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화 식사하면서 (2)
갑상샘 폭풍.
갑상샘 호르몬이 일시에 너무 지나치게 쏟아질 때 벌어지는 일이었다.
사실 갑상샘이라고 해봐야 손가락 두개 만한 조직일 뿐인데 거기서 호르몬 좀 나온다고 뭐 얼마나 큰일이 벌어질까 싶기도 하겠지만.
호르몬은 아주 소량만으로도 신체를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물질이었다.
“빨리 항갑상샘제 쓰라고! 안 들려!”
“저희가 하고 있습니다!”
이현종의 고함에 간호사가 대신 답했다.
생각해 보면 지금 유지상은 CT 띄운 채 쪼그려 앉아 있는데 대체 뭘 할 수 있겠는가.
상황이 급박하지 않았다면 이현종이란 사람이 참 너무한다 싶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음식점 분위기는 그랬다.
일단 호텔 식당을 떡하니 예약하고 들어와 놓고는 아무것도 시키지도 않은 채 소리만 고래고래 지르고 있지 않은가.
“뭐 하는 거야?”
“화상으로 진료 보나?”
“아니……. 그럴 거면 나가서 좀 하지.”
“그러게.”
점잖은 손님들마저 수군거릴 지경이었다.
아마 지금 환자가 죽네 사네 하는 상황이라는 걸 알았다면 더 넓은 아량으로 이현종과 그 일당들의 만행을 이해해 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지 않은가.
불만이 쌓이자 지배인이 나섰다.
“저, 손님?”
“인마, 약 들어가? 왜 아직도 심장이 계속 뛰어!”
“그 들어갔습니다.”
“손님……?”
“근데 아까 뭐라고 했어? 심실세동이 왔다고?”
“네.”
그래 봐야 별 소용은 없었다.
그 누구도 지배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모두가 핸드폰에 머리를 처박고 있을 뿐이었다.
“소…….”
“아, 조용히 좀 해! 환자 죽어, 그러다!”
“네? 죽어요?”
“그래? 나 심장내과야!”
“아…….”
네가 심장내과인 거랑 환자가 죽는 거랑 내가 조용히 하라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나 싶었지만.
여기서는 일단 물러나는 것이 나을 거 같았다.
이현종의 눈빛이 이상했다.
돌았다고 해야 할까?
“저기 손님들……. 이제부터 예약하면 받지 마요. 뭘로 예약되어 있지?”
“태화 의료원 이현종 원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응? 태화 원장? 아니, 멀쩡해야 될 사람이…….”
“그러니까요. 아무튼, 예약 불가로 걸까요?”
“어어. 항상 꽉 찼다고 해요.”
“네.”
지배인이 속절없이 물러났기에 통화는 계속되었다.
아까처럼 시끄럽지는 않았는데, 지배인 때문은 아니었다.
CT를 볼 때만 해도 착착 진행되던 진단이 암초에 걸려서였다.
“근데…… 갑상선 폭풍이 온다고 다 심실세동이 오진 않는데? 기저 심박 수가 몇이었지?”
“원래 입원 당시에도 100 가까이는 됐습니다.”
“100이라……. 높은데, 음. 그래도 문제가 생길 정도는 아냐.”
이현종은 금세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갔다.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아마 지금까지 본인이 겪었던 경험들 또는 읽었던 문헌들을 되새기고 있는 것일 터였다.
신현태는 그런 이현종을 바라보다가 이내 수혁을 돌아보았다.
수혁 또한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갑상선 폭풍이라고 하기엔……. 사실 혈압이나 심장박동 수가 지금 그렇게 높지가 않아. 그렇지?’
[네. 정상보다야 확실히 높지만……. 이 환자 애초에 고혈압 워크 업 위해 입원한 환자이지 않습니까? 그걸 고려하면 지금 혈압인 145에 110은 결코 높다고 볼 수 없겠죠.]
어지간히 높지 않고서는 이차성 고혈압을 의심하지 않는다.
물론 약을 써서 안 들었다면 당연히 의심을 해 봐야 하겠지만, 하여간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이렇게 젊은 환자가 고작 저만큼 심장이 뛰고 혈압이 저렇다고 세동이 오고 심장이 뻗어서 문제가 생겨?
원래 문제가 있었다고 의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왔나 본대요?”
