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24화 (424/1,303)

424화 신경과 환자 아냐? (2)

심전도에 나타난 소견은 QT 간격 연장 증후군이었다.

이게 뭔가 싶을 텐데, 결국 심장 뛰는 데 문제가 생기는 거라고 보면 되었다.

지속될 경우 무려 심실세동으로 이어질 수 있고 심실세동은 제대로 된 처치가 없다면 거즘 죽는 아주 무서운 병이었다.

“우선 저칼슘혈증에 대해 보충 치료부터 하자. 이거 보이지? 진짜 큰일 날 뻔했어.”

“네? 아……. 와……. 이러면 이거.”

그 심각성은 안대훈이나 우하윤 또한 알아볼 수 있을 지경이었다.

1년 차들이야 내과 전공의라고 해 봐야 이제 막 인턴을 벗어난 참이야 어리둥절한 얼굴이었지만.

심전도 자체가 아니라 QT 간격이 얼마나 늘어났는지를 말해 주면 2년 차나 3년 차만 되어도 서두르게 될 정도로 무서운 질환이라는 얘기였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탄산칼슘 21.5g하고 알파칼시디올 1ug로 가자.”

“와, 좀 센데요?”

“그만큼 심해. 그리고 페노바비탈하고 페니토인 둘 다 완전히 끊어. 이거 끊으라니까 주고 보냈네.”

“어…….”

수혁의 처방을 들은 안대훈이 잠시 망설였다.

탄산칼슘이나 알파칼시디올은 누가 봐도 이해가 가는 처방이었다.

용량이 좀 세긴 해도 저칼슘혈증이 심각하지 않은가.

심지어 심전도에도 이상이 나타날 정도니 빠른 교정이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항간질 치료제를 끊는 건 불안했다.

‘지금도 부들거리는데?’

저러다 일 터지면 어쩌나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배, 이수혁 교수님 처방이에요.”

그때 우하윤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안대훈에게 말했다.

어찌나 단호하고 또 믿음에 차 있는지 안대훈은 흡사 중세 시대 성직자를 눈앞에 둔 건가 하는 착각이 일었다.

하필 해 지는 창가를 등지고 서 있어서 후광 효과도 있었다.

“읏.”

“믿고 따라야죠. 누구 말씀이신데.”

“그래도 지금도 발작이 있는데 항간질약을 끊는 건…….”

“어허, 믿음이 부족하신데요?”

“읏.”

아마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게 미쳤나 했을 터였다.

하지만 본래 안대훈이 누구란 말인가.

우하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수혁교의 광신도였다.

수혁 본인은 물론, 수혁의 열렬한 지지자인 이현종이나 신현태조차 저 새끼는 좀 무서울 때가 있다는 말을 했을 지경이었다.

“극복했다. 휴, 악의 시험이 있었어.”

“네, 처방에 따라요.”

“그래야지.”

덕분에 안대훈은 정상인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절대로 하지 않았을 법한 말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우하윤은 그런 안대훈을 대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고.

수혁은 황급히 자리를 떴다.

‘미친놈이 무슨 악의 시험이야.’

[종교 갖는 게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대상이 나인 게 잘못이지! 신을 믿어야지, 왜 나를 믿어.’

[수혁 안에 있는 대상을 믿는 게 아닐까요.]

‘뭔 미친 소리야 너는 또.’

수혁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안대훈이나 우하윤의 개소리로부터는 그저 자리를 피하면 되지만.

이놈은 머리에 딱 박혀 있는 놈 아닌가.

망가졌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었다.

[저 정도면 충분히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미쳐도 참신하게 미쳐 버리네. 기계라 그런가.’

[무슨 소린지?]

‘하여간 환자 잘 봐야 해. 발작이 만약 저칼슘혈증 탓이 아니면 밤에라도 처방 다시 넣어야 해.’

[그건 그렇죠. 그럼 밤샐 겁니까? 간만에 공부하면서?]

‘아니……. 왜 밤을 새워 인마. 나 이제 교수야.’

[공부가 직위 따라 하는 거였나요?]

‘하.’

이 자식은 틀린 얘기를 꼭 맞는 얘기처럼 하는 재주가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하다 보면 이게 맞는 얘긴지 틀린 얘긴지 헷갈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일단 그럼 1시까지만 하시죠. 어차피 문제 있으면 전화 올 텐데 자다 깨는 것보다는 공부하다 받는 게 기분이 낫지.]

