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화 식사하면서 (1)
수혁은 전화가 끊어진 틈을 타서 식당 안으로 향했다.
안에는 이미 이현종과 신현태 그리고 조태진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현종이 조태진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원래 올 자리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넌 인마 가서 도시락 까먹어!”
“아니, 제가 먹는 건 제가 낸다니까요?”
“그럼 저기 가서 혼자 먹든지.”
“와 정 없게……. 우리 다 같은 내과 아닙니까?”
“그런 식이면 너는 왜 혈종 다른 교수들이랑 안 먹고 여기 왔어. 의리 없게.”
“우연히 이게 너무 땡기더라고요. 그 뭐야…….”
조태진은 말을 하다말고 메뉴판을 뒤적거렸다.
보아하니 뭔 식당인지도 모르고 그냥 막 들어온 것이 뻔했다.
하여간 조태진도 어지간한 양반이었다.
“그래, 짜장.”
“짜장은 이 새끼가. 호텔 중식집에서 제일 먹지 말아야 할 게 짜장인데 뭔 소리야.”
“그건 또 왜요?”
“여긴 사자표 춘장 안 쓰잖아. 맛대가리 없어. 요리 먹기도 바쁜데.”
“아…….”
“아……는 개뿔. 이……. 어, 수혁아. 여기야. 여기.”
이현종은 그런 조태진을 향해 맹폭을 퍼붓다가 이내 지팡이를 짚은 채 안으로 들어오는 수혁을 발견했다.
그와 동시에 표정이 순식간에 변하는가 싶더니만 수혁을 와락 끼어 안고는 자리로 안내했다.
보통 때 같았으면 말렸을 신현태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발표 끝내줬다며? 학회장 이 자식이 이거 좌장 이 시간에 주지 말라니까 줘 가지고 그걸 못 봤네.”
“아빠……. 심장내과에서 제일 중요한 세션에 있었던 거 아니에요?”
“중요하기는. 심장이 거기서 거기지. 괜히 인공 장기 중에 제일 빨리 개발되네 마네 하고 있겠냐. 엄청 단순해.”
“어…….”
그런 소리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심장내과 하는 사람이 해도 되는 건가.
수혁은 간신히 절로 튀어나올 뻔한 소리를 삼킨 채, 핸드폰을 탁자 위에 올려다 놓았다.
바쁜 건지 뭔지 아직도 전화가 오지 않았다.
“응? 이건 왜 꺼내?”
“새로 샀나? 아닌데? 아직도 후줄근한데?”
“뭐니, 이거.”
세 교수 모두 수혁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람들 아니던가.
핸드폰 하나 올려놓은 거에도 호들갑을 떨어 댔다.
“아니, 지금 병동 당직이 지상인데. 전화한다고 해서요.”
“전화를……? 발표하는 사람한테 뭔 놈의 전화를 해?”
“환자가 어려운가 봐요. 하필 왔다 갔다 하는 모양인데…….”
“그래? 그럼 빨리해야지, 이 새끼는 뭐 하는 거야. 지상? 이름은 또 왜 그래.”
이현종은 수혁에게 대할 때하고는 확연히 다른 목소리로 남의 이름까지 뭐라고 하고 있었다.
신현태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좀 모지란 애 있어요. 그나마 약국장? 뭐 그거 열심히 하니까 봐주는데……. 논문을 너무 뺀질거려.”
“논문을? 태화 의료원에 왔으면 논문 한두 편은 쓸 각오가 되어 있어야 정상 아닌가?”
“그러니까요. 어휴.”
큰 병원 교수일수록 교수 이외의 길에 대해서는 무감한 것이 사실이었다.
원래 그래야 하지 않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대한민국 의료 체계를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게 그렇게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었다.
기실 대한민국 의료의 태반을 책임지고 있는 건 외국에 비해 접근성이 압도적으로 좋은 동네 의원, 즉 1차 진료 기관 아닌가.
외국인들이 와서 놀라는 것 중 하나가 동네에 병원이 많다는 것이었고, 그 병원에 있는 이들이 죄 전문의들이라는 것이었다.
