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22화 (422/1,303)

422화 또 다른 전원 문의 (2)

독수리 증후군.

경상 돌기가 비정상적으로 길어지면서 발생하는 목의 통증을 주된 증상으로 하고 심할 땐 경동맥의 압박이나 파열까지 야기시키는 병.

이에 대해 얘기를 들은 이비인후과 이낙준 교수는 잉 그걸 어떻게 알았지 하고 중얼거리다가, 수혁의 얘기를 듣고 나서야 납득하고는 환자를 받아 가겠다는 뜻을 전해 왔다.

“역시 사람이 됐다니까.”

이현종은 수혁의 천재성을 알아봐 주는 다른 과 사람이라면 다 좋아했기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괜히 인성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게 아니죠.”

신현태도 거들었다.

“그…… 진짜 대단하니까요.”

박종국 또한 눈치를 보다가 끼어들었다.

아무리 봐도 누군가 앞에서 대놓고 칭찬하는 건 이상한 일이었지만.

여기서는 그래야 할 거 같았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고 했잖아.’

태화에 왔으면 태화 법을 따라야만 했다.

과장은 아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 중 하나는 원장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 그룹 차원에서 미는 센터의 센터장이었으니까.

그야말로 살아 있는 법 아닐까?

“그래, 너도 이제 수혁이 말이라면 껌뻑 죽으라고.”

“그래, 죽는시늉이라도 해.”

물론 점점 수위가 높아져만 가는 바람에 끼어드는 것도 어려워지고 있기는 했다.

다행인 것은 곧 점심이기도 하고, 또 밥을 사겠다고 공언했었단 점이었다.

해서 박종국은 금세 시선을 딴 데 돌릴 수 있었다.

“그, 아무튼, 제가 여기 와서 봐 둔 식당 하나 있긴 하거든요. 어떻게…… 지금 가실래요?”

“오, 좋지.”

“좋지. 수혁아, 가자. 이 친구가 다른 건 몰라도 맛집은 귀신이야.”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너무 모자라 보이잖아요.”

“모질라, 너.”

“와…….”

그래 봐야 완전히 돌리긴 좀 어려웠다.

이현종은 박종국이 수혁에 대해 품었던 불손한 마음에 대해 제대로 앙갚음해 주기로 마음먹었는지 결코 멈추질 않았다.

가는 차 안에서도 그랬다.

살려 줘 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것만 같았다.

“오……. 여긴 못 와 본 곳인데.”

“생긴 지 얼마 안 되었어요.”

“그럼 실력이 검증되지 않았잖아? 난 내가 맛본 것만 믿어.”

“그…….”

박종국은 ‘지금 당신이 하는 말이 이수혁에 대한 태도와 정확히 상반되는 거 아냐’는 말을 하려다 참았다.

겨우 화제가 식당으로 온전히 돌아온 마당에 괜히 그런 말을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여기 셰프님이 제주 신라 있던 분이에요.”

해서 그냥 셰프님 변호나 하기로 마음먹었고, 다행히 먹혀들었다.

“오, 그럼 믿을 만하지.”

“네, 장난 아니에요. 기본기가…….”

“그렇겠지. 내 아는 놈 하나도 신라에 있었는데 와……. 빡세더라. 의사 저리 가라야.”

“그럼요. 칼 다루는 직업치고 만만한 게 없죠.”

“우리는 칼 안 다루잖아. 은근슬쩍 내과 비하하니?”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너는 아예 내분비내과잖아. 술기라고는 아무것도 안 하는 놈이.”

“그…….”

잠깐 핀트가 어긋나는 바람에 또 욕을 먹었지만, 그것도 음식이 나온 다음에는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맛도 맛이지만 모양도 훌륭해서였다.

심지어 셰프가 직접 나와 인사를 했기에 너도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연 지 얼마 안 되는 가게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고 와 주시면 최선을 다해 대접하겠습니다.”

맛도 좋고 인심도 좋고.

한동안 푸근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가 진행되었다.

위이이잉.

그러다 박종국에게 전화가 왔다.

한창 맛있게 먹던 중이라 어지간하면 씹으려고 했는데 발신지가 창원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태화 창원 분원이었다.

‘뭐지?’

