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9화 뜬다 통합진료센터 (1)
“오산 인근 비닐하우스에서 수도권 최대 규모의 불법 사설 도박장이 적발되어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경찰 발표에 따르면 도박장 내에서 마약류로 보이는 약물도 다량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상습 출입자 중 유명인도 끼어 있다는 보고도 있는데요. 이름이 밝혀진 유명인 중엔 유명 아이돌로 C군도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수사 과정에도 흥미로운 점이 있어 누리꾼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아직 어디에도 보도되지 않은 내용이었다.
태화 바이오에서 선이 닿는 언론에 흘린 내용이니 당연했다.
그러니 누리꾼의 관심이고 나발이고 아직 전혀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딱 듣자마자 관심이 생겨서였다.,
불법 도박에 마약 거기에 유명인.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기엔 너무 자극적이었다.
“어유, 빡세다.”
“그러니까요. 이거…….”
“어, 맞아. 근데 조용히 하자.”
“아, 네.”
이현종과 수혁도 전공의들이 왜 넋을 놓고 보고 있었는지 딱 이해가 갔다.
아마 태화 의료원 얘기가 없었다고 해도 들여다보고 있었을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심심한 병원에서 이만큼 재밌는 얘기는 드물 테니까.
“조금 엉뚱한 얘기 같은데,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 이수혁 교수가 아주 커다란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의료원 교수요? 의사가 이 사태를 알아냈다는 말입니까?”
“네. 레지오넬라라는 균을 혹시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
뉴스는 전통 방식, 그러니까 앵커가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몇몇 패널들과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하도 채널이 많아지다 보니 뉴스조차 시청률 경쟁이 필요해져서 이랬다.
방송국 입장에서야 이러한 일이 달갑지 않겠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좋았다.
전달이 생생해서였다.
“아뇨, 처음 들어 보는데요?”
“그럴 겁니다. 특히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생소한 균이 되었어요. 이 균은 오염된 물을 매개로 전염이 되는 병이거든요.”
“아……. 이제 우리나라에서 오염된 물을 사용하는 일이 적어져서일까요?”
“네, 그렇습니다. 특히 다중 이용 시설에서는 규제가 엄격해져서 아예 없다고 단언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불법 도박장에서는 그렇지가 않겠죠.”
“아……. 그럼 이수혁 교수님이 이 레지오넬라 감염병을 진단하고, 과정까지 유추했다는 말씀일까요?”
약간은 논리의 비약이 있었다.
하지만 앵커가 연기자 출신인지 뭔지 워낙에 자연스럽게 떠들어 재끼는 바람에 시청자들은 속아 넘어갔다.
광고비가 뭔지.
앵커조차 연기를 해야만 했다.
확실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힘은 무서웠다.
앵커는 김다현 이사장으로부터 직접 내려온 지시라는 걸 상기하면서 다시 한번 입을 놀렸다.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한데요? 이수혁 교수라는 이름이 익숙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작년 수도권 내 병원 집단 감염 사태를 조기에 진단하고 진압했던 젊은 의사 아닌가요?”
그 와중에 방송국에서 정식으로 수련 받은 사람답게 전달력도 좋았다.
길기도 하거니와 발음하기 쉽지도 않은 대사를 터는 데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네네, 그렇습니다.”
상대역을 맡은, 예방의학과 교수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태화 의료원 사람이 나오면 너무 티가 날까 봐 다른 곳에서 캐스팅한 모양이었다.
이현종도 이수혁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오산에 있는 환자가 태화 의료원에 왜 갔을까요?”
앵커는 그런 교수를 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카메라 돌기 전에 몇번 말을 맞췄나 싶을 정도로 합이 잘 맞았다.
“둘 다 배우 아닌가?”
“그러게요.”
자초지종을 대강이나마 알고 있는 수혁과 이현종이 보기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말 하나하나에 의도가 느껴지는데, 그게 워낙에 자연스러워서 내막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절대 눈치채지 못할 거 같았다.
“태화에서 운영 중인 통합진료센터 때문입니다.”
