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화 부센터장 (3)
변실금은 그냥 불편하기만 한 질환이 아니었다.
우선 원인이 뭔지가 굉장히 중요했다.
출산 후 구조물 일부가 찢어지면서 생기는 경우는 차라리 치료가 간단한 축에 속했다.
언제나 그러하듯 구조적 이상은 그 이상을 보완해 주면 되기에 그랬다.
하지만 기능적 이상이 생긴 경우는 보다 복잡했다.
수혁은 어느새 병실로 이송된 환자를 향해 말을 이었다.
시선은 방금 들어가기 시작한 항생제에 닿아 있었다.
일반적인 신우신염이라면 플루오로퀴놀론만으로도 가능하겠지만, 이 경우에는 아비카즈(Avycaz)와 같은 복합제제를 쓰는 것이 좋았다.
“환자분 옆구리 많이 아프셨죠?”
“아, 네. 며칠 전부터…….”
수혁의 조치로 인해 방 안에는 환자와 수혁 둘뿐이었다.
이현종도 없었다.
당연히 아들의 진단 과정을 보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프라이버시와 관련되어 있다는 말에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간 덕이었다.
“조금 아플 텐데. 여기 치면 어때요?”
“윽.”
“네. CT에서도 그렇고. 증상도 그렇고. 환자분은 신장에 염증이 있어요.”
“하.”
환자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한숨을 내뱉었다.
당뇨에 변실금에 이제는 신장까지?
망할놈의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수혁은 환자의 눈에 드리운 절망의 기색을 느끼며 재빨리 말을 이었다.
“이건 변실금 때문에 발생한 겁니다. 기저귀에 묻어 있던 변의 균이 요도를 통해 안으로 타고 들어간 거죠.”
“하……. 시발.”
급기야 환자의 입에서 쌍욕마저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수혁은 놀라지 않았다.
그럴 수 있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니, 치료를 해 주겠다는데 욕을 해?]
오히려 바루다가 난리였다.
공감 능력이 적당히 부족한 덕이었다.
처음엔 아예 없어서 문제였는데, 이제는 인간으로 치면 소시오패스처럼 되고 말았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남의 고통에는 공감을 잘 못 하는데, 자기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민감해져 있었다.
‘닥치시고.’
수혁은 그런 바루다를 침묵시킨 후, 환자를 바라보았다.
환자는 여전히 인상을 쓰고 있었다.
고통과 분노에 얼룩져 있는 듯했다.
“이런 경우엔 일반적인 신우신염과는 조금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환자분은 당뇨도 있어서, 치료에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방금 보호자분 도착해서……. 지금 주치의 선생이 같은 설명을 드리고 있을 거예요.”
“치료…….”
“네. 받으셔야죠.”
“받으면 뭐가 달라지나요? 저 어차피 다 망가진 거 아니에요? 이대로 살다가 죽는 거 아니냐고요.”
환자는 화를 숨기지 않았다.
수혁이 보기에 대상이 자신인 것은 좀 억울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환자의 화가 부당해 보이진 않았다.
1형 당뇨는 2형 당뇨와는 달리 생활 습관과의 연관성이 거의 없지 않은가.
순전히 우연히 발생한 병이란 얘기였다.
그리고 그 우연은 환자의 인생을 파멸로 치닫게 하고 있었다.
“아뇨. 제대로 관리만 하시면…… 괜찮아지실 겁니다.”
“관리요? 어떤 관리요? 당뇨, 이거…….”
“네, 확실히 진단이 늦긴 했습니다. 이미 많은 부분이 망가져 있어요. 하지만…… 멀쩡한 부분이 훨씬 더 많습니다. 특히 지금 환자분을 괴롭게 하는 건 변실금이죠?”
“상상이나 해 봤어요? 이 나이에…… 똥 지리는 게 어떤 심정일지? 내가…… 내가 학교를 괜히 안 나가는 줄 알아요?”
이런 사정까지는 미처 알지 못했더랬다.
내분비내과 측 의무 기록은 만성 질환자를 다루는 과이니만큼 퍽 복잡하고 또 자세한 편이었지만.
환자의 인생을 담아내지는 못했으니까.
“이해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어떤 심정일지는 알 거 같습니다.”
“그래. 수업 중에 냄새가 풍기면…… 그거 숨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내가…….”
“그게 당뇨 때문이라는 건 알고 계셨나요?”
“아뇨. 그걸 내가 알…….”
