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19화 (419/1,303)

419화 성과 보고 (3)

신현태와 이현종의 싸움으로 번질 뻔한 대화는 남지연의 중재로 간신히 끝이 났다.

“원장님 사이비 운운한 것은 사과하시죠.”

“아니, 홍익인간 썰은 좀.”

“그래도…… 하시긴 하시죠.”

“알겠습니다. 미안합니다.”

남지연은 그야말로 억지 사과를 받아 내고서 이현종을 바라보았다.

이현종은 세상에서 제일 당당한 얼굴로, 심지어 턱 끝도 세운 채 신현태의 사과를 받고 있었다.

누가 보면 잘못 하나 안 한 사람인 줄 알 터였다.

‘아까 물병 던진 게 누구더라.’

남 사장은 왜 사장으로서 들어온 회의에서 애들 싸움 같은 광경을 봐야만 하나 하고 머리를 짚었다.

보통 회사였으면 둘 다 거의 생명이 끝날 텐데.

대체가 잘 안 되는 집단이다 보니 분위기가 좀 달랐다.

‘다른 병원도 이런가?’

남 사장은 진지하게 고민을 하다가, 이내 그럴 리가 없을 거란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칠성 측 얘기를 들어 보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은 없었다.

도리어 거긴 너무 회사같이 경직된 분위기를 강요하는 바람에 젊은 의료진 이탈이 있을 지경 아닌가.

“후.”

“사장님 참으세요. 아직 원장 된 지 얼마 안 돼서 뭘 모릅니다.”

“아니, 센터장님.”

“네, 저는 잘 참고 있어요. 휴, 사과는 받겠습니다.”

“아니…….”

남 사장은 한숨 쉬는 그녀를 위로하겠답시고 나서서 더 속을 뒤집어 대고 있는 이현종을 바라보았다.

사실 물병 던진 것도 사과를 시켜야 할 텐데.

그래야 둘 사이에 앙금이 남지 않고, 계속 일을 잘하지 않을까?

‘아닌가? 어차피 둘 사이는 뭐 거의 형제잖아.’

하지만 더 말을 섞어 봐야 이쪽만 괴로울 것 같았다.

이현종이 달리 기인이라는 평을 듣고 있겠는가.

정말 이상한 사람이어서였다.

보통 사람 머리로는 이해가 어려웠다.

“네, 뭐. 그래요…….”

그 바람에 신현태가 눈을 부릅뜨긴 했으나, 그 또한 이현종과 더 대거리를 해 댈 자신은 없었기에 굳이 입을 열진 않았다.

그 틈을 틈타 남지연은 재빨리 대화를 마무리해 버렸다.

“아무튼, 잘 들었습니다. 다음 회의 때 뵙도록 하죠. 아, 학회 발표는 직접 가긴 어려울 테니……. 영상 녹화가 가능하면 부탁드립니다. 그게 일정 부분 성과 보고를 대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 머리 아픈 회의를 한 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반드시 하고 싶었다.

다행히 이현종은 긍정적인 사람이면서 동시에 자기애가 충만한 사람이라 좋게만 받아들였다.

“네, 제가 강의를 정말 잘하거든요. 도움이 되실 겁니다.”

“네. 센터장님.”

딱히 그런 뜻은 아니었다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지만, 남지연은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갔다.

이사진들이라고 다르지 않아서 방 안에는 순식간에 신현태와 이현종, 이수혁 그리고 타이밍을 놓치고 만 장강명만 남았다.

그 와중에도 스리슬쩍 나가려고 애를 썼으나 여의치가 않았다.

신현태가 이현종을 못 나가게 할 요량으로 방문을 막아섰기 때문이었다.

“형……. 근데 진짜 그런 발표를 할 거야?”

“응? 해야지. 어지간한 것보다 더 도움 될걸.”

“뜻이야 좋은데.”

“뜻이 좋으니까 해야지?”

“곡해할까 봐 그렇지. 의사들이 얼마나 보수적인데……. 게다가 춘계 학회는 다른 학회보다도 더 딱딱하잖아.”

“곡해하는 놈이 비뚤어진 거지. 너도 성과 봐서 알잖아. 그래, 그거. 브라질에서 왔던…… 그 뭐더라.”

이현종의 말에 신현태가 입을 다물었다.

‘리슈만편모충증…….’

다시 생각해도 기가 막히는 진단이었다.

