 돼서 다른 일을 좀 하고 있으려니 하윤에게 전화가 왔다.

결과가 나온 모양이었다.

그거 말고는 이렇게 애매한 시간에 전화가 올 리 없었다.

“응. 어때?”

“어……. 음성이에요.”

“다?”

“네, 다.”

“아씨…….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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