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화 와 몰려든다 (2)
전원은 수혁이 전화를 하자마자 결정되었다.
의뢰했던 2차 병원 과장은 구세주라도 받은 듯한 말투로 연신 감사하다는 말만 연발했다.
아무것도 모르겠는 상황에서 환자를 받아 주겠다고 하니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런 태도랑은 별개로 전원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다음 날 오후께였다.
전원이라는 게 진료하던 의사가 보내고 싶다고 뚝딱 되는 건 아니었기에 그랬다.
<죄송합니다. 지금 보호자 설득 중입니다. 이동 시간하고 비용 때문에……. 하지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요. 이수혁 부센터장님하고 이현종 센터장님 모두 TV에 나오신 적이 있어서요.>
수혁은 2차 병원 과장의 문자를 보면서 김다현 사장의 혜안에 새삼 감탄했다.
‘진짜 TV 한번 나간 게…… 크긴 크구나.’
[이러니까 다들 어떻게든 얼굴 한번 들이밀려고 난리죠.]
아마 일반적인 건강 프로였다면 이렇게까지 파장이 크진 않았을 터였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쇼닥이란 이미지가 씌워져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혁이 나간 건 뉴스였다.
그것도 가장 시청률이 높은 뉴스.
그중에서도 작년 한 해 파급력이 가장 컸던 의료 이슈를 다루었다.
어지간한 사람은 그걸 봤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여간……. 기다리는 김에 발표나 볼까.’
[그래야죠. 이것도 교수가 할 일입니다.]
‘딱히 네가 지향하는 목표랑은 관계가 없지 않아?’
[그렇죠. 하지만 교수로서의 명성을 유지해야 진료를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했습니다. 이현종을 보십시오. 원래 같으면 곧 정년이지만, 석좌 교수 되니까 5년이 더 남았잖아요.]
‘일흔까지 진료해라……. 이거지?’
[아뇨. 그보다 더 할 수 있으면 더 해야죠. 이 바루다가 없는 이현종도 일흔입니다. 이수혁이라면 여든도 가능합니다.]
‘음.’
여든이라.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병원에 누워 있는 환자들을 떠올렸다.
고아인 탓에 할아버지 하면 환자부터 생각났다.
당연히 바루다가 역정을 냈다.
[제가 관리시켜 드릴 테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죽을 때까지 일을 시키겠다고?’
[진료 보는 게 그렇게 싫습니까?]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라……. 나도 좀 쉬고 싶다 이거지.’
[진료 보는 중간중간 쉬세요. 해외여행도 벌써 두 번이나 갔다 와 놓고선.]
‘그게…… 그게 여행이냐? 연수랑 학회였지.’
[그게 그거 아닙니까?]
‘음.’
한 번이라도 여행다운 여행을 다녀왔다면 여기서 반박이 가능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수혁은 그 흔한 수학여행 한 번 다녀오지 못한 몸이었다.
때문에 진짜 그게 그건가 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사이, 1년 차가 센터 내에 비치된 컨퍼런스 룸 앞에 섰다.
이현종이 시킨 케이스 컨퍼런스 시작이었다.
“안녕하십니까. 1년 차 양재원입니다.”
“이름이 좋네. 외상 외과하지, 왜 여기 왔어.”
아는 이름인지, 이현종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수혁도 들어 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우리나라 외상 외과의 아버지 격이라던가.
하여간 아주 유명한 의사였다.
“아, 그…….”
“장난이고, 해 봐.”
“네.”
이름을 양재원이라 밝힌 1년 차는 곧 피피티를 넘겼다.
제목은 <당뇨가 없던 환자에서 발생한 갑작스러운 고혈당>이었다.
수혁이 코멘트 했던 환자인데, 딱 보자마자 정답을 떠올렸을 정도로 전형적인 케이스였다.
‘음, 난이도별로 나눴나?’
그제야 수혁은 이번 달 3년 차를 돌아보았다.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김석현이라고 했던가.
어쩌면 꽤나 유능한 친구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환자는 68세 여자 환자로 기침을 주소로 내원하였습니다. 내원 당시 시행한 엑스레이에서 양측 폐에 전반적으로 지저분한 음영이 관찰됩니다. 폐렴에 부합하는 소견입니다.”
