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2화 부산에서 온 환자 (2)
“여기! 여기 좀 봐줘요!”
“피 달았어?”
“혈압 떨어집니다!”
“외과는 언제 온대?”
간만에 간 응급실은 언제나 그러하듯 혼란스러웠다.
그나마 최근에 중축을 했는데도 이 모양이었다.
태화 의료원만 이렇냐고 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칠성이나 아선도 비슷했다.
도로망의 확충과 KTX, SRT 등 고속철도의 발달은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전역을 일일생활권으로 묶어 버리지 않았던가.
지방에 있는 환자들도 당연히 보다 시설이 좋고 경험이 많을 수밖에 없는 서울의 큰병원으로 쏠리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어이구. 수혁아. 조심해.”
“아, 괜찮습니다. 수술해서요. 약간 부딪치는 걸로는 안 넘어져요.”
“그래?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지.”
“네, 감사합니다. 대훈아, 좀 놔도 돼.”
장덕수는 혼란스러운 응급실에서 혹 수혁이 넘어질까 걱정스러웠다.
반면 수혁은 마냥 귀찮다는 얼굴이었다.
대훈과 하윤이 양옆에서 그를 부축하고 있어서였다.
이래서야 넘어지는 건 고사하고 마음대로 움직이기조차 쉽지 않았다.
[덕분에 안전한 건 사실이죠.]
‘그렇긴 한데…….’
[어쨰 환자가 더 늘었네요? 칠성이랑 아선 확 제꼈나?]
‘아니, 그렇진 않을걸.’
그냥 다 같이 늘고 있었다.
지방에서 올라오는 환자 덕이었다.
그만큼 지방에 있던 2차 병원들은 빠르게 고사 되고 있었다.
당장 태화 의료원 의국에만 해도 지방 거점 병원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이름 있는 병원 매물이 떠돌고 있을 지경이었다.
그게 나온 것만 해도 어이가 없는데 팔리지 않는다는 게 더 어이가 없었다.
“아, 저기 계시네.”
하여간 혼잡스러운 응급실 복도를 뚫고 나가다 보니 처치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음압 병실이었는데, 사스, 메르스 등의 대규모 감염병을 겪으면서 마련한 시설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신종 감염병일 경우 외래보다는 응급실로 올 확률이 높지 않겠는가.
입원실만 음압 병실로 만드는 것보다는 응급실에 그런 시설을 마련하는 것이 훨씬 유용할 거란 것이 이현종의 판단이었다.
아직은 대규모 감염병의 유행이 그 후로 없기는 하지만.
딱히 그럴 때만 쓰이는 건 아니었다.
“아, 하긴. 에이즈 환자라고 했죠.”
“어. 들어가기 전에 보호복 입자. 혼자 되겠어?”
“네. 예전과는 달라요.”
“수술이 진짜 잘됐구나?”
“네. 김 교수님한테 밥 한번 사 드렸어요. 스승의 날 때 한번 또 찾아뵈려고요.”
“그래. 그래야겠다.”
장덕수는 덧가운을 입고 마스크에 안면 보호대까지 찬 후 수혁을 돌아보았다.
수혁 또한 방금 말했던 것처럼 별도의 도움 없이 해당 장비를 착용한 참이었다.
뒤따라온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딱히 도움이 될 리는 없으니 쓸데없는 비용 지출이겠지만.
어차피 태화에서 떠안을 손해이지 않은가.
장덕수는 나랑은 관계 없는 일이란 생각과 함께 안으로 향했다.
“으…….”
딱 들어가자마자 악취와 환자의 신음이 들려왔다.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지만 일행 중 누구도 당황하지는 않았다.
이미 각오했던 사항이었기에 그랬다.
“환자분, 안녕하세요. 태화 의료원 감염내과 장덕수입니다.”
“아, 네…….”
“이쪽은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 이수혁 교수님입니다. 같이 진료 보게 될 겁니다.”
“네.”
환자는 흐릿한 눈으로 장덕수의 인사에 답했다.
심지어 의문을 표하기까지 했다.
“근데…… 제가 듣기론 신현태 교수님 진료를…… 받는다고…….”
다행히 의식도 기억력도 괜찮다는 말이었다.
다만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는데, 그쯤은 얼마든지 해결 가능했다.
장덕수가 신현태나 이현종에 비하면 한참 처지지만 그래도 분과장을 맡을 만큼의 경력은 쌓인 사람이지 않은가.
