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01화 (401/1,303)

401화 이제 전문의 (1)

아직 추운 계절, 2월이었지만 태화 의료원 내과 의국원은 로비에 모여들었다.

주말이라 당직을 제외한 전원이 모인 참이었기에 널찍한 로비가 비좁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와……. 많다.”

로비의 직원 하나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무리 과 내 행사라 해도 이렇게까지 모이는 경우는 없어서였다.

그만큼 보기 드문 광경이라 이건데, 다 이유가 있었다.

올해의 내과는 정말이지 다이나믹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자자. 이렇게 과 발전 모임에 와 주신 여러분들께 우선 감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과장부터 바뀌어 있었다.

신현태가 원장으로 영전한 덕이었는데, 당연히 차기 과장은 홍창기 정도가 할 거란 예상을 뒤엎고 김문재가 서 있었다.

소문에 따르면 이현종, 신현태 앞에서 석고대죄한 후, 감히 이수혁에게 대드는 놈들을 일벌백계하겠노라고 했다는 말이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절대 과장에 오를 수 없는 라인이었기에 퍽 설득력이 있는 소문이었다.

“제 기대보다 많은 분들이 와 주셨는데요. 차 타기 전에 원장님 축하 말씀부터 듣겠습니다.”

김문재는 거기까지 말한 후, 공손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신현태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신현태는 영 어색하다는 반응이었는데, 오히려 뒤에 서 있던 홍창기가 더 당당해 보였다.

직책이야 기획실장으로 원장단 중에서는 밑이었지만 나이를 고려하면 어마어마한 출세였기에 그랬다.

“원장님 한 말씀 하시죠.”

해서 마이크를 받아 넘길 때조차 자신감이 넘쳤다.

“네, 형. 하시죠.”

반면 교육수련부장이 된 조태진은 여전히 한결 같았다.

별로 좋은 뜻은 아니었다.

“이놈아 형이라니. 공석에서는 원장님이라고 해.”

홍창기는 그런 조태진을 나무란 후, 다시 신현태를 바라보았다.

신현태는 민망하다는 얼굴이었지만 그렇다고 내내 손을 내젓거나 하지는 않았다.

뭐가 되었건 그도 이렇게 된 이상 야망을 가져야만 했다.

‘적어도 우리 수혁이 완전히 자리 잡을 때까지는 임기 지켜야지.’

병원처럼 뒷말 많은 곳도 별로 없었다.

별다른 일 없이, 그냥 쉬고 싶어서 일찍 퇴직한 교수들 두고 도박을 했다더라, 바람을 피웠다더라 하는 근거 없는 소문이 나돌 지경이지 않은가.

원장단은 특히 그랬다.

그런 낭설을 딛고 일어나려면 지지 세력이 있어야만 했다.

보통은 소속 과였으니, 신현태에게는 내과가 그랬다.

“네, 신현태입니다. 태화 의료원 개원 이래…… 연속으로 내과에서 원장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실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합니다만 전임 원장님에 비하면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입니다. 많은 도움 주시길 기대합니다.”

해서 짤막하지만 진솔해 보이는 연설을 끝으로 마이크를 재차 넘겼다.

몇몇 불만 어린 시선들이 느껴졌지만 대개는 반대였다.

신현태의 말대로 연속으로 원장이 나온 건 경사 아니던가.

게다가 전임 원장인 이현종조차 끈 떨어진 연이 된 것이 아니라 통합진료센터라는 최초로 시도되는 센터의 센터장이 된 마당이었다.

내과 사람이라면 응당 자부심을 가져도 좋았다.

그만큼 재단에서 내과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얘기였으니까.

허구한 날 돈 못 버는 과라 괄시당하기만 했던 것에 비하면 정말이지 상전벽해였다.

짝짝짝.

박수 소리와 함께 김문재가 다시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자, 그럼 버스 탑승하겠습니다. 우선 교수님들부터 타시죠.”

과장의 말에 따라 교수들부터 우르르 밖으로 향했다.

여기서 지칭하는 교수는 협의 교수였다.

즉 전임 교수만을 뜻한다는 얘기였다.

임상 조교수, 임상 강사, 펠로우 등은 다음 순번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 교수, 가지.”

수혁은 전임 교수였다.

