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04화 (404/1,303)

404화 부센터장 (1)

주말은 늘 그러하듯 순식간에 지나가기 마련이었다.

더군다나 과 발전 모임을 빙자한 술자리가 있었다면 더더욱 그러했다.

그 술자리가 돈 걱정 별로 없이, 한강을 내려다보며 이루어졌다는 걸 감안하면 감히 순식간이었다는 말을 써도 좋을 지경이었다.

“음.”

월요일.

수혁은 감회가 새롭다는 얼굴로 센터 중앙에 앉았다.

새로 받은 가운을 입은 채였는데, 교수 전용으로 나오는 숏가운이었다.

얼핏 보면 이게 가운인지 아니면 정장 재킷인지 모를 디자인이었는데 명찰에 떡하니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 내과 교수 이수혁 이라는 글씨가 빽빽이 쓰여 있었다.

“우리 아들. 잘 어울리네.”

이현종 또한 같은 가운을 입고 나타났다.

원래 같으면 그저 명찰만 바꿔 달면 되지만.

고집을 부려 가운도 새로 받은 참이었다.

“고마워요.”

“근데 뭐 협진 온 거 있어?”

“안 그래도 훑어봤는데 첫날이라……. 아직은 없어요.”

“실적 없으면 여기저기서 물어뜯을 텐데. 내과 뭐 하는…… 아, 지금 나오네.”

“잉?”

“네가 신경 쓸 만한 협진은 아냐. 내가 이리저리 부탁해 놨거든. 분위기 너무 썰렁하면 안 되니까 각 분과에서 하나씩은 내라고. 잘하네.”

“아…….”

역시 괜히 센터장을 이현종같이 힘 있는 사람에게 준 것이 아니었다.

말발이 어찌나 센지 내과 과장은 물론이거니와 분과장들도 따박따박 다 들을 지경이었다.

하여간 덕분에 협진 횟수는 채운 셈이었다.

하지만 이현종의 말마따나 질은 형편없었다.

정말이지 레지던트 수준에서도 해결 가능할 법한 것들이 줄을 이었다.

“이건 그냥 저기 누구지. 안대훈 줘.”

“네. 그럼 우리는 뭐 하죠?”

“쉬지. 교수가 원래 이런 게 좋은 거야. 일 없으면 쉬어도 돼.”

“아…….”

“커피나 한잔 때리자. 원장 내려놓으니까 좋네. 찾아올 놈도 없고.”

“그럴까요? 제가 사 올게요.”

“어허이. 부센터장님이 자리 지켜야지. 내가 카드 줄 테니까 레지던트랑 해서 다 사 오라고 해. 첫날인데 베푸는 모습도 보여야지.”

“아……. 네.”

이현종은 정말이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쓸데없는 회의에 참석해야 할 일이 크게 줄었을 뿐만 아니라, 수혁과 단둘이 센터를 꾸리게 된 참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기분이 나쁠래야 나쁠 수가 없었다.

신현태나 조태진의 부러워 죽겠는 듯한 눈빛을 받는 것 또한 백미였다.

‘새끼들. 여기 들어갈 때 아주 응? 하하.’

뭐 어쩌겠는가.

능력이 모자란데.

수혁과 함께 이 센터를 꾸려 가려면 적어도 이현종 정도는 되어야만 했다.

이게 최대가 아니라 최소일 거라고, 이현종은 생각하고 있었다.

‘약간 슬픈데……. 벌써 어떤 부분에서는 나를 상회해.’

이현종이 대체 누구란 말인가.

태화 의료원 최고의 천재라 칭송받을 만큼이나 우수한 사람이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아마도 대한민국 의료계 최고의 천재 아닌가 하는 말까지 들어 봤더랬다.

그런데 이제 겨우 서른이 된 수혁이 이현종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었다.

다른 누구의 말이 아니라, 이현종이 느끼기에 그랬다.

“사 왔습니다, 원…… 아니, 센터장님!”

잠시 감회에 젖어 있으려니 커피가 왔다.

레지던트 둘이서 씩씩대며 뛰어왔는데, 어쩐지 좀 들떠 보였다.

새로 만들어지는 센터라 일이 없을 거란 예상이 있었으나 이 정도로 일이 적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세게 쉴 수 있단 생각이 팍 들자마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따르릉.

행복을 깬 것은 한 통의 전화였다.

불과 커피 몇 모금도 마시지 못했는데, 중앙에 비치된 전화가 울렸다.

“네, 통합진료센터입니다. 아……. 응급실이요?”

전화를 받은 건 안대훈이었다.

