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1화 원격으로 봐줄까 (2)
수혁은 일어선 채 계속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는 이현종을 뒤로한 채 밖으로 나왔다.
같이 오자고 했던 주제에 이미 수혁은 까맣게 잊은 모양이었다.
코앞에서 움직이는데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오로지 발표자와 발표 자료만 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수혁이 보기에도 그럴 만한 주제와 내용이기는 했다.
‘학회 때마다 아빠가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 또 저러고 있으니 빡칠 만도 하지.’
이럴 땐 섣불리 건드는 것보다는 그저 두는 게 상책이었다.
“네, 이수혁입니다.”
“아, 네. 아까 말씀드렸던…….”
“네, 알죠. 결과 나왔나요?”
해서 수혁은 밖에서 군의관과의 통화에만 집중했다.
군의관은 수혁의 말에 줄줄이 결과를 읊어 댔다.
아까보다 더 진중한 목소리였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혁이 나가라고 했던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었다.
그것도 아주 큰 이상이.
“부신 피질 자극 호르몬은 6.1pmol/L, 코티졸이…… 345nmol/L, 레닌 활성도는 0.85ng/(L/s)(3ng/(mL/hr)). 이건 다 정상 수친데……. 알도스테론이 1,245pmol/L로 엄청나게 증가했습니다.”
“그렇군요.”
알도스테론은 220 이하여야 정상인데, 1,245라면 몇 배나 뜬 셈이었다.
군의관은 그 수치에 고양되었는지 아니면 긴장한 건지 몰라도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원발성 알도스테론증일까요?”
그리곤 제멋대로 진단을 내렸다.
가능성 있는 진단이긴 했다.
하지만 아직 딱 그렇게 단정 짓기엔 일렀다.
우선 원발성 알도스테론증이란 게 그리 흔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랬다.
“아뇨. 아직 단정 짓기는 어려워요. 우선…… 아까 이뇨제 들어갔죠? 푸로세마이드 80mg.”
“아, 네.”
“반응이 있는지 봐야죠. 다시 검사 나가고, 검사 나가자마자 생리 식염수 부하하고 알도스테론 다시 나가야 합니다.”
“어……. 잠시만요. 조금만 천천히.”
알아듣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하긴 지금 하는 말은 내분비내과 전문의 수준은 되어야 통할 정도긴 했다.
[공부 안 하는구만.]
‘그러니까.’
물론 수혁이나 바루다는 그렇게 생각지는 않았다.
그가 열심히 공부시키고 있는 안대훈도 이 정도는 알아먹을 게 확실했기에 그랬다.
격무에 시달리는 애를 붙잡고 공부를 시키는 수혁이나 그걸 신앙의 힘으로, 수멘을 중얼거리며 따라오는 안대훈이나 정상은 아니었지만.
하여간 둘의 기준에는 한참 못 미친다고 볼 수 있었다.
“레닌이 혈압을 올리는 녀석 아닙니까? 이뇨제 줬으니 레닌 활성도가 올라야 정상이겠죠? 아니면 이상한 거고요.”
“아, 네.”
하지만 수혁은 짜증 내는 대신 차근차근 설명을 이어 나갔다.
‘칠성이라 그럴 거야.’
[아, 하긴. 태화에 비하면 좀 떨어지죠. 전자도 그렇겠지만 의료야 뭐 더 그렇겠지.]
이현종에게 칠성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워낙 많이 들어서였다.
내실 없이 돈으로 외형만 키워서 실력이 없다고 했던가.
다분히 악의가 섞여 있는 말이긴 하겠지만, 하여간 편견이 쌓일 만큼은 들은 참이었다.
“그럼 생리 식염수 부하하면 어떻게 돼야 할까요?”
“어……. 아, 알도스테론이 줄어야 되겠구나. 혈압이 올랐으니.”
“네, 그렇죠. 거기서 억제가 제대로 안 되면 그때는 원발성 알도스테론증을 의심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지금도 워낙에 수치가 높긴 하니……. 다른 검사도 하나만 추가할게요.”
“아, 네. 말씀하시면 추가하겠습니다.”
“음.”