수혁이 보기엔 그중에서도 바이러스성 폐렴에 합당한 소견이었다.
흡입성 폐렴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폐 하엽, 그중에서도 우측 폐 하엽의 위쪽 부분에 주로 병변이 있었으리라.
[환자는 L-tube로 영양 섭취를 하고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가능성이 없죠.]
‘나도 알어. 그냥 아는 거 정리해 본 거야.’
[네, 뭐. 좋은 태도죠.]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으려니 1년 차가 말을 이어 나갔다.
“담당 의사는 환자가 평소 지병도 없고, 병원에서 생활하던 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지역 획득 폐렴으로 생각하고 경험적 항생제로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입원 치료 3일째, 엑스레이는 호전 보이지 않았으나 환자 증상은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원래 엑스레이는 증상에 비해 조금 늦게 호전되는 법이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폐렴, 그중에서도 경증 폐렴에 아주 잘 들어맞는 케이스였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런데 아침 식전에 시행한 당 검사에서 362가 측정되었습니다. 이전 검사에서는 계속 120 이하로 측정되었고 당뇨가 없다고 진술했기 때문에, 원인 모를 고혈당이라 판단했습니다.”
“좋아. 그럼 일단 뭘 생각해야 할까?”
이현종이 발표를 끊고 물었다.
그것만으로도 긴장이 되는지 1년 차는 헉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이현종이 껄껄 웃었다.
“야, 진짜 양재원 교수는 발표 얼마나 잘하는데. 너 그 사람 이름 따서 지은 거 맞지?”
“그…….”
나잇대를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금세 알아차릴 수 있을 터였다.
양재원은 이제 막 마흔을 넘긴 사람 아닌가.
1년 차라고 해도 나이가 27 정도는 되는데, 중학생 이름을 붙이는 사람이 어딨나.
하지만 1년 차는 감히 그 이름도 드높은 석좌 교수에게 대들 수 없어 우물쭈물거리기만 했다.
답답해진 이현종은 손을 휘둘렀다.
“일단 답이나 해 봐. 뭘 생각해야 해?”
눈으로는 나머지 인원, 그러니까 2년 차, 3년 차들을 훑으면서였다.
여기서 눈을 피하거나 자신 없어 하는 놈이 있다면 안 될 일이었다.
기본적인 질문이었으니까.
다행히 답은 1년 차의 입에서 나왔다.
다만 녀석이 원래 알고 있던 건 아닌 듯했다.
답하기 전에 한번 3년 차의 얼굴을 바라봤다.
[미리 예상 질문을 뽑은 모양인데요?]
‘음……. 김석현. 세심한데?’
[그러니까요. 안대훈은 이수혁 팬클럽이 아니면 아예 챙겨 주질 않던데…….]
‘하, 그 자식은 열심히 하기는 하는데…….’
열심뿐 아니라 재능도 있었다.
당연한 얘기긴 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태화 의과 대학 출신인 동시에 태화 의료원에 남은 이들 아닌가.
누구나 어릴 때 수재 소리 한두 번쯤은 들어 본 인재들이란 얘기였다.
열심까지 낸다면 두각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다.
“급성 췌장염입니다.”
“음, 그럼 어떤 검사를 해야지?”
“우선…… 췌장염이 있을 시 올라갈 수 있는 효소인 아밀라아제와 리파아제를 검사합니다.”
“또?”
“복부 CT를 통해 췌장을 확인합니다.”
“그래, 이 케이스에서는 어떻게 했지?”
“어……. 담당의도 그렇게 판단했는지 검사가 나갔습니다.”
1년 차는 곧 화면을 넘겼다.
아밀라아제와 리파아제가 정상 수치 이상으로 올라가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췌장도 지저분해 보였다.
다행히 물리적인 폐색이나 덩이 또는 침윤이 보이진 않았다.
갑작스러운 고혈당이 있을 시 췌장암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얼마든지 다행이라는 말을 쓸 수 있었다.
‘아직 원인은 모르지만…… 머리 쪽이 아니라 꼬리 쪽에 있는 췌장암도 당뇨를 일으키지.’
[네, 침범한 범위에 관계 없이 그렇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췌장암에서 어떤 방해 요인을 발산하는지까지는 아직 연구 중이었다.
