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화 부산에서 온 환자 (5)
“으.”
프로브가 다리에 닿자 아무래도 통증이 있는 모양이었다.
환자의 입에서 대번에 신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수혁은 손을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상처가 아플 뿐, 이게 뭔가 더 상처를 악화시키는 행위는 아니란 확신이 있어서였다.
“잠시만요.”
해서 수혁은 환자에게 참으란 말과 함께 프로브를 이리저리 돌려 댔다.
“으아.”
그와 함께 환자의 신음도 같이 흘러나왔는데, 수혁은 굳이 거기 대고 아프면 말하라는 둥의 말을 더하지 않았다.
어차피 더 해 줄 게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아서였다.
이건 수혁이 의사가 되기 전에 이미 깨달은 진리였다.
코끝에 걸린 달랑거리는 딱지를 파내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다 코피가 났을 때의 일이었다.
지금 같았으면 코의 가운데, 즉 비중격은 감각도 예민할뿐더러 점막도 약하고 혈관 분포가 많아 절대로 건드리지 않았을 테지만 예과 1학년 때 아는 게 뭐가 있었을까.
냅다 파다가 피가 나서 태화 의료원으로 달렸는데, 그때 당직이던 이비인후과 선배가 이랬다.
‘아프면 손들어.’
‘아, 손 좀 내릴래? 방해되니까.’
마취도 안 하고 코속을 지지면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하라는 대로 손을 들었더니 혼나고.
별로 좋지 못한 기억이었다.
해서 수혁은 그런 말은 아예 환자에게 꺼내지도 않았다.
“야, 수혁아. 아프세요? 뭐 이런 말은 좀 하는 게 좋지 않니?”
이게 혼자 생각할 때는 그럴싸하지만 옆에서 볼 때는 좀 무서웠다.
환자가 아파하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화면만 보고 있다니.
해서 보다 못한 장덕수가 나섰는데, 이번에도 이현종이 말렸다.
“어어, 방해돼.”
“그래도…….”
“그래도는 무슨 그래도. 검사하면서 안 아프게 해 줄 자신 있어? 마취 걸 거야?”
“아뇨, 지금 상태에서 마취는 좀 무리죠.”
“그럼 가만히 있어. 우리 수혁이 방해하지 말고.”
“저러다 못 찾…… 응?”
편애를 해도 너무 하신다 싶어서 다시 한번 반박을 하려는데 화면에 뭐가 잡혔다.
좁쌀만 한 무언가였다.
“이거 같은데.”
종아리 근육으로 파고 들어갔는지, 표면에서 거리가 좀 있었다.
그냥 석회화된 거 아닌가? 할 수도 있겠지만 우선 색이 달랐고, 그 뒤로도 초음파가 투영되었다.
결정적으로 그 무언가는 움직이고 있었다.
활발하지는 않아도 아주 조금씩.
“와……. 이거…… 이거…….”
회의적이었던 장덕수의 반응이 제일 격렬했다.
제아무리 감염내과 의사라고 해도 기생충 감염을 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장덕수는 움직이는 기생충을 직접 본 것이 레지던트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한참 위의 교수인 신현태가 나름 국건영이니 뭐니 해서 기생충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 것이지, 다른 병원에서는 아예 못 보는 경우도 많았다.
70년대 이후 기생충 약이 보급되고 또 농약 친 농산물이 대거 보급되면서 기생충 감염이 팍 줄어서였다.
그나마 최근엔 또 외래종의 유입이나 유기농 농법 때문에 조금씩 늘고 있기는 하지만 비정형 감염을 일으킬 만큼 흔해진 것은 아니었다.
“이야……. 근데 이거 어떻게 빼지?”
이현종도 감명받은 얼굴이었다.
영 감을 못 잡고 있나 싶더니만 갑자기 피자를 먹다 말고 진전이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현종은 그렇게 감명만 받고 있지만은 않았다.
여기서 더 나아갈 생각을 했다.
“음…….”
“그러게요. 이렇게 보기만 해서는 종 구분이 안되는데.”
그 말을 들을 수혁과 장덕수는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다가 이내 내시경 화면을 향해 눈을 돌렸다.
꼬물거리는 무언가는 여전히 시야에 들어와 있었다.
움직이고 있다고 해 봐야 그 움직임이라는 게 그리 격렬하지는 않아서였다.
