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화 흔한 질환이지만 (4)
병원에서 ‘감히 내 말에 거역하지 못한다’라는 말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만 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마치 원장이라고 하면 병원 내에서만큼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 원장이라는 건 임기 2년짜리 임시직에 불과했고, 주어진 권력이라고 해 봐야 예산안 정도가 다였다.
누굴 자르는 건 불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지금 원장인 신현태만 해도 그랬다.
존중은 받을 수 있을지언정 두려움의 대상은 아니었다.
“네, 저 이길영입니다. 저…… 제 환자가 Bouveret syndrome이 의심이 됩니다. 그 담석이 십이지장으로 쏟아져서 폐색 증상을 일으키는…… 네, 그 75세 환자요.”
“뭔 증후군?”
“바우베렛입니다.”
“뭐야, 그게.”
“검색해 보시면…….”
“너 인마 건방지게 누가 누구한테 검색하라는 거야?”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이현종 원…… 아니, 센터장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아, 그래? 이 새꺄, 진작 말하지. 지금 옆에 계셔?”
하지만 이현종은 예외였다.
태화 의료원이 아니라 대한민국 최초로 월드 스타급 의사가 된 사람 아닌가.
내과 내부에서는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그런가 평가 절하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는데,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선망 그 자체였다.
일부는 두려워하기도 했다.
이현종이라는 불세출의 의사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까, 혹 혹평하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네, 옆에 계십니다.”
“그래. 처음 들어 보는 병이긴 한데……. 그분이라면 뭐, 그럴 수 있지. 음. 아……. 이런 경우가 있구만. 음…….”
해서 이길영이 모시고 있는 교수 또한 그런갑다 하고 넘어갔다.
“등록 번호 줘 봐.”
“네? 아, 네. 20201228입니다.”
“음……. 이거…… 이건 내시경으로는 안 되겠는데? 우리 병원이 ERCP 잘하긴 하는데, 그걸로도 안 돼. 열어야지. 근데 네가 하려고? 너 펠로우 몇 년 하고 임상 단 거지?”
“1년입니다. 올해로 2년 차입니다.”
“2년……. 애매한데.”
2년이 그냥 2년이 아니라 이미 전문의를 따고 들어와 분과를 들이판 2년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러니까 지금 통화 중인 교수가 펠로우 하던 시절이라면 퍽 긴 세월이라 할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그땐 심지어 펠로우 과정 없이도 교수를 달기도 했었으니까.
애초에 외과학이라는 게 그렇게까지 발달하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교수가 된 다음에 처음 해 보는 수술도 많아서였다.
하지만 이젠 얘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지금의 대학 병원 시스템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아서, 완전한 실력을 갖추고 나서야 교수를 달 수 있었다.
“이거 나한테 넘겨라. 넌 보조로 들어와.”
“아……. 네.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그래? 네가 그래도 주제 파악이 좀 되는구나? 그래, 이거 어려워. 환자 컨디션은 어때? 전신마취 견디나?”
“아…….”
이길영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모시는 교수의 칭찬 한마디가 격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시절이어서 그랬다.
남들이 볼 때 태화 의료원의 임상 강사라고 하면 어쩐지 대단해 보이겠지만.
사실은 계약직이었다.
전임 교수 눈 밖에 나거나 자리가 나지 않으면 갱신 때 바로 밖으로 내몰려야만 하는, 딱히 노동법에서조차 그리 관심을 두지 않는 자리였다.
‘역시 이현종 교수님 말이 맞구나.’
네 실력으로는 무리라고 딱 잘라 말하더니만.
그저 기분 나쁘라고 한 소리는 과연 아니었더랬다.
이 양반의 의학적 인사이트는 정말이지 장난이 아니었다.
“이현종 교수님 말씀이…… 전신마취는 무리라고 하십니다. 가슴 위 경막외 마취를 추천하셨습니다.”
“아. 음……. 그래, 뭐 그 정도면 가능하겠네. 재우면 되지. 금식은, 되어 있어?”