일단 그게 가능한지도 몰랐는데, 그걸 단 하루 만에 진단해?

진짜 미친 인간들이구나 싶을 지경이었다.

‘천재들 사이에 있으려니까 죽겠더라고요. 통합진료센터 단점은 그거 하나 정도입니다.’

무던하기로 소문난 장덕수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더랬다.

그만큼 대단한 성과긴 했다.

누구라도 자랑하고 싶을 만큼.

“그래 리슈만편모충증. 기회감염이…… 앞으로 더 늘 거 아냐. 그렇게 생각해 안 해. 너네 미래라고 생각한다며.”

“그거야, 그렇죠.”

신현태가 학생이었을 때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감염내과는 메이저였다.

개발도상국이니만큼 각종 감염병이 창궐하고 있었던 데다가, 기생충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었기에 그랬다.

하지만 이젠 말라 죽기 직전이었다.

전반적으로 크게 개선된 청결도와 너무 싼 값에 쉽게 먹을 수 있는 기생충 약들과 짐승 분뇨로 이루어진 비료 대신 화학 비료를 이용하면서 거의 박멸되다시피 한 기생충 감염 질환 때문이었다.

팬데믹 사태가 벌어진다면 또 모를까, 감염 내과의 시대는 다시 오기 힘들 거라는 것이 모두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나마…… 기회감염 정도가 우리 새로운 밥줄이겠지.”

“근데 너 그거 자신 있어?”

“남들보다야 자신 있죠. 날 뭘로 보고…….”

“아니, 다른 질환들만큼 자신 있냐고.”

“그건…… 그건 아니죠. 완전히 새로운 개념인데.”

“그러니까…… 얼마나 많이 죽어 나가겠냐고. 가뜩이나 면역 억제자들은 상태도 별론데 진단 늦어져 봐. 막말로 우리가 봤던 그 환자도 부산대에 계속 있었거나…… 장덕수 그놈이 봤으면 죽었어.”

“음.”

장덕수의 동료이자 또 스승이기도 한 신현태로서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니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실제로 이 둘이 아니었다면 진단에 일주일도 넘게 소요되었을 테고, 환자는 그 기간을 절대 견딜 수 없었을 테니까.

“다른 병원이라고 사정이 달라? 다르냐고.”

“우리가 이런데 다른 데는 더하죠.”

“그래. 그건 우리가 봐주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음…….”

이렇게 듣고 있으려니 설득이 되는 기분이었다.

물론 반강제로 갇혀 있던 장강명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뭐가 되었건 우리가 이렇게 훌륭한 센터 개설 했으니까 환자 보내라는 말 아닌가? 실제로 우수하건 말건……. 기분 나쁠 거 같은데?’

집단의 특수성 때문에 더 그럴 것이었다.

하여간 누구 하나 잘난 사람 있으면 끌어내리거나 어떻게든 욕을 해야 분이 풀리지 않던가.

멀리 갈 것도 없이 태화도 그랬다.

워낙에 힘과 지식으로 찍어 누르고 있어 조용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수혁에 대한 불만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었다.

수혁의 실력과 그런 말을 해 대는 놈들의 실력을 비교해 보면 기가 찰 지경이었지만 그들은 과하게 부풀어 오른 자존심 때문에 도통 인정을 하지 못했다.

“그래요, 하죠.”

“그래, 뭘 난리야.”

장강명과는 달리 이현종 옆에서 워낙 오래 있던 탓에 어느 정도는 이현종화 된 신현태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듣다 보니 그럴싸하다, 이런 논리라면 설득이 되겠다 여길 뿐이었다.

장강명은 답답해졌지만 입을 다물기로 했다.

‘욕을 먹어도 저쪽에서 먹을 거고…….’

무엇보다 저 둘은 실세 아닌가.

실력도 실력이지만, 눈치도 뛰어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장강명은 입도 벙끗하지 못했다.

다만 하나 원이 있다면 이수혁이 제정신이어서 반박하는 것이었는데, 수혁은 그의 바람을 보기 좋게 박살 냈다.

“그럼 일단 지금 있는 자료들부터 정리해야겠네요.”

오히려 거들고 있었다.

“어, 그래. 근데 자료 있잖아?”

“우리끼리 보려고 만든 거라……. 발표용으로 수정해야 해요.”

