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화 부산에서 온 환자 (6)
“으.”
환자는 괴로움에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가뜩이나 힘들어서 왔는데 계속 힘들게 하는 검사만 늘어놓고 있지 않은가.
환자 입장에서는 이 개새끼들이라는 욕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환자분.”
“으.”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신음만 흘러나왔다.
[시발놈이라고 하고 있군요.]
‘그러게.’
상대가 수혁이라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수혁은 바루다의 도움을 통해 어느 정도 분석이 가능하니까.
물론 욕설의 내용이 조금 바뀔 수는 있겠지만, 하여간 뜻만큼은 전달이 된다 이 말이었다.
“이제 실마리를 잡아 가고 있습니다. 거의 다 왔어요.”
“으?”
수혁은 환자의 욕설이 곧 감사의 말로 변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대화를 이어 갔다.
환자는 그런 수혁을 의문에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분명 내시경실에서 이게 대체 뭘까라는 말을 들었기에 그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걸 이수혁 그 교수가 알려나?’
‘모르지, 천재는 천재잖아.’
‘그래 봐야 이제 갓 전문의 딴 애송인데?’
‘야, 너 그런 말 어디 가서 하지 마.’
‘안 하지……. 내가 미쳤냐? 내 앞길 내가 막게. 빽이 얼마나 든든한데.’
‘빽만 든든한 건 아니긴 한데……. 그래도 이건 너무 이상한 소견이야.’
몽롱한 상태의 환자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대화를 나누는 의사들의 입에서 긍정적인 말은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수혁에 대해서도 그렇고, 병에 대해서도 그랬다.
어떻게 이를 알아들을 수 있었냐면 환자 상태가 수면제조차 견디기 어려운 상태였기에 대강 통증만 가릴 수 있을 정도로만 약을 써서였다.
그랬으면 주둥이를 좀 조심히 놀려야 할 텐데 습관이란 게 달리 습관이겠는가.
원래 내시경을 하면서 이런저런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건 그리 문제 될 만한 일도 아니어서 둘 다 전혀 문제의식조차 없었다.
아무튼, 이러한 연유로 환자는 수혁이 뭔가 알았다는 말을 하고 있음에도 그리 눈을 빛내진 못했다.
“편모충이나 원충 감염이 의심됩니다. 침입 경로는 구강과 접촉 둘 다예요.”
그런 반응이 딱히 중요한 건 아니었기에 수혁은 계속 말을 이었다.
환자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어서 가만히 있었고.
“접촉은 주로 다리…… 그중에서도 무릎 아래 부위고, 팔 쪽도 팔뚝 부근이에요.”
“으.”
“그리고 구강을 통한 섭취가 있었죠.”
“으?”
수혁은 질문을 해 가면서도 머릿속을 정리했다.
환자가 정상적인 상태라면 대강 열린 질문을 던진다 해도 어느 정도 답변을 해 줄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못하지 않은가.
문장으로 이루어진 말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의문이었다.
벌써 그렇다 아니다 정도로만 답을 해 온 지가 1시간째였다.
그 말은 질문 던지는 사람이 최선을 다해 자세한 질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개울가일까요? 아니면 연못?]
‘고인 물인지 흐르는 물인지, 그리고 나라는 어딘지가 중요하겠지.’
[이런 종류의 기생충 감염은 주로 고인 물에서 발생합니다. 흐르는 물에도 당연히 분포해 있겠지만, 농도의 차이가 극명하겠죠.]
‘그래. 그렇겠네.’
피부를 통해 침입한 기생충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장내에 있던 상처들 또한 한두 군데가 아니지 않았던가.
아무리 면역이 없다고 하더라도 위산이나 기타 소화 효소는 나올 테니, 살아서 대장까지 넘어온 게 그 정도라면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양의 기생충을 삼켰을 거란 얘기가 되었다.
그러려면 물에 함유된 기생충 농도 또한 엄청나야만 했다.
흐르는 물에서는 그러기가 어려웠다.
알을 까 봐야 이리저리 흩어질 테니까.
“환자분 그래서 몇 가지 질문을 할 거예요.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진단이 되겠지만……. 그 시간 동안 환자분이 계속 고통스러우실 거거든요.”
아니면 죽든가.
