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1화 뜬다 통합진료센터 (3)
“안녕하세요, 이수혁 교수님. 인터뷰 요청 허락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현종이 어찌나 난리 법석을 쳤는지, 아니면 운이 좋았는지, 그것도 아니면 웃돈을 줬는지 몰라도 수혁은 아주 급하면서도 동시에 제대로 헤어 메이크업을 마칠 수 있었다.
막상 받을 때는 뭐 이렇게까지 하나 했는데 하고 나니까 확실히 다르긴 했다.
[역시 수혁은 천성이 사기꾼이네요.]
‘뭐, 뭔 소리야 인마. 지금 기자분 왔는데 당황스럽게.’
[얼굴 보세요. 말이 됩니까? 얼핏 보면 배우 닮았다는 얘기 나올 수도 있을 정도예요.]
‘오……. 내가 사실 본판이 생기긴 했지.’
[양심 어디 갔죠?]
‘장기 중에 양심이라는 게 있냐?’
[와……. 인간 맞나.]
수혁은 그중에서도 특히 메이크업발이 잘 받는 편이라 훨씬 나아진 것을 넘어 진짜 잘생겨 보이기까지 했다.
바루다가 요새 들어서는 실로 드물게 본격적으로 시비를 걸어올 정도였다.
당연히 한국TV에서 온 이들은 좋아했다.
이들도 기왕이면 잘생기게 나오면 좋다는 걸 알아서였다.
생각보다 외모가 시청자들에게 주는 영향이 크지 않던가.
“여기가 통합진료센터인 거죠?”
덕분에 기자는 꽤 밝은 얼굴이 되어 질문을 연발했다.
벌써부터 긴장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아직 카메라는 돌지 않았다.
“아, 네.”
“네네. 원래 제가 인터뷰하기 전에 질문을 좀 하는 편이에요. 그래야 하시는 분들이 자연스러워져서. 근데 이수혁 교수님은 경험이 좀 있으신가 봐요? 전혀 뭐 긴장하는 티가 안 나네요.”
“아……. 긴장할 만한 질문하신 게 아니잖아요. 하하.”
“말씀도 잘하시고…… 그럼 저희가 잠깐만 시간 주시면 화면 이쁘게 나올 만한 곳을 골라서 카메라 세팅만 하겠습니다.”
“아, 네네. 천천히 하세요.”
“아뇨, 아뇨. 바쁘신 분인데 서둘러야죠. 게다가 지금 어유……. 저희 채널 라이브 창 난리예요. 인터뷰 예고했더니 댓글이, 댓글이…….”
기자는 말한 것처럼 무척 서둘렀다.
이미 자료 화면을 제공받았던 적이 있어서 그런지 자리 잡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홍보팀에서 사람들이 나와 여기랑 저기 둘 중의 하나가 잘 나올 거라고 귀띔까지 해 줬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에 따라 레지던트들도 우르르 몰려서 배경처럼 서 있기를 자청했다.
그게 거슬렸다면 제아무리 커다란 고객사인 태화 사람들이라 해도 저리 비키라 했을 텐데 나름 모양이 나왔다.
‘뭐……. 병원은 바쁜 이미지 주면 좋지. 나름…… 머리 좀 굴렸네, 그리고.’
괜히 왔다 갔다만 하고 있으면 바빠 보인다기보다 할 일 없어 보일 수도 있을 텐데, 하필 카메라 잡히는 부근에 누군가 누워 있었다.
착각이 아니라면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의사 가운 입고 있던 사람이었다.
‘인턴인가?’
원래 하라고 하면 뭐든지 하는 존재가 인턴 아니던가.
여기 온 기자도 약 2년간은 경찰서 옆에 마련된 작은 방에서, 누렇게 뜬 베개와 이불 덮어 가며 버틴 적이 있어 느낌이 왔다.
‘중요한 건 인터뷰지. 알아보니까…… 진짜 대단하긴 한 모양인데.’
기자는 흐음 소리를 내며 수혁을 바라보았다.
얼굴 얘기는 별로 듣지 못했는데, 이렇게 보니 인물도 썩 괜찮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수혁이 지금껏 이루어 낸 성취들이었다.