수혁은 바로 검사명을 말하려다가 지금 대화 중인 사람이 군 병원에 있다는 걸 떠올렸다.
군대에 가 보지 않아서 오히려 더 군에 대한 편견이 있는 상태였다.
인터넷을 보면 군 병원 가면 빨간약만 발라 주고, 무슨 증상으로 가도 같은 약을 준다고 하지 않던가.
물론 자세히 읽어 보면 군 병원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한 얘기들이긴 했다.
목이 아프나, 무릎이 아프나 어차피 진통 소염제는 같은 걸 쓸 텐데 그걸 뭐라고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있나? 이게.’
[모르죠. 물어보세요.]
하지만 그런 글과는 별개로 시설이 좀 낙후되었을 거란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해서 수혁은 조금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거기 핵의학과도 있어요?”
“아……. 핵의학과요? 있기는 합니다.”
“있어요?”
“네. 있죠. 수도 병원에는 있습니다.”
“잘됐네. 그럼 NP-59 부신 핵 영상 검사하죠.”
“네?”
“NP-59 부신 핵 영상이요. CT에서 놓친 부분이 있더라도 여기선 잡힐 겁니다.”
“아……. 아, 네네. NP-59…….”
군의관은 아예 처음 들어 보는 검사인지 몇 번인가 더 되뇌고는 전화를 끊었다.
수혁은 그렇게 지시를 내리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바, 발표 마치겠습니다.”
그러자 얼굴이 하얗게 뜬 발표자가 겨우 인사를 마치고 내려가는 게 보였다.
이현종은 그런 발표자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이내 수혁에게 말을 걸었다.
“너도 답답해서 서서 들었니?”
“아, 네.”
굳이 아니라고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현종의 넋두리가 계속되었다.
“어째 이러냐. 애들이 실력이 이렇게 없어서야……. 아휴. 아휴!”
“아, 아빠. 그래도 발표장에서 이러는 건 좀…….”
“답답해서 그래. 내가 이 소학회 시작한 게 벌써 몇 년짼데……. 나를 넘는 놈이 안 나오니. 말이 된다고 생각해? 내가 이제 곧 정년인데.”
“그…… 그건 좀 안타깝긴 하죠.”
“네가 조금만 더 멍청했으면 이거 맡겼을 텐데.”
“그런 말은……. 어흠. 흠.”
수혁은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고는 눈치를 살폈다.
그래도 심혈관 중재 시술 하는 사람들이면 똑똑하면서 동시에 사명감 넘치는 사람들 아니던가.
여기 모여 있으니 흔해 보일 뿐, 학회장을 나서는 순간 개개인이 심혈관 센터장들이었다.
특히 지방에는 심혈관 중재 시술이 가능한 사람이 하나라도 있냐 없냐에 따라 심근경색 생존율이 뒤바뀌었다.
[다행히 듣는 사람은 없네요.]
‘그러니까…… 다음 발표자 올라가서 다행이네.’
그런 대단한 사람들을 두고 이렇게 까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이현종뿐일 터였다.
문제는 그에게 자격이 차고 넘친다는 점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보다 많은 사람을 살렸고, 동시에 많은 이론을 정립했다.
게다가 그 경험과 지식을 아낌없이 나누고 있었다.
모두의 스승이었다.
“그거 판단이 맞았나?”
그런 사람이 발표에 딴지를 걸면 누구라도 긴장을 하게 마련이었다.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이제 60도 넘은 교수도 이현종의 말에 진땀을 흘렸다.
“그, 저 교수님. 저는…… 여기가 막혔다고 판단…….”
“바이털 고려하면 거기가 아닌데? 제일 막혔을 곳은 여기지.”
“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구구절절 옳은 말뿐이었다.
발표를 그저 듣고만 있던 이들이 어느새 필기를 시작했을 지경이었다.
강연장이 강의실로 화하는 순간이었다.
웅.
수혁에게도 일부분 도움이 되는 얘기들이 있어 집중하고 있으려니 전화가 또 울렸다.
‘헐,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네. 이현종 교수 강의력이 장난 아니네요.]
