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32화 (432/1,303)

432화 원격으로 봐줄까 (3)

수혁이야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지만 군의관은 그렇게 외과에 전달할 수는 없었다.

‘이거 우리 병원에서 못 할 거야, 아마.’

군병원의 역량을 아득히 넘어가는 수술이지 않은가.

전문의들로 채워져 있다고는 하지만, 날이 갈수록 심화되어 가고 있는 현대 의학은 이제 단순 전문의인것만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너무도 많았다.

세부 분과 전문의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하여간 외부로 의뢰하려면 여기서 더 근거가 필요했다.

다행히 수혁은 그에 대한 조언까지 해 준 참이었다.

‘0.625 컷으로 찍으라고 했지.’

어지간한 군 병원이라면 주말엔 CT 촬영은 어려울 터였다.

군무원들이기에 그랬는데, 그나마 수도 병원은 가장 중요한 후방 병원이기에 군의관이나 간호 장교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돌아가며 당직을 서고 있었다.

“네네, 그 환자 그 세팅으로 한 번만 더 찍을게요. 네? 아유……. 감사합니다. 네네.”

덕분에 군의관은 전화만으로 환자 CT를 찍었고, 결과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받아 볼 수 있었다.

‘야, 진짜로 뭐가 있네?’

당직 서는 군의관의 말은 덤이었다.

세팅을 바꾼 것만으로 원래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는 얘기였다.

군의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동영상 파일을 열었고, 마우스 스크롤에 따라 아래로 내려가는 영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래 영상은 전용 모니터를 통해 하나하나 차근차근 봐야 정확하긴 했지만, 급할 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이 영상만 봐도 대번에 알 수 있을 만큼이나 확연한 소견이 보였다.

“아……. 여기 진짜 있네.”

군의관은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지나는 이가 쟤는 왜 학회장까지 와서 핸드폰이나 하고, 또 그런 주제에 혼잣말까지 하고 있나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눈치채지 못했다.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랬다.

“이거…… 전에 찍은 것만 믿고 덮었으면…….”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원인 불명의 고혈압으로 진단해 단명시킬 뻔하지 않았나.

군의관은 수혁이 사라져 간 쪽을 잠시 바라보다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태 피해 다녔던 칠성 측 교수님 번호가 떴다.

“어, 너 학회 오지 않았냐? 잘 듣고 있어?”

“네네. 잘 듣고 있습니다, 교수님.”

“근데 웬일이냐? 분과 바꾸려고?”

“아……. 아뇨. 그건 아니고, 환자 중에 내분비내과 환자가 있어서요.”

“환자? 아……. 맞다. 너 수도 병원에 있지.”

군의관은 교수의 말을 들으면서도 끊임없이 아까 수혁이 해 주었던 말들을 되뇌었다.

‘그렇게만 하자. 그렇게만 하면 대박이야.’

비록 분야가 다른 쪽 교수긴 하지만.

내분비내과 중 딱 이 교수만큼은 소화기분과와 사이가 좋은 편이지 않은가.

자신의 우수한 모습을 들려주게 되면 나중에 병원 돌아가서 좀 유리할 수도 있었다.

물론 교수들이야 원체 펠로우를 많이 겪기에 그냥 넘어갈 가능성이 크지만.

원래 불확실한 상황에 처한 이들일수록 정확한 판단이 어려운 법이었다.

군의관은 그중에서도 긍정적인 쪽으로만 사고 회로를 굴리는 편이었다.

“네, 환자 고혈압으로 내원했습니다.”

“고혈압? 신검에서 안 걸렀어? 방위 안 가나?”

방위란 말에 세대 차이가 느껴졌다.

해서 군의관은 요즘은 좀 다르다는 말로 얘기를 시작했다.

“요새 기준이 바뀌어서……. 거즘 다 옵니다, 교수님. 약 먹고 조절되면 현역이에요.”

“허, 그래? 인구가 줄긴 줄었나 보다. 아무튼, 그래서?”

“조절이 되다가 두통이 발생해서 사단 의무대 갔다가 수축기 200이 넘는 고혈압 확인돼서 수도 병원으로 왔습니다. 당시 약을 자의로 끊었다고 해서 우선 약을 썼는데, 그래도…….”

“야, 당연하지. 200? 그거 약 먹는다고 정상으로 안 떨어져.”