“뭐가 와. 조 교수, 너 또 이상한 소리 하려고 그러지?”
“잘 봐요. 수혁이 뭐가 온다니까요? 신기가 있어, 애가.”
“아니……. 미친놈아. 신기가 왜 있어 얘가. 무당이야?”
“뭐 의술의 신 이런 거…….”
“어휴.”
신현태는 제발 이놈이 진심이 아니길 빌며 한숨을 쉬었다.
‘진심이 아닐 리가 없지.’
하지만 신현태는 이미 이비인후과 김효열에게 다 전해 들은 바 있었다.
수술실에서도 수혁이가 신기 있다고 하면서 조언을 들으라고 했다고.
당연히 수술이 어그러졌나 했더니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걸 또 곧이곧대로 따르다니. 김효열 그놈도 진짜…….’
어이가 없었다.
명색이 의사란 놈들이 신기라니.
어떻게 생각해 보면 또 그럴싸하긴 했다.
정치인들조차 누굴 후보로 내세울 건지 점쟁이에게 물어본다지 않는가.
진짜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사람은 무당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고, 아내에게 들었던 바 있었다.
“심전도. 심전도를 좀 보자.”
심장 문제다 보니 무용해진 신현태와 조태진이 가만히 시간을 죽이고 있으려니, 이현종이 먼저 입을 열었다.
수혁 또한 중얼거리던 것을 멈추고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그래, 심전도를 봐야겠어. 원래…… 심장에 문제가 있던 거 아닐까?’
[어떤 문제가 있어야 이게 가능할까요?]
‘그건 모르지. 이런 건 처음이잖아.’
[그렇죠.]
뭐라도 지시가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던 유지상인지라 즉간 심전도를 내보였다.
아까 찍은 것이었는데, 당연하게도 불호령이 떨어졌다.
“야, 인마! 지금 찍어 보라고!”
“아, 네네.”
“야! 그건 보여 주고! 너밖에 없어, 거기? 인턴 없어? 인턴보고 찍으라고 해!”
“아, 네. 죄송합니다.”
다시금 시끄러워졌다 이 말이었다.
식당 사람들의 이목이 다시 한번 집중되었다.
아까와는 달리 조태진과 신현태는 핸드폰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었기에 남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와, 우리 민폐네.”
“그러니까요. 그래도…… 안 그럼 이 환자 죽을 거 같은데요? 심전도 보자고 하시는 거 보면 부정맥이나 경색 의심하시는 거 아닐까요?”
“그렇긴 하지. 음.”
내과 또한 응급 상황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수술실처럼 분초를 다툰다기보다는 10분 또는 30분 혹은 시간 단위를 다투는 경우가 많았다.
내과적 질환이 문젠데 분초를 다퉈야 할 정도로 환자가 안 좋아졌다면 그건 이미 끝이었다.
하지만 순환기, 즉 심장은 좀 얘기가 달랐다.
여기선 분초가 생명을 불살라 버릴 수도 있었고, 살릴 수도 있었다.
“음……. 그래, 음.”
“음…….”
이현종과 수혁 모두 심전도를 바라보았다.
‘뭐지? 뭐가 문제지?’
[여기선…… 아, 여기서 리듬이…… 아닌가.]
‘심전도는 진짜 어렵긴 해. 근데 PQ가 좀 짧은 느낌이 있는데…….’
[WPW 신드롬을 의심합니까?]
‘근데 임상적으로 맞나 모르겠어.’
[분석해 보겠습니다.]
수혁이 바루다를 이용해 분석에 들어가 사이, 이현종은 그저 기억을 떠올렸다.
그가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환자를 보면서 겪었던 이상한 일들, 그리고 케이스 리포트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은 일들도 많았다.
큰 병원에 있다 보면 우연에 우연이 겹치는 일을 많이 보게 되기 마련이었다.
중한 환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그랬다.
“그래, 지금 뽑은 거. 음. 그래, 확실하네. 이 환자 WPW 증후군이 원래 있어. 아마 빈맥이 있었을걸?”
“어……. 그게 환자가 의식이 없어서.”
“하여간 이게 맞아. 원래 WPW 증후군이 있는 상황에서 외부 요인에 의한 빈맥이 더해지면 발작성 상심실성 빈맥(PSVT)이 아니라 발작성 심방세동(PAF)으로 가. 아까 찍은 거 보니까 너 아까 심실세동이라고 했는데 심방세동이잖아. 그러니까 수월하게 돌린 거야, 인마.”
