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05화 (405/1,303)

405화 부센터장 (2)

당화 혈색소란 간단히 말해 지난 3개월간 환자의 평균 혈당 수치를 엿볼 수 있는 검사라 보면 되었다.

그게 13이라는 건, 평균 300 이상이라는 얘기가 되었다.

보통 당뇨 환자에서 목표 수치가 7, 즉 평균 혈당 수치 150 미만인 것을 감안하면 이건 정말이지 미친 수준이었다.

“제일 최근에 나간 검사 결과 좀 봐.”

“네.”

수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레지던트를 불렀다.

2년 차는 즉시 옆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에 결과를 띄웠다.

무척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혁은 틈새 시간 또한 허투루 보내진 않았다.

즉시 환자에게로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165cm에 몸무게는 대략 53kg입니다.]

‘말랐네, 확실히.’

[네, 혈압은 100/60, 심장 박동수는 분당 86, 호흡수 분당 19, 체온…… 체온이 39도군요.]

‘39.’

고열이었다.

이 정도 열은 단지 열만으로도 의식을 혼미하게 만들 수 있었다.

40도 이상의 열은 아예 뇌에 손상을 준다지 않는가.

이런 열이 왜 날까?

남들 같았으면 감도 잡기 어려웠을 터였다.

‘허리춤에 자국이 있어.’

[혈액순환이 잘 안된다는 증거입니다. 저게 왜 났을까요? 옷은 헐렁해 보이는데.]

‘환자가 젊다는 걸 감안하면……. 나는 왜인지 알겠는데.’

[뭔데요?]

‘일단 있어 봐.’

수혁은 다 말해 주지 않고 말을 아꼈다.

“여깄습니다.”

때마침 수혁에게 레지던트가 결과표를 들이밀었다.

수혁은 즉시 환자에게서 시선을 돌려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음.”

딱 눈에 띈 것은 우선 백혈구 수치였다.

바루다는 아까 수혁의 끊어진 말이 못내 궁금했지만, 일단 이것부터 분석하기로 했다.

의료 목적 인공지능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기도 했다.

[36100/mm^3……. 급성 세균성 감염을 시사합니다.]

‘그것만이 아냐. 무작위 혈당 검사 수치가 300이 넘어. 인슐린이 들어갔는데도 이래. 처음 수치가 대체…… 아, 500이었구나. 미친…….’

[우선은 인슐린 치료하고, 수액 보충하고……. 전해질 교정 치료가 시급합니다. 이건 위험한 수준이에요.]

‘그러면서 동시에 감염도 있잖아. 내 생각에는 당연히 꽤 심각한 형태의 요로 감염일 텐데……. CT는 찍었나? 없구나, 역시.’

새벽 5시쯤 온 환자이지 않은가.

대학 병원이라 해도 가장 취약한 시간이었다.

전문의나 교수 진료는 어려운데, 전공의 고 연차 진료조차 쉽지 않았다.

모두 병동 환자들의 회진을 준비하고 있기에 그랬다.

온전히 응급실 레지던트 또는 인턴의 손에 맡겨야 하는 수도 있었다.

그나마 태화 의료원쯤 되는 곳은 아예 내과 레지던트가 응급실에 내려와 있어 조금 나은 상황이었다.

“처방 내가 조금 수정했거든? 이대로 해 주고. 일단 CT부터 좀 찍자.”

“아……. CT요? 괜찮을까요?”

“신장 때문에? 괜찮아. Cr 수치 1.1이잖아. 오히려 지금 놓치면 난리 난다.”

“아, 네. 그럼 제가 연락을…….”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네가 나한테 노티 한 순간부터…… 이 환자는 내 환자야.”

“네? 교수님이 직접 연락을 하시겠다는 건…….”

레지던트 2년 차는 꽤 당황했다.

사실 그가 1년 차 때 수혁은 3년 차였으니, 퍽 가까운 사이이긴 했다.

하지만 레지던트도 위아래가 확실하지 않은가.

아래 연차가 해도 되는 일을 위 연차가 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되었다.

원래 그런 사회였다.

“아니, 야. 통합진료센터 환자라는 거잖아. 센터에 CT, MRI 다 있어.”

당황한 2년 차를 달래는 건 안대훈이었다.

“아…….”

2년 차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납득이 됐다.

생각해 보니 이번에 신설된 통합진료센터는 시설이 엄청나지 않던가.

병실도 있고, CT, MRI, 초음파 등 각종 검사 기기도 있었다.