“네. 180 이상에서 유지되어서 워크업 했는데, 기본 세팅에서는 CT상에서 이상 소견이 없었습니다.”

“그래? 신혈관 괜찮았다고?”

“네.”

“음.”

과연 젊은 남성에서 조절이 잘 되지 않는 고혈압이라면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 신혈관 질환인 모양이었다.

내분비 교수도 대뜸 그거부터 확인했다.

달리 말하면 지금 말하는 케이스가 꽤 드문 케이스란 것이었다.

해서 군의관은 저도 모르게 살짝 들뜬 목소리가 되어 말을 이었다.

“그래서 기본적인 레닌, 레닌 활성도, 알도스테론 검사를 하고 이에 더해 레닌 활성도 확인 위해 이뇨제 투여후 다시 동일한 검사 시행했습니다. 식염수 부하 검사도 시행했습니다.”

교수는 환자 노티 하면서 묘하게 말아 올라가는 군의관의 말투가 거슬렸지만, 곧 말투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제법 똑똑한 노티 때문이었다.

“거기 내분비 있어?”

“네? 아뇨, 없습니다.”

“근데 검사를 저렇게 딱딱 내?”

“전공의 때 교수님 밑에 돌 때 몇 번 본 적 있습니다.”

“오. 너 열심히 했었구나? 내가 왜 그때 몰랐지.”

“하하.”

사실은 제가 한 게 아닙니다 라는 말 따위는 나오지 않았다.

어차피 칠성과 태화는 앙숙이지 않은가.

그중에서도 원장단이라고 할 수 있는 이현종은 더더욱 그럴 터였다.

이수혁이야 뭐 완전히 틀어진 다음에 전문의 따고 나온 사람이니 아예 아는 사람도 없을 테고.

‘들통날 일은 없어!’

자신감에 찬 군의관은 그대로 말을 이었다.

“아무튼…… 레닌 활성도는 정상적으로 변화했는데 식염수 부하 후에도 알도스테론은 억제되지 않았습니다.”

“그래? 이상하잖아. CT에서는 아무것도 없었다며?”

“저희 병원 CT 세팅이 좀 듬성듬성해서요. 아마 그랬을 거라 생각하고……. 핵의학 검사 의뢰했습니다. NP-59 부신 핵 영상에서 우측 부신에 작은 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오……. 야, 너 내분비 할걸 그랬나?”

교수의 반응이 격하면 격할수록 더했다.

이런 칭찬을 대체 어디 가서 듣겠는가.

일단 군대는 칭찬하는 사람이 없었을뿐더러, 수련 받을 때라고 별반 다르지도 않았다.

“네? 하하. 그냥 공부했던 게 얻어걸렸죠.”

“아니, 진짜 다른 분과 지식 다 까먹지 않나? 나는 소화기 쪽은 누가 물어봐도 모르겠던데. 하여간, 그거 수술해야 된다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군 병원 역량 벗어났다는 의뢰서만 써 봐. 그럼 내가 알아서 외과 넣어 줄게.”

“아,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기특하네. 군대 가서도 응? 역시 칠성이 수련 환경이 좋아, 그치?”

물론 교수의 말에 수련 환경이 나왔을 때는 조금 움찔했다.

아까 이현종이 했던 말이 떠올라서였다.

하지만 다시 둘의 사이는 앙숙이라는 사실을 되새기며 말을 이었다.

“그럼요. 나와 보니 더 느낍니다. 칠성이 최곱니다.”

“그래. 그렇게만 하자. 너 몇 년차니?”

“이제 1년 차입니다.”

“아이고, 아직 멀었네. 그래, 고생하고. 오면 어? 열심히 해 봐. 너 같은 애가 교수 해야지.”

“네, 감사합니다!”

답하는 목소리에 힘이 빡 들어갔다.

교수들이 으레 하는 말이란 것쯤은 모르지 않았으나.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의대에 진학한 이래 오로지 교수만 꿈꾸며 뛰어오지 않았나.

그러니 지금 수혁의 진료를 도둑질 한 것쯤은 별거 아니라 생각했다.

“으음.”

그러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헛기침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 어잇 시발! 아, 죄송. 죄송합니다.”

이현종이었다.

아까 분명히 밥 먹는다고 사라져 갔던 이수혁과 함께 돌아와 있었다.