하지만 이미 발생하고 있는 현상에 대한 파악은 된 상황이었다.
실제로 췌장 꼬리 쪽 췌장암을 절제하고 당뇨가 호전되는 사례가 속속 발표되고 있었다.
“결과 급성 췌장염 소견을 보였습니다. 감염이 있는 경우 흔히 동반될 수 있는 소견으로 인슐린 보충 및 췌장 효소 보충 치료 시작했습니다.”
“음, 계속해 봐.”
아마 여기서 끝이었다면 애초에 의뢰가 오지 않았을 터였다.
중간에 변화가 있긴 했지만, 어찌 되었건 내과 전문의라면 어렵지 않게 파악 가능하고 또 대응이 가능했을 테니까.
“입원 7일째 당 조절도 잘되고, 혈액 검사 소견도 호전되었습니다. 엑스레이도 호전되었고 증상도 없어 경구약으로 교체한 후 퇴원하였습니다. 일 주 후 외래 경과 관찰을 했는데……. 환자가 유독 피곤해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이때 당 검사에서 이번에는 저혈당이 떴습니다.”
“그래, 그래서?”
“급히 인슐린 수치를 검사했습니다. 유지 치료를 위해 처방한 펜에 의한 부작용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상이었습니다.”
“그럼 뭘 생각해야 하지?”
“음.”
1년 차는 다시 한번 3년 차 김석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김석현은 여유로운 얼굴이었으나 고개를 내젓고 있었다.
마치 그건 네가 알아봤어야지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알아보지는 못했는지, 1년 차는 고개를 푹 하고 숙였다.
연말이라도 됐다면 이현종도 더 캐물었을 테지만 아직 4월이었다.
말이 1년 차지, 인턴 겨우 벗어난 놈이라는 얘기였다.
진짜 양재원이었다면 뭔가 좀 다른 모습을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평범한 1년 차라면 기대가 과했다.
‘그 양재원 교수조차 미친 스승을 만나서 꽃을 피웠단 얘기가 있지.’
해서 이현종은 2년 차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삭 하고 돌리는 것이 느껴졌다.
한심하단 생각에 혀를 차려는 찰나, 김석현이 손을 들었다.
“음, 알겠어?”
“아직 검사 결과가 없어서 의심하는 단계입니다. 다만 가능성이 큰 질환이 있습니다.”
“오, 뭐지?”
“유싸이로이드 신드롬(Euthyroid syndrome) 입니다. 환자는 기저 질환이 없었으나, 고령입니다. 거기에 폐렴과 더불어 급성 췌장염까지 앓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몸이 쇠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장기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오호.”
이현종은 물론이거니와 수혁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실제 수혁이 의심한 질환과 정확히 같아서였다.
게다가 아직 김석현은 모르겠지만, 수혁은 해당 2차 병원 과장으로부터 오늘 새벽 결과를 전달받았던 바 있었다.
갑상샘 호르몬이 떨어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갑상선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환자가 피로감을 호소한 것이 힌트입니다. 자세히 기록을 보니, 몸의 건조감도 호소했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갑상샘 기능 저하를 가리키는 소견입니다. 그렇다고 감염이 갑상선까지 번졌을 가능성은 적습니다. 그랬다면 다른 소견도 관찰되었을 겁니다.”
“오, 좋아. 계속해 봐.”
이현종은 사막에 오아시스라도 본 얼굴이 되었다.
수혁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만큼 똑똑한 노티는 오랜만이어서였다.
‘김석현? 이만한 놈이 어디 갔다 나타난 거야?’
왜 지난 2년간은 조용했을까?
뭐 그리 이상한 일만은 아니었다.
원래 저년 차일 때는 눈치 보느라 바빠 아무것도 못 하는 놈들이 있으니까.
“때문에 갑상선에 직접적인 타격 없이 전신 상태에 의해 발현되는 유싸이로이드 신드롬에 합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 좋아. 수혁아, 어떤 거 같아.”
“좋은데요? 논리에 빈틈도 없고……. 아주 좋습니다.”
“오늘 환자 온다고 했지?”
“네.”
“바이털 안 흔들리면 이 친구한테 하루 이틀만 보라고 해 보자. 어때?”
“네, 상황 봐서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기대가 되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