“아, 그게 뭐죠? 처음 들어 보네요? 검진센터도 아니고.”
“네, 세계 최초로 도입된 시스템입니다.”
“세계 최초요? 요새 태화에서 세계 최초로 뭘 많이 하네요.”
이번엔 좀 태화 스폰을 받은 게 티가 나는 발언이었지만.
시청자들이 용인해 줄 정도는 되었다.
말이 빠르기도 하거니와 흥미로운 내용이기도 해서였다.
“아, 속보입니다. 배우 L양도 연루되어 있다는 소식입니다.”
심지어 대화 중간중간 현장에 나간 기자를 연결해 이런저런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누가 연루되었다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발견된 마약이니 돈뭉치니 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보여 주고 있었다.
“아까 어디까지 했죠?”
“통합진료센터를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는 부분까지 했습니다.”
“아, 그렇지. 네, 그게 뭔가요?”
“이수혁 교수와 이현종 교수를 주축으로 만들어진 센터입니다.”
“이수혁은 그래도 이름이 익숙한데……. 이현종 교수는 누구죠?”
앵커의 질문에 이현종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그래도 학계 내에서의 명성은 둘이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지 않은가.
그 웃음소리에 전공의들은 저도 모르게 눈치를 살폈다.
혹 화가 났나 해서였다.
하지만 이현종은 화가 난다기보다는 그저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김다현이…… 진짜 내 속을 잘 아는구만.’
상대가 다른 놈이었다면 화가 났겠지만.
수혁은 아들이지 않은가.
그냥 아들이 아니라 어지간한 친아들보다 더 이뻐하는 양아들이었다.
수혁을 띄우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발판이 되어 줄 수 있었다.
게다가 이현종의 업적은 누가 까내린다고 내려갈 수 있는 수준도 아니었다.
“아, 네. 이현종 교수는 심장내과 교수로 세계 최초로 좌전동맥 경색에 대해 관상동맥중재시술을 시도했고, 완성한 의사입니다. 세계 심장 학회 학회장도 역임했고, 아시아 태평양 학회 학회장도 역임했습니다. 태화 의료원 전임 원장인 동시에 석좌 교수이기도 하고요.”
방송국에서도 딱히 그럴 생각은 없던 모양인지, 이런저런 사진 자료들이 휘리릭 지나갔다.
개중엔 이현종조차 기억에서 잊고 있던 사진도 있었다.
“아니, 저건 어디서 구했대?”
“상 받으실 때죠?”
“어. 하도 많이 받아서 뭔 상인지는 모르겠다.”
“아, 네.”
애매한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면야 코웃음이 절로 나왔을 터였다.
이미 수혁은 이현종을 제외한 모든 교수의 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아니, 아빠라는 자각 때문에 마음에 걸려서 그렇지, 어찌 보면 술기 말고는 이현종조차 수혁보다 지식의 폭이 좁을 터였다.
하지만 상대는 이현종, 태화가 자랑하는 월드 스타였다.
말 그대로 너무 많은 상을 받았을 터였다.
“와……. 엄청나네요. 네, 그 두 의사를 주축으로 해서 각 과와 병원에서 해결 불가능한 환자들을 받아 진단하고 치료하는 센터가 바로 통합진료센터입니다.”
예방의학과 교수는 상기된 얼굴로 주어진 대사를 읊었다.
분명 딴 대학 교수일 텐데 여기서 태화를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띄워 줘도 되나 싶을 지경이었다.
‘알아서 하시겠지.’
[네, 어른들의 사정이 있겠죠.]
수혁은 애써 이해하려 애쓰며 TV를 바라보았다.
“아……. 그게 가능한가요?”
“그렇지 않아도 세계 최초로 시도 되는 일이라 우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보십쇼. 환자의 경과를 보면…… 일단 기침, 오한 및 숨찬 증세로 오산 의료원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오산 의료원에서는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비슷한 환자가 셋이나 있어 원내 감염을 의심했을 뿐입니다.”
“그걸 태화의 통합진료센터에서 받은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이상하네요. 제가 알기로 어려운 환자일수록 잘 안 받으려고 한다던데요?”
