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9화 흔한 질환이지만 (3)
“음.”
수혁은 잠시 마른침을 삼켰다.
긴장이 되어서라기보다는 일부러 한 템포 늦춘 것이었다.
예상했던 바대로 효과가 있어서 이현종, 이길영뿐 아니라 같이 따라온 레지던트들도 수혁에게 더욱더 집중했다.
“자, 컷을 좀 더 내려 보면.”
수혁은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 갔다.
마우스 스크롤을 굴려 가면서였는데, 기가 막히게 딱 십이지장이 일부 확장된 듯 보이는 부위에서 딱 하고 멈추었다.
의심을 하고 있지 않으면 안 보일 정도로 미세한 이상한 점이 이제는 선명히 보였다.
물론 수혁과 이현종 얘기였다.
나머지는 대체 어디가 이상한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니, 왜 여기서 멈추었는지도 몰랐다.
“여기 보이세요?”
심지어 수혁이 보이냐고 물었음에도 그랬다.
왜 십이지장을 가리키면서 저러나 싶을 뿐이었다.
“확대를 해 보면…… 여기 보세요. 뭔가 우둘투둘한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여기 십이지장의 테두리요.”
“어…….”
이길영뿐 아니라 이현종도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겐 바루다가 없기에 영상을 다시 불러오는 등의 행위는 불가했기에 그랬다.
해서 의심은 했지만, 아니, 확신까지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상에서도 이게 나타날지는 몰랐다.
“이게 뭐죠?”
“뭐긴 뭐예요, 돌이죠.”
“돌은 보통 하얗게 보이…… 아, 래디오 루센트(Radio lucent) 한가……?”
“네, 그러면 이렇게 애매한 음영으로 보이죠. 반투과가 되니까요.”
누누이 말하지만, 아직 현대 의학에서 쓰이는 영상의학적 검사는 완전하지 못했다.
영상의학과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가 영상을 통해 보는 건 단지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 말은 영상만 믿고 있다간 큰 코 다친단 얘기였다.
이제 그 오류마저 극복하기 위한 여러 방편들이 나와 있었지만, 종종 이렇게 뒤통수를 세게 후리는 수가 있었다.
“그럼…… 여기서 안 보이던 게…… 내시경에서는 까맣게 보이는구나. 아, 그래, 이제야…… 알겠어. 그거 담석…… 담석 뭉치구나.”
이길영은 허망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시경 소견이 지금 생각해 보니까 아주 처음 보는 건 아니었기에 그랬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시경으로는 처음 보는 게 맞지만, 수술장에서는 아니었다.
복강경으로 떼어낸 담낭을 갈라서 보면 딱 저렇게 보였더랬다.
이길영은 잠시 수혁이 띄워 둔 내시경 소견을 바라보다가 겨우 말을 이었다.
하도 놀라서 쉽지는 않았지만 하여간 할 말은 해야만 했다.
“근데…… 이게 가능성이 있는 얘기입니까? 저는 처음 보는데.”
안타깝게도 수혁 또한 이 말에 대해 제대로 된 답을 하기엔 무리가 좀 있었다.
수혁조차 처음 보는, 아주 희귀한 케이스였기에 그랬다.
“있지.”
다행히 이 자리에 있는 건 수혁뿐이 아니었다.
태화 의료원이 낳은 불세출의 기인이자 천재, 이현종도 있었다.
그는 더없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심장 내과 의사로서 한시도 빼놓지 않고 다니는 청진기를 든 채였다.
“일단 얘기를 더 하기 전에 더욱 확실하게 가야겠지. 어디…….”
그리곤 환자의 윗배 어딘가쯤을 청진기로 더듬기 시작했다.
환자는 아까의 통증 때문에 기운이 더 빠졌는지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애초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TPN, 즉 비경구완전영양에 기대고 있으니 이럴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흔히 정맥 주사를 통해 들어가는 영양제라는 것에 환상을 가지고 있지만, 그게 영양제가 되었건 수액이 되었건 그냥 입으로 먹는 게 제일이었다.
우선 영양제에는 우리 몸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영양을 골고루 넣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생리적인 방법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열량을 공급받기에 여러 합병증을 수반했다.
