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9화 수술 (1)
“만점? 역시!”
신현태야 편견 없이 수혁의 발언을 받아들였다.
애초에 당연히 만점이겠거니 하고 있어서였다.
코간 신드롬이 문제로 나왔다는 걸 봤을 땐, 어쩔 수 없이 믿음이 좀 흔들리긴 했지만.
베드로도 어찌 되었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던가.
“우, 웃기지 마. 이걸 만점이라고? 2교시 얘기하는 거지? 그렇지?”
“그렇다고 말해. 1교시는 이거…….”
물론 다른 병원 교수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믿음이 부족한 자들아!”
신현태는 불신자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당연하게도 별다른 타격이 있지는 않았다.
믿지 않는 사람한테 안 믿는다고 하는 게 뭔 문제가 되겠는가.
“뭐라는 겁니까?”
“왜 이래요, 신 교수님. 풍이 오셨나. 저기 신경과 교수님도 계신데 가서 한번 보세요.”
“이놈들이, 진짜.”
오히려 조롱이 빗발쳤다.
신현태로서는 무척 억울했지만.
수혁이 볼 때는 자업자득이었다.
대뜸 믿음이 부족한 자라니.
순간 지하철이라도 탄 기분이었다.
“이수혁 선생. 그렇게 가만히 있지만 말고 어디 한번 말해 봐.”
“그래, 이수혁 선생. 이 추운 날 다들 기다리고 있잖아.”
누가 기다리라고 했냐는 말이 나올 뻔했지만.
수혁은 놀라운 자제력을 발휘해 참아 낸 후, 입을 열었다.
“네, 1교시까지 해서 만점 자신합니다.”
“아니……. 1교시를…….”
“시험 점수 공개 안 된다고 말 지르는 거 같은데. 이거 학회랑 보건복지부에는 보고되는 거 알지? 수석…… 수석이면 당사자한테도 공개된다고.”
“압니다. 자신합니다. 마킹 실수가 있었다면 모를까……. 틀릴 만한 문제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허…….”
어느새 제일 앞자리에 나와 있던 우창윤이 한숨을 쉬었다.
보고 있자니 수혁의 눈빛에 흔들림이 없어서였다.
‘읏.’
잠시 눈이 부시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머리가 지금처럼 빠지기 전엔, 나름 미남 소리를 들었던 우창윤으로서는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수혁이 어디 못난 외모까지는 아니더라도 잘생긴 건 아니었으니까.
‘이 자신감은…….’
어디서 느껴 봤더라.
그래, 이현종에게서 그랬다.
아마 돈이 많아야 주목받는 곳이라면, 이현종은 뒷방 노인네 취급이나 받게 될 터였다.
대학 병원 교수 월급이 적은 건 아니더라도 또 부자 소리 들을 만큼 많은 건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이현종은 딱히 재테크에 관심이 없어서 재산이라고는 병원 근처에 있는 아파트 하나가 다였다.
물론 병원이 강남에 있고, 지금 강남은 이현종이 집 살 때 강남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가격이긴 하겠지만.
‘학회장에서 마주치는 이현종은…… 빛이 나지.’
의사 이현종은, 또 학자 이현종은 포스가 남달랐다.
우창윤은 향후 수십 년간 그만큼 걸출한 인물이 대한민국 의료계에 다시 없을 거라 확신했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바로 지금 눈앞에 있나? 하는 착각이 일었다.
그만큼 수혁의 자신감은 너무도 자연스러웠고 또 품위마저 있어 보였다.
“저, 그럼…… 저는 신현태 교수님하고 점심 약속이 있어서요.”
“아, 그래……. 그…… 내가, 내가 확인할 거야?”
“네, 교수님.”
“음.”
그 바람에 우창윤은 더없이 없어 보이는 몸짓과 함께 옆으로 비켜섰다.
다른 병원에서 온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와중에 누군가 눈치 없이 중얼거렸는데, 모두의 눈총을 받았다.
“저, 저 친구는 만점이라는데……. 그럼 우리가 딱히 문제를 잘못 낸 건 아니지 않나?”
국시 위원장이었다.
“미, 미안하네.”
교수들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 직원마저 그를 째려보고 있었다.
한 명만 온 것도 아니었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비해 과장급이 여럿 충원되어 있었다.
“미안…… 미안하다고.”