“네. 계속 TPN 정주 중입니다. 아무것도 못 드세요.”
“하긴 그렇겠네. 이거…… 음. 자네 오늘 시간 괜찮나? 정규 때는 못 밀고 들어갈 거 같고, 6시 이후로는 어떻게 될 거 같은데.”
퇴근하지 말고 들어와라 이거였다.
잔인하다 싶을 수도 있겠지만, 임상 강사는 노동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피교육자이기도 했다.
오히려 배려라고 봐야 했다.
뭐가 되었건 간에 환자는 이길영 환자고, 수술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않겠는가.
“네, 들어가겠습니다.”
“좋아. 6시 이후로 잡아 놔.”
“네, 교수님.”
이길영은 홀가분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아까 통합진료센터에 연락할 때까지만 해도 안개 속을 정처 없이 걷는 기분이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진단이 되고 치료 계획까지 수립이 된 참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통합진료센터를, 특히 그중에서도 이수혁을 바라보는 눈빛부터가 달라졌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치료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아니, 뭘. 이러라고 만든 센턴데.”
“그래도…… 이렇게까지 될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교수님.”
“그건 착각이지. 태화 의료원 내과가 보통 내과야? 거기에서 제일 똑똑한 둘이 따로 나와서 만든 센터라고. 애초에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던 거지.”
“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소문이나 내. 어렵다 싶으면 내라고. 뭐든지 알려 줄 테니까.”
이현종은 껄껄 웃으며 으스댔다.
어설픈 능력의 소유자가 저러고 있었다면야 당연히 재수가 없었겠지만.
이 양반은 그럴 만한 자격이 충분했다.
세상에 Bouveret syndrome이라니.
이걸 대체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교수님.”
“그래, 그래. 수술까지 우리가 봐줄 필요는 없을 테니까, 돌아간다?”
“네.”
“협진 평가에 만점 넣는 거 잊지 말고.”
“물론이죠.”
“우리 아직 협진 몇 개 없어서 익명이 익명이 아니니까 명심해.”
“아유, 지금 만점 넣었습니다.”
“그래.”
약간 에어컨 기사 같은 느낌이 나긴 했지만, 눈앞에서 만점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았다.
어거지가 아니라 실제로 만점짜리 협진이었어서 더더욱 그랬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수혁은 방금 기억을 떠올리며, 센터 의자에 몸을 젖힌 채 엄지를 휘둘러 보였다.
그 어려운 환자를 진단해 냈음에도 불구하고 흐른 시간은 40여 분 정도였다.
거의 왔다 갔다 하는 시간 말고는 10분 정도 만에 진단을 했다, 이 말이었다.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대단은 무슨. 예전에 봤던 거라 용케 꿰어 맞힌 거지.”
“그 예전이 30년 전이잖아요. 그걸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게 대단한 거죠.”
“너는 뭐 1년 차 때 봤던 환자 잊어 먹었냐?”
“아, 아뇨. 그렇지는 않죠.”
“원래 다 그런 거야. 괜히 경험이 깡패란 말이 나오겠냐. 10년이 지나면 10년짜리 경험과 지식이 여기 고스란히 남게 된다고.”
“역시.”
수혁은 자기 머리를 검지로 톡톡 두드리고 있는 이현종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종 또한 그런 수혁을 보며 푸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렇게만 보면 참 보기 좋은 부자지간인데, 막상 눈앞에서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레지던트들의 심정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1년 차의 기억이라…….’
3년 차 안대훈은 고작해야 2년 전일 뿐인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수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말이지 눈동자의 흔들림도 없이 저리 확고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왜 나는 죄 까먹었단 말인가.
어렴풋이 기억나는 케이스는 있긴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어렴풋이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니까 방금 이현종이 보여 주었던 것처럼 해낼 자신은 절대 없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이제 막 2년 차 된 놈들도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나? 아니면 두 개? 이 정도가 특이한 질환…… 다일 거 같은데.’