알았다면 당 조절에 보다 힘을 썼을 터였다.
하지만 환자는 몰랐고, 방치하고 말았다.
후회를 넘어 부정이 덮쳐 왔다.
“이게 어떻게 당뇨랑 연관이 있다는 거죠? 당이 높은 거랑 변실금이랑…….”
“당이 높아지면 우리 혈관에 손상이 오게 됩니다. 이건 알고 계시죠?”
수혁은 질문을 던지면서 자리에 앉았다.
오래 서 있으려니 다리가 아파 와서였다.
아무리 수술을 했다지만 아픈 건 아픈 거였다.
“아……. 그거야.”
환자는 잠시 수혁이 벽에 기대어 놓은 지팡이를 바라보다가 다시 수혁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혈관 얘기야 병원에 올 때마다 듣다 보니 모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주치의가 오면 주치의가 그 얘기를 꺼냈고, 간호사가 오면 간호사가 그 얘기를 꺼냈다.
교수야 지겹도록 반복한 지 오래였다.
귀에 딱지가 앉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당연히 작은 혈관부터 영향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검사 계속해 보시라고 하는 눈이나 신장이 그렇죠. 이미 조금…… 신장은 수신증이 있는 상황입니다. 다행히 신장은 대부분이 망가지기 전까지는 기능을 유지할 수 있기에 증상은 없지만, 그런 상황이에요.”
“음.”
환자는 다시금 현실이 보이는지 우울한 얼굴이 되었다.
가뜩이나 아픈 사람에게 계속 아픈 얘기를 하는 것이 좀 잔인한 일이긴 했지만.
내과 의사라면 어쩔 수 없이 익숙해져야만 하는 일이기도 했다.
수혁은 애써 환자의 얼굴을 외면한 채 말을 이었다.
“반드시 이 두 개만 그런 건 아닙니다. 신경도 망가져요. 그중엔 우리 배변 기능을 관장하는 신경도 있죠.”
“아.”
“환자분의 배변 기능이 망가진 게 왜 당뇨 때문인지 아시겠나요?”
“되돌릴…… 수는 없나요?”
환자는 단지 당뇨가 이유 없이 찾아온 것처럼, 이 변실금 또한 이유 없이 찾아왔다고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피할 수 없는 저주랄까.
내 인생은 남들과 달리 시련만 가득하다 믿고 원인 규명도 하고 있지 않았는데.
웬 젊은 의사가 띡 보더니만 답을 주고 있었다.
아직 희망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분명 아까와는 다른 감정이 싹트고 있었다.
“저번 입원 기록을 보니, 정말로 주치의나 담당 간호사가 환자분의 변실금을 모르고 있더군요. 그건 어찌 됐건 숨길 수 있었다는 거겠죠. 시도 때도 없이 새어 나오는 상황이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렇죠?”
“그건…… 그렇습니다.”
그렇다 보니 환자는 저도 모르게 훨씬 협조적인 태도가 되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제대로 된 약이 들어가면서 몸 상태가 더 나아진 덕도 있었다.
비록 센터에서 보낸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급실에서의 상태와 이곳에서의 상태는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그럼 항문 괄약근에 대한 재활 치료가 가능할 겁니다. 당연히 엄격한 인슐린 치료가 선행되어야 효과가 있겠지만. 적어도 벌써 기저귀를 탈 필요는 없어질 거란 얘기죠.”
“그게…… 그게 정말이에요?”
“네. 아직 환자분은 젊어요. 나이든 환자보다는 훨씬 잘 견딜 수 있다는 얘기죠.”
“아…….”
환자는 아직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그녀는 지금 웃고 있었다.
수혁이 보기엔 병원 와서 처음 짓는 표정인 듯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아주 오랜만인 것 같았다.
그런 환자를 보고 보호자가 그만 울어 버렸으니까.
‘좋아. 이대로 유지하지.’
[너무 희망적으로 얘기한 거 아닐까요? 아주 초창기부터 처치가 들어갔다면 모를까……. 이미 지금은.]
‘당연히 일반인에 비하면 건강 수명이 줄었겠지. 하지만 치료만 제대로 하면 앞으로 30년은 건강하게 살 수 있어. 투석도 피할 수 있을걸.’
[그러자면 진짜 관리가 잘 돼야 할 텐데요?]
‘그건…… 절반은 환자 몫이지. 나머지는 내가 조언을 좀 줄 테니까, 할 수 있을 거야.’