아직 임명식은 갖지 못했지만, 내정된 지 오래였다.

그것도 그냥 교수가 아니라 부센터장이었다.

자격은 차고 넘쳤다.

“아, 네.”

해서 이현종의 장난스러운 부름에 자연스럽게 응답할 수 있었다.

“과 발전 모임에 이렇게 사람 많이 온 건 또 처음이네.”

이현종은 신현태 바로 뒷자리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신현태는 그런 이현종의 말을 웃음으로 받았다.

“이게 다 제 인덕이죠. 형 원장 할 때랑 느낌이 딱 다르잖아.”

“미친놈이. 길 닦아 놨더니 이상한 소리 하네.”

“닦은 길이 왜이렇게 험해.”

“뭐가 험해, 인마.”

“어제 회의 안 들어와서 그래요. 형 원장 되기 전에는 태화랑 칠성, 아선이랑 차이 컸는데 이제는 진짜 비슷해졌더만.”

“인마, 그게 내 탓이야? 칠성은 지난 5년 동안 부은 돈이 2천억이야. 아선은 3천억이고. 건물을 하나씩 올렸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해.”

이현종의 말마따나 칠성과 아선은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하고 있었다.

외래동을 올리고 설비를 사고, 인력을 충원하는 등 1등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에 비해 태화는 좀 소극적이었는데, 아무래도 바루다의 실패가 컸다.

그룹 차원에서 이에 불구하고 투자를 더 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무래도 설득력이 없었다.

“하여간…… 그걸 타개해야 한다니까.”

“브랜드 평판은 아직 1위잖아.”

“집단 감염? 그거 이후로 반짝했는데……. 다시 뭐 주춤하고 있지.”

“열심히 해라. 난 이제 다 잊고 진료에 전념할란다. 못하겠어, 나는.”

“나도 못하겠는데.”

“아직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인데 재부터 뿌리네. 열심히 해 인마. 그래도 김다현 사장이 부족한 돈 부어서 센터도 만들어 주잖아.”

“열심히…… 해야지. 수혁아, 네 어깨가 무겁다. 다들 기대가 커.”

신현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결국, 수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현종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론 건강검진센터 중축이 있기는 했지만.

그거야 다른 병원들도 다 하는 짓 아닌가.

이럴 때 무언가 보여 줄 수 있는 건 역시나 다른 병원들은 엄두도 못 내는 통합진료센터였다.

“안 그래도 근질근질해요. 재활한답시고 진료도 못 하고……. 맨날 놀았잖아요.”

[오 자신감. 좋습니다.]

평소의 수혁이었다면 이럴 때 한 번쯤은 겸양을 떨었을 터였다.

하지만 수혁은 1월 수술 후 거의 1달 넘게 정양 중이었다.

바루다의 지도하에 각 과에 대한 지식을 무섭도록 빠르게 쌓고는 있었지만.

아무래도 책으로 공부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임상은 환자를 볼 때 비로소 완성되는 법이었으니까.

“야, 패기 넘친다. 교수가 돼서 그런가.”

“합격률 60%짜리 시험에서 만점 받고 전문의 됐는데 그럼 당연하지.”

“하긴 합격률 60%……. 우리 병원은 다행이지. 재수생 빼고는 다 붙었으니까.”

“유일한 합격률 100%. 그게 우리 수혁이 공이라 이거지.”

이현종은 거기까지 말한 후 껄껄 웃었다.

신현태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시험 결과가 나온 지 한참이었지만 그래도 웃음이 절로 나왔다.

무엇보다 제자들 보기가 껄끄럽지 않아서 좋았다.

다른 병원은 지금 초상집 분위기라지 않던가.

‘아이고……. 우리 과장님은 좋으시겠네, 좋으시겠어. 우리는 지금…… 절반이 전문의 못 따고 군대 가는데……. 내과 수련을 받았는데 왜 전문의가 아니니……. 죄다 야전으로만 가게 생겼다고 맨날 울어.’

50%만 해도 양반인 셈이었다.

태화가 100%를 찍고, 칠성과 아선이 그나마 90%를 찍어서 끌어올린 합격률이기에 그랬다.

나머지는 50%는커녕 30%도 안 되는 병원도 있었다.

