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14화 (414/1,303)

414화 부산에서 온 환자 (4)

[파고든다는 게 뭔 소리예요?]

‘아까 봐 놓고도 그런 말을 하냐?’

수혁의 말에 바루다가 다시 한번 피자에 대한 기억을 재생했다.

‘야, 치즈 떨어지는 건 뭐 하러 재생해.’

[실수입니다. 피자하면 일단 이런 이미지라.]

처음엔 어디 광고에 나오는 듯한 피자가 나왔다.

아까 신현태가 시켜 준 피자 중 하나가 딱 그런 피자긴 했다.

토핑은 거의 없이 치즈만 디립다 놓여진, 그래서 꿀 찍어 먹으면 맛있는 피자.

‘야……. 냄새 같은 건 필요 없어. 침 넘어가잖아. 나 안 그래도 달리는 거 힘든데, 이 새끼.’

[죄송합니다. 기왕 하는 거 리얼한 게 좋으니까.]

‘그냥 피자가 좋은 거잖아.’

[어떻게 아셨습니까?]

‘하.’

수혁이 한숨 쉬는 사이, 바루다는 제대로 장덕수가 들고 있던 피자를 회상했다.

개미가 잔뜩 꼬여 있었는데 아마도 피자에 발라져 있던 꿀 때문일 터였다.

녀석들은 겉에 붙는 것으로는 좀 모자랐는지 부드러운 치즈 속으로 함부로 파고들고 있었다.

그냥 볼 때는 개미 파티라는 생각만 들었으나 자세히 보니 조금은 징그러울 지경이었다.

물론 바루다에게는 그런 감정은 없었기에 오로지 ‘파고든다’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음.]

그렇다고 바로 수혁의 말이 이해가 가는 건 아니었다.

파고든다는 거야 누가 봐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가.

비단 수혁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그렇게 봤을 터였다.

아니, 심지어 수혁은 장덕수의 말을 듣고 나서야 파고든다를 떠올렸다.

‘모르겠어? 너도 아직 멀었다.’

[음…….]

바루다는 수혁의 빈정거림에 기분이 상했으나 대꾸는 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가용한 자원을 모두 이용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기에 그랬다.

하지만 그럼에도 별 소용은 없었다.

끙끙거리는 소리만 낼 수 있을 뿐, 유의미한 아웃풋은 전혀 내지 못했다는 얘기였다.

위잉.

그사이 수혁은 자동문을 열고 센터 안으로 들어섰다.

안쪽 컴퓨터에는 아직 그 환자의 영상들이 떠 있었다.

그중엔 내시경 소견도 있었는데, 수혁은 딱 그쪽을 향해 직행했다.

예전 같았으면 이만큼 달리지도 못했고, 이동이라도 이렇게 했으면 무조건 쉬어야 했을 텐지만 이젠 아니었다.

수술 이후, 보조기 착용이 훨씬 수월해진 덕이었다.

‘어쩌면 진짜 간단한 시술은 가능하겠는데.’

[음.]

수혁은 자신의 혼잣말에 바루다가 대꾸도 못 하는 것이 기꺼워 껄껄 웃고는 내시경 소견을 이리저리 굴려 보았다.

내시경 실에서 사진만 보내온 게 아니라, 영상까지 첨부해 준 덕에 훨씬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뭐 때문에 이렇게 뛰어왔나 했더니 역시 환자 생각이었네.”

“다리는 괜찮냐? 열나게 뛰던데.”

수혁을 따라 황급히 달려온 장덕수와 이현종이 거의 동시에 질문을 던졌다.

수혁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주는 대신 내시경 소견을 가리켰다.

“이거 잘 봐 봐요.”

“아까도 잘 봤는데.”

“응, 알았어. 음…….”

이현종은 투덜거리면서도 화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장덕수는 그것보다는 좀 더 간절한 얼굴로 얼굴을 들이댔다.

그런다고 아까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보이진 않았다.

애초에 그런 게 있을 리도 없었다.

그랬다면 놓쳤을 리가 없으니까.

이곳은 태화 의료원이지 않은가.

소화기내과 의사가 보고, 센터 의사들이 봤는데 명백히 거기 있는 걸 놓치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파고들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파고들어? 뭔 소리지?”

“여기 이 상처들 말이에요.”

하지만 수혁의 말이 이어지자, 눈이 번쩍 뜨이는 기분이었다.

