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89화 (389/1,303)

389화 추계 학회 그리고 (4)

“안녕하십니까, 태화 의료원 내과 3년 차 이수혁입니다.”

수혁은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단상 위에 올랐다.

지팡이 때문에 조금 느리긴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주목을 받을 수 있었다.

수혁을 아는 사람들은 알아서 그랬고, 모르는 사람들은 모르는 대로 그랬다.

“다리가 불편한갑네.”

“그럼 뭐 연구만 하나?”

“에이……. 레지던트가 어떻게 그래. 펠로우면 또 몰라.”

“요새 큰 병원들은 연구 펠로우 거쳐서 연구 교수 루트 타는 애들도 있다던데?”

“아……. 애초에 그렇게 간다?”

“그렇지 뭐. 환자를 어떻게 보겠어.”

이현종이나 신현태 또는 조태진이 들었으면 난리 났을 대화들이 여기저기에서 이어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셋은 모두 각기 발표가 있거나 또는 좌장으로서의 일이 있어 여기 있지는 않았다.

장강명 정도만이 있다는 얘긴데, 그는 그저 고소를 머금을 뿐이었다.

‘븅신들……. 환자를 왜 못 보냐. 니들 본 환자 다 합쳐 봐야 저기 이수혁 선생이 3년간 본 환자 중증도에 발치도 못 미칠걸.’

그러고 있으려니 수혁이 말을 이었다.

“제가 발표할 주제는, 간암에 있어 고주파 열 치료(Radio-frequency ablation)를 시행함에 있어 이아트로제닉(Iatrogenic: 의사의 부주의로 인한) 전이 가능성입니다. 아마 여기 계시는 많은 분들께서 간암을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간암은 암으로 인한 사망 원인 중 폐암과 더불어 1, 2위를 다투는 암이니 당연한 일입니다. 비록 B형 간염에 대한 백신이 보급된 이후 세대에서는 발생률이 줄고 있으나, 오히려 알코올 및 비알코올성지방간염 등에 의한 간 경화는 늘고 있어 앞으로도 그 중요성이 퇴색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2000년대 까지만 해도 간암은 대한민국 사망원인 중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전에는 위암이 1위였다가 내시경 검진이 보편화 되면서, 조기 검진이 되어 생존율이 비약적으로 올라가 버린 덕이었다.

한국인 특유의 식습관으로 인해 여전히 위암의 발생률은 높지만, 내시경만 꾸준히 받으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서는 그리 무서운 병이 아니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간암 또한 간염이 있거나 간 경화가 있는 환자에서 정기 검진이 보편화 되기는 했으나 그 효과가 위암만큼 드라마틱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간암이 위암에 비해 더 독한 성향을 보이기도 하거니와 초음파라는 게 내시경처럼 민감하게 병을 잡아내기가 어려워서이기도 했다.

“이것은 태화 의료원 데이터입니다. 단일 간암 병변에 대해 고주파 열 치료를 하는 것은 이제 간암 치료에 있어 아주 보편화 된 방법입니다. 수술적 절제술과 비교할 때 생존율과 재발률이 크게 차이가 없다는 보고가 있어서 더더욱 그렇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피할 수 있으면 의사나 환자나 그렇게 하고 싶지 않겠는가.

만약 치료 효과가 같은, 비침습적인 방법이 있다면 굳이 몸에 칼 대는 것은 불필요한 일일 터였다.

단지 불편하고 아파서가 아니라 수술 후 회복하는 동안 다른 치료가 불가하기에 그랬다.

오히려 더 치료 결과가 나빠지는 수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태화 의료원에서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얘기가 조금 다릅니다. 이 연구는 태화 의료원 외과 김승규 교수님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약 2만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평균 30개월 추적 관찰한 연구로, 지금까지 어떤 센터에서 이루어졌던 연구보다 더 신뢰도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승규.

외과 의사지만 내과 의사라 해서 모를 만한 이름은 아니었다.

특히 이 자리의 3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소화기내과 의사들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와……. 태화 의료원은 부럽네. 사람 이름 대니까 연구 신뢰도가 팍 뛰네.”

“치사하지 않냐?”

“치사하다기보다는……. 그건 아니지, 인마.”