“미안한 건 알고 있는 거죠? 국시 위원장님……. 이번 시험 결과에 따라 여기저기서 질문이 있을 수도 있어요.”
“아니, 우리는 성심성의껏 문제를…….”
“정도껏 성의를 보이셨어야지……. 지금 질본에 있는 의사직 과장들한테 문제 돌렸는데 이게 뭐냐는 반응밖에 없어요.”
“그 사람들은…… 임상을 떠났으니까…….”
“그런 문제가 아니라던데요?”
“알, 알았네.”
“부디 합격률 50%는 넘기를 바라세요. 시뮬레이션해 보니까……. 그나마 그 정도면 내년에 좀 더 군의관으로 끌어들이고 하면 될 거 같다니까.”
그 말은 곧 내년엔 공중보건의로 빠져도 되었을 이들이 대거 군의관으로 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가장 힘든 공중 보건의사가 제일 편한 군의관보다 낫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근무 조건의 차이가 컸다.
우선 입대 날짜부터 달랐다.
후배들에게 말 못 할 죄를 지었다 이 말이었다.
국시 위원장은 그 후로 내내 바닥만 보고 있었다.
출시 위원들과 함께였다.
“이제 고개 드시죠.”
그들이 정신적 유배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난 것은 한낮이 다 되어서였다.
낯익은 얼굴들, 즉, 각 병원 내과 전공의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2교시는 분명 쉬웠을 텐데도 표정이 그리 밝지는 못했다.
1교시의 여파가 너무 컸다.
“다시 숙이시죠.”
“응.”
“교수님이 원흉인 거 알 텐데 들키면 죽을지도 몰라요.”
“알았어.”
해서 우창윤은 지시를 번복했고, 그보다 윗줄인 국시 위원장은 즉시 따랐다.
본인이 생각해도 몇몇 전공의들의 얼굴이 너무 흉흉해서였다.
살기가 등등하다는 말이 뭘 의미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래? 쉬웠어?”
반면 이현종, 신현태 그리고 조태진 등은 전혀 다른 분위기 속에 있었다.
수혁과 함께 근처 중국집에 있었는데, 아직 식사를 진행하고 있진 않았다.
이왕 사주는 거 다 같이 고생했으니 태화 레지던트들 다 사 주잔 의견이 있어서였다.
이현종 말고는 다 찬성해서 그렇게 하기로 되었다.
원장의 권위보다는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는, 아주 민주적인 병원이었다.
“네. 쉬웠어요. 2교시는 뭐…… 이게 문젠가 싶더라고요.”
“그래? 아니, 이놈들이 미쳤나? 85% 맞추라니까…….”
수혁의 말이라면 뭐든지 믿고 보는 이현종 아닌가.
벌써 분기탱천한 얼굴로 전화기를 집어 들고 있었다.
국시 위원장, 그러니까 중앙 병원 내과 과장 번호를 찾고 있는 게 뻔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렵게 냈다고 혼나고 있는 마당에 이현종에게는 왜 쉽게 냈냐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아냐, 형. 진짜 어려워요. 1교시는 미쳤어.”
“수혁이 말이 틀렸다는 거냐?”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럼 가만히 있어.”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수혁 수준에서 쉽다 이거지. 얘가 좀 똑똑해?”
“아……. 음. 그렇지. 하긴. 나도 그랬어.”
이현종은 조금이나마 안정된 얼굴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 자신도 불국시라는 말을 들었던 때 전문의 시험을 보지 않았던가.
너무 쉬워서 이런 걸로 변별이 있나, 이것도 모르고 전문의가 되나 뭐 이런 생각이 들었었는데 알고 보니 합격률이 80%였다.
“어, 오네 애들. 봐요, 표정 어둡지.”
“그렇네. 우거지 죽상이네. 공부도 못 하는 놈들이 표정도 어둡네.”
“그렇게 말할 건 아니죠?”
“내가 미쳤니? 나도 원장이야. 사회성 좋아야 할 수 있는 직업이지.”
“네네.”
둘이 서로를 비난하는 사이, 태화 의료원 내과 3년 차들 즉 수혁의 동기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정확히 말하면 동기 28명에 낭인이 된 2명이 섞여 있었다.
벌써 군대도 전역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문의를 못 따고 있었다.
