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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438화 (438/1,303)

438화 와 몰려든다 (6)

말을 해 놓고서도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수혁이 비록 태화 의료원의 교수긴 하지만, 밖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아닌가.

[그걸 이제 아셨습니까.]

‘음.’

바루다 또한 언제나처럼 수혁을 지지하지 않았기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응?”

그러자 늘 수혁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던 이현종이 다가왔다.

그 또한 여러 병원에서 여러 케이스를 받은 몸이지만, 이미 해결을 본 참이었다.

시간이 있다는 얘기였다.

“왜, 무슨 일인데. 말해 봐.”

고개를 돌려 보니 과연 한가해 보이긴 했다.

이현종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면 속을 털어놓지는 않았을 터였다.

신현태 정도가 아니라면 비웃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상대는 이현종이었다.

무슨 얘기라도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게, 제 환자 중에 레지오넬라 의심되는 환자가 있어서요.”

“레지오넬라? 아니, 요새도 그런 게 있냐? 외국인이야? 아니면 외국 살다 왔나?”

아, 아뇨.”

레지오넬라 감염증은 오염된 물을 매개로 일어나는 감염증이지 않은가.

아직 대한민국이 개발 도상국에 머물러 있을 때야 심심치 않게 해당 감염증을 볼 수 있었지만, 이젠 아니었다.

가정집에서도 자체적으로 관리를 잘 하는 편이지만, 다중 이용 시설은 아예 법적으로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취약한 이들이 주로 오는 요양원이나 병원 등은 아주 엄격했다.

해서 이현종에게는 거의 잊혀진 질환처럼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실은 이게…….”

“엉? 도박장?”

“너무 크게 말씀하진 마시고요. 병실에 있어요, 환자 셋이나.”

“도박장……. 어, 그럼 가능성이 있겠다. 거기 뭐 관리가 되겠니. 에어컨 틀어 주는 게 어디냐고 할 텐데.”

“그렇죠. 그래서 말인데, 이제 날씨가 더워지잖아요. 그럼…….”

“아이고, 환자 늘겠는데. 21세기에 대한민국 정도 되는 나라에서 이러면…… 나라 망신이지.”

한때는 대한민국에 대한 국제적인 시선이 개발 도상국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어디 가서 우리나라는 아직 후진국이죠 하면 진짜 후진국 사람들에게 돌 맞을 지경이지 않은가.

우선 칠성, 태화 그리고 아선이라는 굵직한 기업이 있는 나라인 게 컸다.

그런데 이제 와서 레지오넬라가 유행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끼리 감염이 되진 않으니, 외신에까지 퍼지진 않겠지만.

적어도 학계에서는 대한민국 내과는 뭐 하는 놈들이냐는 말이 나올 공산이 컸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는데……. 방법을 모르겠어서요.”

“음.”

수혁의 말대로 해결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방법을 모르겠는 건 이현종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현종은 잠시 침음을 흘리다 수혁을 바라보았다.

진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수혁은 기대를 품은 얼굴로 이현종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망할?’

수혁을 양아들로 품게 되면서, 지금 실제로 법적으로도 진행 중이니 더 이상 과장도 아니게 되었다, 다 좋은데 아쉬운 게 한가지 있었다.

잘나도 너무 잘난 놈이라 도움 줄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이런 눈빛을 받게 되는 게 아주 드물다는 얘기.

자연히 이현종의 마음속에선 어떻게든 여기서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고 있었다.

‘위치가 오산……. 거기 내가 뭐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지.’

가 본 적도 없는 동네였다.

말 그대로 의학과 함께한 지난 세월이지 않은가.

해외여행은커녕 국내 여행 또한 학회 아니고서는 가질 않았다.

병원과 집 그리고 골프장 정도가 그가 가는 모든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도 방법이…… 없나?’

이럴 줄 알았으면 모임에도 좀 나가고 하는 건데.

사실 태화 의료원 원장이라고 하면 어딜 가도 환영받을 수 있는 위치였지 않은가.

경찰서장이고 검사고, 국회의원이고 간에 원장과 연줄 하나 정도는 만들고 싶어 했다.

