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07화 (407/1,303)

407화 흔한 질환이지만 (1)

장폐색.

말 그대로 장이 막힌 것을 의미하는데, 생각보다 진단 과정이며 치료가 간단하지는 않았다.

나이에 따라 또 성별에 따라 원인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지근한 예로 영아의 경우 장중첩증이 흔히 발생할 수 있었다.

어른에 비해 미성숙한 장 때문인데, 어른에서 장중첩증이 생겼다면 대개 암이 원인이었다.

따라서 수혁과 바루다 그리고 이현종 등 통합진료센터에 있던 이들은 저마다 아주 다양한 원인 질환을 떠올리고 있었다.

“물리적인 장폐색인데……. CT에서 아무것도 안 나오니까 패닉이 오더라고요. 사실 직장 수지 검사에서 아무것도 없어서, 아, 이건 암이다 정하고 수술까지 잡아 놨거든요.”

성급하다는 생각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환자는 75세니까.

나이를 고려할 때 암을 떠올리는 건 자연스럽다.

게다가 아무것도 통과시키지 않을 정도의 폐색이 있어?

근데도 암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게 직무 유기였다.

“저희가 보기에만 그런 게 아니라…… 영상의학과에서도 그렇게 컨펌을 주었습니다.”

“영상 누구?”

“김진실 교수님이요. 이하언 교수님 코 사인 들어갔고요.”

“아.”

이현종은 김진실, 이하언이 공동으로 검증했다는 말에 잘못 봤을 거란 추정을 폐기했다.

둘 중 하나만 봤더라도 자기보단 나을 텐데, 둘이 봤는데도 그렇다면 그냥 사실이 그렇다고 봐야 했다.

[영상을 보긴 봐야겠지만, 의견이 바뀔 거 같진 않군요.]

‘응. 그 둘이 봤으면…… 우리 둘보다도 나을걸.’

[적어도 복부에 한정한다면 그럴 겁니다. 생각보다 영상 분석이 어려워서.]

바루다나 수혁이라 해서 생각이 다르진 않았다.

바루다가 아무리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공지능이 되었다고 하지만, 애초에 영상 분석을 배우는 것은 노가다였다.

게다가 임상적 추론이 가능해야 제대로 된 판독이 가능한데, 이건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지금까지 영상의학과 학회 등의 협조를 받아 각 회사에서 개발한 영상 판독만을 위한 인공지능들조차 의사들의 정확도를 높여 주거나, 혹은 판독에 필요한 시간을 줄여 주는 데에 그칠 뿐이었다.

간혹 이제 더 이상 AI가 영상의학과 의사보다 판독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대한 논의는 필요없다는 둥의 건방진 의견을 제시하는 소위 전문가들도 있기는 하지만, 막상 찬찬히 내용을 들여다보면 뭔 놈의 전제 조건이 그렇게 많은지.

하여간 아직 충분히 숙련된 전문가 둘을 따라가기엔 AI엔 무리였다.

“우선 환자 등록 번호…… 알려 드리겠습니다.”

“듣고 있어, 말해 봐.”

“20201228입니다.”

“20201228. 맞아?”

“네.”

“오케이. 여기도 뜬다.”

이현종의 말에 안대훈이 잽싸게 등록 번호를 입력했다.

비단 일행이 들여다보고 있던 모니터 말고도 센터 내에 설치된 거대한 스크린에도 환자 정보가 떴다.

애초에 레지던트 교육이라는 목표를 뒤집어쓰고 출범한 센터였기에 그랬다.

“음 CT…… 이거지?”

“네. 띄우겠습니다.”

“응. 해 봐.”

“네.”

곧 영상이 떴다.

과연 들었던 대로였다.

확실히 장은 십이지장을 기점으로 해서 그 뒤로는 텅 비어 있었다.

수혁이나 바루다는 그 시점이 어딘지 컷으로도 잡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뭐가 있는지 찾았냐고 하면, 그건 아니었다.

[이상하군요. 분명…… 공간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저 뒤로는 아무것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진짜 그렇네? 뭐지?’

누가 합성이라도 했나 싶을 지경이었다.

바루다의 말대로 공간이 없는 게 아니었다.

장이 물리적으로 페색된 지점은 찾지 못했으니까.