기운이 없는게 이상한 일은 아니란 얘기였다.
“옳지, 여깄네.”
잠시 후, 이현종은 환자의 배를 톡톡 두드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자신의 귀에 끼워져 있던 청진기를 수혁에게 넘겨 주었다.
소리 듣는 부분은 그대로 둔 채였다.
“들어 봐.”
“아, 네.”
수혁이 귀에 끼우자마자 이현종은 다시 환자의 배를 두드렸다.
또르르.
동시에 돌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거.”
“이게 돌 뭉치야. 거기 외과 선생도 들어 봐. 이거 흔하게 볼 수 있는게 아니라고. 레지던트들 너네도 줄줄이 와 봐. 밍기적대지 말고. 환자분 힘드셔.”
“네네.”
모두 같은 소리를 듣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수분이 채 되지 않았다.
그 소리라는 건 고작해야 무언가 구르는 소리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들려온 부위가 정확히 막혀 있던 부위였기에 이제는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 환자의 십이지장을 틀어막고, 알 수 없는 원인의 죽음으로 내몰고 있던 건 흔하디흔한 담석이었다.
“허……. 이게…….”
“나도 처음 봤을 땐 놀랐어.”
“원장…… 아니, 센터장님은 보신 적이 있으세요?”
“내가 레지던트 4년 차 때야. 어유, 벌써 그게 언제냐.”
이현종은 만족스럽다는 얼굴을 한 채 일행을 돌아보았다.
이야기보따리를 풀 심산인 모양인데, 보통 저 나이대 상사가 이런 기미를 보이면 도망가는 것이 상책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다들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렸다.
“그땐 진짜 장비도 변변찮았어. 내시경이 다 뭐냐. 아무것도 없었지. 엑스레이가 주로 쓰는 진단 기기였다고. 뭐가 보이겠어? 그냥 디립다 신체 검진만 하는 거야.”
옛 향수가 물씬 풍기는 얘기이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이현종이 말한 저 이유 때문에 젊은 의사들의 신체 검진 능력이 옛날 의사들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진단 기기들이 너무 발달하다 보니 거기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었다는 얘기.
대부분의 경우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간혹 그럴 때도 있었다.
응급실이거나, 지금처럼 진단 검사에서 피할 수 없는 오류가 있을 경우였다.
“청진을 열나게 하고 있다 보니까 이상한 소리가 들려. 이게 들려서는 안 되는 소리거든, 여기서. 근데 들리더라고. 생각해 보니까, 여기로 담석이 쏟아져 내려오면…… 그럴 수 있겠더라고. 그래도 레지던트 4년 차가 내 생각을 얘기할 수 있나? 지금이야 근거가 있어 보이면 들어 주지만, 그땐 그랬다간 싸대기야.”
가능한 얘기였다.
이현종이 레지던트 하던 시절은 30년도 더 되었으니까.
그땐 심지어 진료실에서 환자 앞에 두고 담배를 뻑뻑 피워 대는 교수들도 있었다지 않은가.
그야말로 교수는 갑, 나머지는 을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도서관 가서 뒤져 봤어. 그랬더니 와, 있더라고.”
“있어요?”
“어, 아주 드물긴 한데…… 아직 어떻게 읽는지도 몰라. 바우베렛 신드롬(Bouveret Syndrome)? 담석증이 담관을 통해 쏟아져 나와서 십이지장을 막는 걸 말해.”
바우베렛 신드롬이라.
어엿한 이름도 있다니.
그렇다는 건 적어도 수혁이라면 몰라서는 안 될 질환이라는 얘기였다.
수혁은 일말의 부끄러움과 존경심을 느끼며 이현종에게 물었다.
하산해도 좋을 거 같았는데 아직도 배울 게 있었다.
과연 현대 의학이라는 바다는 넓고도 깊었다.
“이름도 있어요, 이게?”
“어. 노인에서 이게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데, 하여간 담석증이 원래 있던 환자에서 갑자기 장폐색이 십이지장 부근에 발생하면 이걸 의심해야 해. 이 환자야 담석증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영상을 봐 봐.”
