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95화 (395/1,303)

395화 국시 준비 (3)

“오늘은 심전도입니다. 어려울 텐데…… 음. 근데 오늘 사람이 진짜 많네요?”

수혁의 강의는 강의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동기들 앞에서 하는 강의 정도는 그야말로 ‘따위’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이나 큰 무대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해 온 수혁이지 않은가.

세계적인 석학들마저도 감탄해 마지 않았던 것이 수혁의 강의인데, 동기들이야 어떻겠는가.

다들 강의가 끝나면 한마디씩 보태는 수밖에 없었다.

‘천재의 강의는 다르더라.’

‘지금 태화 의료원을 다니고 있으면서 이 강의를 놓치는 건 진짜 바보짓.’

‘올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명강.’

등등의 말이 병원 전체를 나돌고 있었다.

모두가 시간 나면 한 번은 가 봐야겠다는 결심을 했을 지경이었다.

딱히 내과에 관련된 사람들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그랬다.

심지어 오늘은 심전도였다.

흉부외과 측뿐 아니라 학생들도 몰려왔다.

청운의 꿈을 안고 의대에 진학한 후, 심전도 책을 펴는 순간 내과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친구들이 얼마나 많던가.

이를 극복하게 해 줄 만한 강의란 소문 덕에 강의실은 우글우글했다.

“그…… 일단 섭시다. 서요.”

“아, 뒤에서는 안 보입니다!”

“의자를 좀 끌어옵시다!”

“아이고……. 일단 3년 차 대상이니까. 3년 차는 좀 앉게 해 주세요! 이게 다 뭐냐고!”

싸움이 날 지경이었다.

강사를 맡은 수혁으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그냥 국시 대비용 강읜데 왜 이렇게 많이 왔데…….’

[강의를 잘하지 않습니까? 이건 제가 아니라 오로지 수혁의 재능입니다. 뭐라도 더 그럴싸하게 말하는 거.]

‘그렇게 말하니까 욕 같은데.’

[칭찬입니다.]

‘듣는 사람이 기분 나쁘면 욕이야.’

[참고하죠. 하지만 칭찬입니다.]

수혁은 찜찜한 마음을 애써 억누른 채, 고개를 돌렸다.

그사이 회의실 내부는 많이 정리되어 있었다.

수강생 수가 오늘 갑자기 는 게 아니라 꾸준히 늘어 온 덕도 있었다.

이미 처음 놓여 있던 것에 비하면 의자 수가 거의 두 배는 되어 있었다.

따닥따닥 붙어서 수혁의 강의를 듣기 위함이었다.

지금은 그 뒤로 죽 일어선 이들까지 있었다.

“음, 대강 되신 거 같으니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심전도…… 이게 뭔지 알아야겠죠? 쉽게 말하면 심장의 전기 전달을 보는 겁니다. 당연히 기준은 우리가 붙여 준 전극의 위치가 되겠죠. 흥분파가 전극에 가까이 오면 플러스, 멀어지면 마이너스가 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좀 어려울 테니, v1 전극을 중심으로 보죠. 이건 심장을 여기서 횡으로 잘라 바라보고 있는 거예요.”

“아.”

수혁이 심장 모형을 들고 설명을 이어 나가자 여기저기서 탄식이 일었다.

대개는 학생 또는 인턴들이었다.

이미 심전도는 본과 때 배운 녀석들도 많았음에도 그랬다.

그만큼 심전도는 난해한 과목이었다.

물리에서도 전기가 정말 어렵지 않던가.

이건 심장에 흐르는 전기에 대한 학문이다 보니 정말이지 더럽게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이러한 웨이브를 보인다는 건, 심장의 전기 신호가 이렇게 가까워졌다가 멀어진다는 거예요.”

“아하.”

“이걸 이제 v1에서부터 v6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횡으로 잘라서 심장을 보는 거죠. 여기에 더해 사지에 달아 둔 리드도 있으니 종의 방향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심전도라는 게 심장을 아주 자세히 바라볼 수 있는 기기란 뜻이에요.”

“오…….”

단순히 심장이 얼마나 뛰는지만 보는 게 아니라 어떻게 뛰는지도 볼 수 있다는 얘기였다.