“아…….”
유지상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아까 보여 주었던 심전도를 돌아보았다.
워낙 급해서 판독이 아니라 그냥 리듬으로 쭉 뽑았는데, 리듬이 흔들거리길래 심실세동인가 보다 하고 제세동기를 쳤는데 그게 잘못했던 거였나 싶었다.
“용케 약 대신 제세동기를 썼어. 칼슘 블로커나 베타 블로커 썼으면 큰일 났을 텐데……. 제세동기를 쓴 건 잘했어.”
“아, 감사합니다.”
“칭찬은 아닌데? 진단명도 모르고 때렸는데 어떻게 칭찬을 해. 우연히 한 거지. 아냐? 너 뭔지 알고 했어?”
“아……. 아닙니다.”
“그래. 새끼……. 하여간 원래는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을 거야. 만약 그랬다면 고혈압 워크 업이 아니라 부정맥 워크 업을 하러 왔겠지. 거의 증상이 없었는데……. 이번에 갑상샘 염증하고 종양이 생기고 그게 터지면서 문제가 생긴 거지.”
WPW 신드롬이라고 하면 뭔가 심각하게만 느껴지겠지만.
사실 발작이 없이 무증상인 경우도 굉장히 많았다.
이 경우에는 어떠한 치료도 없이 경과 관찰만 하면 되었다.
아마 원래 환자는 이 상태에 해당했을 터였다.
그러다 이현종 말대로 갑상샘 폭풍이 생기면서 외부 요인에 의해 심장박동 수가 빨라지면서 원래 있던 에러가 더 심해졌을 것이고, 그러다 발작으로 이어졌을 터였다.
“일단 지금 심장박동 수 줄고 있잖아.”
“네.”
“이거 더 줄고 나면 응급으로 이엔티에 의뢰해서 갑상선 떼 버려.”
“네?”
“뭘 그렇게 놀라? 원인을 제거해야 될 거 아냐. 너 그럼 심장 태울래? 그게 쉬울 거 같아, 아니면 갑상선 떼는 게 쉬울 거 같아.”
“그…… 갑상선…….”
“그래. 그렇게 하라고. 우리만 학회지, 다른 과는 다 정규잖아.”
생각해 보니 그렇긴 했다.
내과만 학회라 모두 나가 있을 뿐, 다른 과는 정규 진료 중이었다.
그 말은 의뢰를 하면 받을 수 있는 상태란 얘기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리고 이제야 환자가 살게 되었단 확신이 든 지상은 한결 편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답만 떡 먹듯이 하지 말고. 너 이거 담당 교수한테는 노티 했냐? 누구지?”
“아, 하겠습니다.”
“잘한다, 잘해. 3년 차라는 놈이……. 내가 이래서 4년제, 3년제로 바꾸는 거 반대했는데……. 내과 전문의 되는 데 3년이 말이 되니? 우리 수혁이 말고 대체 누가 3년 만에 어엿한 전문의가 될 수 있냐고.”
“형……. 왜 갑자기 학회를 비난해……. 여기 병원 아니고 식당이야.”
이현종은 갑자기 화를 내다가 신현태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멈추었다.
병원이 아니란 것을 자각한 덕이었다.
안 그래도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는 사람인 데다가, 방금은 환자까지 봐서 그런가 더더욱 병원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맞네. 아 배고파. 너 인마 너 때문에 밥도 못 먹고.”
“죄송…… 죄송합니다.”
“알았으니까 빨랑 끊어. 환자 이상하면 전화하고. 에이.”
“네네. 원장님. 감사합니다.”
“내가 말한 대로 해. 알았어?”
“네.”
하여간 이젠 끝이었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될 정도로 어려운 환자였지만 전화로 해결하지 않았던가.
이현종이라 해도 보람과 자부심이 막 넘쳐 흘렀다.
그렇지 않아도 수혁이랑 밥 먹게 된 지라 기분이 좋은데 여기서 보람까지 느끼게 될 줄이야.
“여기 주문받아요!”
“네, 아까 말씀하셨던 탕수육에…….”
“아니, 아니! 코스로 세……. 아니다. 조태진 너도 사 준다. 네 개!”
“아, 네. 준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