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397화 (397/1,303)

397화 국시 (2)

철컥.

수혁은 곧 시험실 안으로 들어섰다.

시험실이라고 해 봐야 대학교 강의실이긴 했지만.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은 수능의 그것과도 비견될 지경이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수능이 12년간의 노력에 대한 평가를 받는 시간이라고 한다면, 전문의 시험은 5년간의 개고생에 대한 평가를 받는 시간이니까.

밀도를 따지자면 아마도 후자 측이 더 진할 터였다.

“쟤가 이수혁이야?”

“그럴걸. 지팡이 짚잖아.”

“아, 그렇네. 이렇게 보니까……. 평범해 보이는데.”

“평범은 개뿔. 완전 천재라던데. 모르냐? 원장이라는 사람이 업고 다닌다더라.”

“아들이라서 그런 거 아닌가?”

“아 맞네. 그럼 천재에 금수저에 로열이네. 인생…….”

수혁을 본 이들 중 몇몇이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어 댔다.

어딜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부류들 아니겠는가.

수혁은 시선을 주는 대신 배정된 자리에 앉았다.

[만점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어차피 신문엔 수석으로만 날 텐데.’

[제가 틀리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어요. 고작해야 레지던트들 대상으로 하는 시험에서 이 바루다가 틀린다는 건…….]

‘뭐…….’

그 생각은 수혁 또한 마찬가지였다.

본인도 비록 레지던트이긴 하지만.

이미 교수 대우를 받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의 마음가짐 또한 그랬다.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야.’

수혁은 이제 와 공부할 거리를 뒤적거린다거나 하진 않았다.

어차피 시험 범위는 모조리 머릿속에 들어와 있지 않은가.

지금 해야 할 것은 컨디션 조절이었다.

이 또한 바루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훨씬 수월했다.

[장 움직임 괜찮습니다. 지난 3년간의 수혁의 화장실 행태를 고려할 때 급똥 가능성은 0.01 미만입니다.]

‘음.’

단어가 좀 상스럽긴 하지만 이것 외에 달리 표현할 방도도 마뜩잖은 게 사실이었다.

수혁은 눈을 감은 채 바루다의 보고를 좀 더 들었다.

[교감 신경 톤이 조금 상승되어 있습니다만, 따로 조절이 필요하지는 않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수혁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적합한 음원을 재생합니다. 그렇게 할까요?]

‘아니. 필요 없어. 적당한 흥분이 있어야 머리가 더 잘 돌지.’

[부족한 머리 용적을 가지고 있으니, 좋은 생각이라고 판단합니다.]

‘꼭 그렇게…….’

[워워. 방금 필요 이상으로 흥분했습니다. 화를 가라앉히시죠.]

‘아오.’

[그리고 커피 섭취를 권장합니다. 카페인은 평균적으로 수혁의 업무 수행 능력을 12%가량 증진 시킵니다.]

‘그건 뭐…… 알았어. 급똥에 영향 없을까?’

[이상할 거 같으면 섭취 중단 요청하겠습니다.]

‘오케이.’

중간중간 조금 화나게 만드는 대목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정말로 커다란 도움이 되어 주고 있었다.

그 누가 자신의 몸을 이렇게까지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이점만 해도 바루다를 몸에 지니게 된 것은 크나큰 행운이라 할 수 있었다.

“자, 이제 책들 집어넣으시죠.”

그렇게 차분히 기다리고 있으려니, 학회에서 파견된 감독관이 입을 열었다.

학창 시절 때부터 말 하나는 기막히게 잘 들어왔던 의사들이니만큼 그 즉시 책을 우르르 집어넣었다.

수혁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대강 보면 꽤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바루다를 통해 분석해 보면 정확히 두 부류로 갈렸다.

수혁이 앉은 줄에 있는 친구들 그리고 한 줄 건너 앉은 친구들은 죄 긴장하고 있었다.

내과 레지던트들이었다.

[올해 이비인후과는 시험이 좀 쉬울 거라더니 여유만만이네요?]

‘응. 작년에 89%였잖아. 올해는 그럼 95% 넘길걸. 가뜩이나 이비인후과는 나오는 인원도 적은데……. 작년에 팍 깎여서 군의관 수급도 차질이 있었다더라.’

그리고 바로 양옆으로 연하고 있는 줄에 앉은 이들은 바루다의 말마따나 여유로워 보였다.

그들은 이비인후과 레지던트들이었다.

전문의 시험은 컨닝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아예 다른 시험을 치르는 이들을 교차 배치하고 있었다.