다른 곳도 아니고 태화에서였다.
“네, 연락은 그렇게 갔는데 제가 인계받았습니다, 걱정 마세요. 부산대 장 교수가 제 후배입니다. 잘 봐 드리겠습니다.”
“아……. 네.”
장덕수가 나름 환자를 안심시키는 사이, 바루다와 수혁은 둘의 대화를 관찰했다.
특히 환자의 반응을 주의 깊게 살폈다.
둘이 보기에 환자는 눈 맞춤도 잘했고, 묻는 말에 답하는 것도 맥락에 다 맞았다.
[좋군요.]
‘그러니까.’
수혁과 바루다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안도했다.
하나는 생각보다 환자 상태가 크게 나쁘진 않다는 점이었다.
비록 중심 정맥관을 통해 여러 약과 수액이 콸콸 들어가고 있긴 하지만, 어찌 되었건 수축기 혈압이 100으로 유지 중이었다.
아마 그 덕에 대화도 가능한 것이리라.
두 번째는 저렇게 대화가 가능하면 보다 캐낼 수 있는 정보가 많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수혁은 문진을 통해 단서를 찾고 진단해 내는 일에 특히 능한 사람이었다.
장덕수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너무 오래 환자를 혼자 붙들고 있지 않았다.
“이수혁 교수님, 환자분께 뭔가 더 여쭤볼 거 없을까요? 이미 보내오긴 했지만…… 교수님이 보시면 좀 다를 거 같습니다.”
이럴 때면 딱 신현태 밑에서 배운 사람이라는 티가 났다.
환자 앞에서는 바로 태도를 바꿔 존칭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되면 환자도 수혁을 존중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보기엔 어려 보이지만 실력이 뛰어나구나 싶을 테니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혁은 이미 유리하게 얽힌 환자 관계를 곱씹으며 환자 앞에 섰다.
지금 알고 있는 문제 목록은 정리한 지 오래였다.
[부산대에서 파악한 증상은 고열과 그에 따른 저혈압, 사지의 미만성 피부염입니다. 그 외에 다른 증상이 있는지 확인할 것을 요청합니다.]
제일 급한 건 일단 증상이었다.
너무 부족하지 않은가.
딱 봐도 이것보단 더 많을 거 같았다.
“환자분. 열 나서 오셨는데…… 혹 다른 증상은 없으셨나요?”
“다른…… 증상이요? 팔다리가 아픕니다.”
“근육통인가요? 아니면 관절? 아니면 역시 피부 쪽인가요?”
“피부죠. 표면이 너무 아파요. 약을 맞고 있다는데…… 그래도 아파요.”
환자의 말에 수혁은 환자의 팔다리를 살폈다.
중간중간 검게 변색되기까지 한 피부 병변은 대강 봐도 심각해 보였다.
분명 2차 감염도 일어났을 터였다.
“그 외에 다른 증상은 없나요?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음……. 그…….”
“뭔가 생각나는 게 있으신가요?”
“설사…… 설사를 했어요.”
“설사. 중요한 증상이군요.”
동시에 헷갈리게 만드는 증상이기도 했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설사와 의학적인 설사의 정의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단순 묽은 변을 설사로 표현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자세한 문진을 요하는 시점이었다.
“하루에 몇 번이나 보셨죠?”
“그…… 입원 전에는 다섯? 여섯? 모르겠어요.”
“많군요. 물처럼 나왔나요? 아니면 점액이나 피가 섞여 나왔나요?”
“어…… 점액이라는 게…… 물처럼 좍좍 나오지는 않았어요.”
“뭐라도 끈끈한 것이 섞여 나왔나요?”
“아, 네. 군데군데 피도 좀. 그건 많지는 않았어요.”
“그렇군요.”
하루 5번 이상의 설사에 피가 섞여 있다라.
아까보다는 자세한 정보를 획득한 셈이었지만 그럼에도 몇 가지 감별 포인트가 필요했다.
아쉽게도 이건 문진만으로는 안 될 일이었다.
“제가 좀 봐도 될까요?”
“네?”
“항문이요. 그냥 들어서만은 부족합니다.”
“어…….”
환자는 당황한 얼굴이 된 채 치료실을 둘러보았다.
남자만 있는 게 아니라 여자도 있었다.
