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40화 (440/1,303)

440화 뜬다 통합진료센터 (2)

이현종이 김다현 사장에게 전화를 걸러 간 사이, 수혁에게도 전화가 걸려 왔다.

번호가 네 자리인 걸로 볼 때 원내 번호인 것은 확실한데 병동 쪽은 아니었다.

‘뭐지?’

[일단 받아 보십쇼. 원내 번호는 씹고 그러는 거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알았어.’

어딘지 몰라도 급한 전화일 가능성은 늘 있었다.

병원이란 곳은 언제 어디서 누가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니까.

“네, 통합진료센터 이수혁입니다.”

해서 수혁은 신호음이 몇 번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곧 수화기 너머에서 아주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이수혁 교수님. 홍보팀 임형보입니다.”

“아, 네.”

다행히 수혁이 생각하는 쪽으로 급한 전화는 아니었다.

다만 홍보팀 입장에서는 다급하기 그지없는 전화인지, 쉴 틈 없이 입을 놀렸다.

“혹시 소식 들으셨는지 모르겠는데……. 지금 한국TV 쪽에서 뉴스가 났습니다. 저희 요청이 없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뿐만 아니라 당황도 한 모양이었다.

듣기 좋은 목소리로 더듬거리는데 조금은 우스울 지경이었다.

“아무튼, 그쪽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혹시 괜찮을까요?”

“어떤 내용일까요?”

수혁은 여전히 간간이 그의 이름이 흘러나오고 있는 TV 쪽을 힐끔 바라보고는 물었다.

대강 예상은 되었다.

다른 방송국도 아니고 한국TV 아닌가.

레지던트 때와는 달리, 이제는 나름 태화의 역량을 파악하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한국TV는 태화랑 엮여 있지.’

[네, 혼인 관계가 있습니다.]

재벌이나 언론이 서로 정략결혼을 통해 윈윈을 꾀하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의 일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선진국들일수록 재벌에 대한 규제가 철저했기에 이런 식의 꼼수를 썼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는데 우연히 기업 아들딸이라고 해서 서로 결혼도 못 하게 하는 법은 어떤 나라도 만들 수 없지 않겠는가.

당연하다는 듯 태화로 그런 짓을 한 지 오래였다.

“아……. 네. 그쪽에서는 이수혁 교수님의 활약상을 담고 싶다고 합니다. 레퍼런스로는…… 전에 집단 감염 사태 때 영상과 2주 전인가……. 전북대학교 공대 오한영 교수 인터뷰 영상을 주었습니다.”

“홍보팀 판단은 어떻죠?”

“한국TV가 일부 방송에서 지나친 표현을 쓰는 게 사실이긴 한데……. 뉴스만큼은 저희도 신뢰하고 있습니다. 나름 자존심을 지키면서 동시에 착한 편집을 한다고 할까요?”

“좋다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나가시길 추천드립니다. 아, 강요는 아닙니다. 바쁘시면 얼마든지 거부하셔도 됩니다.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하면 되니까요.”

정중한 홍보팀 직원 목소리에서 신뢰가 느껴졌다.

괜히 큰 병원의 홍보팀에 속한 게 아니란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수혁은 얼마 전 학회에서 참석했던 알럼나이, 즉 태화 출신 교수들이 모였던 자리를 떠올렸다.

태화 의과 대학이 역사가 깊은 만큼 태화뿐 아니라 다른 여러 대학에서도 활약하는 이들이 정말 많았다.

특히 내과는 더더욱 그랬다.

이현종이 자기 제자나 후배 중 싹수가 있다 싶으면 과하다 싶을 만큼 끌어 준 덕이었다.

‘아이고……. 저희는 행정직이 발목만 안 잡으면 좋겠다니까요. 저번에 연말 정산 때문에 얼마나 열이 뻗쳤는지……. 저는 그냥 따로 회계사분 하나 구해서 거기서 해요. 금액 차이가 10, 20 나면 모르겠는데 몇백이 차이가 나니까.’

‘연말 정산뿐이면 다행이지. 나는 명의 알지? 거기 나오라고 해서 일정 조율 좀 도와달라고 했더니 알아서 하라더라고, 그래서 알아서 했더니 딱 촬영 당일 갑자기 자기네랑 얘기 안 됐다고……. 와, 나 명의가 아니라 그알 나갈 뻔했어. 병원에서 사람 쳐서.’