‘그런가?’

오늘도 그랬다.

잔뜩 휘말려 버린 수혁은 오랜만에 오피스텔로 가지 않고 당직실에서 새벽까지 공부하다가 이내 잠이 들었다.

밤새 전화가 올까 해서 조마조마해 가면서 누워 있었는데 다행히 조용했다.

신규 협진도 밤에는 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레지던트급에서 해결이 되었거나.

‘아직 센터가 완전히 자리 잡지 않은 게 이럴 땐 좋네.’

만약 통합진료센터가 정말 취지대로 자리를 잡아 버리면 시도 때도 없이 어려운 협진이 날아들 터였다.

태화 의료원은 대학 병원들의 대학 병원이라는 말도 있는 만큼 어려운 환자들이 몰리는 곳이기에 그랬다.

아무리 각과 의료진들의 역량이 출중하다고 해도 단 하나의 실수도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어떤 경우엔 아예 진단명이 틀린 채로 몇 년을 지나기도 했다.

누군가 태만해서라기보다는 애초에 케이스 자체가 너무 어려워서 그랬다.

그게 죄 여기로 몰리게 되면 어떻게 될까.

[몰려야 좋죠. 그래야 실력이 더 늘지.]

‘넌…… 아니다, 그게 맞기는 하지 또.’

[수혁은 당연한 말을 새삼스럽게 하는 재주가 있군요. 하긴 그래서 사기도 잘 치죠.]

‘뭔 소리야, 새꺄.’

[하여간 검사 결과부터 확인하도록 합시다. 일단 항간질제를 끊었음에도 증상 변화가 거의 없었다는 건 우리 판단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소견입니다.]

‘그래, 그렇지.’

수혁은 잠시 있었던 바루다와의 의견 충돌을 접어 두고 센터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당연히 잠겨 있을 거라 생각했던 수혁의 얼굴에 의문이 번졌다.

‘뭐지?’

[누군가 먼저 왔군요. 역시 수혁의 노력은 별거 아니란 거겠죠.]

‘왜 꼭 그런 식으로……. 아, 하윤이네. 여기서 잤나 보다.’

[당직실 놔두고 왜 여기서 잤을까요?]

들어가 보니 빈 병실에 하윤이 누워 있었다.

바루다야 이상하다 여기고 있었으나 수혁은 이해할 수 있었다.

태화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쓸데없다 여기는 곳에까지 돈을 쓸 수는 없지 않겠나.

그렇다 보니 제일 소외 받는 분야가 바로 전공의 복지였다.

그나마도 다른 대학 병원에 비하면 좋은 편이었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당직실도 서서히 낡아 가고 있었다.

여럿이서 써야 하는 것도 짜증 나는 일이었고.

‘더 자라고 하자.’

수혁은 살짝 열려 있던 병실 문을 닫아 준 후, 스테이션의 컴퓨터를 켰다.

그리곤 어제 전원해 온 환자, 박시현의 차트를 열었다.

푸시 한 보람이 있었다.

검사가 모두 떠 있었다.

‘전화로 들었을 때보다도 칼슘 농도가 더 떨어져 있어. 이러니까 심장도 영향을 받았지.’

[오늘 팔로우업 검사 나가서 어떻게 되어 가는지 확인해야겠네요.]

‘그래야지. 그리고…….’

[여기 있네요. 부갑상샘 호르몬. 음, 다 떨어져 있습니다.]

떨어져 있는 정도가 아주 심했다.

정상 수치가 기관별로 조금 다르나 대개 12.0에서 70까지를 잡는데, 지금 이 환자는 1.08이었다.

‘분원에서 가져온 brain MRI, CT 다 정상이었지. 그렇다는 건…….’

[원발성 부갑상샘기능저하증일 가능성이 있겠습니다.]

‘드문 경우인데.’

원발성이란 결국, 특별한 원인 없이 부갑상샘 기능이 떨어졌다는 뜻이었다.

당연하게도 이런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일단 시상하부 쪽이 깨끗한 이상 이쪽으로 진단이 기우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종양이나 다른 이유로 부갑상샘이 손상되거나 작아졌을 수도 있고, 또 밤새 환자 증상이 어땠는지도 확인해야 했기에 수혁은 환자가 입원한 병실로 향했다.

