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25화 (425/1,303)

425화 신경과 환자 아냐? (3)

걸음을 못 걷는다.

이런 종류의 노티만큼 의사의 뒤통수가 찡해지는 노티가 또 있을까?

게다가 애초부터 신경과 환자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던 환자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혁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시발, 뭐지?’

[숨겨진 경색이나 출혈이 있었을까요?]

바루다 또한 그랬다.

아무래도 인간이 아니니만큼 목소리가 떨리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어찌 되었건 다급해 보이는 건 매한가지였다.

‘아냐, 그럴 리는 없어. 혹시 몰라서 brain CT는 체크 했잖아.’

[네, 어떤 이상 징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음. neck CT에서 걸린 부분에도 이상은 없었고.’

흔히 경부 CT라고 하면 딱 거기만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았다.

우리 신체가 그렇게 딱딱 나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해서 이런저런 검사를 하다 보면 딱히 원하지 않았던 부위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우연히 발견되는 종양이라는 게 이래서 있는 거라고 보면 되었다.

하여간 그 어떤 검사에서도 머리에서는 이상이 보이진 않았다.

다시 한번 그 사실을 확인한 수혁은 아까보다는 안정된 얼굴이 된 채, 그러나 여전히 빠른 걸음으로 센터로 향했다.

“아, 교수님.”

딱 들어가자마자 간호사가 그를 반겼다.

담당 간호사였는데 반가움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말도 안 되는 증상이 생긴 참 아닌가.

주변에도 레지던트들이 좀 있기는 했으나,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던 차였기에 구세주라도 만난 기분이었다.

“네, 환자분 지금 어디 계시죠?”

“병실이요. 안대훈 선생님도 가 계셔요.”

“신경학적 검사는 했나요?”

“아, 네. 진행 중입니다.”

“그렇군. 그래도 괜히 3년 차는 아니네.”

“네?”

“아뇨, 가죠.”

걸음을 못 걷는다는 증상은 일견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론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는 증상이기도 했다.

마비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또 힘이 빠지는 것일 수도 있었다.

감별하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신경학적 검사가 필요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병실로 들어가자 몰려가 있던 레지던트들이 저마다 인사를 건네왔다.

평소라면 반갑게는 아니더라도 성의껏 화답해 주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퇴원을 목전에 둔 마당에 이런 치명적인 증상이라니.

안 될 말이지 않은가.

“어, 좀 어때?”

“네. 반사는 있는데…… 모터가 양측 다리 모두 떨어졌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뿐만 아니라?”

“상지도 비슷합니다. 하지보다는 낫지만, 힘이 빠졌어요.”

“그래? 반사는?”

“반사는 괜찮습니다. 환자분 잠시…… 음, 제가 도와드릴게요.”

환자는 혼자 힘으로 앉지도 못했다.

단순히 몸을 일으키는 동작임에도 대훈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였다.

방금 대훈의 말처럼 다리에만 힘이 빠진 것이 아니라 상체에도 힘이 빠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렇게 되면 얘기가 또 달라졌다.

‘마비된 레벨이 높다거나 할 게 아닌데?’

[네, 편측이 아니라 양측입니다. 게다가 전반적인 위약을 보이고 있군요.]

‘그렇다면 근무력증을 의심해야겠지?’

[네, 그렇습니다. 신경보다는 근수축에 연관된 전달 물질 또는 물질을 받아들이는 수용체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음.’

머리 쪽은 아니란 건데,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간단해진 것은 아니었다.

근무력증 또한 무섭기로 따지면 만만치 않았기에 그랬다.

중증 근무력증인 경우 호흡근의 마비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아직 바이털이 흔들릴 정도는 아니니, 거기까지 생각해야 할 단계는 아니었지만.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지 않던가.

진행 속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사이 대훈은 환자의 무릎을 두드리는 무릎 반사 검사를 시행했고, 이건 살아 있다는 걸 확인했다.

‘확실히 신경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양측 모두 마비가 갑자기 올 확률은 거의 없죠. 환자가 위험군인 것도 아니고요.]

‘그래, 맞아.’

수혁은 일단 근무력증으로 상정하고 입을 열었다.