이현종은 당황하는 군의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껄껄 웃었다.

“거봐라, 수혁아. 내가 그랬지? 이 새끼 바로 칠성에 노티 할 거라고.”

“어…….”

“그렇네요? 사람이 어떻게 이러지?”

“어…….”

“원래 머리 검은 짐승이 그렇지. 네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넌 잘 보면 자연갈색이야.”

머리 검은 짐승이 진짜 머리 검은 사람만 지칭하는 건 아닐 텐데.

수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괘씸해서는 아니었다.

어차피 칠성 사람이 태화에 노티 할 걸 기대하는 게 비정상이지 않은가.

원장단만큼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부센터장이 된 후 몇 번 회의에 따라 들어간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둘은 라이벌을 넘어 앙숙이 되어 있었다.

“이봐, 입 싹 닫고 네가 다 한 것처럼 노티 하면 어떡해? 교수 하고 싶어서 그래?”

이현종이라고 그걸 모르진 않을 터였다.

아니, 오히려 수혁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어찌 보면 지금의 구도를 만든 장본인 중 하나이니까.

이렇게까지 화낼 일이 아니란 얘기였다.

‘뭐지?’

[일단 보시죠. 이현종이 느슨한 거 같아도 똑똑한 사람 아닙니까. 뭔가 이유가 있을 겁니다.]

‘하긴 그건 그래.’

물론 이현종이 좀 기인이기는 했다.

괴팍하다고 해야 할지, 어떻다고 해야 할지.

어떻게 봐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란 얘기였다.

하지만 바루다의 말처럼 뭔가 이유가 있기는 할 터였다.

해서 수혁은 잠자코 있었다.

그사이 이현종은 점점 더 화를 내고 있었다.

어쩐지 군의관을 구석으로 몰고 가면서였다.

“사람이 말야 염치가 있어야지. 자네 소화기 나왔지? 전화할까? 전화해?”

어떻게 알았는지, 딱 군의관이 모셨던 교수의 전화번호까지 보여 주었다.

일이 이쯤 되자 군의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환자 좀 제대로 보려고 왔다가 이게 대체 무슨 봉변이란 말인가.

물론 수혁과 이현종이 한 일을 자기가 한 것처럼 포장한 것은 잘못이었지만.

그걸 교수가 알게 된다면, 그건 아예 차원이 다른 일이 될 터였다.

“사, 살려 주십시오.”

“어어 무릎 꿇지 말고. 그런 걸로 마음 안 약해져.”

“교, 교수님…….”

“그런 거 말고 현실적인 걸 말해 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에 다리에 힘이 털썩 풀렸다.

사실 무릎 꿇으려는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도 보이게 생겼다 이 말이었다.

‘혀, 현실적……?’

하여간 군의관은 자신의 팔을 붙들고 있는 이현종을 올려다보았다.

씨익 웃고 있는 꼴이 지금 당장 이걸 알리거나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자 머리가 돌았다.

‘뭘……. 원하는……. 아, 설마…….’

딱 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이현종이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수도 병원 어려운 케이스는 모두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로 의뢰하는 거야. 알았어?”

“그……. 그게 제 마음대로 되는…….”

“군펠 2년 하고 갔다며. 그럼 어지간하면 네 후배 아냐? 칠성은?”

“그, 그건…… 그렇긴 합니다.”

“그래. 너가 칠성 맡아. 태화는 알아서 할 거야. 아선 빼고 나머지는 두 병원 출신이 바람 잡으면 어떻게 되겠지.”

“아…….”

군의관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부터 태화에 보내자고 하는 건 참 모양 빠지는 일 아닌가.

나이 먹으며 먹을수록 아쉬운 소리 하는 게 점점 어려워졌다.

이현종에 비하면야 그리 많은 축도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30대 중반에 후배들에게 부탁을 해야 한다니.

“싫어? 싫으면 전화하고. 꼴 우습게 될걸. 이게 낫지.”

“아,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교수들 앞에 사기꾼으로 소문나는 것보다는 좀 실없는 선배 되는 게 나을 거 같았다.

해서 군의관은 고개를 숙였고, 이현종은 웃었다.

[역시.]

‘캬.’

동시에 수혁은 감탄했다.

기인 이현종은 확실히 수완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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