훌렁 바지를 까기는 꺼림칙하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적어도 병원에서는 남녀 성별이 그리 중요치 않았다.
단지 의료진과 환자가 있을 뿐이었다.
“괜찮아요. 엎드려 보세요.”
“아니…….”
“커튼은 쳐 줄 겁니다.”
“그…… 알겠습니다.”
워낙 강경하게 나오는 데다가, 표정 또한 별반 변화가 없었다.
그게 뭐? 이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 보니 환자도 더 말을 못 하고 엎드렸다.
애초에 더 왈가왈부할 기운이 없기도 했다.
고열에 시달리다가 수액과 약 기운에 힘입어 내린 것이 조금 전이지 않은가.
“흠.”
수혁은 그렇게 보게 된 환자의 항문을 잡시 바라보았다.
[치질은 없어 보이는군요. 일단 그런 출혈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래. 안을 볼까.’
그리곤 장갑을 끼고 검지를 항문에 집어넣었다가 뺐다.
우선 덩어리가 느껴지진 않았다.
그리고 손가락에 묻어 나오는 피도 없었다.
잦은 설사로 인한 항문 근처 상처에서 나온 건 아니라는 얘기였다.
그 말은 곧 환자의 출혈은 설사로 인한 원인이라기보다는 설사와 동반된 증상이라는 얘기가 되었다.
‘장염일까?’
[그럴 수 있죠.]
‘그럼 소화기계 증상과 피부염을 같이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이라는 얘긴데?’
[가능한 진단명은 여전히 열 개가 넘습니다.]
‘기회감염이니까…… 별의별 놈들이 다 가능하겠지.’
[네.]
아직은 다 파악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걸음 더 내디딘 셈이었다.
“좋습니다. 이제 누우셔도 됩니다.”
“어유, 네.”
환자는 고개를 내저으면서 바지를 추켜올렸다.
수혁은 그런 환자에게 바로 질문을 던졌다.
머릿속에 떠오른 감별 질환들을 구별하기 위함이었다.
[현재 가장 가능성 큰 질환은 마이코플라스마 감염증입니다. 그 외에 히스토플라스마가 있습니다. 나머지 질환들은 무시해도 좋을 확률입니다.]
‘그렇지.’
질환 개수가 여러 가지라 해도 일단 확률적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는가.
특히 바루다는 이런 산술적인 접근에 능했다.
그에 비하면 수혁은 감에 의지하는 편이었지만.
지금처럼 별다른 느낌이 없을 땐 바루다를 따라야 했다.
“기침이나…… 가래는 없나요?”
“음. 기침은 원래 종종 합니다. 가래도 있고요.”
“아, 흡연을 하시나요?”
“하다 말다 합니다. 주로 술을…… 술을 먹으면 합니다.”
수혁은 답하는 환자 옆에 있는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산소 포화도는 95%였다.
산소를 주고 있어서 전에는 어땠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부산대에서 보내온 자료에 따르면 일단 산소 포화도 자체가 문제를 일으키진 않은 거 같았다.
[일단 이따 엑스레이를 찍어 보고 더 묻고록 하죠.]
‘그래, 그게 좋겠어.’
우선 질문을 뛰어넘어 가기로 했다.
문진은 강력한 툴이지만 만능은 아니었으니까.
“남미를 주로 다니셨다고 했는데, 가장 최근에 계셨던 곳은 어디죠?”
“아……. 브라질이요. 브라질에 있다가…… 콜롬비아 쪽으로 이동해서 배를 탔습니다.”
“그렇군요. 브라질에서는 혹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직업과 감염병은 상당한 관련성을 보였다.
특히 사무직이 아닌 현장직인 경우 그랬다.
“음…….”
환자는 잠시 말을 흐리다, 이내 입을 열었다.
“그냥 이것저것 했습니다.”
“이것저것? 더 자세히 말해 주실 수 있나요?”
“그…… 의사 선생님.”
“네.”
“진짜 정해진 일이 없었어요. 의사 선생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그랬습니다.”
다만 답변이 이렇게 나올 때도 있었다.
직업이 반드시 일정하리란 법은 없지 않은가.
삶은 다양하고 정답은 없었으니까.
[곤란하군요.]
‘그러니까.’
다만 의학적인 측면에서는 정답을 반드시 구해야만 했다.
지금이야 이 환자가 생각보다 상태가 괜찮을지 몰라도,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