환자의 호흡이 괜찮은지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였다.

“환자분, 오늘 갑자기 힘이 빠진 거예요?”

그의 말에 환자는 즉시 답을 하지 못했다.

화가 난 건 아니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 수혁이 얼마나 빠르게 치료해 주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게 그였기에 그랬다.

그저 무서울 따름이었다.

갑자기 전신에 힘이 빠지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수혁 또한 십분 이해할 수 있었기에, 그의 어깨를 붙잡아 주었다.

“환자분, 제가 금방 진단하고 치료 시작했던 거 기억하시죠?”

“아, 네.”

“이번에도 그럴 거니까…… 너무 겁먹지 마세요.”

“아이구, 네. 감사…….”

“그럼 대답해 주세요. 언제부터 이랬죠?”

“그…….”

그간 쌓은 환자 의사 관계가 무로 돌아간 건 아니었기에 환자는 곧 아까보다는 안정을 찾았다.

그리곤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반응을 보니 오늘 갑자기 생긴 증상은 아닌 모양입니다.]

‘왜 몰랐지?’

[경미한 근무력증의 경우, 실제로 움직이는 걸 보지 않고서는 진단이 어렵죠.]

‘하긴 그렇긴 하지. 환자분 항상 여기 계셨으니까.’

가벼운 운동이 회복에 도움이 되니 걸으란 말이야 매일 했지만, 뭐가 되었건 회진 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수혁의 놀라운 실력에 감동, 감화받은 레지던트들의 과잉 충성 탓이었다.

수혁이 회진 돌겠다고 예정한 시간이 되기 전에 어찌나 병원을 쥐 잡듯 뒤져 환자를 제자리에 보내 놓는지, 수혁은 단 한 번도 병실에 갔는데 환자가 없었던 적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 약간 힘들단 느낌이 든 건 그제부터입니다.”

“힘들어요? 걸음 옮기기가 그랬어요?”

“네. 화장실 가는 것도 그렇고……. 약간? 근데 그때는 그냥 병원에 있으니까 컨디션이 별로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럴 수 있죠.”

병원에 입원해 보면 입원하는 거 자체가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걸 알게 될 터였다.

일단 새벽부터 와서 이런저런 검사 명목으로 깨우기도 하고, 24시간 병동이 돌아가는 탓에 다른 이유로도 깨게 되기도 하고 하여간 성가신 일들이 참 많았다.

그렇다 보니 내가 이래서 힘든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진단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참 안타까운 일이었으나, 이해는 간다는 얘기였다.

“그때 그럼 증상이 얼마나 있었나요? 산책하면 숨이 찰 정도?”

“산책은 이틀 전부터는 거의 못 했습니다. 병실 안에서나 돌아다녔어요. 생각해 보니까 이게 이상한 일인데……. 죄송합니다.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아뇨. 저희가 더 예민하게 체크 했어야 할 부분이죠.”

“아무튼…… 그랬습니다.”

수혁은 힘 빠진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는 환자를 보면서 바루다를 불렀다.

‘이틀 전이 아니라 그 전부터 시작된 증상인데.’

[그렇군요. 적어도 입원한 지 5일째부터……. 아.]

‘왜?’

[약 들어간 시점과 증상 발현 시점이 비슷하군요.]

‘응? 아.’

[워낙 저칼슘혈증이 심해서 고용량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칼슘 보충 치료 중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을 우선적으로 골라 봐야겠습니다.]

‘그래, 그게 순서에 맞겠어. 일단…….’

머릿속을 정리한 수혁은 대훈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건 반사를 보기 위한 망치를 들고 있었는데, 인상이 좀 그래서 그런가 흉악해 보였다.

심성이 참 고운 놈인 것을 생각해 보면 안됐단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대훈아.”

“네, 교수님.”

“한 번만 더 해 봐. 검사.”

“아, 네. 환자분, 좀 불편하시겠지만 한 번만 더 해 보겠습니다.”

지금도 친절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보통 레지던트들은 삶의 여유가 없는 만큼 거칠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수혁이 알기로 대훈은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실력은 둘째치고 인성만 따져도 연차 톱이었다.

“역시.”

“네?”