수혁이 받으려 했으나, 이현종이 체통 떨어진다고 말린 탓이었다.

물론 이현종도 첫 전화가 궁금하기는 했기에 스피커폰으로 돌려 둔 상황이었다.

“네, 저 응급실 당직 2년 차 한창수입니다.”

“아, 창수구나. 그래, 뭐. 왜?”

“그…… 새벽에 온 환자 인계받았는데요.”

“응.”

“환자 히스토리가 좀 이상해서 원래 다니던 내분비내과 측에 노티 드렸더니 일단 통합진료센터 쪽도 보자고 하셔서요.”

“어, 다 듣고 계셔. 말해 봐.”

“엇……. 정말요?”

“어, 이거 스피커폰. 인계해. 통합진료센터는 교육 목적도 있어서 무조건 스피커폰으로 할 거야.”

안대훈은 아까 수혁에게 전해 들었던 말을 고대로 읊었다.

저 잘했죠라는 얼굴로 수혁을 돌아보면서였다.

“네네. 환자…… 여자 24세입니다. 1형 당뇨병 환자신데……. 3주 전 당 조절이 잘되지 않아 입원했던 병력이 있습니다.”

“입원? 우리 병원?”

“네. 2주간 약 조절해서 당 잡아서 퇴원했는데, 퇴원 당일 열감이 있었다는 진술이 있습니다.”

“입원 기록에? 아니면 이번에.”

“와서 말씀 주셨어요.”

“아.”

그 말은 곧 환자의 상태 변화를 놓쳤단 얘기가 되었다.

물론 열감이야 별거 아닐 수 있었다.

특히 환자가 24살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1형 당뇨병 환자는 주의가 필요했다.

“그래서?”

“입원 도중에는 그래도 조절이 잘 되다가……. 감기 심해지고 하면서 안 되었다고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인슐린 펜 잃어버리셔 가지고.”

“어……?”

안대훈의 얼굴이 우선 심각해졌다.

1형 당뇨병은 2형과는 달리 인슐린이 부족해지면서 발생하는 병 아닌가.

그 말은 곧 인슐린이 치료에 있어 핵심이라는 뜻이었다.

당연하게도 이현종과 수혁 모두 아까보다 훨씬 더 가까이 왔다.

“그럼 지금 어떻지?”

수혁은 질문도 던졌다.

이미 스피커 폰이란 얘기를 했기에 2년 차 한창수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대신 아까보다는 보다 조심스럽게 답을 해 왔다.

수혁이 딱히 교수라서는 아니었다.

개원 이래 최고 천재라지 않는가.

그저 소문으로만 들은 게 아니라 강의도 들은 마당이었다.

거기서 느낀 바에 따르면 수혁은 허깨비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진짜였다.

“어제 새벽에 오실 때…… 의식 혼탁으로 왔습니다.”

“당뇨병성 케톤산증인가?”

“네, 일단 그것으로 생각하고 치료 중인데…….”

“그런데? 다른 증상이 있나?”

“아, 네.”

“발열?”

“어……. 네. 어떻게…….”

“당 조절이 안 되면 신경증이 생길 수 있지. 요실금이 흔해진다 이거야. 게다가 여자면 요로 감염에 취약해. 소변 검사 나갔어?”

수혁의 말에 수화기 너머 상황이 분주해졌다.

처방 확인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안 나갔을 리는 없었다.

이렇게 큰 병원 응급실에서 소변 검사는 루틴이었으니까.

하지만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처방을 낸 의사가 어느 정도 의심을 하고 있어야 빠른 확인이 가능했다.

“아, 네. 어…….”

“세균…… 세균뇨가 보입니다.”

“그래, 안티 쓰고.”

“네.”

“일단 갈게.”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수혁에게 이현종이 말했다.

“괜찮아? 이 정도 케이스는 사실…….”

“그래도 봐주면 좀 낫겠죠. 게다가 1형 당뇨라도, 24살 여자에서 의식 혼탁이 발생한 게 좀 마음에 걸려요. 뭔가 다른 문제가 더 있을 수도 있어요.”

“음, 네 생각이 그렇다면 뭐.”

“같이 가시진 않을 거죠?”

“어? 어. 일단은 여기 지키고 있어야지.”

“네.”

이현종의 말대로 아직까지는 대박 케이스라고 부를 만한 근거는 없었다.

물론 퇴원하고 얼마 되지 않아 다른 것도 아니고 당뇨병성 케톤산증으로 온 건 이상한 일이지만.

엄밀히 따져 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긴 했다.