프로브가 대고 있는 부위에서 벗어나려면 거의 만 하루는 필요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말은 곧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있다는 얘기기도 했으나, 아쉽게도 초음파 정도의 해상도로는 종 구분은 불가했다.
“정형외과 쪽에 의뢰를 할까? 다리니까.”
그때 이현종이 또다시 말을 이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빼서 질본이나 어디 보내면 바로 진단이 되지 않겠는가.
태화 의료원이야 아무리 커 봐야 일개 병원이니만큼 진짜 희귀 질환에 대한 시약은 없지만 질본은 얘기가 달랐다.
“음…….”
“역시 그게 좋겠는데요?”
장덕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과가 아무리 진짜 의사라지만 하여간에 칼 쓰는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스갯소리로 내과에서 칼 쓸 때는 봉합 된 거 풀 때밖에 없다는 얘기까지 있을 지경이었다.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실제로 장덕수는 메스 놀려 본 지가 수십 년이었다.
하나 이수혁에게만 한정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제가 보조하면 최소 절개로 끝낼 수 있습니다. 이거 괜히 설 건드렸다가 안으로 도망가 봐요. 살만 째고 이도저도 아니게 될 수 있습니다.]
‘내 생각도 그래. 네가 있으면…… 간단한 시술은 어쩌면 내가 제일 잘할걸.’
벌써 몇 번이나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이런저런 수술을 해 본 몸 아닌가.
수술이라기보다는 시술에 가까운 것들, 그러니까 농양 제거 정도긴 했지만.
하여간 기가 막히는 솜씨로 해냈다는 건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애초에 바루다의 상황 분석 능력이 수술에 있어서도 파괴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어서였다.
같은 것을 봐도 수혁은 여기서부턴 피가 나겠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은가.
사지가 멀쩡했다면, 또 바루다의 목적에 진단 목적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면 수술 과로 전향한다 해도 무리가 아닐 지경이었다.
“아뇨, 여기서 바로 하죠.”
“응? 뭘 해?”
“이거 빼는 거요.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 같은데.”
“어……. 아냐, 아냐. 우리 같은 진짜 의사가 굳이 칼질할 필요가 있겠어? 정형외과 불러다 시키면 돼.”
그에 반해 그래도 제법 위험한 시술을 하는 이현종은 이번만큼은 수혁이 욕심을 부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단지 뭔가 많이 아는 게 아니라 뭔가 묘한 구석이 있는 아들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건 또 다른 얘기였다.
술기의 장인이 되려면 또 그만큼 들여야 하는 공과 시간이 있어야 했다.
“진짜 할 수 있는데.”
“진짜야?”
하지만 이현종은 기본적으로 수혁 빠돌이였다.
수혁이 재차 자신감을 내보이자 마음이 흔들렸다.
“이수혁 선…… 아니, 교수님. 수술 진짜 잘하십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절개 배농이나…… 간단한 림프 절제 생검술은 의뢰한 적이 없어요.”
“잉? 그래? 아니, 그럴 시간이 있어?”
“워낙 빨리하셔서요.”
“허.”
게다가 안대훈과 우하윤까지 지원 사격에 나선 마당이었다.
그러잖아도 수혁이 하는 일이라면 두둔하고 나서는 인간이 여기서 어찌 더 다른 의견을 품을 수 있을까.
“그럼 해야지.”
“워, 원장님.”
“원장 아닌데.”
“센터장님…….”
“왜.”
“이래도 됩니까? 이건 수술인데…….”
“절개 배농 잘한다잖아. 기본적으로 이것도 째고 빼는 건데 뭐.”
“그건……. 어…….”
불안한 건 장덕수뿐이었다.
의뢰를 하는 순간 환자의 소속은 감염내과에서 통합진료센터가 되긴 했지만.
그래도 도의적인 책임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환자가 잘못되는 걸 바라는 의사는 아무도 없을 터였다.
특히 신현태 밑에서 배운 장덕수라면 더더욱 그랬다.
“좋아. 소독. 대훈아, 너는 그냥 이거 여기다 대고만 있어. 하윤이는 기구 주면 그대로 당기고.”
하지만 나머지가 또 워낙 일사천리로 움직이는 바람에 수술은 곧장 시작되었다.
‘이대로 되나…….’
‘내 새끼는 못 하는 게 없네.’
기대와 불안 속에 수혁이 주사기를 집어 들었다.
이미 엉망이 된 정강이 쪽을 향해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멀쩡한 곳이 많아 보이는 종아리를 향해서였다.
“마취할게요.”