신현태는 오래된 제자를 안쓰러운 눈으로 살폈다.
‘남들보다도 더 어둡네.’
아무래도 또 떨어진 모양이었다.
그래도 레지던트 할 때는 그렇게 못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는데.
‘하긴 국시는 떨어질수록 합격률도 떨어지지. 그나마 이번엔 난이도도 이랬으니.’
이따 연태라도 한 잔 줘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으려니, 역시나 이현종이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다 잘 봤지? 우리 태화 전통에 어긋나게…… 이번에는 수혁이가 강의까지 했으니까 당연하겠지.”
아까 어려웠다고 했던 말을 똥구멍으로 들어 처드셨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발언이었다.
신현태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쉬고는 최대한 친절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떻게든 위로를 하기 위해서였다.
예상에 따르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에도 너덧 명은 떨어질 게 뻔하지 않은가.
“괜…….”
“아……. 네, 대강 잘 봤습니다.”
“응?”
한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누군가 하고 봤더니만 유지상이었다.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착한 놈이지만 그리 똑똑한 놈은 또 아니지 않은가.
해서 정신이 나갔나 하는데, 또 다른 놈들도 말을 보태고 있었다.
“저희도 뭐…… 떨어지진 않을 거 같아요.”
“다행히 수혁이가 강의해 준 덕에 1교시도 얼추…… 반타작은 했습니다. 2교시는 워낙 쉬워서.”
“오, 그래?”
“네.”
“오…….”
이뿐만 아니라 식사를 하면서 말을 나누다 보니 의외로 28면 중 떨어질 거 같은 놈은 없었다.
그렇게 수혁이 강의라도 들으러 오라고 했는데 말 안 듣고 뻐팅기던 두 오래된 제자만 죽상이었다.
“어휴, 자존심이 뭐라고……. 펠로우들도 다 듣던 강의를.”
“죄송합니다. 개원가가 바빠서…….”
“그래, 돈은 잘 버니?”
“그냥 뭐……. 그럭저럭이죠. 내과 간판은 못 다니까요.”
“에유, 이 자식 이거 너만 생각하면 내가 자다가도 깨.”
“죄송합니다…….”
신현태는 그렇게 두 제자 놈을 위로하고는 수혁에게 향했다.
수혁은 이미 얼굴이 불콰해진 마당이었다.
동기들이 저마다 고맙다고 술을 한 잔씩 따라 준 덕이었다.
보통 술도 아니고, 독주다 보니 딱히 술이 센 편이 아닌 수혁으로서는 견뎌 낼 재간이 없었다.
[두뇌 기능이 너무 떨어지는데요.]
‘괜찮아, 오늘은.’
[음…….]
수혁이 불안한 바루다를 다독이는 사이, 신현태가 옆에 앉았다.
그리곤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얘기를 꺼냈다.
정형외과 김선웅 교수와 관련된 말이었다.
“수혁아, 수술 그거 이제 해 볼 만하다더라.”
“아…….”
“전신마취라 걱정이 좀 되긴 할 텐데. 내가 마취과 측에도 잘 얘기해 놨어.”
“언제 받을 수 있을까요?”
“김선웅 교수가 다음 주 화요일 어떠냐던데. 일정 다 비워 놨다고. 지금까지 케이스 한 열 케이스 했는데……. 제일 결과가 안 좋았다고 해 봐야 생각보다 효과가 없었던 것 정도야. 위험하진 않은 거 같아.”
“뭐…….”
이미 수술에 대해서는 바루다와도 얘기가 끝난 상황이었다.
김선웅 교수가 말한 이래 따로 알아보니 확실히 근거가 있는 수술이었다.
보장구를 같이 맞추는 경우, 지팡이 없이 걷거나 꽤 오랫동안 서 있는 것도 가능해질 터였다.
수술 후 약간의 통증이 있을 수 있다고는 하는데, 설마 다친 직후만큼 아프겠나 싶기도 했다.
“저는 받고 싶습니다.”
“그래. 나랑 현종이 형도 같이 검토를 해 봤는데, 문제는 없을 거 같더라고. 무엇보다 김선웅 교수가 아주 열의가 넘쳐.”
“네. 해 볼게요.”
“그래……. 그럼 술은 이제 그만 먹어. 컨디션 조절해야지.”
“네.”
“이놈들, 물러가. 수혁이 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