수혁은 민감한 얘기를 끝내자마자 보호자를 불러들였고, 보호자는 환자가 그래도 치료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환자의 표정 때문에 울기 시작했다.
딱히 그런 분위기에 익숙한 사람은 또 아니어서 금방 빠져나왔다.
이현종 또한 비슷했기에 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대신 수혁에게 자초지종을 물어 올 따름이었다.
“오……. 그럼 급성 다발성 세균성 신염을 애초에 의심하고 CT를 찍은 거야?”
“네.”
“허리에 그 자국을 보고?”
“네. 그렇죠.”
“우리 아들…… 셜록이야?”
그것만으로도 둘은 즐거웠다.
남들이 볼 때는 조금 변태 같겠지만.
적어도 이현종, 이수혁 이 둘만큼은 미지의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에서 말로 다하기 어려울 만큼의 재미를 느꼈다.
따르릉.
그래서일까?
전화도 반가워했다.
“언능 받아 봐라.”
“네.”
수혁이 환자 해결하는 사이, 간단한 협진을 다른 레지던트들과 함께 해결하고 온 대훈이 다시금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통합진료센터입니다.”
두 번째라서 그런가 아까보다 익숙해진 느낌이었다.
“아……. 누구지?”
“어……. 2년 차 안대훈입니다.”
“혹시 센터장님이나 부센터장님 안 계신가?”
하지만 상대가 레지던트가 아니라 교수였다.
안대훈은 당연하다는 듯 즉시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에 비례해 수혁과 이현종은 싱글벙글이었다.
2년 차한테 온 전화도 제법 어려운 케이스였는데, 교수가 직접 했으면 대체 얼마나 어렵다는 말인가.
“있다 그래.”
“여기 있잖아.”
“스피커 폰이라고 해, 아예.”
이현종은 아예 꽃받침을 하고 있었다.
안대훈은 그런 이현종에게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상대가 다시금 재촉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네, 옆에 계십니다. 스피커 폰입니다. 저희 방침입니다.”
“응? 그래? 스피커 폰?”
“네.”
“음……. 뭐, 상관없겠지. 센터장님, 저 외과 이길영입니다.”
이길영.
이현종은 이름을 몇 번인가 되뇌었지만, 누군지 결코 기억해 내지 못했다.
[일반외과 이길영. 아직 임상 강사입니다. 분과는 상부 위장관이죠.]
물론 바루다는 그렇지 않았다.
녀석은 모든 의료진을 데이터화해 둔 참이었다.
언제는 데이터 낭비니 뭐니 하더니만 수혁이 통합진료센터에 속하게 되자 울며 겨자 먹기로 싹 저장해 두었다.
“아, 일반외과 상부위장관 이길영 강사님 맞죠?”
“아, 네. 맞습니다. 교…… 수님.”
이길영은 수혁의 목소리를 알아보았다.
학번으로만 따지면 한참은 위였던지라 교수란 말이 쉽게 나오진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미 대세는 기울었는데.
게다가 전혀 모르겠는 케이스를 마주한 참이었다.
지금은 뭐가 되었건 간에 도움을 청해야만 했다.
“그…… 75세 여자 환자입니다. 복부 팽만감을 주소로 내원했는데……. 동반되는 증상으로는 일주일간 변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자 노인에서 변비는 흔한데?”
이현종이 대꾸했다.
실제로 그래서였다.
이길영은 굴하지 않았다.
단순 변비였다면 미쳤다고 여기다 전화를 하겠는가.
‘이정민이 그랬지. 이수혁이가 진짜 천재라고.’
이길영은 언젠가 들었던 말을 떠올리면서 말을 이었다.
“원래 매일 한 차례씩 화장실에 갔다 왔다고 합니다. 입원해서 시행한 엑스레이상 위에 가스가 차 있고…… 그 밑으로는 가스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CT를 찍었더니 역시 위가 부풀어 있고…… 아래쪽으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래도 위 출구 부위에서 폐색이 있는 거 같은데, 덩이가 관찰되지는 않았고요.”
“음, 그래? 계속해 봐.”
아무리 봐도 단순 변비 같아 보이진 않았다.
그제야 이현종의 얼굴에 흥미가 깃들었다.
수혁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기까지만 들어선 모르겠군요.]
‘그러게.’
모르겠는 증상에 즐거움을 느끼다니.
변태 아닌가 싶겠지만, 이미 버린 몸이었다.
둘은 전화기에 더 가까이 달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