다들 자기 입장에서 말하고 있는 걸 테니 조금은 감안해야 할 테지만.

본원, 그러니까 태화 의료원에 남은 이들은 그런 불평불만을 들으며 눈치만 살펴야 했다.

태화의 인력은 최고란 말이 찬사가 아닐 정도로 훌륭하기 때문이었다.

방해가 되기는커녕 뭔가 일할 때 일사천리로 된다는 느낌을 받기 십상이었다.

‘아니, 우리는…… 우리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라니까. 기부하겠다는 사람들한테도 일 처리를 이상하게 해서 마지막에 빠꾸 먹어. 아휴……. 시스템이 안 잡혀 있다는데. 뭐 사람이 없으니 이해하려고 해 봐도……. 아유.’

특히 기부하는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관리는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일정 금액 이상이면 어떻게든 원장단을 매치해서 인사 및 사진이라도 찍게 해 주었고, 주차권부터 각종 기념품까지 세심하게 챙겼다.

그뿐만 아니라 기부했던 금액이 어떤 환자에게 어떻게 쓰였는지에 대한 내역서도 나중에 송부했다.

괜히 태화에 한번 기부하면 딴 데는 못한다는 얘기가 나도는 게 아니었다.

‘그런 데에 비하면 우리는 진짜.’

수혁은 다행이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나가죠.”

“네, 교수님.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혹시 시간은 언제가 괜찮으실까요? 날짜를 몇 개 주시면…… 저희가 전달하겠습니다.”

“거기는 빨리 하길 원하지 않나요?”

“사실은 그렇습니다. 생방송이라도 편성할 기세입니다.”

“이게 그 정도로 이슈가 돼요?”

“그 아이돌 C랑 배우 L 모르세요?”

“모르죠.”

“아.”

홍보팀 직원 임형보는 진심으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아무리 의대 교수가 다른 교수들에 비해서도 바쁘고, 다른 의사들에 비해서도 바쁜 편이라고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라서였다.

‘C 나온 드라마가 이번에 시청률 25%도 넘었는데……. 배우 L도…… 영화랑 드라마 한두 개 나온 게 아닌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주 이해 못 할 일도 아니긴 했다.

원래 태화 의료원 교수 하려면 인생을 갈아 넣어야 하지 않던가.

가까이에서 본 교수들의 삶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다.

도리어 괴로워 보일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수혁은 두각을 나타내는 정도니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을까.

‘그래, 이런 사람 도우라고 우리 같은 사람이 있는 거지.’

홍보팀 직원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내에 머릿속을 정리하고 짤막하게 사태를 정리해 주었다.

“그 둘이 완전 국민 스타거든요. 다른 방송국에서도 후속 보도 엄청 나가고 있습니다. 한국TV 쪽 유튜브는 라이브 시청자가…… 지금 거의 10만 명도 넘고요.”

“와……. 10만명.”

“거기에 일조한 사람이 이수혁 교수님이니 평이 괜찮을 겁니다. 그 사람들 팬들은 욕할 수도 있는데, 대놓고는 못할 겁니다. 선 넘는 건 저희가 조치할 거고요. 아시죠? 저희 법조팀.”

“아, 알죠.”

태화 그룹 내에서 법조팀이 가장 유능한 곳은 당연히 전자긴 했다.

그쪽은 분쟁이 생겼다 하면 사이즈가 최소 수백억에서 많게는 조 단위까지 가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은 어디냐 하면 태화 의료원이었다.

규모로만 보면 다른 계열사들이 훨씬 컸지만, 의료 쪽은 소송 잘못 걸리면 병원은 물론이고 그 뒤에 있는 태화 쪽에도 워낙에 타격이 커서였다.

“그럼 주신 날짜 전달하겠습니다. 라이브는 괜찮다고 할까요?”

홍보팀 직원은 수혁이 건네준 날짜를 확인하고는 재차 물었다.

‘어쩔까?’

[제가 있으니 실수할 일은 없습니다. 무슨 말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1초만 입을 다무세요.]

‘오케이.’

라이브는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 해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긴장하면 헛소리하는 사람도 있고, 농담한답시고 분위기 싸하게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수혁은 아주 담담한 얼굴로 하겠다고 할 수 있었다.