이게 정말 의미가 있으려면 개원할 전문의에 대한 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져야만 할 텐데, 태화를 비롯한 아선, 칠성과 같이 큰 병원에서는 다소 소홀한 면이 있었다.
큰 병원 출신들이 오히려 개원가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이 우연은 아니란 뜻이었다.
“논문도 못 쓰는 게 무슨 의사라고……. 수혁아 얘랑 놀지 마. 나쁜 물 든다.”
“그래, 나도 뭐 제자들 편 가르는 거 같아서 이런 말 하기 뭐 하지만……. 이런 애는 좀 그래.”
물론 이현종이나 신현태나 개원가에 대해서는 무지했을뿐더러 지금 당장 머릿속엔 수혁만 들어 있었기에 맹비난은 계속되었다.
우웅.
전화가 울리고 나서야 조금 조용해졌다.
하여간 환자가 안 좋다고 하지 않았던가.
의사로서 집중해야 할 시점이었다.
혼내는 건 나중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어, 지상아.”
“어. 수혁…… 아, 원장님, 과장님……. 조 교수님, 안녕. 안녕하세요.”
이현종은 깜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는 유지상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인사하지 말고 환자나 비춰 봐. 왜 네 얼굴이 나와?”
어찌나 목소리가 컸던지 서빙하던 직원이 흠칫 놀랐을 지경이었다.
룸도 없어서 밖에 자리를 잡고 있던 터라 손님들 중에서도 힐끔거리는 이가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그 누구도 이현종에게 눈치 주는 사람이 없었다.
정말이지 유지상의 얼굴 따위를 볼 시간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네네, 죄송합니다. 환자는 여깄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혈압을 주소로 내원했고, 워크 업 위해 입원한 상태입니다.”
“고혈압은 얼마나 나왔는데?”
“150에 110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지금은…….”
유지상은 바로 답하지 못하고 모니터를 가리켰다.
그 와중에 잠깐 환자 얼굴이 스쳐 지나갔는데, 삽관이 되어 있었다.
아무튼, 엄청 급한 상황임은 틀림없어 보였다.
“혈압이 또 높네?”
“네. 145에 100…….”
“근데 문제가 그것만이 아닌데?”
이현종은 모니터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 갔다.
평소처럼 질문을 더 던지거나 시험을 해 본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본능적으로 이 환자가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눈치챈 까닭이었다.
아까 심장은 상대적으로 간단한 장기라고 하긴 했지만, 실제 심장에 어떤 문제가 생겼다면 이 녀석은 잘 기다려 주지 않았다.
어 하는 순간에 휙 하고 죽어 버릴 수가 있었다.
“심장박동 수. 120이 넘잖아. 뭐야, 처치 제대로 하고 있어? 아미오다론 안 들어가?”
“지, 지금 들어갑니다.”
“지금? 이 녀석이 이거.”
“그…….”
“일단 환자 상태 계속 읊어 봐. 고혈압 워크 업으로 입원했으면 뭐라도 했을 거 아냐?”
본태성 고혈압, 즉 그냥 혈압이 높아지는 상태인지 아닌지를 감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2차서 고혈압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야만 했다.
이차성 고혈압에는 갑상선 질환, 신장 질환, 쿠싱, 신장 혈관 협착 또는 부신의 종양 등이 있었다.
이현종이 묻는 것은 바로 이에 대한 것이었다.
위에 열거한 질환들은 그중 어느 것 하나라도 있으면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다.
“어……. 일단 랩…….”
“랩 뭐 인마!”
“부신 호르몬은 정상이고……. CT는 찍기는 했는데 아직 판독은 안 나왔습니다.”
“판독? 인마 너 CT 아예 못 봐? 뭐가 이상한지는 의심할 수 있을 거 아냐? 그리고 영상은 당직 없대니? 가서 안 물어봤어?”
“그게…….”
지상은 사실 억울했다.
원래 자기 환자도 아니지 않은가.
학회 간다고 죄 인계해 놓고 떠나는 바람에 모르는 환자를 떠안은 마당이었다.
심지어 이 환자는 그저 워크 업만 하기 위해 입원했으니 별거 없을 거란 얘기도 들었더랬다.
당연히 검사 결과고 뭐고 떠들어 볼 생각도 못 했다.