“보통 건 반사보다 반응이 강한 거 같지 않아?”

“아……. 그런가? 그렇게 생각해 보니까 그런 거 같습니다.”

확실히 다리가 튀는 정도가 과했다.

대훈이야 정상이 어떤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할 테니 긴가민가하겠지만 수혁은 아니지 않은가.

바루다 덕에 아주 정확한 비교가 가능했다.

“일단 지금 혈청 칼슘 농도 체크 하고, 동맥혈 가스 검사 좀 해 보자.”

“네, 인턴!”

“아니, 주사기만 가져와. 내가 할게.”

“네? 교수님이요? 그건…….”

동맥혈 가스 검사, 일명 ABGA.

대표적인 인턴 잡이었다.

인턴만 하는 일이란 얘기.

이걸 교수가 직접 하겠다고 하면 좋은 일 아닌가 싶겠지만.

인턴 이후로 손 놓고 있다가 다시 하게 되면 과연 잘할까?

병원 내에서 괜히 VIP 증후군이 발생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안 하던 짓을 하면서 생기는 것이었다.

“내가 할게. 안 아프게 뽑아야지. 가뜩이나 힘드신데.”

“네,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안대훈은 수혁교의 광신도이면서 동시에 얼마 전 우하윤에게서 믿음의 시험을 거친 사람이기도 했다.

이제부터는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으리라 마음먹었기에 순식간에 헤파린 코팅된 ABGA 전용 주사기를 갖다 바쳤다.

수혁은 그걸 이용해 환자의 손목에서 동맥혈을 뽑았다.

“조금 아파요.”

“네.”

“다 됐습니다.”

“네?”

바루다의 도움을 받았기에 환자는 정말이지 따끔한 느낌 외에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검사자에 따라서는 너무 아파서 이게 골수 검사인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하는 검사라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이지 대단한 능력이라 할 수 있었다.

‘역시…… 수멘.’

대훈의 신앙심이 돈독해지는 것과는 별개로 수혁이 뽑아낸 동맥혈은 즉시 인턴 손에 들린 채 분석기로 향했다.

드르륵.

곧 검사지가 인쇄되었다.

응급실에서 애용하는 검사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 검사는 정말이지 바로 결과를 볼 수 있었다.

“여깄습니다.”

“음. 역시…….”

결과지는 이랬다.

[pH 7.510, PaCO2 42mmHg, PaO2 61.5mmHg, HCO3 32.3 mmol/L.]

‘대사성 알칼리혈증이네.’

[네. 칼슘 때문이 맞군요.]

‘혈청 칼슘 검사는 참고만 해도 되겠어.’

[정황상 거의 100%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오케이.’

그제야 비로소 수혁은 미소를 보였다.

별거 아닌 증상은 아니지만, 치료가 어렵진 않겠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칼슘 다 끊자.”

“네?’

즉시 수혁의 말에 담긴 뜻을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다.

환자도 그랬다.

칼슘이 부족해서 증상이 생겼다더니, 이제 와서 칼슘을 끊어?

이 양반이 잘나가다 휙 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수혁은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고 한숨을 잠시 쉬고는 입을 열었다.

‘우리 센터는 교육 목적도 있다는 걸 명심해.’

이현종의 말을 떠올리면서였다.

“정확한 농도는 봐야겠지만, 아마 환자 혈청 칼슘 농도가 우리가 타깃 했던 것보다 뛰었을 거야. 너무 고농도가 되면 우유알칼리혈증을 일으킬 수 있는데, 증상 중 하나가 바로 근무력증이야. 천천히 발생하기도 하지만 지금 이 환자처럼 고용량으로 썼을 경우엔…….”

설명을 하고 있으려니 결과가 떴다.

무려 15가 넘어갔다.

“이렇게 떠 버리면 증상이 생기지. 약 끊고, 수액 하루 3리터……. 거기에 이뇨제까지 추가하자.”

물론 해결이 어렵진 않았다.

수혁의 처방대로 따라간 지 불과 이틀이 채 되지 않아 환자는 증상이 모두 사라져 퇴원할 수 있었다.

이현종이 은근슬쩍 학회 발표 케이스에 이 케이스를 낑겨 넣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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