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8화 춘계에서 대놓고? (3)
“다음은 사지 경련을 주소로 창원 분원에서 전원 되었던 케이스입니다.”
설마 처음이라 제일 센 것을 내놓았겠지.
이현종의 말에 반발심이 들었던 사람들은 모두 억지로라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보통 그렇게 하지 않는가.
처음에 확 주목을 끌어 놓으면 그다음부터는 좀 못해도 사람들이 보게 되니까.
하지만 어째 가면 갈수록 더 심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발성 부갑상선 기능 저하라…….’
일단 이 진단명 하나만 해도 지극히 드물었다.
원래 우리 몸의 호르몬 체계라는 것은 복잡하면서도 동시에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그랬다.
뭐 하나가 조금이라도 줄어들거나 늘어나면 몸 전체가 반응하는 것이 호르몬이지 않은가.
때문에 이유 없이 줄어들거나 느는 건 정말이지 이상한 일이었다.
그 이상한 일이 생기는 것이 바로 원발성 부갑상선 기능 저하이기에 쉬이 보기는 어려웠다.
‘근데 거기에 우유알칼리증후군이 생겼어?’
그것만 해도 특이한 질환인데 치료 도중 이따위 증상까지 생길 줄이야.
그리고 그걸 당일에 아니, 순식간에 파악하고 제대로 된 치료를 해낼 줄이야.
미쳤다는 말만 나올 지경이었다.
‘조작 아닌가? 말이 안 되지 않나?’
‘당일은 말이 안 되는데?’
‘뭔…… 판타지 소설을 쓰고 있어.’
그렇다 보니 누군가는 이런 의심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이 이현종이 발표 자료에 첨부한 사진들은 전부 의무 기록 원본이었다.
떡하니 쓰인 날짜와 수정된 날짜가 기록이 되어 있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수정이 가능하긴 하지만…….’
‘설마 발표 하나 때문에 저만한 거물이 불법을 저지를까?’
윤리 위원회에 당장 회부 될 일을 이현종이 왜 한단 말인가.
이미 이현종은 태화라는 담장 안에 갇힌 사람도 아닌데.
그가 음, 나 옮겨 볼까 하는데 라고 하면 두 발 벗고 달려들 병원이 한둘이 아니었다.
원장 아니라 다른 것도 안겨 줄 터였다.
괜히 태화에서 석좌 교수를 줬겠는가.
그런 불상사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다음은 응급실 온 케이스입니다.”
이런 의심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이현종은 쉬지 않고 드문 케이스를 읊어 댔다.
물색없이 모든 케이스를 다 읊어 대는 것이 아니라 그가 보기에도 흥미로웠던 케이스를 얘기하는 거라 지루할 새가 없었다.
저 병원은 대체 어떻게 저런 케이스만 가나 싶을 지경이었다.
“이것도 당일 진단 및 치료가 되었습니다.”
또 대체 어떻게 저런 케이스를 당일에 해결할 수 있나 싶었다.
이게 한두 번이 아니라 세 번, 네 번 반복이 되다 보니 인간적으로 이현종을 질투하는 사람들 말고는 아 정말 통합진료센터를 기억해 두긴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을 지경이었다.
“그…….”
바뀐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는 당황해 마지않던 좌장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아마 좌장이 아니었다면 계속 넋을 놓고 보고만 있었을 텐데, 맡은 바 임무를 온전히 잊지는 않았다.
“그, 이현종 교수님?”
“네.”
“이제 시간이 다 되어 가지고요……. 죄송하지만…… 이만 줄여 주셔야 될 거 같습니다.”
“아, 그래요? 이제 반 했는데.”
“네? 반이요?”
허풍 떨지 마십쇼.
어떻게 생긴 지 한 달 조금 넘은 센터에 이런 환자들이 다 갑니까.
이런 말이 맴돌았지만, 자세히 보니 이현종의 얼굴은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도저히 거짓말하는 사람 같지가 않았다.
‘당연히 구라지, 이 양반아.’
물론 거짓말이었다.
이현종만큼 발표 많이 해 본 사람도 드물 텐데, 어찌 시간을 오버하겠는가.
딱 마지막 케이스를 말한 순간이었다.
“허. 더 있나 봐.”
“미쳤…….”
