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23화 (423/1,303)

423화 신경과 환자 아냐? (1)

김성원 교수는 당황스러웠다.

신경과 환자긴 하지만 시간도 있는 김에 물어나 볼 겸해서 한 전화의 결론이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발작이 있는 데다가 불수의 운동까지 있어 신경과 질환이 의심되는데 갑자기 통합진료센터로 보내라고 하지 않는가.

그냥 비슷한 처지의 교수라면 한번 들이받기라도 할 텐데, 아쉽게도 상대는 아득히 높은 사람이었다.

얼굴이라도 봤다면야 나이를 고려해 한마디 말이라도 했겠으나 지금은 그러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오, 그래. 그럼 보내.”

“네? 이건 누구신지.”

“아, 이현종이야.”

“아…….”

게다가 이현종까지 거들고 나선 참이었다.

이것 또한 이상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보통 센터장이 되면 실적 압박에 이거저거 다 받기는 하지.’

비단 대학 병원이나 대형 병원만의 일은 아니었다.

원래 새로 지은 병원이나 센터는 다들 그랬다.

실력을 넘어가는 짓도 해야 돈이 된다는 생각을 해서였다.

하지만 김성원이 아는 이현종은 학자였다.

보통 학자가 아닌 대학자.

‘이 양반급이 그럴 급도 아니잖아?’

게다가 이제는 원장까지 해 먹고 석좌 교수까지 보장받은 상황 아닌가.

이쯤 되면 아무리 속물이라도 세속적인 기준을 벗어나 학자로서의 명성을 더 크게 보게끔 되어 있었다.

굳이 사사로운 평가에 휘둘릴 만한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그렇다 보니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정말 신경과가 아니라 내과인가? 저칼슘혈증이 결과가 아니라…… 원인인가?’

그러면서도 말도 안 된다 싶긴 했으나, 이미 그의 손을 떠난 환자였다.

“자, 그럼 얘기 끝났네. 보내.”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본원의 원장에 센터장이 강권하는데 어찌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홈페이지에는 분명 독립적인 진료를 보장할 거라 쓰여 있지만 그건 말뿐이었다.

실제로 일해 보면 분원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본원으로 점핑 하는 날만 꿈꾸고 있었다.

그래서 진료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시정했을 텐데, 그럴 필요는 없었다.

도리어 명확한 목표가 있다 보니 다들 열심이었다.

김성원도 그랬다.

“바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가는 동안 사고 나지 않도록 레지던트도 동석시키겠습니다.”

“그럼 좋지. 그래.”

해서 이현종은 믿고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의문은 이제부터 풀 생각이었다.

“근데 수혁아, 왜 신경과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거야?”

이현종의 말에 수혁은 기다렸다는 듯 답했다.

애초에 이현종이 전면에 나섰을 때부터 이렇게 나올 줄 알고 있어서였다.

“극단적인 저칼슘혈증은 결국 신경 전달 물질에도 영향을 미치니까요. 아직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문헌에 따르면 대뇌실증, 추체외로 증상 심지어 파킨슨이나 지능 저하 등도 일으킬 수 있잖아요.”

“음. 그렇지.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얘기야. 거기에 분명히…….”

“불수의 운동도 포함이 됩니다. 특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파검사에서는 명확한 발작이 잡히지 않는다는 거죠.”

“음, 그렇게 들으니까…… 충분히 확인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이 되네. 게다가 여기 온다고 신경과 진단이 안 될 것도 아니잖아.”

“네. 감별에서 안 나오면 즉시 신경과로 보낼 생각입니다. 하지만…….”

수혁은 이미 저칼슘혈증이 있어 내분비내과에 협진이 나간 점, 그리고 약으로 페노바비탈을 쓰고 있다는 점 등에 의해 이미 내과 질환 쪽으로 마음이 기운 상황이었다.

[그걸 지금 굳이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직 단서가 부족합니다. 설레발 떨다가 아니면 망신이죠. 아직 센터 연 지 얼마 안 되었다는 것을 상기하십쇼, 수혁.]

‘그래, 그게 좋겠어.’

하나 굳이 ‘하지만’ 다음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다행히 식사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어서 다들 곧 먹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서둘러 병원으로 돌아왔다.

모두 딱히 정해진 일정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하여간 낮에 병원 밖에 나가 있는 건 후달리는 일이었기에 그랬다.

