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20화 (420/1,303)

420화 성과 보고 (4)

일행은 박종국의 안내에 따라 진료실로 향했다.

뚱한 얼굴의 남자 하나가 앉아 있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듯싶었다.

[1형 당뇨, 조절은 아주 잘 되고 있군요.]

‘그러게. 최근 시행한 당화 혈색소도 6.1이야. 이 정도면 뭐…….’

평균 혈당이 150 미만으로 조절이 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직까지 1형 당뇨인 경우 인슐린 주사로밖에 치료가 안 되는데 이 정도로 잘 잡히고 있다는 얘기는 환자가 최선을 다해 치료를 따라오고 있다는 얘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박종국은 우선 칭찬부터 하고 시작했다.

“제가 창원에 있을 때부터 보던 친구예요. 22살이고…… 저한테 치료받은 지가 벌써…… 얼마나 됐지? 한 10년 됐나?”

“아, 네. 10년 넘었죠.”

“그래, 그렇게 됐어요.”

표정이 뚱할 뿐 성격도 그런 건 아닌 모양이었다.

박종국의 말에 환자는 제법 미소까지 띤 채 답을 해 왔다.

하긴 10년 넘게 한 병을 상대로 같이 싸워 왔다면 이미 의사-환자 관계가 아니라 전우라 해도 좋을 터였다.

보통 병도 아니고 환자의 역할이 정말 중요한 당뇨이니 더더욱 그랬다.

“10년이라. 아까 내분비 문제는 아니라고 했지?”

이현종도 보기 드문 광경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흐뭇한 미소를 띤 채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친하게 지낸다 해도 까마득한 선배인지라 박종국은 즉각 답했다.

“네. 당뇨는 완벽하게 조절 중이에요. 10년이나 지났는데 합병증은커녕 기미도 없어요.”

“그건 나도 알겠어. 랩 보니까……. 둘 다 최선을 다한 거 같아. 그래서, 지금은 문제가 뭔데?”

물론 이현종은 딱히 선 넘는 정도의 무례만 아니라면 크게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니지 않은가.

이미 박종국이 아니라 환자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은 의아하다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아무리 봐도 그렇게 아파 보이진 않는데……?’

여기서 이현종이 말하는 ‘아프다’의 정의가 조금 삐뚤어져 있는 건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환자가 하루에도 몇 명씩 죽어 나가는 순환기내과 의사로 수십 년을 살다 보면, 어쩐지 죽고 사는 문제 외에는 아프단 말이 잘 나오지 않아서였다.

그러니 멀쩡히 앉아서 자신을 마주하고 있는 22살의 젊은 환자에게서 큰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큰 잘못이 아니라 할 수 있었다.

‘뭐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정 간격으로 얼굴 표정이 바뀌고 있습니다.]

심지어 수혁도 그랬다.

바루다 정도만이 남다른 분석력으로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감지해 냈을 뿐이었다.

‘얼굴 표정? 무슨 뜻이지? 계속 뚱한 톤인데.’

[아뇨. 조금 굳는 순간이 있어요. 통증 또는 두려움으로 해석됩니다.]

‘아…….’

수혁이 아니라 조금 미숙한 의사였다면 이게 대체 뭔 놈의 뚱딴지같은 소린가 했을 터였다.

통증이야 그렇다 쳐도 두려움이라니?

하지만 전조 증상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아마도 환자는 어떤 종류인지는 몰라도 반복되는 증상이 있음이 분명했다.

“아……. 목이 아프다고 해서요.”

그때 박종국이 환자의 증상에 관해 얘기해 주었고, 이현종이 그를 돌아보았다.

조금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세상에 목 통증이라니.

목이라고 하면 그게 뒷목의 근육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인후를 말하는 건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의사의 기본이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의사가 목이 아프다고 하면 어떡해. 다시 말해 봐. 증상 제대로.”

“아, 네. 인후통(sore throat)이 있어요.”

“그래, 그렇게 말해야지. 근데 인후통이면…… 보통은 감기나 편도염 아냐?”

“에이, 그런 거면 저도 선배님 안 불렀죠. 목 안은 깨끗해요.”

“그래? 어디 봐 봐. 환자분, 아 해 봐요.”