“진짜 천재 둘이 뭉치니까 무섭긴 하구나. 저걸 다 당일?”
“와…….”
일종의 블러핑이었던 셈인데, 쇼를 한 보람은 차고 넘쳤다.
이제 극소수의 사람들 말고는 이현종의 발표에 감명을 받다 못해 눈을 빛내고 있었다.
능력 부족으로 환자를 떠내 보내야 하는 아픔을 누구보다 자주 느끼는 이들이 내과 아닌가.
정말 남들보다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라 단지 현대 의학의 한계 때문이라 해도 좋을 케이스들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핑계를 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내과 의사가 이 환자는 어쩔 수 없었단 핑계를 대기 시작하면 눈에 띄게 사망률이 늘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감내해야 하는 괴로움이 많은데 어쩐지 든든한 뒷배가 생긴 기분이었다.
“자, 그럼 이것으로 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원래는 질의응답을 받아야 할 텐데 이것도 시간이 오버되어 가지고……. 궁금하신 분들은 여기 메일로 전화를 주시거나 센터로 전화를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태화의 이현종이었습니다.”
이현종은 한껏 들끓어 오른 분위기를 느끼며, 흐뭇한 미소와 함께 넙죽 고개를 숙였다.
은근슬쩍 센터 공식 이메일과 전화번호를 남긴 채였다.
몇몇 교수들이 부리나케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그것을 보자 기분이 더 좋아졌다.
딱히 사진 찍는 걸 숨기거나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신현태나 수혁도 두 눈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아니, 그거 아니더라도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 정도는 실감할 수 있었다.
확실히 호의적이었다.
“그…….”
“뭐, 잘했지?”
해서 신현태는 초반에 전전긍긍하며 별렀던 과는 달리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망할……. 확실히 잘하긴 했어. 잘했는데…….’
발표력도 좋고 케이스 선정도 좋고 무엇보다 워딩이 좋았다.
이 모든 걸 당일에 해결했다는 인상을 모두에게 주었으니까.
무엇보다 이현종이 지금껏 쌓아 올린 명성 덕에 모두들 진위 여부를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
아마 이 발표 이후로 통합진료센터로의 전원 문의가 늘어날 것이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을 터였다.
하지만 좋은 점만 있을까?
“이게 발표냐? 잘난 척이지?”
“운이 좋았던 거지……. 현대 의학이 얼마나 방대한데 둘이서 그걸 다 해? 그것도 누구보다 잘한다고?”
“태화가…… 정신이 나간 거지. 저런 식의 센터를 운영한다니…….”
“아까 소아과 케이스도 있었던 거지? 수련을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반발도 적지 않았다.
특히 라이벌 구도에 있는 칠성과 아선이 유독 심했다.
어차피 칠성과 아선은 태화와 같이 최종 병원 느낌이 되지 않았던가.
이 사이에서 전원을 하는 건 일종의 금기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심지어 환자들도 꺼려 했다.
즉 통합진료센터의 영업 대상이 아니란 얘기였다.
“지들이 전원 다 가져가려는 거 아냐.”
“영업을 하시네……. 퇴임하시고 태화에서 뭐 어디 한자리 약속이라도 받으셨나?”
“늘그막에…… 학자 자존심이 없네.”
말하자면 경쟁자들이다, 이 말인데.
그렇다 보니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병원끼리야 그렇다 해도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사람들도 있고, 특히 신현태는 사람이 좋아 더 그런 편인지라 눈치가 보였다.
“새끼들 시끄럽네.”
“시끄럽게 만들었으니까요…….”
“거짓말한 것도 아닌데 뭐. 이건 시작이야. 내가 해 보니까, 이 센터는 정말 장난 아냐. 인류의 구원이야.”
“그건 좀…….”
“너 수혁이 무시하니? 이제 삼촌 대신 남 되고 싶냐?”
“아니, 그게. 와. 이렇게.”
물론 이현종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영업 대상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개가 짖는구나 하고 여기기로 작정했고, 실제로도 그럴 수 있는 멘탈의 소유자가 바로 이현종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어어. 누구……?”
“아, 네. 저는 청주 현대 병원 내과 과장으로 있는 정호중입니다.”
“아, 정호중 선생님. 반가워요.”
해도 너무한다 하고 있으려니 누군가 찾아왔다.