계속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십이지장 뒤로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장내 분비물 정도나 있을까?

먹은 게 조금이라도 넘어갔다면 저렇게 보이진 않을 터였다.

“허……. 희한하네? 난 이런 건 또 처음 보네.”

수십 년의 임상 경험을 가진, 그것도 보통 임상 경험이 아니라 종합병원의 종합병원이라는 별명을 지닌 태화 의료원의 전성기를 보내 온 이현종조차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예 처음 보는 소견이었다.

워낙에 똑똑했던 나머지 다른 모든 과에서 모르겠으면 그에게 케이스를 들고 왔었다는 걸 생각하면 황당할 지경이었다.

“네. 저희 과에서도 처음 보는 소견입니다. 해서 처음 소화기내과에 협진을 냈습니다.”

“아, 그게 언제죠?”

그렇지 않아도 뭔가 다른 소견이 필요했던 참이지 않은가.

수혁은 소화기내과에 협진 냈다는 말에 반색을 표하며 되물었다.

임상 강사 이길영은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나이니 연차니 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상대는 교수고, 부센터장이었다.

심지어 낙하산이 아니라, 실력으로 뚫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어제 오전에 나갔고…… 어차피 NPO(None per oral: 금식) 상태여서 오후에 바로 상부 위장관 내시경 검사 들어갔습니다. 감사하게도 장강명 센터장님이 직접 해 주셨습니다.”

확실히 원장단이 바뀐 직후라 그런가.

새로 감투를 썼거나, 기존에 감투를 쓴 채로 연장된 사람들의 열의가 남다른 모양이었다.

협진 내시경을 센터장이 직접 해 줄 줄이야.

이현종은 만족스럽다는 미소를 지은 채 이길영을 바라보았다.

“이게 내시경 소견입니다. 저도 직접 참관했는데……. 잘 보시면…….”

내시경 소견은 십이지장 언저리에서 끊겨 있었다.

애초에 상부 위장관 내시경이라는 게 십이지장 넘어서는 잘 진행하지 않는 술기이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부근의 폐색이 의심되는 상황이지 않은가.

근데 거길 못 넘어가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식도에서 위 넘어가서도 깨끗합니다.”

“할머니가 소식하시나 보다. 위가 젊네.”

“네. 그다음…… 아웃인데. 여기 보면.”

“뭐야, 이게?”

“모르겠습니다. 시야가 새카매지더니, 진행이 불가했습니다.”

정확히 수혁과 바루다가 영상을 통해 막혀 있을 거라 특정했던 부위에 뭐가 있었다.

새카만 무언가였는데, 내시경으로는 뭔지 알 수 없었다.

우선 십이지장은 위보다 좁기도 하거니와, 식도처럼 모양을 유지하지도 못해서였다.

식도조차 그게 잘 안 돼서 무언가 술기가 많이 필요할 때는 강철로 된 내시경을 집어넣어서 보지 않던가.

일반적인 소장은 더 말할 이유도 없었다.

“요약하면 영상에서는 안 보이는 무언가가 내시경에서는 새카맣게 보이는 거네요?”

모두가 할 말을 잊은 채, 하염없이 내시경 소견만 바라보고 있는데 수혁이 물었다.

정말 알아낸 게 이것뿐이냐, 뭐 이런 말투였다.

“아……. 네. 그렇습니다.”

“흐음.”

“죄송합니다.”

“아뇨, 아뇨. 검사 결과가 그런데요. 지금 환자 어딨죠?”

“병실에 있습니다. 일단 TPN(Total parenteral nutrition: 완전비경구영양) 주고는 있는데, 이거 오래 가면…….”

“알겠습니다. 지금 가서 직접 한번 보죠.”

“아, 네. 감사합니다.”

여전히 오리무중이긴 했다.

하지만 영상에서는 안 보이는 무언가가 내시경에서는, 그러니까 실제로는 검게 보인다는 게 아주 커다란 힌트가 될 거 같았다.

아직은 조립이 되지 않는 단서이지만.

직접 보면 달라지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길영 강사님 말대로 TPN은 오래 유지하면 안 돼.’

[그렇죠. 특히 환자처럼 나이가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TPN은 말 그대로 모든 영양을 정맥 주사로 보충해 주는 약이었다.