실제로 심전도에 능통한 의사들은 심전도만 봐도 심장의 뛰는 모습을 대강이나마 그려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수혁도 그랬다.

[잘하죠?]

‘일단 지금은 치워. 어지러워.’

수혁은 바루다가 재현한, 방금 ppt에 띄웠던 케이스의 심장박동을 애써 무시한 후 말을 이었다.

“일단은 v1으로 계속 설명을 이어 나가겠습니다. 아까 전극에 가까워지면 플러스, 멀어지면 마이너스라고 했죠? v1의 위치에서 심장을 보면……. 가까워질 때는 우심방이 수축하는 거죠? 그리고 멀어질 때는 좌심방이 수축하는 겁니다. 그래서 플러스가 됐다가 마이너스 모양이 나오죠. 그럼 여기서 플러스 되는 그래프가 높아지거나 길어지면 뭘 의미할까요?”

“우심방 수축이 강해지는 거……?”

“맞아요. 괜히 강해질 리는 없을 테니, 우심방의 비대를 의심하게 되죠. 우심방이 비대해지는 경우는 뭐가 있죠?”

“판막 질환……?”

“맞아요.”

“아.”

이거 하나로 질환 하나를 뚝딱 의심할 수 있다니.

이제 감탄하는 이들의 범위가 1, 2년 차까지 확대되었다.

사실 3년 차 중에도 있기는 했는데, 그들은 필사적으로 체통을 지키고 있었다.

여기서 아, 했다가는 원래 몰랐다는 것을 들키게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바루다의 앞에서만큼은 별 소용이 없었다.

[저저…… 유지상 좀 보시죠. 공부 어지간히 안 하네요.]

‘놀란 얼굴이야?’

[네. 숨기려고 하지만…… 그나마 동기들 중에서는 자주 본 놈이라 분석이 가능합니다. 확실히 놀랐어요. 지금 보세요. 손이 바쁘잖아요. 필기 열나게 하고 있습니다.]

‘아이고. 지상아……. 이건 사실 기본인데…….’

수혁은 바루다의 말에 탄식을 해 가면서도 강의는 계속해서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럼 반대로 마이너스를 그리는 그래프가 길어진다면 좌심방의 비대를 의심해 볼 수 있겠죠. 자, 여기까지가 v1의 p 웨이브입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꽤 알아낼 수 있는 정보가 많지만, 뒤에 이어질 r 웨이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학생 수준에서는 v1의 r 웨이브만 잘 봐도 사실상…… 심전도 다 볼 줄 안다고 자부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 내과 의사들은 아니지만. 하여간.”

지금까지도 충분히 흥미로운 내용이었는데, 더 중요한 내용이라지 않은가.

다들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기침 소리는커녕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수혁의 입만 바라보았다.

딱 한 명만 제외하고 그랬다.

우창윤 교수의 부탁을 받고 잠입한 외과 펠로우, 이정민은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녹화가 잘되고 있나 안 되고 있나 확인하는 것이었다.

‘잘하긴 잘한다…….’

심전도에 그리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듣다 보니 귀에 쏙쏙 박히는 게, 싫어도 뭔가 배우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과연 이것이 천재의 강의로구나 싶었다.

‘아선 병원 교수들이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실력이 뛰어난 교수라 해서 다들 잘 가르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실제로 여기 태화만 해도 그랬다.

강의실에 앉아 볼 때는 뭐 저런 사람이 교수랍시고 들어왔나 싶을 만큼 강의력이 떨어지는 사람들도 많았다.

심지어 한 시간 내내 자기 자랑만 하다가 돌아가는 인간들도 있었고.

근데 병원에 와서 보니 명의도 이런 명의가 없구나 싶지 않았던가.

아선이라고 해서 딱히 다를 건 없을 거 같았다.

‘가르치는 것까지 잘하는 사람은…… 글쎄…… 모르겠네.’

적어도 지금 수혁과 같은 강의력을 보여 주는 사람은 경험상 단 하나도 없었다.

미친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자, r도 똑같이…… 가까워지면 플러스, 멀어지면 마이너슨데 이제 이건 심방이 아니라 심실이죠? r이 튀면 어떤 질환일까요?”

“우심실 비대?”

“오케이, 그럼 r이 두 개가 되면?”

“전도가 두 번 튀는 거니까……. 아! RBBB?”