바루다 덕이었다.

“네, 그럼 그렇게 알고 진행하겠습니다.”

“네.”

“혹시 응급 상황 발생하시면 바로 알려 주세요. 저희가 정리하겠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하는 일인걸요.”

수혁은 그렇게 전화를 끊고는 전공의들을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전공의들은 흥미롭기 그지없다는 얼굴로 수혁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심심한 병원 생활에 이런 뉴스가 병원과 연관이 되었다는 것만 해도 재미있는데, 심지어 교수가 TV에 나가?

게다가 분위기가 뉴스 스테이션에 나가기보다는 병원에서 찍을 거 같았다.

‘우리 뒤통수라도 나가는 거 아냐?’

‘오늘은 퇴근 안 해도 좋으니까…….’

아마 이미 전문의를 딴 애들이라면 이런 생각까지는 안 했을 터였다.

TV에 얼굴 비추는 일이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걸 알기에 그랬다.

물론 말도 안 하고 그냥 열심히 일하는 장면만 나가는 건 전혀 부담이 안 되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들뜨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레지던트들은 치프네 어쩌네 해 봐야 20대였고, 사회 경험도 적은 애들이었다.

수혁도 얼마 전까지 그랬던 몸이었기에 이해가 팍 갔다.

“뭐, 뒤에서 좀 얼쩡댈래?”

“네? 아, 네.”

“뭐라도 해야 멋있게 나갈 텐데?”

“그…….”

해서 이렇게 물었더니, 인턴이 손을 들고 나섰다.

“정 없으시면 제가 눕겠습니다.”

“환자복 입겠다고?”

“네.”

“그렇게…… 그렇게까지 할 일은 아닌데.”

“죄송합니다, 교수님. 제가 오버했습니다.”

“아니, 그렇게까지 할 일도 아니고.”

수혁은 과도하게 열심인 인턴을 향해 손을 내젓고는 김석현을 불러 대강 알아서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어, 수혁아. 김 사장님한테는 감사 인사했다.”

그사이 이현종이 돌아왔다.

“아, 아빠. 그렇지 않아도 인터뷰 하고 싶다고 연락 왔어요.”

“그래? 하겠다고 했어?”

“네. 오늘.”

“오늘?”

“네. 어차피 곧 6시고……. 환자 상태 다 좋아져서요. 중환자실 있는 환자도 내일모레 정도면 아마 위닝 가능할 거 같고요.”

“음, 하긴……. 오늘 받겠다고 한 환자들은 내일 온다고 했지?”

“네. 보호자들 설득 때문에요. 이거 뜨면 좀 낫겠죠.”

“음.”

이현종은 수혁의 말에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내 수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 새끼긴 하지만 꾸미지 않은 얼굴은 참 뭐라고 해야 할까.

‘수척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 그런 것도 아닌데.’

못생기지는 않았다.

이현종이 보기에만 그런 게 아니라 신현태나 조태진도 확인해 준 사실이었다.

물론 둘도 이현종 못지않게 이수혁 바보이긴 했지만.

하여간 못난 얼굴은 아닌데 애가 시간이 없어서 그런가, 뭔가 부족한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좀 그랬다.

“수혁아, 일단 출장 헤어 메이크업을 부르자.”

“네? 아니, 교수가 뭔…….”

“야, 기왕이면 보기 좋은 게 좋지. 예의야, 예의.”

“아빠……. 아니, 센터장님은 어디 나가도 안 하잖아요.”

“나랑 너랑 같니.”

“뭐가 달라요.”

“넌 왜 그렇게 편견이 없어. 60 넘은 아저씨는 어떻게 해도 소용이 없어요. 나 전에 화장했던 거 못 봤어? 자꾸 상처 줄래?”

“아.”

수혁은 참담했던 기억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어째 이것도 좀 상처가 되긴 했지만, 이현종은 애써 아들을 위해서라 되새김질하며 전화번호를 눌렀다.

‘와……. 내 전화기에 출장 헤어 메이크업 번호가 다 있네. 수혁아……. 내가 진짜…… 이렇게 변했다.’

이렇게 훌륭한 아빠란 생각이 들어 혼자 뿌듯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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