“으…….”
수혁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환자의 종아리에 주사기를 찔러 넣었다.
제일 안 아파할 만한 곳을 골라서 찔러 넣었지만 신음은 흘러나왔다.
애초에 염증이 있는 부위다 보니 염증 매개체들이 잔뜩 번져 있는 까닭이었다.
피 또한 줄줄 흘러나왔다.
수혁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감촉도 원래 째던 거랑 좀 다른데?’
[염증이 있으니까 그렇죠.]
‘설마 망치진 않겠지?’
[진짜 수술이면 그럴 수도 있는데, 가깝잖아요. 괜찮을 겁니다.]
‘너 묘하게 자신감이 떨어진 거 같은데.’
[칼 대는 건 제가 아니라 수혁이니까요.]
‘네가 하자며!’
[선택은 자기 몫이죠.]
주식 권유에 따라 샀다면 그건 네 책임이다 뭐 이런 얘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 노란 머리 연예인이 명패로라도 한 대 후려치고 싶다고 했었을까?
‘수혁아……. 왜 하필 지금이니.’
‘뭐 하는 거여.’
중얼거림이 길어지자 불안감이 이현종과 장덕수에게도 번졌다.
이현종이야 워낙에 수혁과 오래 함께한 까닭에 줄곧 저런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크게 놀라진 않았다.
다만 조태진과는 달리 신이 임한다는 둥 하는 믿음은 없었기에 불안해지긴 했다.
장덕수야 그냥 혼잣말하는 사람을 보게 되었으니 놀랐고.
“아파요?”
“?”
하지만 수혁은 바루다와의 지난 몇 년간을 통해 멘탈이 많이 단련된 몸이었다.
곧 당황에서 벗어나 이빨 있는 집게로 방금 마취했던 부위를 집었다.
마취는 잘 되었는지, 환자는 아무것도 모르겠단 얼굴이었다.
안심한 수혁은 메스로 2cm가량 절개를 넣고는 후크로 양옆을 걸어 하윤에게 건네주었다.
“좋아.”
그리곤 초음파 기기를 보며 계속 상처를 들이파 들어갔다.
초음파에서는 이런 수술 기구가 하얗게 보이기에 구분은 쉬웠다.
“옳지, 보이네.”
해서 수혁은 방향을 제대로 잡아 그대로 직진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었다.
기생충 모양이 아니라, 어떤 주머니였다.
“잉?”
“잉?”
“이이잉?”
나머지 교수들도 뒤에서 초조하게 그 모양을 지켜보고 있었기에 한마음 한뜻이 되어 소리를 질러 댔다.
벌렌 줄 알았는데 주머니라니?
그세 번데기가 됐나?
“아……. 움직임이…… 그냥 안에 찬 물이 흔들리는 거였나 봐요. 하여간…… 제거할게요.”
“대체 뭐야.”
“뭐지.”
모두의 의문 속에 수혁은 조심스럽게, 그러니까 주머니가 터지지 않게 주의하면서 삭 제거를 했다.
주머니는 아주 얇았다.
주변 조직과는 그리 어렵지 않게 분리되는 양상이었고.
[생성된 지 별로 오래된 거 같지 않습니다. 길어야 3일?]
‘확실해?’
[아뇨.]
‘그럼 말을 마!’
[하지만 오래된 조직 같지는 않습니다.]
‘그건…… 그건 그래.’
바루다의 말대로 3일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오래된 거 같진 않았다.
그렇다고 확신을 갖는 건 위험했다.
이 환자는 확실히 미지의 영역에 있었으니까.
그 어떤 예상도 무의미하다는 뜻이었다.
“좋아. 이거 사진 찍고…… 바로 미생물학 센터랑 질본 등등에 보내죠.”
“그래. 잘했어. 어휴, 잘하네.”
수혁이 말싸움을 하면서도 수술을 잘 마무리했기에 검체는 곧 여기저기로 옮겨졌다.
이만하면 할 일이 다 끝났을 거 같지만, 수혁은 병실을 뜨지 않았다.
[검사가 제대로 진행된다고 해도 며칠이 걸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제 본 것을 토대로 다시 문진을 하고, 다시 추론을 이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바루다의 조언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면 ‘며칠’이라는 단어가 걸렸다.
이 환자가 과연 제대로 타기팅 한 치료 없이 앞으로 며칠을 더 견딜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없지.’
수혁은 고개를 저으며 환자의 얼굴 쪽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