그 말은 고영양을 함유한 물이라 이건데, 당연하게도 세균 배양지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 외에 혈전이나 혈관염 등도 일으킬 수 있었다.

이 모든 확률은 환자의 나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올라갔다.

환자의 나이는 75세.

위험도를 극도로 높이기에 충분하다 할 수 있었다.

“수혁아, 이번에는 나도 가자.”

“네? 여긴…….”

“이만한 케이스는 센터장도 가야지. 어차피 응급 환자가 오는 센터가 아니잖아. 뭔 일 있으면…… 여기 오늘 당직 누구야.”

이현종의 말에 레지던트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센터란 대부분 외래 베이스이지 않은가.

해서 퇴근이 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현종의 말 한마디에 당직이라는 스케줄이 생겼다는 말이었다.

경력이 짧은 친구들이었다면야 당연히 당황했겠지만, 다행히 3년 차 안대훈이 끼어 있었다.

“첫날이라 제가 당직 서려고 합니다.”

“오, 그래. 3년 차. 솔선수범하는 모습 보기 좋아.”

“네, 교수님.”

“그럼 네가 애들 데리고 남고……. 여기는 한두 명만 따라가자. 어차피 기록 남길 거라 다 같이 배울 수 있어.”

“네.”

해서 일행은 자연스레 당직이 된 안대훈과 몇몇 레지던트만 남긴 채 일반외과 병동으로 향했다.

유서 깊은 과이니만큼 암센터나 별관이 아니라 본관에 있었다.

그 말은 거리가 좀 된다는 뜻인데, 다행히 수혁은 수술 후 보행에 상당한 안정감을 보이고 있었다.

원래는 보장구만 있어도 집 안에서는 생활이 되게 만드는 수술이었으니, 지팡이까지 쓰고 있는 지금은 그 효과가 상당했다.

“이제 진짜 잘 걷네.”

그 모습이 이현종을 흐뭇하게 했다.

“네, 하하. 덕분이죠.”

“보리 까끄라기도 쓸모가 있다더니, 김선웅도 그거 나름…….”

“아니, 그 교수님이 올리는 매출 장난 아니던데요?”

“매출이 중요하냐? 의사로서의 응? 어?”

“네, 뭐.”

매출 얘기가 나오면 내과 의사들은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주 다양한 검사를 해야 하는 혈액종양내과나 검진센터 말고는 겨우 적자를 면하는 수준이거나 아예 적자였기에 그랬다.

그나마 이현종이 있는 심장내과는 심혈관 조영술이 워낙에 어렵기도 하거니와 돈도 좀 되는 과라 얘기가 조금 다르긴 했는데, 그래도 돈을 잘 버는 건 아니었다.

“여긴가?”

“네.”

기록은 정말이지 스쳐 지나듯 봤을 뿐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바루다 덕에 모든 것을 데이터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은가.

병실 확인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은 이길영이 그 앞에 서 있기까지 했다.

“아, 오셨…… 아이고, 원장님.”

“원장 아니고 센터장.”

“네네.”

“그리고 왜 이수혁 교수한테는 인사 안 해? 부센터장인데.”

“아, 네. 부센터장님.”

“그래, 나한테 하는 거랑 응? 우리 이 교수한테 하는 거랑 다르게 하지 말라고.”

“네, 명심하겠습니다.”

이현종은 잠시 교통정리를 한 후,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안에는 비쩍 마른 노인이 누워 있었다.

보호자도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미리 이현종이나 이수혁에 대해 들었는지 태도가 조심스러웠다.

또 기대감이 느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통합진료센터 홍보 영상을 보면, 이현종과 이수혁은 세상에 다시 없을 천재 같았으니까.

세상에 없던 업적을 만든 완숙한 천재 이현종과 더럽게 어려웠던 시험에서조차 만점을 맞은 떠오르는 스타 이수혁의 합작이라느니 어쨌다느니 당사자가 듣기에도 낯간지러울 만한 선전물을 수혁은 기억했다.

[자, 그게 사실이라는 걸 보여 줍시다.]

‘오케이.’

물론 선전물로 남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수혁은 눈을 빛내며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이현종 또한 남다른 각오로 임했다.

두 천재가 한 환자를 진심으로 살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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