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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436화 (436/1,303)

436화 와 몰려든다 (4)

다음 날 수혁은 눈을 뜨자 마자 오피스텔에서 센터로 달렸다.

원래 같았으면 이런 날은 그냥 당직실에서 잤을 텐데, 간밤에 하도 이현종, 신현태가 밥 먹자고 졸라 대서 어쩔 수가 없었다.

어디 맛집에 갔다면 그래도 당직방으로 들어왔을 터였다.

하지만 어제 저녁은 오피스텔에서 먹었다.

‘와 여기 진짜 좋다.’

‘그렇지? 어지간한 식당보다 전망이 좋다니까.’

원장과 센터장은 연신 수혁의 집 창밖에 비치는 풍경을 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오버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수혁이 생각하기에도 이곳의 전망은 장난이 아니었으니까.

청담이 내려다보이는 곳이라니.

제아무리 수혁이 최연소 교수가 되었고 또 거들다를 통한 가외 수입이 있다고 해도 알 막툼 왕자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터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매주 오시냐.’

[집에 초대도 하잖아요.]

‘그거야 그렇긴 하지. 신현태 교수님 집 가 보면 결혼하고 싶어지긴 하더라.’

[그건…….]

‘이런 말 하는 데 말 줄이지 마. 상처받아.’

[그건 안 됩니다.]

‘이놈이?’

[말줄이지 말래서, 줄였던 말을 한 겁니다.]

‘하.’

둘이 오는 게 그리 성가신 일은 아니긴 했다.

어차피 수혁에게 친구나 가족이라 해 봐야 이현종, 신현태에 조태진 정도까지나 한계였기에 그랬다.

안대훈이나 우하윤도 가까운 사이긴 했지만, 집에 부르기엔 조금 꺼림칙했다.

특히 안대훈은 무슨 짓을 할 지 알수가 없었다.

병원에서조차 시도 때도 없이 수멘, 수멘 하는 놈이지 않은가.

‘아무튼, 가자.’

[네.]

수혁은 조금 늦은 만큼 서둘러 걸었다.

그래 봐야 이른 시간이었다.

아직 7시도 안 되었으니까.

센터 내 병실 환자가 없었다면 아무도 없었을 시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누군가 스테이션에 앉아 있었다.

김석현이었다.

“응?”

“아,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와……. 일찍 왔네.”

“아닙니다. 환자가 신경 쓰여서요.”

“좋은 태도네.”

사실 환자가 신경 쓰인다기보다는 평가하는 수혁이 신경 쓰인다는 느낌이었지만.

하여간 수혁은 좋게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유가 뭐가 되었건 간에 열심히 하는 건 좋은 일이니까.

[그건 스스로에 대한 변명일까요?]

‘닥쳐.’

수혁은 자꾸 끼어드는 바루다를 조용히 시킨 후, 컴퓨터를 향해 걸었다.

예상대로 김석현 앞에 놓인 모니터엔 환자 검사 결과들이 주르륵 놓여 있었다.

원래 있던 병원에서 시행했던 검사 결과도 스캔 형식으로 떠 있었다.

“어디 볼까.”

“네.”

수혁은 자연스럽게 옆자리에 앉았다.

김석현은 수혁이 보기 편하도록 다시 스크롤을 위로 올렸다.

덕분에 수혁은 첫 검사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음……. 소디움(Na) 농도가 떨어져 있네.”

“네, 눈에 띄게 떨어져 있습니다.”

“백혈구는 엄청 떴고……. crp(급성염증지표) 얼마야?

“잠시만요. 아까, 아. 네. 28.2입니다.”

“와.”

crp의 정상 수치는 0.3 이하.

28.2라는 건 엄청나게 높은 수치란 얘기였다.

꽤 급성기에 왔다는 얘기도 되었다.

어쩌면 치료를 하면서도 악화될지도 몰랐다.

원인을 모르고 하는 치료는 마치 눈을 감고 내지르는 주먹과 같아서, 이길 확률이 무척 낮았다.

다행히 현대 의학에는 경험적 치료라는 게 정립되어 있어 주먹을 어디로 어떻게 내지르면 된다는 교본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일반적인 경우에나 해당되는 얘기였다.

“환자 바이털 어때?”

“어제보다 산소 요구량이 올라갔습니다. 산소 5리터 마스크로 변경했습니다.”

“다른 병실 환자들은?”