“그럼…….”

“바로 가자고. 우리 센터로 입원이야, 이 환자.”

“아, 네. 감사합니다!”

위에서 환자 받아 가 주는 것만큼 레지던트에게 위안이 되는 일이 또 있을까.

책임감에서 벗어나게 될 뿐 아니라, 상대가 수혁이라면 환자에 대해서도 안심이었다.

교수라고 하기엔 아직 지나치게 어려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실력은 진짜이기 때문이었다.

벌써 몇 번이나 수혁이 더럽게 어려웠던 환자를 진단하고 살려 내는 걸 봤는지 몰랐다.

“자, 그럼 가자.”

“네!”

덕분에 2년 차는 이제 자기 손을 벗어나, 점점 멀어져 가는 수혁과 환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홀가분하게 고개를 숙일 수 있었다.

노티도 문제없을 터였다.

통합진료센터로 보냈다고 하면 누가 뭐라 그러겠는가.

다른 과는 몰라도, 적어도 내과 내에서는 통합 진료 센터를 밀어주고자 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반 이수혁파였던 김문재마저 돌아선 마당인데 감히 누가 지금 상황에서 반대하겠는가.

‘다행이다…….’

2년 차 혼자 홀가분해진 사이, 환자는 통합진료센터에 도착했다.

내내 무료하게 앉아 있던 이현종은 갑자기 들이닥친 환자를 보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뭐야? 아까 그 응급실?”

“네.”

“당 조절 안 돼서…… 당뇨병성 케톤산증 온 환자 아냐? 내분비에서 보면 될 거 같은데.”

“단지 그것만 있는 게 아닌 거 같아서요. 열이 있고, 소변 검사에서 균이 나와요.”

“아……. 요로감염인가?”

“네, 근데…….”

수혁은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처음 왔을 때처럼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건 아니었지만, 여전히 완전치는 않았다.

“단지 그것만 있을 거 같지는 않아요. 당화혈색소가 16이었던 적도 있고…… 무엇보다 진단이 늦었어요. 1형인데 20살 즈음에 진단이 되었으니까요.”

“이미 여러 문제가 있을 거다?”

“네.”

“음. 가능성 있는 얘기지. 그럼 지금 하려는 검사는 뭐지?”

“CT요.”

“어디?”

“머리, 가슴, 배.”

“죽 긁는구나. 그래, 뭐. 기기 있는데 놀릴 필요는 없지.”

이현종은 수혁의 말에 토를 다는 대신 지지하는 방식을 택했다.

레지던트 때야 뭐가 어찌 되었건 제자였지만.

이제는 동료 아닌가.

예전부터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던 탓에 아주 자연스러웠다.

위이잉.

기기도 방사선사도 놀고 있던 참이었다.

검사는 환자가 들어가자마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렇게 넘어오기 시작한 영상을 수혁은 이현종과 함께 들여다보았다.

아니, 센터 내에 있던 모든 레지던트들도 함께였다.

이렇게 해야 교육 운운했던 것이 타당성을 얻을 수 있었다.

“머리…… 음영이 군데군데 어두운 곳들이 있어요.”

“경색인가? 그럼 의식이 떨어진 게?”

“그렇다고 보기엔 좀 오래되어 보여요. 아마…… 조절이 안 될 때 조금씩 망가진 거 같습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까 노인들에게서 나타나는 변화랑 비슷하네. 환자 몇 살이라고?”

“24살입니다.”

“아이구.”

제일 걱정했던 머리는 과연 걱정할 만했다.

24살 머리가 아니라 80살 머리처럼 뇌에 위축이 있었고 심지어 군데군데 시커멓게 변한 부분까지 있었다.

이는 아주 작은 경색이 있어 왔다는 얘기였다.

아마 이대로 조금 더 방치했더라면, 다음엔 정말이지 돌이킬 수 없는 문제를 달고 왔을 터였다.

“가슴은…… 흉부는 뭐 괜찮네.”

“네. 깨끗하네요. 심장이 조금…… 그렇긴 한데. 뭐…… 저 정도는.”

“그래. 배…… 아, 신장. 신장이 커져 있네.”

“수신증……. 우측 신장에는 농양까지 있네요.”

“아무리 당뇨가 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오는 경우는 드문데……?”

당뇨는 면역력 저하로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 면역력 저하라는 게 에이즈처럼 극단적이진 않았다.

일단 이 환자처럼 나이가 젊은 경우에는 좀 더 그랬다.