앵커의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교수가 직접 연락을 받은 경우라면 오히려 더 받으려고 했다.
태화, 칠성, 아선 급에 있는 교수들은 정말이지 보통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랬다.
다들 호승심이 있다고 할까? 하여간 그랬다.
하지만 그 외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리는 경우엔 정반대의 결과를 나았다.
우선 전공의들은 어려운 환자가 오면 고생만 하지, 하나 좋을 게 없어서 거부하려 애를 썼고 원무과도 마찬가지였다.
환자가 어렵다고 돈을 더 버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 약은 왜 썼고 이 처치는 왜 했는지 추궁만 당할 게 뻔해서였다.
“태화의 통합진료센터는 정반대입니다. 어렵지 않으면 안 받는다고 하더군요.”
“오……. 공익적인 목적이 있나요?”
“태화 의료원 자체가 태화에서 공익 추구 목적으로 지은 병원이니, 그럴 수밖에 없죠.”
“그, 그렇군요.”
이번 말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좀 심했다 싶었는지 앵커가 말을 더듬었다.
눈치 빠른 피디는 자료 화면을 잠시 보여 주었다.
언제 찍은 건지 몰라도, 통합진료센터 전경이 펼쳐졌다.
원래도 넓고 시설이 좋은 편이지만 사진은 더더욱 그렇게 보였다.
“포토샵을 했나.”
“렌즈가 다를 수도 있어요.”
수혁과 이현종이 이러쿵저러쿵 평을 하는 동안 안정을 취한 앵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산에서 환자를 보내고는 어떻게 됐나요?”
공익 운운하기 전에 다른 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예방의학과 교수도 이런 일 해 본 게 한두 번이 아닌지, 능숙하게 질문을 받았다.
아니면 자료 화면 나갈 때 살짝 합을 맞췄을 수도 있었다.
하여간 흐름은 자연스러웠다.
“오자마자 바로 다음 날 문진을 통해 환자가 레지오넬라 감염병인 것을 알아냈다고 합니다.”
“와. 드문 질환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렇죠.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이런저런 정황을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난 거 같습니다. 이전 집단 감염 사태 때를 생각해 봐도 그렇죠.”
“그렇군요. 그래서 바로 치료에 들어간 겁니까?”
“네. 보통 의사라면 그렇게 끝일 텐데, 이수혁 교수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자체적인 역학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그 결과 감염원이 도박장의 에어컨이었다는 걸 유추했죠.”
“와.”
“그걸 그냥 두면 날씨가 점점 더워질 테니 감염자가 늘 거라고 판단, 경찰에 신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마지막 말투는 무슨 이야기꾼 같았다.
약간 어색했다는 얘긴데, 별로 상관은 없었다.
이미 같은 내용을 방송 중인 방송국 유튜브 채널 댓글은 난리가 난 지 오래였다.
초반 댓글 작업도 먹혀들어서였다.
과연 태화가 진심으로 나서면 무섭기 그지없었다.
└진짜 천재네.
└인성도 좋은 듯? 보통 저렇게까지 하나?
└그러니까……. 아프면 태화 가야 될 듯?
중간중간 악플도 당연히 있기는 했다.
└언플 아님? 젊은 놈 같은데…….
└의새 띄워 주는 거 좀 역겨운데.
하지만 정말 일부일 뿐이었다.
대부분은 태화 및 이수혁에 대한 칭찬 일색이었다.
약간의 조작과 과장이 섞여 들어가긴 했지만, 실제로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지 않은가.
“오…….”
“지금도 환자 의뢰 꽤 오는데, 이젠 진짜 많이 오겠다.”
“네, 어쩌면 칠성이랑 아선에서도 보낼 수도 있어요.”
“응, 환자나 보호자가 원하면 지들이라고 별수 있나.”
“와……. 미쳤다. 언론의 힘.”
“정확히 말하면 태화의 힘이지만……. 뭐, 그렇지. 나 잠깐 감사 전화만 하고 올게.”
“네, 아빠.”
“그래,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