“하여간 레지던트도 그런 데이터 쉽게 접할 수 있고……. 나도 펠로우 서울서 할걸. 여기선…….”

“야야, 교수님 듣는다.”

“들으라고 해. 부려 먹기만 하고 책임지는 거 하나도 없는데. 어차피 추계야. 나 이제 나갈 거야.”

화가 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지 않은가.

대한민국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간이식을 제일 많이 한 사람이었다.

외국 학회에서도 질문할 때, 나 김승균데 하면 다들 눈을 깐다고 들었더랬다.

물론 단순히 뛰어난 의사여서만은 아니고 얼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하여간 그만한 무게를 지닌 사람이었다.

“이 연구에서는 수술적 절제에 비해 고주파 열 치료를 시행한 환자에서 재발률도 41% 대비 62%로 높았고, 5년 생존율도 85% 대비 71%로 낮게 보고 되었습니다. 심지어 다른 센터 데이터를 돌렸을 때는 이 차이가 더 심하게 벌어졌습니다. 즉, 우리가 원래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고주파 열 치료라는 것에 어떤 문제가 있을 거란 얘기가 됩니다.”

수혁의 말에 다시 한번 여기저기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아마 외과 학회였다면 반응이 사뭇 달랐을 터였다.

그래, 역시 수술이 최고지 뭐 이런 반응이 주를 이루지 않았을까?

하지만 내과 쪽은 정확히 그 반대였다.

“아니, 그럼 다 배 째라는 건가?”

“그래도 환자 순응도 면에서 고주파 열 치료가 월등한데.”

“태화에서 욕심부려서 수술해야 되는 케이스도 태운 건 아닌가?”

불만들이 많았다.

내과를 택한 사람들은 태생적으로도 외과 계통 의사들과 달랐지만, 수련 과정에서 더더욱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칼보다는 비침습적인 방법을 선호하게 된다, 이 말이었다.

물론 수혁은 쓸데없는 말을 계속 들어 주고 있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영상의학과 복부영상의학과 교실의 협조를 구해 해당 연구에 쓰였던 데이터를 다시 리뷰 했습니다. 즉 2만 명의 데이터를 다시 한번 영상의학적으로 리뷰 했습니다. 원발 종양의 크기 및 위치 그리고 재발한 종양의 크기 및 위치를 중점적으로 리뷰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작은 병원 레지던트들 그리고 교수들이 입을 벌렸다.

아니, 칠성이나 아선 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체…… 영상에 사람이 얼마나 많으면 저게 돼?”

“2만 명 영상을 리뷰 한다고? 열고 닫는 데만 시간 오지게 걸릴 거 같은데.”

“맨 파워 지리는구나, 역시…… 태화, 태화 하는 게 괜히 그러는 게 아니라니까.”

말이 쉽지, 영상을 리뷰 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기에 그랬다.

정말이지 교수와 펠로우들을 갈아 넣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괜히 이 논문 쓰면서 김진실 교수 인상이 변했다느니, 김판호(김진실 판독실 호랑이)가 더 무서워졌다느니 하는 얘기가 돈 게 아니란 얘기였다.

“그 결과 수술적 절제술의 재발은 종양의 크기에 주로 영향을 받고 위치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주파 열 치료 시에는 크기보다도 종양의 위치가 더 중요했습니다. 다시 말해 원발 종양이 간 표면에서 더 깊숙이 있을수록 재발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얼핏 들으면 당연해 보이는 얘기였다.

고주파 열 치료라는 게 초음파 보면서 밖에서 고주파 바늘 찔러 넣고 종양을 태우는 거 아닌가.

피부로부터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정확히 태우기도 어려울뿐더러 위험해지기도 했다.

실제로 태화처럼 경험이 많고 또 제대로 된 백업이 없는 병원에서는 고주파 시술을 하다가 동맥이나 다른 기관을 태워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해서 이번에는 반응이 그리 뜨겁지 않았다.

“또한 재발한 종양의 위치 또한 원발 종양의 위치와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잉?”

“이건 또 뭔 소리래.”

하지만 이어지는 문장에 대해서는 달랐다.

장강명 또한 눈썹을 치켜떴을 지경이었다.