올라온 이후 거의 연락한 적이 없었기에 의아했다.

“뭐야, 전화 왔으면 받아야지.”

“아……. 그게 창원이라서요.”

“창원에서 빚지고 도망 왔어?”

“아뇨, 아뇨. 무슨 말을.”

“그럼 받어. 우리 사이에 이런 걸로 예의 차리냐?”

“아, 네네. 알겠습니다.”

안 받았다가는 뭔가 이상한 오해를 살 상황이었다.

해서 박종국은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상대는 창원에 남은 내분비내과 교수였다.

“박 교수님. 잘 지내세요?”

안부 인사부터 해 왔다.

하지만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기에 의아했다.

사이가 나쁘다는 건 아니고, 둘 사이에 나이 차이가 너무 심해서였다.

저쪽에서 박종국을 일방적으로 어려워한다고 해야 할까?

“어어, 그래, 잘 지내지. 무슨 일이야?”

당연히 무슨 일이 있어서 전화했다는 것 정도는 눈치를 챘다, 이 말이었다.

상대는 박종국의 질문에 안도했는지 한숨을 쉰 후 말을 이었다.

“그게, 환자가 전원 원해서요.”

“아……. 그래?”

반면 그 말을 들은 박종국은 씁쓸해졌다.

솔직한 얘기로 창원 분원과 이곳 본원과의 실력 차는 엄연히 존재했다.

하지만 바깥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은 아니었다.

분명 창원에서도 해결 가능한 질환은 아주 많았다.

괜히 대학 병원이겠는가.

하지만 서울에 있는 빅3 병원들의 명성이 날로 드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찬밥 신세가 되고야 말았다.

“아, 그게…… 여느 때랑은 조금 다릅니다.”

해서 박종국은 후배의 말에 후배는 볼 수 있는데 환자가 원해서 보내는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응?”

“모르겠어요, 무슨 병인지.”

“뭔 소리야, 그게.”

“지금 시간 되세요?”

후배의 말에 박종국은 나머지 셋을 돌아보았다.

혼자라면야 얼마든지 이런 전화는 받아 줄 수 있었다.

친하지 않은 후배라고는 해도, 같은 병원에 있던 녀석 아닌가.

게다가 다른 얘기도 아니고 환자에 관한 얘기였다.

같은 전문의로서 다른 이에게 의견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기에 매몰차게 대할 수는 없었다.

“어 해. 어려운 환자가 있나 본데.”

“스피커폰으로 해. 괜찮으니까.”

다행히 신현태는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분원 또한 의료 원장 아래 지휘를 받는 곳이지 않은가.

거기가 잘돼야 본원도 잘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현종의 말은 좀 이상했다.

“네? 스피커로요?”

“그래. 아까 봐서 알잖아. 우리가 들으면 도움이 될걸?”

“아…….”

아마도 아까의 일이 없었다면 거절했을 수도 있었다.

제아무리 이현종이라지만 내분비에 관해서만큼은 자신이 더 낫다고 여겼기에 그랬다.

하지만 수혁보다도 나을까?

그건 자신하기 어려웠다.

‘생전 처음 보는 병을 너무 쉽게 진단했지.’

여기 오자마자 수혁에 관한 얘기는 들었다.

천재라는 소리였는데, 그때는 시큰둥했다.

의대 나온 사람치고 평생 한두 번쯤 천재 소리 못 들어 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심지어 박종국은 태화 출신이었다.

지금이야 칠성이나 아선이 입결로도 비비려 대지만 그가 들어갈 때만 해도 태화는 부동의 1등이었다.

‘그저 그런 천재는 아니란 거야.’

그렇다 보니 천재란 단어의 의미 자체가 퇴색되어 있었다.

하지만 수혁은 다른 듯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조용히 해 주세요.”

“알겠어. 근데 누군데.”

“김성원 교수라고 있어요. 모르실걸요. 본교 출신은 아니라.”

“응, 모르겠네. 아무튼, 해 봐.”

“네.”

그 탓에 박종국은 우선 스피커폰으로 돌리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바쁘진 않아. 대신 옆에 사람들이 좀 있어서 스피커폰으로 했어.”

“네? 사람들이 있는데 스피커폰으로 하셨어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있으면 구석으로 가지 않나?