하여간 의학에서 나이는 깡패지 않은가.

모든 질환에서 저항성을 갖기 마련이었다.

[이제야 저도 알겠군요. 예상되는 동반 질환이 하나 더 있습니다.]

‘뭔데, 맞혀 봐.’

[냄새랑 연관이 있습니까?]

‘응.’

[이제 수혁도 많이 늘었군요, 정말.]

‘괜히 부센터장이 된 게 아니지.’

뭔가 하나가 더 있어야 이렇게까지 될 수 있었다.

그걸 모른다면 진단과 치료가 한없이 뒤로 밀리게 되거나, 또는 쓸데없는 치료만 하게 되겠지만.

이 자리에는 수혁이 있었다.

저벅저벅.

수혁은 검사가 끝나자마자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수혁의 처방에 따라 인슐린이 들어가고 또 수액이 들어가서 그런가 잠깐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아까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다.

제대로 된 용량으로 들어가는 치료가 얼마나 효과적인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라고 할 수 있었다.

“환자분?”

“네……. 여기는…… 여기는……?”

환자는 혼란스러워 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냥 병원도 아니고, CT 촬영실 내부였으니까.

아마 몸에 힘이 좀 있었다면 뛰쳐 내려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인턴 하나가 납복을 입고 옆을 지키고 서 있긴 했지만, 말이 그렇단 얘기였다.

“병원이에요. 태화 의료원. 얼마 전에도 입원 치료받으신 적이 있죠?”

“아……. 네.”

고개를 끄덕이는 폼에서 어쩐지 지긋지긋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해가 영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세상에 24살에 당뇨라니.

그것도 이렇게까지 심각한 형태의.

나 같아도 짜증 나겠단 생각이 들었다.

“의식을 잃어서…… 실려 오셨어요. 기억나시나요?”

“아……. 아까 좀 어지럽긴 했어요. 펜을 잊어버려서 이런 건가요?”

환자는 본인이 말하면서도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세상에 당뇨 환자가 인슐린 펜을 잃어버리다니.

나는 왜 이런가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마냥 한심하게 생각할 건 없었다.

원래 습관이 안 되면 그런 법이었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긴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닙니다. 다른 원인이 있어요.”

“다른…… 원인……?”

“환자분. 솔직하게 답해 주세요.”

“네, 뭐.”

“평소 대변 보시는 데 큰 문제는 없으신가요?”

지금 당장 냄새가 난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수혁이 아니고서는 눈치채기 어려울 터였다.

아니, 수혁이 아니라 바루다가 아니었다면 절대 몰랐을 것이 분명했다.

이놈은 이제 냄새를 함량화 시킬 수 있었으니까.

“어…….”

“실금이 있으셨을 텐데. 그렇지 않나요?”

“그…….”

“환자분 허리 쪽에 보면 짓무른 상처가 있습니다. 사이즈에 안 맞는 속옷이나 바지를 입고 있으면 그렇게 되는데, 딱히 그런 거 같지는 않더군요.”

수혁은 환자의 허리에 난 상처를 가리켰다.

오래된 상처와 최근에 난 상처가 뒤섞여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당뇨가 있어서 상처가 쉬이 낫지 않는 까닭에 꽤 고통스러워 보였다.

“이건…….”

“기저귀를 차셨죠? 성인용을 사기는 부끄러워서 작은 걸 사신 거 같은데. 아무리 말랐어도 성인이 애들 걸 차면 힘들죠.”

“그…….”

“고개를 드세요. 저는 책망하는 게 아니에요. 조금 안타까울 뿐입니다.”

“안타깝다고요? 선생님이 제 심정을 아세요? 이 나이에…… 이 나이에 당뇨에 걸리고 그것도 모자라 이런 미친…… 미친 병까지 걸렸는데?”

아무래도 환자는 변실금과 당뇨를 연결 짓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마 이전 입원에서도 그것까지는 잡아내지 못했을 터였다.

젊은 환자가 작정하고 증상을 숨기려 하면, 게다가 그 증상이 변실금이라면 어지간한 관찰력이 아니고서는 어려웠을 터였다.

“그것도 당뇨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네? 이게…… 이게 당뇨 때문이라고요?”

“우선은 지금 당장 급한 문제부터 해결하죠. 대훈아.”

“네.”

“항생제 쓰는데, 일반적인 신우신염에 준해서 써서는 안 돼. 장내 대장균에 잘 듣는 걸로 간다. 안 그러면 효과가 없을 거야.”

“어……. 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