“맞아요. 이렇게 생각하니까 쉽죠?”

“오…….”

심전도의 전부라 할 수 있는 r 웨이브에 대한 강의 또한 완벽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열거한 질환들뿐 아니라, 이를 이용해 감별할 수 있는 질환들이 전부 튀어나오고 있었다.

WPW 증후군, 후벽 심근경색, 전벽중격 심근경색, 좌심실 비대, LBBB 등등.

이거 하나로 이렇게 많은 질환을 의심할 수 있구나 하는 걸 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1, 2년 차, 심지어 3년 차들도 배우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애써 체통을 지키고 있더니만 지금은 그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거의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유지상은 숫제 전에는 아예 몰랐다는 얼굴로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프락치 노릇 하러 들어온 이정민마저 감동하고 있었으니까.

‘이제 병동 환자들 심전도 찍으면 좀 더 열심히 볼지도…… 모르겠네?’

지금까지는 중환자 내과에 보여 주면 만사 오케이라고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아무래도 주치의가 직접 환자 파악이 되면 더 좋지 않겠는가.

이건 그냥 상식이었다.

해서 웃고 있으려니, 누군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누구, 어잇, 시, 시바, 깜…… 아니, 죄송합니다.”

이현종이었다.

우창윤이 제발 그 사람한테는 걸리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던 사람이 눈앞에 서 있다 보니 어찌 아니 놀랄 수 있을까.

“뭘 그렇게 놀라. 배움에 열정이 있는 게 죄가 아닌데. 녹화해, 녹화. 앞에다 써놨잖아. 녹화하라고. 대신 어디 업로드하지는 마. 공유하지도 말고. 태화 재산이니까.”

“무, 물론입니다.”

“하여간…… 잘하지? 내 아들이라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잘해. 나도 심전도 저렇게 쉽게 설명하라고 하면 자신이 없는데……. 심전도를 얼마나 들여다봤길래 저런 통찰력이 있지.”

“그, 그러게 말입니다. 이수혁 선생은 정말 우리 병원의 보물입니다.”

“그렇지. 그렇지. 보물이지. 그 정도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보물이야. 안 그래?”

여기서 아니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굳이 상상해 볼 필요는 없었다.

이현종의 아들 사랑이야 과를 막론하고 다 알 수 있을 만큼이나 유명하지 않은가.

‘나라도 저런 아들 있으면 자랑 못 해서 안달 나지.’

게다가 뛰어나지 않은가.

미친놈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네네. 그렇죠. 하하.”

“근데 어디 가? 다 듣고 가야지.”

“아……. 제가 일이 좀 있어서.”

“무슨 일이 있어. 내과지? 내가 얘기를…….”

“아, 아뇨. 아닙니다.”

이정민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밖으로 향했다.

이현종이 바로 붙잡거나 하지는 않았기에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였다.

하지만 그 한숨을 끝까지 내뱉지는 못했다.

“어이, 잠깐.”

이현종의 외침 때문이었다.

게다가 몇몇 눈치 빠른 놈들이 입구를 막기까지 했다.

“너 외과잖아? 왜 여기 왔어?”

“네? 아…….”

대체 어느 틈에 봤을까.

명찰은 작은데.

노인이라 이제 눈도 침침할 텐데.

이정민은 여러 생각을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프락치 걸리면……. 뒤졌다……. 밥 한 끼 얻어먹고 이게 뭐냐.’

목포 선후배라고 불러 대기는 엄청 불러 대 놓고는 정작 해 준 게 뭔가 하면 밥밖에 없었다.

물론 일면식도 없으면서 밥이라도 사 먹인 것도 대단한 일이긴 했지만, 이만한 일에 가담할 가치가 있었나 하는 뒤늦은 후회가 몰려왔다.

하지만 이현종은 의외로 웃고 있었다.

“외과 중에도 학구열 있는 친구가 있었네.”

“아, 네네.”

“수술이야? 내가 전화해 줄게. 우리 외과 사람 많잖아.”

“아, 아뇨. 그건…….”

“원장 호의를 두 번이나 거절하네? 전화해.”

“그…….”

물론 상황이 마냥 호의적으로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응급 수술 떴어라……. 떴어라…….’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기도까지 하게 되었을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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