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화 춘계에서 대놓고? (2)
당연히 웅성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비단 다른 병원에서만 떠들어 대는 건 아니었다.
태화 측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이 말이었다.
“나 지금 제대로 들은 거야?”
“제목이 우리 병원에 전원 보내야 하는 이유라고?”
“센터가 붙었지, 근데…….”
“이렇게 해도 되나……?”
저도 모르게 눈치를 보고 있었다.
다른 병원 사람들이 어떻게 나오려나 걱정이 돼서였다.
그렇게 열심히 고개를 돌릴 필요도 없었다.
이미 여기저기서 욕 비슷한 것이 들여왔으니까.
아마 이현종이 아니라 수혁이 서 있었다면 물병이라도 날아들었을 터였다.
“뭐래?”
“아니……. 지들이 뭔데 우리가 모르는 걸 다 안다고 해?”
“미친 거 아냐?”
“안에서나 천재지, 밖에서도 그런 줄 아나?”
“업적이야 대단하지……. 월드 스타니까. 근데 그것도 옛날얘긴데. 대형 병원 중에 월드 스타 한둘쯤 없는 곳이 어딨다고.”
격한 반응만 있는 건 아니었다.
다른 병원 원장단들 중에서는 눈에 띄게 긴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바루다와 관련한 두려움이 가장 컸던 칠성 측이 그랬다.
“설마…… 바루다 다시 돌리나?”
“에이, 설마. 그거 폐기된 지가 언젠데……. 게다가 인명 사고도 있었는데 그거 돌리면 우리로서는 땡큐지. 언론 이용해서 두들겨 패야지.”
“그때 다친 사람이 이수혁이라던데. 이현종 아들이잖아. 괜찮다고 하면 어째?”
“아, 그래? 그건 또 몰랐네…….”
왓슨과 대결을 해 보기도 전에 폐기된 비운의 A.I. 프로젝트이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건 국내 최고 기업이라는 태화에서 전력을 다해 개발하던 A.I. 아니었던가.
머신 러닝 또한 내로라하는 태화 의료원 교수들이 달라붙었기에 그 위력은 어마어마할 것으로 예상되었었다.
물론 이건 A.I. 즉, 인공 지능에 대한 기본 개념도 없는 사람들의 섣부른 생각이기는 했다.
“근데 그게 큰일인가? 강한 인공 지능도 아니었잖아? 기껏해야 보조인데.”
“하긴……. 막상 열어 봤는데 별거 아니었다는 평도 있잖아. 오죽하면 왓슨도 폐기를 했겠어. 솔직히 거기보다 태화 전자가 A.I.를 더 잘 만들 리도 없고.”
급기야 바루다가 들으면 기절할 만한 말들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수혁은 그것을 인지하기엔 좀 멀리 떨어져 있었고 동시에 가까이 있다 해도 정확히 알아먹기 어려울 만큼 여럿이 얘기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발표 당사자인 이현종은 좀 당황해도 될 텐데, 그는 그저 뚱한 얼굴로 좌중을 쓸어 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무지한 것들.’
원래도 자의식이 강한 인간인데, 오늘은 의식적으로 무장까지 하고 온 덕이었다.
‘나는 최고다. 우리는 최고다. 나랑 수혁이 조합은 세계 최고다.’
이 문장을 어찌나 반복을 했던지, 지금도 발표 대신 이게 튀어 나갈까 봐 주의를 기울여야 할 지경이었다.
아무튼, 이현종은 한동안 쏘아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태화의 이현종입니다. 발표 시작하겠습니다.”
신기하게 이 말이 딱 끝나자마자 귀신같이 조용해졌다.
태화의 이현종이라는 단어가 갖는 무게감 때문이었다.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그가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이 워낙에 오래되긴 했지만, 그래서 더 대단하다고 봐야 했다.
반짝스타가 아니라 지금껏 그 명성을 이어 오고 있지 않은가.
여전히 세계 심장 학회에서 이현종은 질시의 대상인 동시에 존경의 대상이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태화 의료원에서는 금년 3월부터 타 병원과의 차별점을 두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통합진료센터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다시 소란스러워지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무척 짧았다.
딱 첫 문장부터 타 병원과의 차별점 운운하는 것이 너무 자극적이었기에 그랬다.