우하윤 정도만이 유의미한 소득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 와중에 두 천재의 재수 없는 대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신현태 같은 놈은 유난 떤답시고 매일 자기 전에 노트에다가 특이하다고 생각하는 환자 케이스를 적더라고. 위 연차 입장에서야 흐뭇한 일 아니냐? 그래서 두고 봤는데, 나중에 보니까 뭐 별걸 다 적어 놨더라.”
“별걸 다 적어요?”
“그러니까 뭐 그냥 기본적인 것도 적더라 이거야. 공부를 안 하니 뭐 기본적인 건지 특이한 건지 알 수가 없지. 그냥 지가 모르면 다 특이한 건 줄 알고…….”
“아…….”
수혁은 저도 모르게 안대훈을 바라보려다 애써 참았다.
물론 안대훈은 그런 낌새를 귀신같이 눈치채고야 말았다.
‘서, 선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수혁의 그러한 눈빛을 받다 보니 낙담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해서 한숨을 푹 쉬고 있으려니 전화가 울렸다.
처음엔 당연히 센터 쪽으로 걸려온 것인 줄 알았는데 그냥 개인 전화였다.
“아, 네. 원장님.”
“삼촌이라고 해. 둘이 하는 통환데 뭔 원장.”
신현태였다.
양반 되기는 다 글렀는지 뒷담화 시작한 건 또 어떻게 알고 이랬을까?
수혁은 애써 당황스러움을 감춘 채 말을 이어 나갔다.
“네, 삼촌.”
“듣자니 벌써 두 건 했다며? 내가 어거지로 물어다 준 거 말고도.”
“아, 네. 센터장님 도움이 컸어요.”
“누구, 현종이 형? 그 양반 그러라고 거기 꽂은 거야.”
“그래도 이 정도이실 줄은 몰랐어요. Bouveret syndrome이라는 병 들어 보셨어요?”
신현태는 수혁의 말에 후후 웃었다.
“들어 봤지. 나도 알어, 그건.”
사실 아까 협진 보고 받고 부랴부랴 찾아본 거긴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안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지 않은가.
“오……. 역시 원장님.”
수혁이야 바루다의 분석을 통해 전화기 너머 신현태의 거짓부렁을 즉시 파악해 낼 수 있었지만, 굳이 그걸 입에 담지는 않았다.
뭐 하러 사람 기분을 상하게 한단 말인가.
신현태야말로 수혁의 가장 강력한 우군인데.
“근데 어쩐 일이세요?”
“겸사 겸사지. 일단 첫날인데 원장이 피자 정도는 쏴야 되지 않겠어? 센터 앞으로 배달시켰으니까 점심에 오면 그거 먹고.”
“오, 감사합니다.”
“1시에 오라고 했으니까…… 지금 한 2시간 남았네.”
“네.”
수혁은 왜 신현태가 굳이 2시간을 강조할까 싶었다.
조금 있어 보니 굳이 그렇게 궁금해할 필요는 없었다.
신현태가 즉시 말을 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부산에서 환자 한 분 올라온다는데……. 감염내과래.”
“아, 네.”
“내가 볼 수 있으면 좋은데, 회의 들어가야 되거든. 장덕수 분과장한테 케이스 리뷰 해 보라고 했더니 두손 두발 다 들었어. 모르겠대. 애초에 부산대 병원에서도 모르겠어서 보내는 거고.”
부산대라면 기방 거점 국립대 아닌가.
다른 과들의 위상은 예전만 못할지 모르겠지만, 의대는 그렇지 않았다.
부산에서 큰 병 걸리면 일단 그쪽으로 갈 만큼 위상이 높았다.
실제 재밌는 논문도 많이 내는 병원이었고.
근데 전혀 모르겠다는 식으로 전원을 시킬 정도면 대체 얼마나 어렵다는 걸까?
[재밌겠군요.]
‘그래, 이건 진짜 어렵겠는데?’
저도 모르게 입꼬리 한쪽이 말려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