“자, 그럼…… 1번째 하고 3번째 줄부터 시험지 배부하겠습니다. 지금 푸시면 안 됩니다. 덮어 놓고 계세요. 시간 되면 그때부터 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지금 풀면 안 된단 말이 있기는 했지만, 첫 장에 있는 문제를 훑어보지 않는 이는 드물었다.

“좋아.”

“휴.”

1, 3번째 있던 이비인후과 전공의들 사이에서 안도의 한숨이 걷잡을 수 없이 튀어나왔다.

물론 첫 장에 있는 문제들이니만큼 다른 문제들보다 쉽기야 하겠지만.

이것만 봐도 대강 사이즈는 잡히지 않겠는가.

쉬웠다.

옆에 있던 수혁이 봐도 그랬다.

‘과가 다른 데도 저건 다 알겠다.’

[그건 당연합니다. 수혁은 이비인후과 공부도 했으니까요.]

‘너무 쉬운 거 아니냐? 저런 거면 마킹 실수해서 하나 틀리면 순위 밀릴 듯.’

[절대평가니 관계는 없겠죠. 하지만 수혁은 안 됩니다.]

‘우린 좀 어렵겠지.’

수혁이 바루다와 문제에 관해 얘기하고 있는 사이 2, 4번째 줄, 그러니까 내과 측 시험지 배부도 시작되었다.

이쪽도 지금부터 문제를 풀면 안 된다는 말이야 있었지만 다들 첫 장 훑어보기에 여념이 있었다.

반응은 이비인후과 때하고는 전혀 달랐다.

“시발?”

“뭔 문제가…….”

일단 지문이 길었다.

1번부터 케이스 관련 문제인지 뭔지 72세 환자가 내원했다는 말로 시작하는데, 딱 봐도 복잡해 보였다.

모르겠단 생각이 이 사람 저 사람 머릿속에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흠.’

[평이한가요?]

‘지문 속에 힌트가 다 있으니까. 환자 몸을 보고 찾아내야 하는 거였다면……. 좀 어려울 수도 있는데, 이건 뭐…….’

[그럼 쉽군요.]

‘응.’

물론 수혁은 달랐다.

어렵기는커녕 좀 쉽게 느껴졌다.

그나마 안심이 되는 건 이게 첫 문제라는 점 정도였다.

설마 뒤에는 좀 더 어렵겠지,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땡땡땡.

곧 9시가 되어 종이 쳤다.

그러자 감독관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시에 입을 열었다.

“자, 지금부터 시작해 주세요.”

대답 대신 시험지 넘기는 소리가 우수수 들려왔다.

이비인후과 쪽은 아무래도 넘기는 속도 자체가 달랐다.

진짜 계속 쉬운 모양이었다.

반대로 내과 쪽은 끙끙거리는 소리가 태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

“음…….”

“아, 이거…….”

아예 첫 장부터 막힌 사람들도 많았다.

머리를 연신 긁적이며 불안, 초조 증세를 보이는 이들도 많았다.

이 모든 것이 아선과 칠성에서 초래한 일이란 사실을 알았다면 지금쯤 우창윤 멱살이라도 잡았을 텐데, 아쉽게도 전공의 수준에서 그만한 정보를 조합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눈앞에 놓인 문제 앞에 시름시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흠.”

그에 반해 수혁은 천천히, 그러나 거의 정확한 간격을 두고 시험지를 넘기고 있었다.

누가 보면 조금 공을 들여 시험지 개수를 세어 보는 줄로 착각할 정도의 속도였다.

하지만 수혁은 문제를 풀고 있었다.

눈으로.

딱 읽기만 해도 답이 보이는 통에 머리를 굴릴 새도 없었다.

‘다 풀면 나가도 되나?’

[제가 그런 절차를 알 거라 생각하고 묻는 겁니까?]

‘아니, 혼잣말이었어.’

[제가 인식 못 하게 생각할 수 있지 않나요? 미처 못 뻗었는데, 반대편으로는.]

‘소름 끼치는 말 하지 말고. 미처가 뭐야. 꼭 뻗으려면 뻗을 수 있는 걸로 들리잖아.’

[그건 아니니 걱정 마십시오. 근데…….]

‘쉽지?’

[네. 평이하군요. 출제자분들이 착하신 거 같습니다.]

바루다는 출제 위원 및 국시 위원장이 들었다면 민망해할 만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아마 필시 그런 표정을 지었을 터였다.

뒤늦게 문제 수준을 확인한 각 병원 내과 과장들이 달려온 상황이니 더더욱 그럴 게 뻔했다.

“당신네들 미쳤어?”

“뭔 생각으로…… 아니, 시발.”