급할 때 원장한테 직통 전화 하나면 갑자기 의사들이 뛰어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였다.

하지만 이현종은 애초에 그런 걸 별로 즐기는 위인이 아니지 않은가.

해서 소위 고위층이라고 분류되는 이들하고의 친분은 전혀 없었다.

‘아니지, 이제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하나 있었다.

바로 김다현 사장.

물론 무턱대고 전화한다고 받아 줄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친분은 분명히 있었으나, 김다현은 뼛속까지 경영인이지 않은가.

뭔가 받으려면 줄 게 있어야 했다.

‘음, 좋아. 논리가 있다.’

다행히 이현종은 머리가 아주 좋은 인간이었다.

불과 몇 초 지나지 않아 대강의 스토리를 짜낼 수 있을 정도였다.

워낙에 머리 굴리는 직업에 있었고, 그중에서도 내내 톱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어, 전화하시게요? 오산 경찰서장?”

“응? 아니. 경찰 쪽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겠니?”

“아뇨, 없을 거 같아요.”

“그래.”

전화기를 빼 들자, 수혁은 대번에 경찰서장부터 떠올렸다.

하지만 이현종은 고개를 내저으며 김다현에게 걸었다.

“네, 센터장님.”

얼마 지나지 않아 김다현이 전화를 받았다.

운이 좋았다.

김다현은 워낙에 바쁜 사람이었으니까.

최근 바이오 쪽이 국가적으로도 대세 산업으로 떠오르면서 더 그렇게 된 참이었다.

“아이고, 사장님.”

“어쩐 일이시죠?”

“아, 네. 수혁이가 오산 의료원에서 환자를 몇 받았는데 말입니다. 그게.”

이현종도 그러한 사실을 잘 알았기에 그렇지 않아도 그리 길지 않은 얘기를 더욱더 축약해서 빠르게 떠들었다.

이현종의 요약도 썩 훌륭한 편이었고 동시에 김다현도 똑똑한 인간이었기에 몇 문장 듣지도 않고서 전말을 파악했다.

“음, 그러니까…… 의사가 진료하면서 도박 일당을 잡아내고 또 감염병 예방까지 했다, 뭐 이런 스토리죠?”

“네.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태화 이미지가 중요한 시점이잖아요? 칠성하고 아선이 무섭게 따라오는데……. 이런 게 쌓이면 크게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통합 진료 센터 홍보도 되고요.”

“그렇죠.”

김다현이 보기에도 좋은 계획이었다.

이 좋은 머리를 원장 할 때도 좀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냐, 지금 쓸 만한 장기말이 되어 준 게 오히려 잘된 일이지.’

아마 그때 지금처럼 활약했다면 상대적으로 후임자인 김다현의 빛이 덜했을 터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김다현은 이현종이 던져 준 원석을 잘 깎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지금 아이디어도 좋은데, 저희 팀에서 작업하면 더 좋게 나올 거 같네요.”

“아, 그럼?”

“진행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태화 의료원이 잘되고 센터 잘되면 저에게도 좋죠.”

김다현은 전화를 끊자마자 비서진을 돌아보았다.

모두 전자에 있을 때부터 따라온 이들이었다.

그만큼 충성도도 있고 능력도 있는 사람들이란 얘기였다.

원래 시간이 지나면 빛이 바래기도 하겠으나, 이들은 해당 사항이 없었다.

남지연 사장의 영전을 두 눈 똑똑히 본 까닭이었다.

“할 일 생겼어.”

“네!”

적어도 김다현은 토사구팽하는 위인은 아니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능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면 가차 없이 끈이 잘려 나가긴 했지만.

직장은 학교가 아니지 않은가.

능력에 따라 의리를 지켜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할 만할 일이었다.

“어때, 재밌겠지?”

“네, 사장님.”

해서 김다현이 해 주는 말을 단 한마디도 흘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듣다 보니 확실히 그럴싸한 그림이 한눈에 그려지기도 했다.

과연 능력 있는 윗사람을 모시고 있는 건 좋은 일이었다.

다른 사장단 비서진들은 되도 않은 일에 매몰되어 가지고 있는 능력의 반의반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아니, 그 정도면 양반이었다.