‘뭐지?’

뭐, 워낙 간을 보는 의사가 아니긴 했다.

주로 내시경을 하는 의사지 않은가.

솔직히 말하면 검진센터 살피고, 내시경 하고 나면 진이 빠져서 기절할 지경이었다.

해서 간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회의나 집담회 때 주워듣는 게 다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 새로운 얘기였다.

‘나만 모르나.’

조금 긴장되기도 하고 한심하단 생각이 들기도 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다행히 다들 비슷한 반응이었다.

특히 소화기 쪽에서도 간담췌를 보는 교수들도 허허하고 있었다.

반쯤은 저 어린놈의 새끼가 뭔 소리를 하나 하는 얼굴을 하고 있기도 했으나, 태화 측 사람들은 역시 이수혁이다 뭐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더 많았다.

태반은 장강명 덕이라 할 수 있었다.

‘야, 니들 줄 잘 서라. 고까울 수는 있는데……. 그거 티 내는 순간 보직 교수는 물 건너가는 거야. 자칫하면 잘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젊은 나이에 센터장 단 장강명의 말이다 보니 다들 귀를 기울이는 수밖에 없었다.

‘이수혁 선생……. 나랑은 계속 가는 거야. 이걸 봤어야 되는데.’

장강명은 어쩐지 훈훈한 마음이 들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즉 고주파 바늘이 원발 종양에 도달하기 위해 지나갔던 경로에 종양이 재발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겁니다.”

“어…….”

“이를 확률로 계산해 보니 태화 데이터는 0.8%에서 아주 강한 연관성을 보였고, 다기관 자료에서는 센터에 따라 10%까지도 확인되었습니다.”

“허.”

치료를 위해 행한 일이 도리어 재발의 단초가 되었다는 얘기였다.

의사 되면 아니, 의대생 때도 지겹도록 듣는 말이 바로 ‘Do no harm’, 즉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말 아닌가.

의사라면 적어도 이것만큼은 하지 말아야 된다는 인식이 다들 있었기에 충격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이것이 단순히 통계적인 연관일 뿐 이론적인 근거는 없을 수 있으므로, 영상의학과 김진실 교수님과 함께 실험을 해 봤습니다. 이는 간암에 이환 된 돼지의 CT 영상입니다.”

“허……. 스케일 보소.”

레지던트 주제에 실험 논문이라니.

대다수의 병원에서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동물 실험은 더더욱 그러했다.

쥐가 아닌 대형 동물을 이용했다면, 그건 아예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까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화면에 뜬 영상은 분명 돼지의 간이었다.

“우리는 이 돼지의 암에 우선 방사선 동위 원소를 주입했습니다. 보시면…… 이렇게 동위 원소가 있는 곳은 빛이 나죠?”

“음.”

“그리고 전신 마취 하에 고주파 열 치료를 시행했습니다. 영상으로 보시면 아시겠지만, 시술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었습니다.”

“음.”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정말이지 완벽한 술기였기에 그러했다.

태화 의료원의 복부 영상의학 수준이 정말 높다더니 이것만 봐도 딱 느껴졌다.

“그리고 나서 다시 한번 방사선 동위 원소의 위치를 확인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

이번엔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다들 입을 쩍 하고 벌렸다.

확실히 아까는 종양 안에 이쁘게 남아 있던 동위 원소들이 바늘이 뚫고 들어갔던 경로에 조금 남아 있었다.

심지어 경로가 아닌 부위에도 튀어 있는 것이 보였다.

“혹 이번 케이스가 특이했을 가능성이 있어 재현성 검증을 위해 다시 한번 실험을 시행하였고 결과는 다르지 않았습니다. 즉, 고주파 열 치료 시 의도치 않은 전이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허…….”

다들 절망에 휩싸이는 듯했다.

간암 환자들 중엔 수술이 불가한 환자들이 많아서였다.

도저히 컨디션이 안 되는 환자들도 수술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는 치료가 있다는 것이 위안이었는데, 이런 결함이 있다니.

이 소리를 듣고서도 얼굴이 여전히 밝다면 그놈이 이상한 놈이었다.

[슬슬 풀어 주시죠. 너무 괴로워들 하는데?]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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