그나마 이현종이 서 있었기에 망정이지, 수혁 아니라 신현태만 됐어도 누군가 일어나 호통이라도 쳤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강단에 선 것은 이현종이었고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원장인 신현태에게 불같은 시선이 쏘아질 따름이었다.
“나도 몰랐다고…….”
“그 말이 통할까요, 삼촌?”
“안 통하겠지……. 이 사건에 있어서만큼은 나는 바지 원장인데.”
“와 근데 멘트가 진짜 세네요. 차별점이라니. 이게 무슨 광고도 아니고……. 다른 병원 사람들 앞에 두고 할 말은 아닌데…….”
“그러니까. 아이고. 나 이제 남은 기간 어떻게 돌아다니냐.”
수혁도 덩달아 위축된 얼굴로 고개를 떨구었다.
정작 이현종은 턱을 치켜들고 있었다.
이제부터야말로 본격적인 자랑질 시작이었기에 그랬다.
“통합진료센터라는 말이 생소하기도 할뿐더러, 자세히 설명한다고 해 봐야 헷갈리기만 할 테니 간단하게 짚고 성과로 넘어가겠습니다. 본 센터는 말 그대로 통합진료가 가능한 센터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면 저와 이수혁이라는 걸출한 의사가 있어서입니다.”
남들이 듣기에는 점입가경이었다.
남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온다고 해도 부끄러워야 할 텐데 본인 입으로 떠들어?
미쳤나 싶어서 이제는 입도 안 떨어질 지경이었다.
이현종은 그걸 동의의 사인으로 해석했다.
워낙 제멋대로인 양반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모든 과 환자의 진료가 가능합니다. 그것도 각 과의 역량을 넘어서는 환자의 진료가 가능합니다. 사실 각 과의 역량의 다른 병원보다 우수한 태화에서 이렇다는 건 다른 병원의 역량을 넘어가는 질환도 다 볼 수 있다는 말이죠. 이렇게 말로만 떠들면 반감이 들 겁니다. 얼마나 잘났길래 저런 말들을 하나……. 뭐 이럴 거라 이 말입니다. 지금 실제로 눈 마주치는 사람들 중에 험악해진 사람들 있는데 아시죠? 저 기억력 좋은 거. 가만 안 둘…… 아니지. 그래, 음. 어디까지 했더라?”
심지어는 청중을 협박까지 했다.
신현태는 이 강의가 둘째 날 아침 첫 시간인 것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학술 이사 김태형이 좀 쫌생이 같아서 마음에 안 들어 했는데, 이따 끝나면 인사라도 따로 해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피크 타임 되면 적어도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들어올 텐데, 그때 이랬으면 어쩔 뻔했나.
“수혁아, 이거 녹화 안 되지?”
“아……. 되기는 되는데 그냥 데이터 관리 차원인 걸로 알고 있어요. 어디 올라가진 않을걸요.”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그러니까요.”
둘의 걱정과는 관계없이 이현종은 계속 입을 놀렸다.
반응이 심상찮다는 거야 그도 느끼고 있지만, 이미 이런 반응에는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준 심혈관 중재 시술을 발표할 때는 이것보다 더하지 않았던가.
그때야말로 이현종이 아직 국제 무대에서는 애송이 또는 뭣도 모르는 의료 변방에서 온 촌뜨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그 어떤 의사도 감히 시도해 보지 못한 치료를 들고 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 그래. 성과를 알려 줄게요. 일단, 케이스 하나. 부산대 병원에서 전원 온 기회감염 환자입니다.”
덕분에 이현종은 여전히 아니, 아까보다도 더 당당해진 얼굴로 발표를 이어 나갔다.
그렇다 보니 욕도 사그라들었다.
어차피 들어 처먹지도 않을 욕을 해서 뭐 하는가.
게다가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절반은 태화 측 사람이었다.
신현태와 과장 김문재가 심혈을 기울인 덕이었는데, 그 덕에 다른 병원 사람들도 태화 측 사람 못지않게 눈치가 보이긴 했다.
‘그래……. 이러다 귀에 들어가면 나만 손해지.’