1형 당뇨병 환자에서 인슐린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단 며칠이라도 지속되면 누구에게라도 찾아올 수 있는 증상이니까.

“선…… 아니, 교수님. 다리는 진짜 많이 좋아지셨네요?”

따라붙은 녀석은 당연하게도 안대훈과 하윤이었다.

어떻게 지원을 했는지 몰라도 첫 달부터 통합진료센터에 왔다.

둘 다 연차 내에서 꽤 인싸이니 가능한 일이었다.

“응? 아, 이거. 어. 좋아졌지. 빠르지?”

“네. 저보다 걸음이 빠른 거 같기도 한데요?”

“어, 너보단 빠른 듯. 운동 좀 해 인마. 너 배가 그게…… 밖에 나가면 나보다 훨씬 위로 볼걸?”

“군대 가면 빠진다고 해서 하하.”

“뭐……. 그래. 내가 거기까지 뭐라고 할 건 아니지.”

“아뇨, 선배가 빼라고 하면 빼겠습니다.”

안대훈은 정말로 그럴 만한 놈이긴 했다.

조선 시대 충신이 있다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까 싶었으니까.

쓴소리는 전혀 하지 못할 놈이란 점에서 간신의 탈도 쓰고 있는 셈이긴 하지만, 어찌 되었건 수혁의 말이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할 놈이었다.

“일단은 환자나 보자. 하윤아, 그걸로 보면 뭐가 보이냐?”

“아, 이거요? 네. 시범 도입이긴 한데…… 사진 빼고는 다 보여요. 랩 떴어요.”

“오. 봐 봐.”

“네.”

수혁은 그런 대훈에게서 하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하윤은 올해 태화에서 도입한 포터블 차트, 그러니까 탭을 들고 있었다.

컴퓨터로 접근 가능한 의무 기록이 전부 반영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가능했다.

“오……. 기록은 보이는구나?”

“네.”

“어디……. 음……. 아, 이 환자가 1형 당뇨 진단이 늦었네.”

가족력이 있는 경우는 오히려 진단이 빠른 편이었다.

1형 당뇨의 경우 발병 연령이 어리기에 주치의가 어찌 되었건 간에 조기 검진을 권하기에 그랬다.

하지만 이 환자는 돌연변이에 의한 1형 당뇨인 모양이었다.

해서 20살에 진단이 되었는데, 우연히 진단된 것이 아니라 증상이 있어서 진단이 된 케이스였다.

당시 환자는 잦은 설사를 주소로 내과에 내원하였고, 당시 내과에서 원인을 찾다가 이는 당뇨병에 의한 신경병증이라는 것을 밝혀내었다.

“그럼…… 생각해야 될 것이 많아지는데.”

이미 진단 당시에 신경병증이 있었다면, 다른 곳도 정상이 아닐 공산이 컸다.

[문제 목록 만들어 보죠.]

‘오키.’

수혁은 바루다에게 귀찮은 계산을 맡긴 후 응급실 안으로 들어섰다.

“아, 교수님. 이쪽입니다.”

그러자 2년 차가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 처치실 쪽을 가리켰다.

힐끔 보니 환자가 누워 있었는데, 시간이 좀 된 듯했다.

“왜 아직도 입원 안 시키고 있어?”

“아……. 그게 발열 원인까지는 알아내고 올리잔 의견이 있었어서요. 내분비 쪽일지 감염일지 모른다고.”

“그러다 우리한테 온 거구나?”

“네? 아, 네. 그…….”

“괜찮아. 애매한 환자들 보려고 만든 센터니까. 가서 보지.”

“네.”

수혁은 레지던트를 무려 셋이나 대동한 채 처치실 안으로 들어갔다.

[지린내가 나는군요.]

‘그러게.’

딱 들어가자마자 역한 냄새부터 맡을 수 있었다.

수혁은 마스크를 끼면서 동시에 환자를 살폈다.

그나마 새벽에 처치가 좀 됐는지, 지금은 의식이 혼탁하다기보다는 졸려 보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아프지 않아 보이는 건 아니었다.

비쩍 마른 환자의 몸에서 오랜 투병을 엿볼 수 있었다.

“당화 혈색소는?”

“그…… 13입니다.”

“13? 아예 조절이 안 된 거잖아? 입원 전이야? 아니면 이번에 나간 거야.”

“입원 전에는 16이 넘었습니다.”

“허…….”

그냥 조절을 아예 안 했단 뜻이었다.

‘이렇게 되면…….’

[과연 단순한 요로감염일까요?]

‘아닐 가능성이 크지. 잘 봐야겠는데?’

아무래도 아까보다는 더 표정이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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