“아, 그래. 그런 건 알지? 내가 잘 못 해.”

“괜찮아요. 제가 잘하니까.”

“그래그래. 내가 이러니까 널 안 이뻐할 수가 있냐? 발표는 내가 할 테니까 너는 그…… 뭐라고 하지. 그래, 꿩 먹고 알 먹어.”

“네.”

속담 예시가 좀 틀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여기서는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어떻게든 이상한 논리를 만들어서 결국 맞는 예시로 만들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였다.

부우웅.

게다가 전화까지 울린 마당이었다.

“어, 이현종입니다. 아, 환자야? 어떤?”

마침 이현종에게 온 전화라 모두들 빠르게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특히 장강명은 달려 나가기까지 했는데, 신현태는 그 모습이 너무도 이해가 가서 뭐라 말도 하지 못했다.

“아……. 그냥 외래야? 뭐야 인마.”

그사이 대화가 더 이어졌는데 그리 심각한 환자는 아닌 듯했다.

딴 게 아니라 이현종의 얼굴에서 김이 팍 샜다는 것이 느껴졌다.

명색이 의산데 환자가 괜찮다는 말에 저런 반응이라니.

저러다 천벌 받지 싶었는데, 수혁도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확인하자 생각이 좀 달라졌다.

‘그럴 수 있지. 환자 의뢰인 줄 알았을 테니까.’

본인이 생각해도 태세 변환이 좀 심각한 거 같긴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현종에 대한 마음과 수혁에 대한 마음이 이렇게나 다른데.

“알았어. 지금 외래에 있어?”

“네, 선배. 안 바쁘세요?”

“바쁜데 가는 거야, 인마. 노는 줄 아냐?”

“아니,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

“아무튼, 어디야?”

“외래…… 아, 내분비내과요.”

“그래, 기다려. 어차피 곧 점심 시간이니까…… 밥 사.”

“이거 맞혀 주시면 얼마든지 사죠.”

“그래.”

신현태가 또 멋대로 수혁에 대한 애정을 뿜뿜 하고 있는 동안 통화가 끝났다.

이제 갈 길 가야지 하고 있는데 이현종이 신현태의 어깨를 툭 하고 잡았다.

“내분비 가서 밥 뜯자.”

“네?”

“밥 뜯자고.”

“누구한테요?”

“거기 서효석이 대신 분원에서 올라온 애 있잖아. 걔가 나랑 동아리 선후배 사이거든. 이런 거 저런 거 많이 물어봐서 알려 줬는데, 얘가 맛집 통이야. 서울 사는 나보다 더 잘 알어. 돈도 많고.”

“오……. 근데 맞혀야 사 준다고 들은 거 같은데?”

“내가 못 맞히겠냐? 이 내가?”

‘누가 보면 평생 단 한 건도 오진이 없던 줄 알겠네’라는 말이 부지불식 간에 튀어나올 뻔했다.

‘겨우 참었네.’

신현태는 충분히 수양 된 자신의 인격을 칭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자신 있으면 가요. 그나마 오늘은 회의 이게 다니까.”

“좋아. 수혁아, 너도 할 일 없지?”

“당장은요. 발표 준비도…… 급할 건 없으니까요.”

“오케이. 혹 내가 긴가민가하면 네가 맞혀 봐.”

“아, 네.”

그렇게 해서 일행은 내분비내과 외래로 향했다.

말이 일행이지 하나는 원장, 다른 하나는 전임 원장이자 현 센터장, 나머지도 부센터장이기에 퍽 화려한 행차였다.

오며 가며 마주치는 모두가 고개를 숙여 댄다 이 말이었다.

외래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이현종을 부른 소위 후배라는 사람도 밖에 나와 있었다.

보아하니 잠시 외래를 멈추고 대기 중인 모양이었다.

“너…… 어려워도 혼자 해결하는 버릇 들여야지. 교수잖아.”

나름 친하게 지냈는지 이현종이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었다.

신현태는 이 양반이 대체 누구길래 이러나 하고 봤더니 스키부 후배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어, 종국아. 맞아, 네가 올라왔지.”

“덕분에…… 저도 시골 생활 청산하고 올라왔죠.”

“아무튼, 뭔데 이 형까지 부르고 그래?”

“아……. 내분비내과 질환이면 제가 어떻게든 해 보겠는데……. 증상이 아예 달라요. 일단 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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