어떤 비서진들은 사장이 싸지른 똥 치우느라 일신에 피해를 입기도 했다.

“그럼 진행시켜.”

“네.”

그에 비해 이미 청사진이 대강이라도 그려진 일을 하는 건 쉬운 일이었고, 동시에 재미난 일이기도 했다.

일반적인 회사원들이 하는 일과는 동떨어진 일이긴 했지만.

그만큼 다른 경험치가 쌓이는 일이기도 했다.

‘사장이 되려면 시야가 트여 있어야 해. 작은 거보단 큰일에 집중해. 어차피 당신들 작은 일에서 두각 나타내서 여기까지 온 거야. 그건 그만하면 됐어.’

비서진들은 언젠가 김다현 그리고 영전한 남지연 사장이 해 준 얘기를 떠올리며 후다닥 흩어졌다.

이현종과 수혁이 그 일의 성과를 보게 된 것은 불과 이틀 정도 지난 후였다.

약이 제대로 들어간 덕에 환자들의 상태가 현저히 좋아지게 된 후이기도 했다.

“어때요?”

“아이구, 이젠 숨도 안 차고 좋습니다.”

중환자실에 간 환자는 아직 고비를 넘기는 중이긴 했다.

원래 노령 인구에서 폐렴 치료는 때가 가장 중요해서였다.

일단 삽관을 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환자 개인의 면역력을 비롯한 각 장기의 기능이 중요했다.

의사가 해 줄 일은 그 환자가 버틸 수 있도록 보조해 주는 일에 불과하단 말조차 있을 지경이었다.

그나마 이건 바이러스가 아니라 균이라 약이 들어가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환자를 잃을 수도 있었다.

“때가 어느 땐데 사설 도박장을 가고 그러냐. 차라리 강원랜드를 가지.”

이현종은 일반 병실에 갔다가,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를 보곤 혀를 찼다.

기저질환도 딱히 없던, 이런 일만 아니었으면 건강하게 오래 살았을 양반이 누워 있으니 안타까울 만도 했다.

특히 이현종과 나이가 비슷해서 이현종이 느끼는 감정은 조금 복잡했다.

“강원랜드……. 거기 재밌죠.”

“응? 너 가 봤어?”

“학회 차 갔죠. 10만 원 썼나?”

“아, 그렇게. 그래, 그렇게만 해. 도박은 안 돼. 거기 어디냐……. 어, 그래. 우리 정신과에 박준 교수 알지?”

“알아요. 해외 연수 가셨다더니 안 돌아오시네요?”

“그 양반 그거 연수가 아니라……. 도박 중독돼서 지가 강원래드 출입 금지 신청했거든? 그래 놓고 지금 어디 갔는지 알어?”

“모르죠.”

“마카오 갔어. 도박 중독이 그렇게 무섭다. 아무리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해도 분수가 있지. 정신과 교수가…… 그것도 알코올 중독 보던 사람이 도박 중독이라니 말이 되냐.”

둘은 그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센터 내에 들어섰다.

센터 지키라고 남겨 둔 레지던트 몇몇이 TV를 보고 있었다.

심지어 3년 차 김석현도 끼어 있었다.

이현종은 당연히 화를 냈다.

“야, 근무 시간에…… 할 거 없으면 공부라도 해야지!”

“죄, 죄송합니다. 태화 얘기가 나와서요.”

“뭐 전자? 거기랑 우리가 뭔…… 응? 우리 병원 얘기네?”

그러다 TV에서 태화 의료원 얘기가 나오고 있다는 걸 확인한 이현종은 언제 화를 냈냐는 듯한 얼굴을 한 채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레지던트가 앉아 있던 자리였기에, 누군가는 일어나 자리를 비켜야만 했다.

“넌 눈치가 없니, 다리가 없니.”

그리곤 옆에 있던 레지던트도 비키라 했다.

수혁이 앉을 자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미안해했겠지만, 수혁도 부센터장이 주는 뽕에 취한 참이었다.

“어, 고맙다.”

“네.”

“뭔 내용이지? 꽤 오래하는 거 같은데.”

해서 고맙단 말만 하고는 TV에 열중했다.

마침 수혁의 이름이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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