“이물에 의한 상처가 아니라…… 무언가가 파고들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

“오.”

발상의 전환이었다.

보통 내장에 생기는 상처라는 건 긁혀서였다.

그것 외에 다른 가능성을 떠올리기엔 너무 희귀했다.

하지만 일단 그 희귀한 상황을 떠올리고 보니, 상처가 훨씬 더 그럴싸해 보였다.

“이게 그럼…… 뭐가 파고든 상처라 이건가?”

“네. 예를 들면 기생충이요.”

“기생충이라. 음.”

확실히 가능한 얘기였다.

실제로 고래 회충 같은 놈들은 입안 점막을 파고들기도 하지 않는가.

어류와 구강 점막은 비슷하면서도 크게 달라 그 과정에서 뽑혀 나가기 마련이지만.

하여간 기생충이 인체에 파고든다는 얘기는 낯선 얘기가 아니었다.

“확실히 그렇게 보니까……. 그렇게 보이기도 하네.”

“그러니까요. 뭔가 구멍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이현종과 장덕수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내시경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반면 수혁은 내시경 소견에서 눈을 뗀 채, 병실로 향했다.

이 환자가 있는 병실이었다.

“으…….”

환자는 앓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였다.

가뜩이나 힘들어 죽겠는데 간단한 관장까지 하고 내시경을 받은 몸이니까.

기회감염에 의한 감염이 한번 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지금 가능한 검사가 내일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만 아니었다면 좀 더 쉬게 놔두었을 텐데.

그럴 수가 없어 본의 아니게 혹사시킨 셈이었다.

“잠깐 다리를 볼게요.”

“으.”

그 결과 환자는 수혁의 말에 제대로 된 답도 하지 못했다.

경험이 적은 의사라면 혹 환자 감염이 심해졌나 했을 테지만 수혁은 아니었다.

‘지금 고개를 살짝 끄덕인 거지?’

[네. 바이털도 괜찮습니다. 탈력감이 문제일 뿐, 다른 건 괜찮아 보입니다.]

‘그래, 그래야지. 내일이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만.’

바이털과 의사소통 정도를 통해 환자 상태에 대해 파악한 수혁은 조금은 안심한 얼굴로 다리를 살피기 시작했다.

“뭘 보는 거야?”

“미만성 피부염이잖아. 피부과에서도 그렇게 답을 줬는데.”

“뭐 보이는 게 있겠지. 장 교수, 아직도 몰라? 쟤는 다르다니까.”

“아……. 하긴 그렇긴 합니다.”

그사이 이현종과 장덕수 그리고 다른 레지던트들까지 죄 따라왔다.

면역력이 떨어져 있는 환자이니만큼 다 들어오지는 못하고 유리막 사이에 서 있는 놈들이 대부분이기는 했지만.

하여간 수혁이나 다른 교수들의 대화 정도는 들릴 만한 위치에 서 있었다.

“긴가민가했는데 다시 보니까 역시 그래요.”

“뭐가 역시 그래?”

“여기 이거 봐 봐요. 워낙에 오래된 상처라 좀 그렇지만…….”

“음.”

“이렇게만 보면 장에 있는 상처랑 비슷하지 않아요?”

“어…….”

이현종과 장덕수는 수혁이 가리킨 상처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수혁의 말을 듣고 보니 그렇지 않은가.

무언가 파고든 듯한 상처가 보였다.

“이거 그러면…….”

“기생충 감염으로 생각돼요.”

“무슨 기생충일까?”

“그건…… 그건 아직 알 수가 없죠.”

그나마 한국에서 발생한 일이라면 좀 나을 터였다.

대한민국의 공적 인프라는 상당히 대단한 편이라 이미 각종 하천에서 검출되는 균이나 기생충 등에 대한 연구가 죄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위치만 추정하면 대강 뭐에 걸렸겠다는 것이 딱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는 얘기가 좀 달랐다.

거긴 아직 미지의 땅도 많았고, 아직 이런 식의 연구에 나랏돈을 부을 수 있을 만한 부도 없었다.

“어떻게 한다?”

“음……. 우선은 기생충 약을 써 보는 것도 방법이죠.”

“아, 그렇지. 기생충은 대부분 약 두 개면 싹 죽일 수 있으니까.”

“문제는 그게 안 들을 경우입니다. 실제로 남미 쪽에서는 레지멘이 굉장히 다양하잖아요.”