“1호실 환자는 그래도 좀 괜찮은데…… 3호실 환자는 오늘 삽관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6리터 주고 있습니다.”

“음, 이런.”

불행히도 이번엔 일반적인 상황이 아닌 모양이었다.

경험적 치료는 거의 먹혀들지 않았고, 환자들은 속절없이 악화되고 있었다.

수혁은 자연스레 환자들에게 들어가고 있던 항생제를 떠올렸다.

‘처음엔 세프트리악손(Ceftriaxone: 3세대 세파계 항생제) 썼다고 했지?’

[네. 지역사회성 폐렴이라고 판단했다면 나쁜 선택은 아닙니다.]

‘근데 하나도 안 먹혔어.’

[네. 정확히 항생제 들어가고 48시간이 지나고 반응이 없어서 타조신으로 변경한 이력이 있습니다.]

‘근데 여전히 비슷하지?’

[네.]

‘음. 바이러스일까?’

[현재로서는 가능성 있는 얘기입니다.]

타조신이면 그래도 꽤 역가가 있는 항생제 아닌가.

원내 감염이라고 해도 써 볼 만한 항생제이기도 했다.

한데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세균이 아닐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얘기가 되었다.

“잠깐 이 환자 간 수치도 살짝 떴네?”

“아……. 네. 아주 높지는 않습니다.”

이미 수혁은 김석현에게 하루 이틀가량 맡겨 두겠다는 다짐은 잊은 지 오래였다.

바이털이 흔들리는 순간, 그런 건 아무 의미 없었다.

교육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환자 생명보다는 아니니까.

김석현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지 수혁의 말에 적극적으로 노티 했다.

“아니지. 수치 자체는 중요한 게 아냐. 경향이 더 중요해. 이 환자 전에 병원에서 시행한 검사 보면……. 이때는 정상이잖아.”

“아.”

“거의 정상이라고 해도 오르고 있어. 이건 중요해.”

“아, 네.”

수혁은 설명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인은 낮아졌네?’

[네. 음……. 랩이 좀 이상하네요? 급성 폐렴에서 간 수치가 뜰 수는 있지만, 일반적인 상황은 아닙니다. 게다가 이 환자는 아직 중환자실 케어가 필요할 만큼 상태가 악화되진 않았어요.]

‘문제 목록에 저나트륨혈증(Hyponatremia), 저인산증, 간 수치 증가 추가해 봐. 산소 요구량 오르고 있는 것도. 다른 환자도 이러면 꽤 중요한 단서가 될 거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혁은 이제 아예 김석현의 손에서 마우스를 빼앗아 든 참이었다.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환자가 나빠지고 있는데 정작 주치의인 자신은 파악이 전혀 되지 않고 있던 상황이라 그랬다.

물론 이렇게 되면 좋은 평가는 물 건너갈 수도 있겠으나, 혼자 쩔쩔매다가 사고 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환자를 잃는 건, 그 환자가 어떤 환자였던 간에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다.

이미 죽음이 확정된 시한부 환자라 해도 그랬다.

지금처럼 잘 활동하다가 갑자기 아파서 온 환자라면 더더욱 그럴 터였다.

“이 환자…… 음, 진행이 빠른데. 엑스레이도 확 나빠졌고. 산소 요구량…… 아, 이거 안 돼. 일단 이 환자는 삽관하자. 못 버텨, 이거.”

“아, 네.”

수혁은 그렇게 빼앗은 마우스로 다른 환자 차트를 뒤지다 몸을 일으켰다.

삽관이란 건 때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을 때가 많아서였다.

제때 중환자실 케어만 시작했어도 살릴 수 있던 환자를 일반 병동에 깔아 두다가 잃게 되는 경우가 꽤 많다는 건, 케이스 리포트들만 찬찬히 읽어 봐도 쉬이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해서 환자 파악하다 말고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김석현이 그런 수혁을 불러 세웠다.

“교수님.”

“응?”

“병실에 준비해 뒀습니다. 혹시 몰라서요.”

“오, 잘했어.”

산소 요구량 늘어나면서 언제든 삽관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 둔 탓이었다.

수혁은 진심으로 김석현을 칭찬한 후, 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말했던 대로 환자 머리맡에 삽관 기구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침대도 벽에서 조금 떨어져 있었다.

뭔 일 나면 바로 꽂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단 얘기였다.

‘다 잘했는데.’

[아쉽군요.]