“아직 도착 안 했지?”

“아, 네.”

이현종은 센터 중앙에 놓인 의자에 털썩 앉으며 물었다.

수혁은 잠시 응급실 차트를 뒤적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차트를 볼 이유도 없었다.

도착하면 바로 전화 달라고 해놨으니까.

레지던트 때도 응급실에서는 끗발이 좋았는데, 이제는 교수까지 된 몸 아닌가.

감히 그의 말을 거역하리란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다른 협진은 어떻게 됐지?”

“일단 대훈이…… 3년 차 아시죠?”

“우리 센터에 지금 3년 차 하나지. 대머리 까진 애 아냐?”

“그…….”

수혁은 저도 모르게 대훈 쪽을 돌아보았다.

거리가 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방금 단어를 듣지 못할 정도는 아닐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옆에 있던 아래 연차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는데 표정은 상반될 것이라는 데 대해 돈이라도 걸 수 있었다.

“왜?”

“아, 아뇨. 맞기는 하죠. 아무튼, 걔가 똑똑하거든요.”

“똑똑하겠더라.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으면 뚜껑이 벌써 열려?”

“아니, 아빠. 그 얘기는 좀.”

자기 풍성하다고 유세 떠는 건가 싶기도 했다.

확실히 이현종의 인물에서 머리 말고는 봐 줄 만한 것이 없지 않은가.

지금이야 나이도 있고 또 거물이라는 인식 덕에 이미지가 중후하지만 젊은 시절 이현종은 자칫하면 본의 아니게 의학과 결혼했다는 말까지 들을 지경이었다 들었다.

“아무튼, 근데?”

“그 친구한테 1차로 맡겼어요. 걸러서 올리는 것만 보면 되는데 뭐 특별한 건 없어요.”

“제대로 거르는 건 맞고? 레지던트만 믿고 있다가 뒤통수 맞는다. 세상에 레지던트들이 다 너 같지가 않아요.”

“당연히 저도 한번 훑어보죠. 애초에 제가 보라고 하는 것만 보는 거예요.”

“역시…… 좋구만.”

이현종은 대화를 하면서 수혁이 자신에게 돌린 협진을 확인했다.

아무래도 심장 쪽 협진 중 어려운 건 이현종에게 돌아와 있었다.

딱히 수혁이 몰라서는 아니고, 최후 시술까지 가능한 게 이현종이어서였다.

보통 이현종 나이쯤 되고 나면 시술에 있어 열의가 떨어지기 마련인데, 이현종은 조금 달랐다.

아무래도 그가 최종적으로 완성한 술기라서 그런가 최선을 다한다고 해야 할까?

“음, 이건 내가 좀 봐야겠다. 없는 동안 걱정할 필요 없지?”

“물론이죠. 무슨 일 있으면 시술실로 연락드릴게요.”

“좋아. 열심히 지지고 뚫어 주고 올게.”

“네.”

해서 이현종은 노구를 이끌고 시술실, 그러니까 심혈관 중재실을 향해 가벼운 발걸음을 이끌고 사라졌다.

수혁은 그런 이현종의 말을 따라 협진을 빈틈없이 관리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르자 전화가 울렸다.

응급실이었다.

“환자 왔습니다.”

“아, 바로 센터로 보내 주세요. 바이털 괜찮죠?”

“음……. 네, 바이털은 괜찮습니다.”

“네, 그럼 보내 주세요.”

“네, 교수님.”

다른 곳에서라면 몰라도 태화 의료원 내에서 수혁은 유명인이지 않은가.

그저 이름과 얼굴만 알려진 것이 아니라 신체적인 특성 또한 그랬다.

아무리 수술을 했다 해도 다리가 불편한 사람인데 어찌 오라 가라 하겠는가.

응급실 레지던트는 분부대로 환자를 즉시 센터로 보냈다.

덕분에 수혁은 앉은 자리에서 환자를 볼 수 있었다.

“교수님, 환자 왔습니다.”

“응, 보자.”

안대훈과 우하윤의 말에 따라 수혁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음.”

[음.]

확실히 환자는 신경과 환자로 보였다.

우선 시선 처리가 이상했다.

‘아무것도 없는 데 보고 있는 거 맞지?’

[네, 동공에 맺히는 것도 별거 없어요. 초점이 흐립니다.]

그리고 끊임없는 불수의 운동이 관찰되었다.