이현종은 해당 질환에 대한 썰을 풀어내며 영상을 가리켰다.
수혁이 찾아낸 컷과는 달리, 담낭 자체를 띄웠다.
“봐 봐. 이 환자분 여기 오기 전에도 굶었어. 그런데 담낭 상태가 어때.”
“아……. 약간 부풀어 있어요.”
“그래. 그 말은 담낭이 늘어졌다는 거야. 뭔가 여기를 빵빵하게 채우고 있었다는 말이지.”
“허…….”
같은 영상을 봐도 경험과 지식에 따라 보이는 건 천차만별이라더니.
그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하늘 위의 하늘을 마주 보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이 환자의 진단명은 그거야. 알아들었어, 외과 선생?”
“네? 아, 네.”
이현종은 이길영을 돌아보았다.
새끼,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제 알았냐, 뭐 이런 얼굴을 하고서였다.
고까울 수도 있는 표정이었지만 이길영은 단연코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와……. Bouveret Syndrome이라고? 이게 대체 뭐야.’
맨날 떼던 장기가 담낭인데,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진단명이지 않은가.
그걸 내과 의사가 그것도 심장내과 의사가 알고 있다니.
심지어 레지던트 4년 차 때 본 것을 토대로 꽤 다른 케이스를 진단해 내다니.
대체 기억력이 얼마나 좋으면, 또 응용력이 얼마나 좋으면 이게 가능할까 싶었다.
과연 이현종은 괴물이었다.
‘이수혁도…… 같은 말을 들었는데 바로 알아차리잖아. 확실히 천재는 다르다, 이건가…….’
이현종뿐 아니라 이수혁에 대한 평가 또한 달라졌다.
분명 같은 베이스에서 출발했는데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지 않았나.
이건 능력 차이였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계속 그렇게 있을 거야?”
“네?”
“치료해야지. 진단만 해?”
잠시 감탄한 얼굴로 있으려니, 이현종이 다시금 말을 걸어왔다.
비난하는 투였는데 너무도 정당해서 달리 할 말을 찾기 어려웠다.
“아, 맞다. 근데…….”
문제가 있다면 진단명은 알았는데 당장 치료법을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생전 처음 듣는 진단명인데 어찌 알겠는가.
외과랍시고 냅다 배 열고 들어가서 다 헤집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해서 이길영은 다시금 절박해진 얼굴이 된 채 이현종을 바라보았다.
이현종은 그런 이길영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래, 모르지?”
정말이지 재수 없는 말을 하면서였는데, 이길영은 을이지 않은가.
예전엔 교수라면 무조건 갑이었던 것이 지식의 격차로 옮겨 왔을 뿐, 여전히 갑을 관계는 존재한다는 것을 이현종은 여과 없이 보여 주기 시작했다.
“모르지, 뭐. 공부 안 하잖아. 안 하게 생겼어.”
“아니…….”
“아냐? 알어?”
“아뇨.”
“그래. 모르잖아. 외과가 돼 가지고 말야. 어제도 담낭 뗐지?”
“네.”
“근데 담낭 질환을 모르네?”
“하.”
“얼마나 공부를 안 하는 거야.”
이길영은 원장 출신만 아니면 아니, 교수만 아니면 아니, 어른만 아니면 후려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 것은 이현종이 마냥 갈구기만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아무튼, 저 정도로 노쇠한 경우엔 안전하게 가는 게 나아. 내시경으로 쑤시다간 난리 나니까 수술장으로 가.”
“아…….”
“전신마취보다는 가슴 위 경막외 마취(High thoracic epidural anaesthesia)로 가는 게 좋겠어. 랩 보니까 하도 못 먹어서 전해질 같은 게 깨졌더라. 수술 시간도 짧으면 짧을수록 좋겠지. 누가 좋을까?”
“제 환자인데요?”
“멍청한 거야, 일부러 이러는 거야. 너 말고 위 그레이드에 맡기라고. 사고 치고 싶어? 이거 아주 어려워. 담낭 떼는 거랑은 다르다고.”
“아…….”
“내가 의견 남겨 줄 테니까 그대로 노티 해. 그럼 감히 아무도 뭐라 못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