당연하게도 모든 비난은 국시위원장의 몫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들리는 욕 중 절반은 그 인간 욕이라는 말도 있었다.

“우리 국시 위원장 덕에 변별력이 딱 있으니까 실력 있는 병원, 실력 없는 병원이 갈리네. 하하.”

물론 태화에서는 예외였다.

1교시 문제 보고 나서야 다들 후달려 하긴 했지만.

어찌 되었건 중요한 건 결과 아니던가.

“그러니까요. 하하.”

만점자에 전원 합격이라는 쾌거를 이룬 덕에 버스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훈훈했다.

비단 이현종, 신현태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던 덕이었다.

“자, 그럼 갑니다.”

해서 차량은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출발할 수 있었다.

목적지는 양평에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태화 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수련원이었는데, 신입사원 연수도 그렇고 하여간 대부분의 행사는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돈이 많은 계열사들은 해외도 나가고 하지만.

병원은 전자, 후자, 서자 중 서자 아니던가.

지원금이 턱없이 적었다.

“오, 좋네.”

“그러니까요. 역시 태화가 돈이 많아. 지원만 좀 더 해 주면 좋은데.”

“성과를 내야지. 내가 수혁이랑 응? 병원 전체 생존율 끌어올려 볼게.”

“그래요. 기대가 큽니다.”

태화 물산이 직접 지은 수련원이니만큼 시설은 꽤 좋았다.

위치도 좋은 편이라 한강이 딱 내려다보일 지경이었다.

그중에서도 교수들은 더 좋은 방을 배정받았는데, 수혁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센터장이라는 직함 때문에 교수들 중에서도 꽤 좋은 방에 들어설 수 있었다.

“오…….”

[역시 사람은 출세하고 봐야 하는군요.]

“뭔 수련원이 한강 뷰냐.”

[부센터장이라 그런 모양입니다. 레지던트 방은 도로 뷰던데.]

“태화가 원래 이런 거 잘하지.”

성과, 능력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는 기업이지 않던가.

너무 배려가 없는 기업이란 혹평도 있긴 하지만, 반대로 또 성취욕을 자극하는 기업이란 말도 있었다.

하여간 수혁은 잠시 교수로서의 특권을 누리다,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짐 정리 마치신 과장님, 센터장, 부센터장님들은 회의실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저녁 먹은 후에는 회식이 있을 예정이었다.

인원수가 적은 과들, 그러니까 이비인후과 같은 곳은 나름 레지던트 고 연차들도 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지만.

내과는 그렇게 했다간 이틀 밤을 새워도 회의가 끝나지 않을 터였다.

각 분과 또는 센터장과 부센터장만 회의에 참석할 권한이 있었다.

“어, 이 교수. 가자고.”

얼마나 중요한 회의냐면, 이현종마저 빼지 않고 재깍 참석할 정도였다.

수혁은 옆방에서 튀어나온 이현종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복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수술을 하긴 했으나 여전히 지팡이는 짚고 있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훨씬 수월해 보인다는 점이었다.

“야, 속도 빠르네?”

“이게 힘을 보조해 줘서요. 신경 이어 주면서 제 근력도 확실히 좋아졌어요. 뭐…… 움직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버티는 건 확실히.”

“김선웅이가 그래도 수술 하나는 잘하네.”

“수술 하나는?”

“정형외과가 그거 잘하면 됐지, 뭐. 진단을 알겠냐.”

“아…….”

수혁은 이현종이 수술 전에 테스트한답시고 내과 문제를 줄창 냈던 일을 기억했다.

당연하게도 김선웅 교수는 단 한마디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그걸 두고 멍청하다고 욕을 쏟아부었는데, 김선웅으로서는 억울해 죽을 지경이었을 터였다.

아니, 정형외과 의사한테 왜 내과 문제를 낸단 말인가.

분야가 다른데.

반대로 정형외과 문제를 냈으면 이현종이 답을 했을까?

[어지간히 알걸요? 이 인간도 괴물입니다.]

‘하긴 그것도 그렇긴 해.’

생각을 깊게 하다 보니 역시 김선웅 잘못인가 싶어졌다.

그때 이현종이 수혁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못 비장한 얼굴을 한 채였다.

“들어가자. 인턴, 레지던트 수급이 오늘 결정되는 거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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