발작 비슷하게 보였다고 하더니만 정말로 그랬다.

수혁조차 아주 잠시 그냥 신경과한테 보라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지경이었다.

“환자분.”

그렇다고 문진을 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레지던트 때야 책임도 권한도 적었지만, 이젠 아니었다.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응?”

“환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시현. 박시현.”

“음.”

한데 대답해 오는 목소리 톤도 좀 이상했다.

묘하게 높아져 있다고 해야 할까?

60대 남성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목소리라고 할 수 있었다.

“며칠 전부터 이래요. 좀…….”

수혁의 의문에 답한 건 옆에 있던 보호자였다.

생긴 게 거의 똑같은 걸로 보아 아들인 듯했다.

“좀 어떻다는 얘기일까요?”

“이런 말 해도 되나 싶은데, 멍청해진 거 같아요. 사람이.”

“아.”

“이거 정말 머리 문제가 아닌 거예요?”

“이제부터 봐야죠.”

수혁은 지능 저하라는 단어를 문제 목록에 더하며 환자를 돌아보았다.

이런저런 증상이 죄 뒤섞여 있어 분간이 어려운데 더해 문진도 어려워진 상황이었다.

‘왜 전원 보내라는데 별 저항이 없었는지 알겠다.’

[네, 골 아프죠. 그쪽 신경과에서도 황당했을 겁니다.]

그랬을 터였다.

원래도 이거 뭐지 하는 질환은 신경과로 던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건 정말 뭐지 싶은 상황이지 않은가.

검사에서 뭐라도 걸렸으면 모르겠는데 brain MRI, CT는 정상이었다.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라는 얘기였다.

“우선 좀 볼게요. 약간 불편할 수 있습니다.”

“아파? 아픈 건 싫은데.”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수혁은 친절해 보이는 미소로 무장한 채, 환자의 입가를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입가가 수축하는 것이 보였다.

이건 그야말로 전형적인 저칼슘혈증의 증세였다.

물론 머리에 문제가 있다고 보면 그렇게도 얼마든지 사고 회로를 돌릴 수 있는 증세이기도 하지만, MRI에서 정상이 나오지 않았던가.

아직까지 인간이 개발한 진단 기기 중, 특히 머리에 대한 건 MRI를 능가할 만한 게 없었다.

그렇다는 건 뭐가 되었건 이 검사 결과를 신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지금 보이는 모든 증상, 저칼슘혈증으로도 설명은 되지?’

[네. 지능 저하도 저칼슘혈증이 있을 경우 일시적으로 동반이 될 수 있습니다. 며칠 전 발병했다는 것이 더욱 신빙성을 더합니다.]

‘그래, 의뢰서를 보니까 그때부터 페노바비탈을 증량하고 페니토인을 추가했어. 그리고 증상이 더 심해졌지.’

아무래도 불수의 운동, 즉 발작이 계속되자 발작에 대한 약인 페노바비탈을 늘리고 페니토인까지 주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페노바비탈은 물론이거니와 페니토인 또한 저칼슘혈증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이 모든 것이 저칼슘혈증에 의한 것이란 가설에 힘을 더해 주는 기록이었다.

그렇다면 가장 급한 검사 하나가 있었다.

“인턴 샘?”

“네!”

“심전도부터 찍자.”

“네!”

칼슘은 우리 몸의 전해질 농도에 영향을 미치고, 이 전해질은 아주 다양한 부분에 각기 중대한 영향을 주기 마련이었다.

특히 전기 신호에 관련해 영향을 주는 데 머리도 머리지만 심장은 아주 치명적일 수 있었다.

드르륵.

수혁의 명에 따라 인턴이 심전도를 찍었다.

곧 심전도가 드륵 거리며 결과지를 뱉어 냈는데, 수혁은 그게 다 나오기 전부터 붙잡고 뽑았다.

그리고 판독이 아니라 어느 한 지점을 집중해서 바라보았다.

심전도 판독만큼은 어느 정도 인공 지능이 따라잡았음에도 그랬다.

몇 개는 도저히 인공 지능이 따라오지 못했는데 지금 수혁이 보는 게 그랬다.

‘늘어났지?’

[네, 0.51초.]

‘와……. 오는 동안 부정맥 없었던 게 기적이다.’

[그러니까요. 돌아가실 뻔했네요. 빨리 약 쓰죠.]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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