인후통은 무척 흔한 증상이었다.

누구라도 한 번쯤은 앓아 봤을 정도로.

물론 흔하다 해서 경한 증상이라는 건 아니긴 했으나, 환자의 전신 상태를 봐서는 중증 질환으로 연결 짓기가 쉽지 않았다.

해서 이현종은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로 일관한 채 환자의 입안을 들여다보았다.

‘새끼, 내가 군의관 때 별명이 감기 귀신이었다.’

그 후로는 심장내과 의사로 사느라 감기는 거의 보지 않았으나, 그래도 짬바가 어디 가겠는가.

기껏해야 정상 점막과 비정상 점막만 구분할 수 있으면 될 텐데.

마침 날씨도 3월의 포근한 날씨가 유지되고 있으니 쓸데없이 건조해 보이거나 하지는 않을 터였다.

“음.”

어디 놓친 부위가 있겠거니 하고 봤는데 정상이었다.

어라 하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니 수혁이나 신현태 또한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있었다.

“정상이네요.”

“음, 감염 징후는 없는 거 같은데.”

수혁은 그렇다 치더라도 신현태는 감염내과 아닌가.

감염 질환에서 인후통은 흔하다 못해 발에 채는 수준의 증상이기에 심심하면 보는 게 목이다, 이 말이었다.

적어도 이 중에서는 제일 경험이 많을 텐데 녀석도 정상이라고 판정했다면 정상이라고 믿는 것이 옳았다.

“진짜 그렇네? 환자분 목이 어떻게 아파요?”

그제야 단순한 증상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 이현종은 좀 더 진중한 얼굴이 되어 환자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뚱한 얼굴의 환자는, 그러나 표정과는 별개로 열심히 답을 해 주었다.

“따끔해요.”

“얼마나 됐죠?”

“아픈 건…… 한 3개월?”

“3개월? 꽤 긴데…….”

역시나 감염 질환이라고 하기엔 너무 긴 시간이었다.

당뇨 환자니 비정형 감염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당 조절이 이렇게 잘되고 있는 환자라면 그냥 일반인이라 상정하고 추론을 진행해야 했다.

“그동안 증상이 어땠어요? 좀 나아졌어요? 아니면 똑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더 심해진 거 같아요. 그때는 그냥 불편하다 싶을 정도였는데, 이제는 꽤 아파요.”

“음.”

여기서 증상이 더 심해져?

‘뭐지?’

[아직까지는 감이 안 잡히네요.]

수혁과 바루다도 머리를 모으기 시작했다.

신현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박종국은 어쩐지 조금은 안심한 얼굴이 되었다.

‘그치? 나만 어려운 거 아니지?’

여기서 누군가 아, 이거 그거잖아! 이랬으면 얼마나 좌절스러웠을까.

가뜩이나 분원에 있다가 본원 올라오니까 지레 쫄리는 와중이지 않은가.

그나마 개원 이래 최고 천재라는 이들도 당장 떠올릴 수는 없는 질환이라는 걸 확인하자 마음이 푸근해졌다.

“통증이 주로 언제 심해지죠?”

당연히 이현종은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좋은 의사의 조건 중 하나가 집요함이라고 믿는 사람이기에 그랬다.

환자가 귀찮아서 이제 그만 찾아오라고 해도 아직 진단명이 나오지 않았다면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게 의사였다.

“아……. 침 삼킬 때요.”

“그래요?”

이건 편도염이나 인후염 등 염증이 있을 때 있을 수 있는 증상이었다.

하지만 여기선 중요한 감별 포인트가 있었다.

그 질문을 놓쳐선 안 되었다.

“식사할 때는 어때요?”

“똑같아요. 똑같이 아파요.”

“더 아프거나 하지는 않고요?”

“네.”

“그럼 물은요? 물 마시면 호전이 됩니까?”

“아뇨, 물도 똑같아요.”

“오.”

보통 목 안의 염증은 밖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부어오른 점막이나 편도 또는 농양 등의 형태로.