의사라는 걸 감안했을 땐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시간 동안, 정말이지 수없이 많은 것들을 해낸 사람이었다.
논문도 그렇고, 진료도 그렇고 심지어 디지털 헬스 케어 기기도 개발해 로열티까지 받고 있다고 했다.
‘내가 또 그런 거 띄워 주는 거 전문이지.’
까내릴 대상이 있을 땐 야수의 심장을 가지고 덤벼드는 사람이지만, 누가 봐도 좋은 사람일 경우엔 정반대로 뛸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괜히 김다현 사장이 지금 이 기자, 김유나를 콕 집어서 보내 달라 한 게 아니었다.
“자, 그럼 여기 앉아 보실까요?”
“네. 여기 이렇게 앉으면 될까요?”
“네. 다리는 조금 더 오므리시는 게 좋을 거예요. 이게 실제로는 많이 안 벌린 거 같아도 화면에서 보면 도드라지는 경우가 많아요.”
“아, 네. 감사합니다.”
몇 마디 나눠 보니 전문가란 느낌이 딱 왔다.
해서 수혁은 말을 잘 듣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고르고 골라 보내 준 사람이지 않겠는가.
여차하면 바루다도 있으니 고민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럼 돌릴게요?”
“네.”
“시작할게요.”
기자가 수혁의 자세를 점검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앞에 있던 카메라 감독과 음향 감독 모두 부리나케 각자 들고 있던 장비를 돌리기 시작했다.
“카메라 롤.”
“사운드 스피드.”
업계 사람이 아니면 알아듣기 어려울 만한 말을 하면서였다.
“자, 이제 시작하면 됩니다.”
“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한국TV의 김유나 기자입니다. 아까 예고 드렸던 대로 태화 의료원 통합진료센터에 나와 있습니다. 옆에 계신 이분이 바로 이수혁 교수님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수혁 교수님.”
“네, 안녕하세요. 이수혁입니다. 통합진료센터 부센터장을 맡고 있습니다.”
“굉장히 젊은 나이신데, 부센터장이시라니 능력이 정말 좋으신가 봐요.”
“좋은 기회를 주셔서 최선을 다해 보답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수혁은 그야말로 청산유수였다.
바루다가 도와줘서는 아니었다.
도리어 바루다는 조금 놀란 얼굴로 비아냥거리고 있었다.
[역시 수혁은 이쪽으로 재능이 있어요. 의사가 아니라.]
그냥 수혁의 능력이었다.
80만 알지만 보이기는 120으로 보이는 능력.
바루다를 만나기 전에는 개화하지 못했던 재능이기도 했으나, 이후 자신감이 폭발하면서 동시에 꽃을 피운 능력이라고 보면 되었다.
“그렇군요. 이번 일도 연장선에 있다고 보면 될까요?”
“이번 일이라면……. 레지오넬라 집단 감염 사태를 말씀하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학계에서는 그렇게 명명하신 모양이군요. 일반적으로는 오산 사설 도박장 사건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거기에 마약까지 나와서 사회적으로 파장이 아주 크죠. 도박장을 운영하던 오산 까마귀파는 일반적인 하우스로 꾸미고 음료에 마약을 소량 타는 방식으로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등 악질적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입니다. 묻혔으면 얼마나 더 피해자가 생겼을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한창 진행 중인 사건인 데다가, 태화 측에서 태화 자체 정보력을 동원해 경찰을 돕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국정원보다도 정보력이 뛰어난 집단이라는 평이 있을 만큼 그 위력은 대단했다.
태화 바이오 사이즈로 움직일 수 있는 인력에는 분명 한계가 있음에도 그랬다.
“아, 그렇게까지 했습니까? 그건 저도 몰랐습니다.”
“네, 교수님께서 더 관심을 갖고 신고까지 해 주신 덕입니다.”
“하하. 저는 의학적인 생각만 했을 뿐입니다.”
수혁의 웃음소리는 참 듣기 좋았다.
[아우, 이건 좀 심했다.]
바루다가 툴툴거리면서도 톤 보정을 해 준 덕이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진심을 담으면서도 겸손해 보이는 미소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와 저 사람 똑똑한데 참 좋은 사람이기도 하구나 뭐 이런 생각을 품게끔 했다.