제일 먼저 그를 맞이한 것은 담당 간호사였다.

잠을 좀 잤는지 개운해 보였다.

다른 곳도 아니고 태화 의료원의 간호사가 근무 태만했을 리는 없을 터였다.

‘진짜 환자 상태가 나쁘진 않나 보다.’

[네. 그래도 모르는 일이니 문진은 해 봐야죠.]

덕분에 수혁은 다소 안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제 환자들 어땠어요?”

“일단 계속 계셨던 분들은 전부 호전 중입니다. 퇴원 계획대로 퇴원하실 분들도 계시고요.”

“어제 입원한 환자는요?”

“아, 박시현 환자…… 발작이 밤 9시까지는 간헐적으로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 잠들고 나서는…….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약을 끊고 도리어 좋아진 건가요?”

“제가 계속 본 건 아니라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보호자 진술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이렇게 안정적인 건 며칠 만에 본다고 합니다.”

“좋아. 바이털은요?”

“좋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가서 볼까요?”

“네. 아침 피검사 때문에 깨어 계십니다.”

수혁은 간단한 문답을 마친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센터는 모든 병실이 1인실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다른 환자를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좋았다.

“음?”

해서 거침없이 들어가다 보니 환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제는 불가능했던 일이었다.

[초점이 살아 있군요.]

‘그러게. 일단 놀라고만 있을 게 아니라 진료는 봐야지.’

[돕겠습니다.]

수혁은 놀란 마음을 바루다의 도움을 통해 갈무리한 후 환자 앞에 섰다.

“환자분.”

“네, 안녕하세요.”

“아. 좋아지셨네요?”

“다들 그런 말을 하는데, 저는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목소리 톤만 들어도 벌써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새된 소리, 즉 날아가는 소리가 아니라 낮은 음색이었다.

중년의 남성에게 어울리는 소리라고 해야 할까?

게다가 문장으로 말을 끝맺음하고 있었고 단어도 훨씬 다양해져 있었다.

‘지능 저하가 개선됐어.’

[네, 확실히 저칼슘혈증이 원인이었군요.]

‘이걸 놓치나?’

[원발성 부갑상샘기능저하증은 드문 질환이죠. 게다가 극단적인 저칼슘혈증도 극히 드뭅니다. 해당 증상을 떠올릴 수 없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실제 사례도 있고요.]

수혁은 왜 이걸 몰라서 환자를 고생시켰나 하다가, 바루다가 꺼내 든 케이스 레포트를 보고서야 납득했다는 얼굴이 되었다.

해당 케이스에서는 무려 몇 년을 허비했다고 쓰여 있었다.

그에 비하면 빨리 저칼슘혈증을 캐치 하고 내분비내과에 협진이라도 낸 것이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튼, 그 덕에 여기 와서 진단이 된 거니까.

“지금은 발작도 없으시군요.”

“네? 아, 네. 아유, 손이 제멋대로 튀더니……. 이제는 그런 건 없어요. 여전히 좀 저리긴 한데…….”

“그건 칼슘이 더 들어가면 좋아질 겁니다.”

“칼슘?”

“네. 우리 몸에는 부갑상샘이라고 갑상선 옆에 작은 샘이 있어요. 거기서 칼슘 농도를 조절하는데 그게 망가졌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주 다양한 증상이 생길 수 있죠.”

“어……. 그럼 제가 머리에 문제 있는 게 아니란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환자분의 병명은 원발성 부갑상샘기능저하증입니다.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치료는 가능합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허…….”

환자는 알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놀랐다는 것인지 모를 고갯짓을 해 댔다.

보호자는 그런 환자를 보며 역시 서울 오기를 잘했다는 말을 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이현종은 칭찬을 했고, 박종국, 김성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환자의 증상은 그렇게만 마무리되지 않았다.

도리어 퇴원 계획을 세우고 퇴원 처방까지 나가고 난 후 또다시 무언가 터졌다.

“네, 이수혁입니다.”

“교수님?”

“네, 말씀하세요.”

“내일 퇴원 예정인 박시현 환자 때문인데…… 이게…….”

“왜요?”

“지금 걸음을 못 걸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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