아까는 그래도 질문자 위치에 서 있더니만 지금은 아예 단상 위에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심지어 진행을 맡은 좌장조차 이를 말리지 못했다.
도리어 강의를 종용하는 이들조차 있을 지경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수혁도 전화 받는 대신 이 안에 있고 싶어졌을 지경이었으니.
하지만 아까 군의관과의 문답을 생각해 보면, 그냥 둘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네.”
해서 수혁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전화를 받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아, 네. 결과 나왔습니다. 부하 후 검사도 나왔습니다.”
“아……. 네 말씀해 주세요.”
“일단 레닌 활성도는…… 2.17ng/(L/s)에 7.8ng/(ml/hr) 나왔습니다.”
“이뇨제 주고 제대로 올랐네요. 이건 문제가 아닙니다. 알도스테론은 어떻죠?”
수혁은 군의관이 말이 끝남과 동시에 판단을 내려 주었다.
군의관은 막힘 없는 수혁의 말에 놀라면서 말을 이었다.
“알도스테론은 부하 후 971입니다. 이게 반응이 있다고 봐야 할까요?”
“아뇨. 반응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이 수치 또한 정상보다 너무 높잖아요?”
“아…….”
“영상은 찍었나요?”
“아, 네. 찍긴 찍었는데 주말이라 핵의학과 전문의는 없습니다. 그…….”
“괜찮아요. 사진만 보내 주면 됩니다. 판독은 제가 합니다.”
“아……. 요청하겠습니다. 아니,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어디 계시죠?”
군의관은 처음에 보였던 미심쩍은 의심 따위는 다 벗어 버린 듯 공손하기 짝이 없었다.
굳이 온다는데 오지 말라고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수혁처럼 다리가 불편한 사람도 아니고, 심지어 같은 학회장이었다.
“네. 에메랄드 홀 앞에 있어요.”
“네. 바로 가겠습니다. 교수님.”
태도 변화가 너무 명확하다 보니 조금 웃긴단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바루다도 예외는 아니었다.
[교수님 소리가 절로 나오는 모양이네요.]
‘원래 압도적인 지식은 존경스러운 법이지.’
[자기 입으로 그런 소리 하면 기분 이상하지 않나요?]
‘아니, 그렇지는 않은데.’
실없는 소리를 나누다 보니 멀리서부터 발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군의관이었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 딱 어울리게 구보하듯 뛰고 있었다.
약간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때쯤, 그가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요청했던 NP[59 scan 영상이 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게 대체 뭔가 싶을 만한 사진이었다.
원래 핵의학과에서 찍는 영상은 영상의학과 쪽 영상보다 더 모호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여기, 오른쪽 부신 보여요?”
“아. 네.”
군의관도 예외는 아니어서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사실 지금 수혁이 가리킨 게 부신이라는 것도 방금 알았다.
하지만 여기서 모르겠다고 하면 너무 무식하게만 보일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이 새끼 모르네.]
물론 바루다를 탑재하고 있는 수혁은 작은 변화 하나도 놓치지 않았기에, 군의관의 반응도 즉시 알아차렸다.
‘이건 모를 수도 있지.’
[근데 왜 아는 척을 하지?]
‘이해는 가.’
여기서 왜 아는 척하냐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잠깐 궁금해졌지만, 너무 괴롭히지는 않기로 했다.
어찌 되었건 병사를 위해 이렇게까지 한다는 건, 그가 훌륭한 군의관이라는 반증이었으니.
제일 좋은 의사야 당연히 똑똑한 의사겠지만 성실하고 노력하는 의사도 못지않게 중요했다.
결국에 둘이 동의어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우측 부신을 보면 좌측보다 확실히 흡수가 떴어요. 여기 선종이 있다는 얘긴데……. CT 그거 다시 보여 줄래요?”
“아, 네. 여기.”
“음……. 그래, 여기 좀 애매해 보이는 부위랑 겹치네. 이게 컷이 좀 드문드문해서 이렇게 나온 거 같아요. 0.625 세팅해서 다시 찍으면 보다 명확하게 나올 겁니다.”
“네?”
“이 환자 우측에 부신 선종이 있다고요. 수술하지 않으면 죽을 겁니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