어차피 학회 끝나고 오면 다시 인계해 줄 테니까.
그런데 이게 이렇게 되다니.
‘환자 넘어간 거 달려와서 심폐소생술 하다가……. 방금 전엔 제세동기까지 써서 겨우 리듬 돌아오게 한 건데 혼나고 있네.’
게다가 딱히 처치를 못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환자를 죽음에서 생으로 끌고 나온 것은 명백히 지상이었다.
“뭐 하고 있어? CT 띄워 봐!”
“아, 네. 죄송합니다.”
하지만 여기선 죄송하다는 말밖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뭐 어쩌겠는가.
원장이랑 과장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노려보고 있는데.
버티고 서 있다가는 뒤질 거 같았다.
해서 차라리 고개를 돌리고 컴퓨터만 두드리기로 마음먹었다.
“야야. 띄웠으면 머리 치워.”
“네.”
온갖 구박이 이어졌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은 조금 편해지긴 했다.
하여간 원장이랑 과장에 수혁까지 있지 않은가.
조태진이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을 조태진이 안다면 섭섭해할 수도 있겠지만.
조태진은 혈종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 당장 이 위기만 넘길 수 있다면 그 어떤 구박도 견딜 수 있었다.
“야, 머리만 치워? 휠 굴려. 지금 우리 어디 보니?”
“아……. 죄송합니다. 굴리겠습니다.”
“머리 숙이고 굴려. 안 보여.”
“네, 네.”
정도가 좀 지나치지 않나? 싶기도 했지만.
점심시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원래 자신이 해야 했을 일을 위에 맡긴 셈 아닌가.
아랫사람으로서는 이렇게 노티가 되고 나면 책임을 덜 수 있었다.
휴 하고 한숨이 나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자식이 휠 굴리랬다고 한숨을 쉬네.”
“아, 아뇨. 이건…….”
“너 이름 뭐라고? 유지상?”
“아니…….”
“어! 야, 멈춰 봐.”
“아, 네네.”
고혈압을 일으키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신장 혈관의 협착이었다.
여기가 좁아지면 혈류를 인지하는 기관에서는 혈압을 끌어 올리게 되었다.
원래보다 적다고 느껴지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해서 이현종은 일단 신장 혈관이 보이는 곳에서 영상을 멈췄다.
“음.”
“으음.”
“으으음.”
세 교수의 입에서 모두 끙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리 내과 교수들이라 해도 영상 판독이 쉬운 건 아니어서였다.
[정상이라고 말해 주시죠. 시간이 없습니다. 환자 심장박동 수가 또 슬금슬금 올라가요. 저러다…….]
‘알았어.’
벌써 몇 번이나 심폐소생술을 반복하고 회생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젊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 죽지 않았을까?
또 아무리 젊다 해도 이게 반복되다 보면 결국 죽게 되기 마련이었다.
“정상 같은데요? 신장 혈관은.”
“응? 아, 그래. 그래. 더 내려. 음. 여긴 괜찮은 거 같은데.”
“목을 볼까요?”
“어, 그래. 목. 목을 보자.”
원래 레지던트가 교수들 고민하는데 끼어들면 화가 나기 마련인데.
상대가 수혁이다 보니 모두들 호의적이었다.
심지어 말을 반대로 하라고 해도 다들 들었다.
지상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해서 경부 CT를 열었다.
“그래, 거기.”
수혁이 멈추게 한 곳은 갑상샘이 있는 곳이었다.
“갑상샘이 좀 커져 있지 않나요?”
“응?”
“아……. 그런가?”
수혁의 말을 듣고 보니 조금 커져 보이기도 했다.
워낙 작은 놈이라 긴가민가하긴 했지만.
수혁의 말이라면 믿어야 할 터였다.
“네, 거기 자세히 보시면.”
“확대 좀 해 봐라, 이놈아!”
“네네.”
“인마 팍 키워! 우린 핸드폰으로 보고 있어.”
“아, 네. 죄송합니다.”
지상이 확대를 하자 과연 종양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게 모양이 좀 이상했다.
“터진 거 같네요. 아무래도…….”
“폭풍이구나. 일단…… 일단 길항제 때려! 안 그럼 또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