문제가 있다면 지금이 바로 뭔 일 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이것도 제때 잡아냈다면 정말이지 기탄없이 칭찬이 튀어 나갔을 텐데.

수혁은 산소가 6리터나 들어가고 있음에도 갈비뼈 사이의 부속근까지 쓰고 있는 환자를 확인하고는 즉시 환자 머리맡으로 이동했다.

그제야 김석현도 이상함을 눈치챘다.

“아, 이거.”

“포화도가 유지된다고 해서 괜찮은 게 아냐. 지금 이 환자 호흡 노력이 거의 한계점이야.”

수혁은 후두경을 쥔 채 말했다.

속으론 확실히 신설 센터라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였다.

‘간호사들이 대부분 신규지.’

아마 시니어급이 있었다면 이걸 그냥 두고 보진 않았을 터였다.

중환자실에 있던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었다.

그들은 베테랑이니까.

수혁이야 해당 사항이 없었지만, 레지던트 중에는 조언을 듣는 사람도 꽤나 있을 정도였다.

‘이따 아빠 오면 요청해야지.’

수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헐떡이는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후두경을 쥔 손을 그대로였다.

김석현이 다 애가 탈 지경이었다.

“교, 교수님?”

얼른 안 꽂고 뭐 하느냐 뭐 이런 뜻이리라.

하지만 수혁은 좀 더 기다렸다.

“후……. 후…….”

환자가 완전히 의식을 잃기를 기다렸다.

그리곤 환자가 헐떡이던 숨마저 놓친 채 온 몸의 힘이 빠지고 나서야 움직였다.

“진짜 급할 땐 지금 넣어야 오히려 사고가 안 나. 근이완제니 뭐니 넣을 타이밍을 놓쳤잖아.”

“아…….”

“의식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넣으면 발버둥 친다고. 자, 봐. 쑥 들리지? 의식이 있으면 이게 안 돼.”

환자의 힘이 빠진 탓에 후두경으로 혀를 밀어내는 것도 수월했다.

그 뒤에 위치한 후두개 또한 한 번에 제꼈기에 한눈에 성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은 순식간이었다.

“청진해 봐.”

거의 눈깜짝할 사이에 삽관을 완료한 수혁은 놀란 눈만 끔뻑이고 있는 김석현에게 청진을 요청했다.

그나마 3년 차라 짬빱이 있어서 그런가 김석현은 금세 몸을 놀렸다.

“제대로 들어갔습니다.”

“좋아. 중환자실로 옮기자.”

“센터 내요?”

“아니, 여긴 아직이야. 인력이 없어서…….”

“아, 네. 아까 전화는 해 놨습니다.”

“잘했어.”

수혁이 다시 모니터 앞에 앉은 건 환자를 중환자실에 옮기고, 다른 환자들도 육안으로 확인한 다음이었다.

다행히 한 명 말고는 아직 바이털은 괜찮았다.

“다시 볼까.”

“네.”

중환자실로 간 환자라 그런지 랩이 더 안 좋았다.

특이한 것은 저나트륨혈증, 저인산혈증 그리고 간 수치 상승 또한 비례하게 안 좋아 보였다는 점이었다.

이것만 해도 느낌이 딱 왔지만, 수혁은 섣불리 판단하는 대신 다른 환자 하나를 더 살폈다.

이 환자에서는 간 수치 이상이나 저인산혈증은 관찰되지 않았다.

하지만 저나트륨혈증은 있었다.

“음.”

알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루다 또한 그랬다.

[이제는 꽤 드물어졌는데……. 전형적인 거 같죠?]

‘응. 문진까지 해 봐야 알겠지만, 거의 뭐……. 확실해 보여. 엑스레이 소견이나 증상 경과 등 다 비슷해.’

[네, 저도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좋아.’

반면 김석현은 벌써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수혁을 보며 긴장했다.

‘아무리 봐도 뭔가 알아내신 거 같은데?’

교수니까 자기보다 잘 알고 잘 하는 건 당연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금방 안다고?

‘아……. 이거 설마 엄청 쉬운 케이스…… 아닌데? 2차 병원 과장도 전문의였는데?’

대체 뭘까.

역시 안대훈 말대로 이 사람은 괴물 아니, 신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수혁이 다시 병실로 향했다.

김석현은 부리나케 그의 뒤를 따랐다.

어쩐지 한마디도 놓쳐선 안 될 거 같단 느낌이 딱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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