그렇다 보니 침을 삼킬 땐 움직여서 아프고, 밥을 먹으면 단단한 게 닿으니 더 아프고, 물은 차갑게 식혀 주니 통증이 덜하게 되기 마련인데 이 환자는 모든 상황에서 통증이 같다고 진술하고 있었다.

‘움직임만이 통증과 연관이 있다…….’

그렇다는 건 구조에 이상이 생겼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통증이 여기 위 귀 앞으로 뻗치거나 하지는 않아요?”

“아……. 아뇨. 여기는 괜찮아요.”

“그렇군요. 음…….”

턱관절은 아니군, 이라고 중얼거리곤 다시 질문을 이어 나갔다.

“혹시 3개월 전부터 아팠다고 했는데, 그전에는 아예 괜찮았어요?”

“아…….”

질문의 결이 방금 전과는 조금 달랐기에 환자는 바로 답을 하진 못했다.

하지만 내내 이 증상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던 덕에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아뇨. 그전에도 이물감? 하여간 뭔가 있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래서 병원 갔더니 역류성 후두염이라고 해서 약도 없었는데…….”

“효과가 없었군요.”

“네. 찾아보니까 증상이 저랑 좀 다르더라고요. 뭐 기침도 나고 한다는데 저는 진짜 뭐가 있는 느낌이 삼킬 때만 들었어요.”

“그건 그럼 얼마나 된 겁니까?”

“음…….”

환자는 천장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그건 오래됐어요. 1년은 확실히 넘었어요. 2년도…… 더 됐나? 죄송해요, 이건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서요.”

“아닙니다. 이 정도면 꽤 자세한 답변이에요.”

이현종은 사과하는 환자에게 손을 내젓고는 지금까지 알아낸 것을 정리했다.

‘증상은 최소 2년 전부터 시작됐고……. 3개월 전에 이르러서야 통증이 있었다고 하면 진행은 굉장히 느려. 어떤 구조의 변화 때문일 텐데……. 뭔가 자라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겠지.’

즉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환자의 목 주변의 어떤 구조물, 혹은 종양이 자라고 있는데 그게 목을 넘길 때 통증을 일으키고 있다는 얘기였다.

속도만 봐서는 아무래도 뼈거나 골종일 것 같았다.

다만 위치는 오리무중이었다.

“센터장님, 잠시만 제가 질문을 이어도 될까요?”

그때 뒤에 있던 수혁이 나섰다.

뭔가 알겠다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다른 놈이 이랬으면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겠지만 상대가 수혁이다 보니 그저 웃음만 나왔다.

“물론이지. 자자 일로 와.”

심지어 자리도 선선히 비켜 주었다.

그 모습을 본 박종국은 과연 아들 사랑이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주책이다, 주책이야.’

신현태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으나, 저변에 질투가 깔려 있으니 이현종보다 잘날 것 하나 없는 상황이었다.

하여간 수혁은 이현종의 배려로 환자 앞에 설 수 있었다.

“환자분, 좀 이상한 질문인데……. 목 움직일 때는 안 아파요? 가령 이렇게…… 좌우로 돌릴 때요.”

“아.”

다소 뜬금없는 질문이었는데, 환자의 반응이 이상했다.

그걸 대체 어떻게 알았느냐는 얼굴이라고 해야 할까?

“그건 정형외과 쪽 가 보려고 했는데……. 이게 같은 거예요?”

일부러 숨기고 있던 것은 아닌 듯했다.

당연히 목 안의 통증이 있었으니, 좌우로 돌릴 때 아픈 건 별개의 것이라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은가.

“아직은 모릅니다만, 좌우로 돌릴 때 통증이 있나요?”

“아, 네. 있어요. 아파요. 최근엔…… 으…….”

환자는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며 인상을 썼다.

그러다 눈을 깜빡이며 앞을 돌아보았다.

“이러다 보면 어지럽기도 해요.”

“눈앞이 캄캄해지나요?”

“아, 네.”

“정확한 건 사진을 하나 찍어 봐야겠지만……. 뭔지 알겠네요.”

“오, 정말요?”

정말이냐고 물은 건 환자 하나뿐이었지만.

그렇게 묻고 싶은 건 이 방 안에 있던 전원이었다.

그들은 모두 이게 꿈인가 생신가 하는 얼굴로 수혁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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