“그래, 그렇지.”

제아무리 장덕수라 해도 남미 쪽의 기생충 감염에 대한 치료 수칙까지 줄줄 꿰고 있지는 못했다.

하지만 명색이 감염내과 교수인데 통합진료센터 교수보다 너무 모르는 건 좀 그렇단 생각이 들었는지 연신 아는 척을 했다.

이현종은 오랜 연륜, 특히 사람 놀려 먹기로 단련된 눈치를 통해 이놈이 잘 모른다는 것 정도는 바로 눈치챘다.

‘새끼. 내과 아니었으면 바로 깠다.’

하지만 이현종은 일단 내과 내에서 센터가 완전히 인정을 받고 다른 과로 마수를 뻗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고 있는 마당이었다.

해서 참았다.

물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나도 모르는 걸 모르는 건 잘못이 아니지.’

이현종이 생각하기에 이현종 본인은 천재였다.

누군가 들으면 참으로 재수 없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사실인 것을.

게다가 오히려 이현종이 이 생각을 늘 하고 있었기에 그나마 남들에게 보다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

범재에 불과한 사람이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라 여기고 있었으니까.

“우선 초음파를 해 볼까요?”

“잉? 초음파? 갑자기?”

“네. 여기 다리요. 배야 뭐……. 공간이 많아서 어려울 거 같은데……. 다리는 안에 슬쩍 보는 건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아……. 설마 초음파로 뭐가 들어갔는지 찾으려고? 그러다 안 보이면? 안 보여도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닌데.”

장덕수의 반론은 꽤 그럴싸한 것이었다.

일단 초음파로 안에 뭐가 있는지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부정확한 것이었다.

초음파가 인체에 손상도 주지 않고, 빠르게 볼 수 있어 참으로 좋은 검사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단점도 명확하기에 그랬다.

하지만 수혁의 생각은 좀 달랐다.

“어차피 해 보는 거죠. 있는 기계 놀리느니…….”

“그래, 수혁이 말이 맞다.”

“네? 아니, 그래도 이거 쓰면 청구를…….”

뭐라도 해 볼 수 있는게 있으면 해 보자 이 얘기였다.

장덕수는 이에 대해 오랜 기간 교수로 살아온 사람답게, 또 분과장이 된 사람답게 그러다 부당 청구로 잡히면 병원 손해일뿐더러 이미지도 깎일 것을 염려했다.

하나 원장까지 해 본 이현종은 수혁을 두둔했다.

“센터장이랑 부센터장이 쓰고 싶다는데 왜 말이 많아.”

“센터가 적자 되면…… 센터 없어질까 봐 그렇죠.”

“절대 그렇게 안 되게 만들 테니까 걱정 마.”

“어떻게요?”

“일단 좀 가만히 있어. 네가 데려온 환자 아냐?”

“그건 그렇죠. 그래도 미안해서…….”

“안 미안해도 돼.”

보통 원장을 하고 나면 의사의 시선이 아니라 경영자의 눈을 배우게 된다던데 어떻게 된 게 이현종은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회의를 너무 안 들어가셨어서 그런가?’

장덕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안대훈이 센터 내에 비치되어 있던 초음파 기기를 들고 왔다.

다른 데서 쓰던 게 아니라 아예 센터용으로 새로 구매한 물건인데 아직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었다.

‘좋은 것도 사셨네.’

장덕수는 1억이 넘는 고가품이라는 걸 확인하고는 역시나 적자가 나면 안 될 센터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입을 열지는 못했다.

이현종이 애 중요한 거 하는데 쓸데없이 나불거리면 죽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어서였다.

어떻게 표정만으로 이런 복잡한 걸 알았냐고 한다면 이현종의 얼굴을 보면 될 일이었다.

정말이지 표정을 통한 의사소통의 달인이라 할 수 있었다.

“음……. 조금 차가워요.”

그사이 수혁은 초음파 프로브에 찍 하고 윤활제를 뿌린 후 환자에게 말했다.

환자는 아까보다도 더 탈력감에 빠져 있었기에 의미있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고개를 살짝 까딱했을 뿐이었다.

“그럼 볼게요. 여기서 보여야 할 텐데, 음.”

수혁은 그 미약한 끄덕임을 신호로 초음파를 가져다 댔다.

아까 확인했던 구멍 비슷한 상처를 향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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