“시발은 좀……. 다들 점잖은 사람끼리.”

“시발, 욕이 안 나오게 생겼어? 점잖은 척하지 마. 문제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하……. 좀 심하긴 하네. 이거…… 이거 우리 펠로우들 보고 풀어 보라고 하면 과연 합격률 몇 프로나 나올지…….”

몇몇 성미가 괄괄한 이들은 국시 위원장이 나이가 윗줄임에도 불구하고 쌍욕까지 해 댔다.

시선이야 당연히 어린 교수들을 향하고 있었지만, 진짜 욕하는 대상이 누군지는 뻔했다.

“그…… 그렇게 문제가 어렵나?”

국시 위원장은 땀을 뻘뻘 흘리며 되물었고, 신현태가 고개를 털며 앞으로 나섰다.

“교수님. 상식적으로…… 불명열 케이스로 코건 증후군이 나오는 게 말이 됩니까? 이건 선 넘었죠……. 이거…… 이거 교수님은 아세요?”

코건 증후군이라.

국시 위원장은 잠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조교수 하나가 와서 이런 것도 내 볼까요 했던 적이 있었더랬다.

처음 들어 보는 거라, 어렵겠거니 하고 그러라고 했다.

“나야 분과가 감염내과가 아니잖아. 모르지, 그게 뭐야.”

“아니……. 지금 쟤들 분과 전문의 시험 치르는 게 아니라 그냥 전문의 시험 치르는 거예요. 전문의. 이건……. 아유……. 케이스 리포트나 될 만한 걸 문제로…….”

“음. 뭐 어렵게 내야 하니까…….”

“분별력이 있겠습니까? 이거 아는 애가 누가 있어요, 이거. 여기도 별로 없는데.”

“음.”

따지고 나선 것은 신현태뿐만이 아니었다.

기조실장이라는, 병원 내에서 상대적으로 퍽 높은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시에 열과 성을 다했던 우창윤도 그랬다.

그는 정말이지 허탈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교수님…….”

“응, 자네는 또 왜.”

“이 케이스 이거…….”

“음.”

국시 위원장은 우창윤이 들이민 시험 문제를 보고 나서는 급히 고개를 돌렸다.

이것도 모르겠는 케이스여서 그랬다.

물론 그런다고 말을 멈추거나 할 사람은 아니었다.

우창윤은 윗사람들에게 싸바싸바도 잘하지만 싸울 때는 또 싸울 줄 아는 인간이었다.

“국소성 췌도 세포 증식증에 관한 건데……. 일단 이건 들어 보신 적 있어요?”

“없지.”

“와……. 당당하신 것 좀 봐.”

“췌도면 췌장…… 당뇨 얘긴가?”

“아니거든요?”

“음.”

“사실 췌장은 맞는데 당뇨 얘기는 아니에요.”

“음.”

할 말이 조금 더 없어진 국시 위원장이 흠흠 거리는 사이 우창윤이 계속 말을 이었다.

“이 문제 답이…… 제가 보니까 동맥혈 칼슘 자극 검사인데, 이건 내 보신 적 있어요?”

“음.”

음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론 아니었다.

아니, 아예 처음 들어 보는 기색이었다.

문제를 낸 조교수는 멀리 도망치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건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없죠? 없을 거예요. 저도 한 번밖에 안 내 봤거든요. 이거…… 이거 문제 낸 새끼…… 누굽니까?”

“그것까지는…… 비밀이네. 알잖아, 우 교수.”

“저는 알 거 같은데요?”

“응?”

“제 펠로우였던 새끼죠? 김종진. 그 새끼 이거 케이스 리포트 낸 걸 문제로 내고 앉았네.”

“음.”

이뿐만이 아니었다.

국시 시험장 일대는 금세 성토장으로 탈바꿈했다.

이대로라면 합격률 50%도 어려울 거란 예상이 파다할 지경이었다.

“진짭니까?”

얼마나 심각해졌는지, 감사차 나와 있던 보건복지부 직원마저 긴장했다.

내과가 50%만 나오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일단 군 의료 체계부터 박살 나게 될 게 뻔했다.

의학전문대학원 도입된 이래, 군필자들이 대거 의대에 들어가면서 공보의 숫자가 줄어 지방 의료 질이 팍 떨어졌다는 평도 있지 않은가.

그거야 취지가 좋았던 정책이었고 또 긍정적인 면도 있었으니 변명거리라도 있겠지만.

이건 그냥 시험이 어려워서 망가지는 케이스였다.

“어쩌지?”

국시 위원장은 그제야 다급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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