서울 사람들은 프라이버시가 없나?

뭐 이런 생각이 들 때쯤 박종국이 황급히 말했다.

“아……. 이현종 전 원장님이랑 신현태 원장님 그리고 이수혁…… 부센터장님 계셔. 그 알지? 본원에서 통합진료센터라고 새로운 프로젝트 시작한 거.”

“아……. 네네. 그…… 알겠습니다.”

프로젝트고 나발이고 별 관심은 없었다.

하지만 기라성 같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스피커폰을 원한다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알아먹은 상황이었다.

혹시 나도 어쩌면 박종국처럼 본원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살던 김성원 교수로서는 감히 안 된다고 할 수는 없다는 얘기였다.

“그…… 일단 환자는 60세 남자입니다. 내원 8개월 전부터 사지 저림 증상 및 발작 비슷한 증세가 있어 본원 신경과 내원하였습니다.”

“발작?”

“네. 신경과에서 검진한 결과 불수의 운동 및 기능 저하가 있었습니다. 뇌파검사에서 명백한 발작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환자 및 보호자 진술이 있고 또 말씀드린 대로 불수의 운동 및 기능 저하가 있어……. 간질로 진단하여 약을 썼습니다. 근데…….”

여기까지 들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니, 이게 정말 내과 질환인지조차 모르겠는 상황이었다.

적어도 박종국은 그랬다.

하지만 수혁은 달랐다.

“저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 이수혁입니다. 약을 뭘 썼죠?”

바로 끼어들었다.

만약 얼굴을 보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나이만 보고 버릇없는 놈이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유선상으로 하는 대화이지 않은가.

게다가 소개도 들은 참이었다.

김성원은 공손한 태도로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 네. 잠시만요. 그…… 아, 네. 페노바비탈을 썼습니다.”

“그 환자 증상이 그 약을 쓰고 더 심해지지 않았습니까?”

“네? 어……. 더 심해지기는 했습니다만, 이 약은 항간질제인데…….”

“환자가 발작한 적이 있나요? 아니면 발작 비슷한 걸 한 건가요?”

“비슷한 걸 한 거 같습니다.”

“결국, 주된 증상은 저림 증상 아닌가요?”

“음…….”

김성원은 잠시 침음을 흘린 후, 환자를 돌아보았다.

인지 기능까지 떨어진 탓에 입가에 흐르는 침조차 닦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 병원에 왔을 때만 해도 저렇게까지 상태가 나쁘진 않았다던데, 이제는 저리된 상황이었다.

“그게 확실치는 않습니다. 지금은 문답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럼 왜 내분비내과가 보게 됐죠?”

추궁하는 듯한 질문이 이어졌다.

슬슬 기분이 나빠졌지만 일단 상대가 상대이지 않은가.

부센터장만 있으면 또 몰라도 원장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 랩을 긁었는데 저칼슘혈증이 관찰되었습니다. 그래서 왔는데…… 아무리 봐도 우리 과 메인은 아닌 듯해서……. 그렇게 말씀드리는데 환자 보호자가 본원으로 전원 원한다고 해서요. 신경과 쪽도 아마 그쪽대로 콘택하고 있을 겁니다. 그쪽이 메인이니까요.”

발작이 있는 데다가 불수의 운동까지 있다면 십중팔구 신경과 문제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런가, 김성원 교수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차 있었다.

“그렇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저칼슘혈증의 원인은 알고 있습니까?”

하지만 수혁은 절대 그래선 안 된다 생각했다.

이현종이 늘 그러지 않던가.

원인 없는 증상은 없다고.

단지 우리가 못 찾았을 뿐이라고.

“그…… 아뇨, 아직……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확신할 수 있죠?”

“그…….”

“일단 페노바비탈은 약을 바꾸는 게 좋겠습니다.”

“네? 그건 또 무슨 연유에서인지…….”

“페노바비탈은 칼슘의 장 흡수를 감소시키고 비타민 D를 불활성화하여 결핍증을 일으킵니다. 즉 저칼슘혈증의 원인이 되었거나 최소한 악화 인자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

“그리고 전원은 우리 센터로 해 주세요. 제 생각에는 이 환자, 신경과 환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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