‘저 양반이 뒷공작하고 그럴 사람은 아니긴 해도……. 기억력이 좋은 건 사실이잖아. 찍혀서 좋을 거 뭐 있나?’
동시에 이현종도 무서웠다.
아직 의사 사회는 좁고 수직적이었으니까.
게다가 부산대 병원에서 전원시켰다는 기감염 환자에 대한 흥미도 동했다.
과를 막론하고 기회감염이라는 키워드는 요새 핫 이슈였으니까.
“환자는 남미에서 거주하다가 배를 통해 부산으로 입항한 자로 이전 과거력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부산대 병원에서 파악한 것은 환자가 에이즈를 앓고 있다는 것, 그리고 피부에…… 보시는 바와 같은 미만성 병변이 있다는 것 정도였죠. 열이 있어 불명열, 그리고 기회감염이 의심되어 워크 업을 하는 도중 환자 상태가 악화되었고 본원으로 전원 되었습니다.”
사진과 검사 자료가 아주 적절히 배합되어 있었다.
전문의로, 그것도 대형 병원 교수로 30년 넘게 활동해 온 사람이 심혈을 기울여 직접 발표 준비를 하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듯한 발표 자료였다.
자연히 불만을 가졌던 이들까지도 우선은 그의 발표에 귀를 더 기울이게 되었다.
어차피 학회라는 곳에 공부하러 온 것이니만큼 이게 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별거 아니기만 해, 아주?’
‘마침 내가 감염내과거든. 아무리 그래도 다른 분과보다는 내가 낫지. 어디 건방지게…….’
또 두고 보자는 사람도 많았다.
뭐가 되었건 이현종은 아까보다 확연히 조용해진 강연장 안에서 발표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전원 당일 문진을 통해 환자가 설사 및 복통이 있었다는 것을 추가로 확인하였고, 이에 따라 복부 CT 및 내시경을 시행했습니다. 소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검사 소견은 따로 좌측에 계속 띄워 놓을 테니 뭔지 맞히고 싶은 사람은 보세요.”
이현종이 두고 보라는 사람들을 꼭 집어 들여다보면서 비아냥거렸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딱히 없었다.
모두들 정신없이 사진을 보고 있었고 거의 동시에 당황하고 있었기에 그랬다.
‘뭐여.’
‘내가 감염내과긴 해도…… 소화기 쪽은 잘 모르는데.’
‘판독이 뭐야. 그냥 장내 벽에 손상이 있고 이물로 추정? 뭔…….’
‘와, 내가 한 내시경이 천 례도 넘는데 저런 건 또 처음 보네?’
전혀 모르겠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이현종은 한치도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반응에 즐거워하면서 말을 이었다.
“당일 내시경 소견 및 환자와의 문진 그리고 환자가 최근 거주했던 지역 및 활동을 고려한 결과 내시경에서의 이 미세한 상처들은 기생충이 파고든 흔적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계속 당일을 강조하고 있었다.
바보도 알아들을 만큼 노골적이었다.
“이 의견을 토대로 미만성 피부염을 검토했고, 결과 이 역시 기생충이 파고든 흔적으로 추정했습니다. 이건 당시 초음파 소견인데 잘 보시면 출렁거리는 주머니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의 주머니를 형성하면서 동시에 브라질 등지에서, 특히 연못에 서식하면서 기회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기생충을 알아내고자 했고, 이 역시 당일 특정했습니다.”
이번에도 당일을 언급했고, 사람들은 놀랐다.
이현종은 역시나 즐거워하며 말을 이었다.
“리슈마니어시스가 바로 이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진단명이었습니다. 암포테리신 B를 정주했고 환자는 잘 회복되어 현재는 본원 감염 내과에서 에이즈에 대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허.”
“미친?”
“리슈 뭐?”
“뭐야……. 정말이야?”
다시 말하면 이 어려운 케이스를 전원 받은 당일 진단해 냈다는 얘기였다.
기회감염에서 속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모두가 숙지하고 있었기에 놀라움은 더더욱 컸다.
‘이거 정말……. 잘 모르겠으면 전원해야……. 아니지? 내가 미쳤나?’
그중 몇몇은 생각이 바뀌기까지 했다.
그들에게 있어 한가지로 불행한 일은 이 케이스가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