인사를 건넨 건 정호중이었지만 뒤로도 많았다.
강의실 안에서 인사를 받기 시작하면 민폐가 될 정도로 많았다.
해서 이현종은 허허 웃으며, 그러니까 다분히 계산적인 미소와 함께 밖으로 향했다.
‘능구렁이……. 저렇게 할 수 있으면서 윗사람들한테는 개겼지.’
신현태는 어휴 하면서 그를 따랐고, 세트로 묶여 있는 수혁도 자동으로 이동했다.
“와, 정말…… 인상 깊은 강연이었습니다.”
“저도요. 존경합니다.”
“역시 이현종 교수님…….”
밖으로 나오자 다들 말문이 트였는지 시끌시끌해졌다.
대개 대학 병원에 있는 교수들이 아니라 2차 병원에 있는 젊은 과장들이다 보니 안에서는 눈치가 보였던 모양이었다.
이제 막 말하기 시작한 아기들처럼 이리저리 떠들어 댔다.
“자자. 여기서 명확히 짚고 넘어갈 점이 있는데.”
이현종은 그런 과장을 사이에서 손을 휘저었다.
지휘자라고 여기는 듯 그 손을 보자마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사실 과장이라고 해 봐야 이제 막 펠로우 마치고 간 친구들도 많아서 나이가 많아야 30대 후반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이현종은 하늘 그 자체였다.
“이거 한 35%는 내가 한 거고, 나머지는 남이 한 거야.”
“네?”
“아……. 설마.”
“설마 바루다?”
누군가의 말에 수혁이 들썩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혁보다는 안에 있던 바루다였다.
[역시! 여기 참된 놈들이 있군.]
‘아니……. 딱히 지금의 널 생각하는 건 아닐걸.’
[미완성본이었던 저조차 이렇게 생각하는데 지금의 절 보면 꿇어 엎드리겠군요.]
‘음.’
심상치 않은 반응에 수혁은 역시나 이놈을 인터넷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절대 해서는 안 되겠단 생각을 했다.
숭배받고자 하는 A.I.라니.
스카이넷이 생각나지 않는가.
수혁은 생에 아포칼립스를 경험하고픈 생각도 없었고, 그걸 일으키고자 하는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뭔 소리야. 바루다는 폐기된 게 언젠데.”
“아, 그렇군요. 그럼……?”
“여기 이수혁 교수가 65%는 했어. 대단한 친구야, 정말. 진짜 천재. 나 같은 건…… 노력파지. 노력파.”
“허.”
“와…….”
“어이구.”
당연히 이현종이 주축이 되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어린 이수혁이 주축이라지 않는가.
젊은 과장들은 반신반의하는 반응이었지만 어찌 되었건 눈앞에서는 크게 놀랐다.
그리곤 본래 찾아온 목적에 대해 털어놓았다.
“아까 인사드렸던 정호중입니다.”
“어어. 그래.”
“제가 사실…… 태화 출신 아니고 충북대인데요.”
“음, 그래서? 학교가 중요한가?”
“아뇨, 아뇨. 지금 제가 있는 병원하고 태화가 업무 협약이 안 되어 있는데……. 그래도 전원을 통합진료센터로 보낼 수 있을지 여쭤보려고요. 위치상 충북대가 가깝긴 한데, 지방에 있는 환자가 전원을 원할 땐 그냥 대학 병원이 아닌 서울인 경우가 많거든요. 근데 막상 그러자니 너무 기다리게 되고…….”
“아, 하하. 되지, 되고말고. 근데 조건이 있어.”
이현종이 손가락 하나를 치켜들자 모여들었던 모두가 마른침을 삼켰다.
아주 중요한 대목이어서 그랬다.
대학 병원과는 달리 2차 병원의 내과 과장은 몇 없는 동료끼리 머리를 모아 환자를 봐야 하지 않던가.
백 봐줄 사람이 없다는 얘긴데, 아까 그런 케이스를 막힘없이 해결해 준 사람이 도와준다면 천군만마와도 같을 터였다.
“어떤……?”
“어려운 케이스여야 해. 너무 쉬운 케이스는……. 우리 취지에 맞지가 않아요.”
“아…….”
“그런 케이스면 무조건 받을게. 이건 센터장인 내 권한과 책임으로 말하는 거야. 믿어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