수혁은 애써 뒷말을 삼킨 채 질문을 던졌다.
“혹시 연못이나 웅덩이에 들어가 본 적이 있나요? 남미에서요.”
“으.”
“끄덕이신 거죠?”
“으.”
“거기서 물도 마셨나요?”
“으.”
“뭘 했길래 고인 물을 마셨죠? 깨끗해 보이진 않았을 텐데.”
“으…….”
환자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입술 근처에 가져다 놓은 젖은 거즈를 최대한 빨아내고는 하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 봐야 들어간 수분은 적을 텐데, 그래도 도움이 되긴 된 모양이었다.
거의 한 시간 만에 제대로 된 문장을 내뱉고 있었다.
“물고기…… 물고기 잡으러.”
“어부셨어요?”
“아니……. 아니, 거기 친구가 놀자고.”
“아. 웅덩이에 물고기가 있어요?”
“물…… 마르면…… 웅덩이.”
“아.”
수혁은 언젠가 보았던 다큐멘터리를 떠올렸다.
슈퍼 피시였던가? 하여간 특이한 이름의 다큐였는데, 가뭄에 강물이 말라 웅덩이가 되자 거기로 물고기가 몰려서 맨손으로 물고기를 마구 잡아내는 축제가 담겨 있었다.
지역이야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하여간 비슷한 원리였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면역력이 크게 떨어져 있었을 텐데 그래도 잘 놀러 다녔네요?]
‘그거야 환자 자유지.’
[위험하잖아요.]
‘몰랐겠지? 아무튼, 웅덩이야, 웅덩이.’
[나라도 물어보시죠. 남미가 엄청 큽니다.]
바루다는 감염관리 학회에서 보았던 자료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외국 감염병에까지는 크게 관심이 없어 대강 보고만 있었으나, 이렇게 마주하고 보니 역시나 학회란 학회는 갈 수만 있으면 다 가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바루다의 말대로 남미는 거대한 땅덩이였다.
그저 남미 웅덩이에서 놀았다는 것만 가지고 추론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는 얘기였다.
“브라질이었나요? 거기 오래 계셨다고 들었는데.”
“아……. 맞아요. 브라질.”
“그렇군요. 거기 어디 계셨죠?”
“상…… 상파울루.”
“상파울루. 물웅덩이. 네, 감사합니다.”
“어…….”
환자는 이렇게 답을 해 주면 바로 진단명이 나올 줄 알았는지, 눈에 띄게 실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수혁은 보지도 못했다.
바로 고개를 돌려 병실을 빠져나왔기 때문이었다.
나오자마자 마스크와 일회용 멸균 가운을 벗고 있는 그에게 이현종이 물었다.
“뭐래?”
진단 다 됐는데 뭐 하러 가서 물어보냐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이현종이 제아무리 기회감염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환자에게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것 정도는 아주 잘 알고 있어서였다.
게다가 질본으로 어떻게 의뢰가 잘 들어간다고 해도 소요되는 시간이 적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현존하는 거의 모든 시약을 확보하고 있거나, 바로 확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오랜 시간 큰 병원 교수로 있으면서 몸소 체험한 바 있었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물웅덩이에 들어간 적이 있다고 하네요. 진흙탕이었을 거 같아요.”
“아니, 대체 왜?”
“물고기 잡으러요.”
“뭔…… 본인이 무슨 병이 있는지 모르나, 설마?”
“아뇨, 진단은 우리나라에서 받았어요. 상태는 잘 모르는 거 같지만…….”
“거참. 아무튼, 그렇다 이거지? 다들 들었어? 브라질 상파울루, 물웅덩이.”
이현종은 안타깝다는 얼굴로 혀를 차다가, 이내 센터에 배정된 레지던트들을 돌아보았다.
레지던트들은 이 사람이 왜 갑자기 브라질 상파울루 등등을 얘기하나 하는 얼굴이었지만 그렇다고 센터장을 감히 씹을 수는 없어서 집중했다.
“네.”
“여기에 환자는 에이즈, 면역 결핍, 기생충 감염이 있어. 이거 키워드로 가능한 질환 다 찾아봐. 그중에서 임상적으로 비슷한 거 있으면 그걸로 치료 시작한다.”
“아.”