수혁은 그렇게 경계심을 한껏 풀어 젖힌 후 말을 이었다.
“그저 날이 더워질 텐데 에어컨으로 인한 감염이 시정되지 않으면 그때는 정말 죽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 역학 조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 마음가짐이 정말 대단합니다.”
“의사라면 누구나 했을 행동입니다. 하하.”
수혁은 바루다가 제발 그만 웃으라고 하는 걸 무시하면서 또 웃었다.
그런 수혁을 보면서 기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따로 코칭을 받았나? 질문으로 답을 유도할 필요가 없잖아?’
마치 연예계에 아주 오래 몸담은 톱스타를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톱스타는 종종 악역으로서 싸가지 없음을 탑재하고 나오지만.
실제로 마주하고 보면 그렇게 젠틀할 수가 없었다.
자기 언행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너무 잘 알기에 그랬다.
남들이 보지 않을 땐 어떨지 몰라도, 최소한 기자들 앞에선 세상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대체 레지오넬라? 그 감염병이라는 건 어떻게 알아낸 겁니까? 대강 취재를 통해 들었지만 잘 이해가 안 가서요.”
“아, 그거요. 사실은 별거 아닙니다.”
수혁은 여전히 좋은 사람 얼굴을 한 채, 그러나 확실하게 자신과 센터를 어필해 나갔다.
얼마나 잘 해냈냐면 뒤에 있던 이현종은 물론이거니와 소문 듣고 뛰어온 신현태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훔쳤을 지경이었다.
“캬, 우리 수혁이……. 어? 태진이는 어디 갔어요?”
“화장실 가더라.”
“울려고?”
“아마?”
“걔도 진짜 진상이다.”
“너도 충분히 진상이야. 고만 울어. 이러다 마이크에 소리 잡히겠다.”
“병원에서 울음소리 나는 게 드문 일인가, 뭐.”
“의사가 우는 소리는 드물지, 진짜. 환자 때문에 우는 것도 아니고…….”
“그걸 알겠어요?”
“두 분 죄송한데 조금만 조용히…….”
“아, 네. 죄송합니다.”
둘은 한참 수혁이 때문에 울다가 제지를 받고서야 멈췄다.
그사이 얼굴이 벌개진 조태진이 다가왔다.
덩치가 산만 한 사람이 그러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울었다기보다는 술 마셔서 저러나 싶기도 했다.
“여전히 잘해요?”
“잘하지. 근데 넌 뭐 갱년기냐? 뭘 그렇게 울어.”
“원장님, 눈가에 눈물이나 훔치시고 그런 말 하세요.”
“와……. 개긴다?”
“저기…… 조용히 좀.”
“아, 네. 죄송합니다.”
선배 교수들이 주접 떠는 사이, 수혁은 문진 및 보호자들의 증상 그리고 검사 등을 통해 레지오넬라라는 걸 추정했다는 데까지 답했다.
“그런데 환자들이 각자 이름을 모르더라고요. 얼굴은 분명 아는 눈친데……. 다 같이 레지오넬라에 감염되려면 한 방에 있었다고 봐야 하거든요. 여러 대의 에어컨이 모두 감염원이 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니까요.”
“아, 그렇겠네요. 그렇게 듣고 보니 확실히 이상하네요. 그래서 오산 지역에 있는 다른 병원에도 혹시 이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있는지 알아보신 건가요?”
“네. 다행히 태화 의료원과 협력 관계에 있는 병원들이 많아서 그리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저희 병원 행정 직원분들도 도와줬고요. 저기 계신 센터장님…… 이랑 원장님도 그렇고요.”
“이야, 다른 병원들은 원장님쯤 되면 오히려 열심히 하는 사람 발목 붙잡고 하던데 여긴 안 그런 모양이네요.”
“그러기는커녕 어떻게 하면 의료진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시는 분이죠.”
사실 여기서 원랜 개판입니다 라는 답은 나올 수가 없는 대화라고 보면 되었다.
하지만 신현태는 그저 수혁이 방송에서 대놓고 자길 띄워 주고 있다는 생각만 들었다.
울컥했다 이 말이었다.
“이 새끼 또 이러네. 안 되겠다, 나가자. 나가.”
“네, 네. 안 되겠어. 방송으로 봐야지.”
“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