말이 이어지자 왜 그랬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해서 모두들 각자 컴퓨터로 흩어져 자료 찾기에 돌입했다.
교수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교수들이 더 열심이었다.
자료 찾는 건 오히려 컴퓨터에 익숙한 젊은 친구들이 더 잘하지 않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자료 검색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검색어를 다듬어 나가는 과정이지 않은가.
뭔가 머릿속에 든 게 있으면 더 유리하다는 뜻이었다.
[기생충은 낭종을 형성했습니다.]
‘그래……. 그랬지. 그리고 웅덩이에 서식하고.’
[음……. 그렇게 제한해도 꽤 많이 나오네요?]
‘이 중에서 기회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놈들을 찾아야지.’
[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떠들어 대는 건 이현종, 장덕수 그리고 수혁이 거의 다였다.
“히스토플라스마…… 이게 임상적으로는 비슷한데……. 아니네. 헷갈렸다. 미안.”
장덕수는 아주 그럴싸한 기생충을 찾아냈지만 그럴싸했을 뿐이었다.
아까 수혁이 제거한 거랑 생김새가 크게 달랐다.
아니, 기생충 크기부터가 달랐다.
적어도 히스토플라스마는 육안으로 감별이 가능할 정도였다.
“coomb 검사 양성이야? 양성이네? 아……. 그럼 이것도 아니고.”
이현종도 뭔가 찾아낸 모양인데, 검사 결과에서 탈락인 모양이었다.
수혁 또한 말만 안 했지, 벌써 여러 개의 기생충을 도마 위에 올렸다가 토막 쳐 떨어뜨린 참이었다.
그러다 어떤 논문을 찾았다.
『리슈만편모충』
‘음……. 브라질에서 기회감염원으로 보고된 바 있어. 최근에는 에티오피아나 마드리드 등지에서도 발견됐고……. 오 중국에도 있네.’
[거긴 땅덩이가 하도 크니까요.]
‘하여간…… coomb 검사 간접 양성 가능하고.…… 범혈구 감소증 유발하고.’
[비슷한데요?]
브라질을 비롯한 각국에서 보고된 리슈만편모충을 정리한 일종의 리뷰 논문이었다.
워낙에 드문 사례들을 모아 만든 것이라 인용은 거의 되지 않았으나 내용 자체는 괜찮았다.
무엇보다 사진 자료도 있었다.
[분석 결과 환자와 거의 같은 형태의 미만성 피부염입니다.]
‘다른 임상 증상 다 넣어서 돌려 봐.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네.]
그것과 지금까지 환자에게서 얻어 낸 정보를 토대로 바루다는 질병 가능성에 대한 분석에 돌입했다.
잠시 어지럼증이 일었으나, 수혁은 어차피 앉아 있었던 데다가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이기도 해서 별로 타격을 받진 않았다.
그저 잠시 머리를 손으로 짚은 채 기다릴 뿐이었다.
[99.2%입니다.]
‘리슈만편모충일 가능성이?’
[네.]
‘좋아. 그 정도면 확신할 수 있어. 내 감도 얘를 가리키거든.’
[이럴 때도 감에 의지하나요, 보통?]
‘시끄러워.’
만족스러운 결과에 수혁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현종에게 다가갔는데, 이현종도 마침 그 논문을 보고 있었다.
“어, 수혁아. 이거 비슷하지 않니.”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마 이거일 거 같은데요?”
“그래……. 나도 그래. 음. 이걸로 갈까?”
“네. 이걸로 가시죠.”
둘이 쑥덕쑥덕하자 장덕수가 다가왔다.
조금은 초조한 얼굴이었다.
“왜, 왜요. 저는 도통.”
“이거 말야. 한번 읽어 봐. 맞는 거 같지?”
“리슈만편모충이요? 어, 이건 진짜 드문…… 음……. 오……. 그러고 보니 이런 거 읽어 본 기억이 있어요.”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말고.”
“아니, 진짜예요.”
“구라 까지 마. 하여간 맞는 거 같아. 약부터 쓰자고. 뭐 써야 해? 아, 항진균제구나. 누구 말만 듣고 기생충 약만 썼으면 좆 될 뻔했네.”
“그거 교수님도 동의했던…….”
“시끄러워.”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