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화 뜬다 통합진료센터 (4)
수혁이 탄 방송은 꽤 반향이 있었다.
의사가 진료에 그치지 않고 더 관심을 쏟음으로써 어마어마한 범죄가 밝혀졌다는 방향으로 계속해도 보도가 된 까닭이었다.
일명 영웅 만들기였는데, 이런 문화에 익숙지 않은 대중들조차 긍정적인 시선을 보냈다.
어쩌다 한 번 이런 게 아니라 집단 감염 사태 때도 활약했다는 것이 주효했던 덕이었다.
└이수혁 같은 의사가 있어 참 다행입니다.
└젊은 거 같은데 진짜 대단하네……. 탐정임?
그 후로도 이 비슷한 댓글들이 주르륵 달릴 지경이었다.
물론 병원 입장에서 진짜 중요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
환자가 늘었다.
2차 병원에서 오는 환자만 는 게 아니었다.
“에이, 그런 환자까지 우리가 받을 수는 없지. 그냥 루틴 환자잖아?”
이현종은 빙글거리는 미소를 지은 채,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누가 봐도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보였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노골적이어서 상대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교수님……. 저라고 좋아서 전화하는 거겠습니까?”
“좋아서 한 거 아냐? 원칙적으로 전원은 의료진이 아니라 보호자가 알아보는 거잖아? 어려운 질환이면 또 모르겠는데…….”
“의원님이 안달복달하니까 그렇죠.”
“아무튼, 됐다고 해. 여기는 권력 있다고 환자 보낼 수 있고 그런 데 아냐.”
상대 그러니까, 칠성 병원의 박국진은 이현종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뭐? 권력 있다고 환자 보낼 수 있는 데가 아니라고?’
멋진 말이긴 했다.
자신도 할 수 있는 말이라면 더더욱 좋겠지.
하지만 이쪽은 그럴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그냥 의원도 아니고 여당 의원이었고, 그중에서도 지역구에서 3선씩이나 한 진또배기 중진 의원이었다.
“그러지 마시고요……. 장모님한테 면 한번 세우고 싶다는데 한 번만 받아 주세요.”
“지랄 마. 언제는 칠성이 우리보다 잘한다며.”
“아니, 그건…….”
“안 그랬어? 의료광고법 아슬아슬 줄타기해서 낸 광고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솔직히 말하면 모를 줄 알았다.
이현종은 진료 외에는 꽝이다, 샌님이다 뭐 이런 얘기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수혁이를 품은 후로는 사람이 변한 지 오래였다.
환골탈태 수준이라고 보면 되었다.
“그…… 제가 그런 건 아니잖아요.”
“진짜 구차하다, 그치?”
“아, 우리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좀.”
“모르는 사이 아니지. 너네가 10억 수표 주고 우리 애 빼 간 거 기억하지? 공과 사는 구분하자?”
“말이 이상한데. 지금 공적인 일을 사적으로 끌고 오신 거 아니에요?”
“아닌데? 나한테는 이게 공인데?”
“하.”
“그리고 그 의원 나으리한테도 똑바로 전해. 여기 오면 VIP 대우 못 받아. 나 알지?”
“그…… 음.”
답답해지던 차에 반가운 소리였다.
듣고 보니 확실히 그렇지 않던가.
이현종은 VIP고 나발이고 별 신경 쓰지 않는 인간이었다.
‘원장 때도 그래서 우리가 이득 좀 봤지.’
오죽하면 의원들이 이현종은 좀 갈라고 했겠는가.
편의를 봐주기는커녕 그런 걸 요구하는 사람마다 면박을 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당연해서는 안 될 일이었으나, 힘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랬다.
“그렇긴 하네요? 근데 이수혁한테 해가 갈 거 같아도 그럴 거예요?”
“수혁이? 하하……. 그 의원 이름 뭐라고?”
“안길영이요.”
“아, 맞네. 의원직 그만하고 싶으면 우리 수혁이 건드리라고 해 봐. 나도 그렇지만 수혁이 뒤에 사람 많다, 진짜.”
“음.”
박국진은 순간 누가 있는데요? 라고 할 뻔했다.
정황상 김다현 사장이 이뻐하는 거 같긴 하지만, 국회의원이라는 족속들은 대기업에서도 만만히 생각하긴 어려운 인간들이지 않은가.
미친 적하고 들이받으면 짜증 나게는 할 수 있었다.
‘뭐……. 그래, 거절했다고 하면 설마 또 얘기하라고 하진 않겠지. 이번 달에만 벌써 이게 몇 번째냐, 이거.’
하여간 박국진은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이현종은 그렇게 끊어진 전화를 바로 내려놓지 않았다.
어쩐지 내려놓으면 또 올 거 같아서였다.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벌써 몇 번째 전화가 이어지고 있었으니까.
“휴. 수혁아 너도 이렇게 해 놔. 업무를 못 하게 하네. 이거 전담으로 사람을 뽑든지 해야지.”
“회의 들어갔더니 뭐래요?”
“아.”
수혁의 말에 이현종이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욕까지 씨불였다.
상대는 의외로 신현태였다.
“그 새끼.”
“삼촌 왜요?”
“삼촌이라고 하지 마. 이제 원장이셔. 원장.”
“잉.”
“말도 마라. 와 인력 더 달라니까 이제 가능성 말고 실적을 들고 오시래. 와……. 이 새끼.”
“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게 원장인지 뭔지 알 수 없는 모습만 보여 주더니만.
이제는 제법 원장 태가 나는 모양이었다.
[수혁한테는 한 번도 돈 얘기한 적이 없지 않나요?]
‘내 앞에서는 없지.’
[아무래도 수혁과 이현종한테 하는 게 다른 모양이군요.]
‘그렇지. 나는 조카니까.’
이현종을 좋아하긴 했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이현종을 따라 신현태를 욕하고 나설 수는 없는 법이었다.
해서 입을 꾹 다물고 있으려니, 이현종이 조금은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걱정했던 말을 꺼내진 않았다.
“돈 벌러 가자.”
대신 환자 보러 가자는 말을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말로 했다.
회의 들어가서 돈 얘기 들을 때마다, 그러니까 맨날 환자가 환자지 돈이냐는 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감안하면 단단히 삐쳤다는 걸 유추할 수 있었다.
“네, 아빠.”
“으음.”
이럴 땐 그저 아빠라는 호칭이 최고였다.
[그럴까요?]
‘그렇다니까.’
[그렇네. 입꼬리 올라가네. 인간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논리적인 기전은 아니었다.
환자 치료하는 데 이렇게 했다간 죄다 죽어 나갈 터였다.
하지만 효과는 있었다.
경험적으로 쓰기에 적절한 수단이라는 얘기였다.
“오늘 새로 온 환자가…….”
마음이 풀린 이현종은 스테이션 앞에 선 채 입을 열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사람이 인상까지 쓰고 오던 바람에 잔뜩 쫄아 있던 이번 3년 차가 부리나케 일어나 입을 열었다.
“4호, 5호에 계십니다. 모두 4명입니다.”
“4명? 그거밖에 없나?”
“아……. 아뇨. 타 병동으로도 3명 더 오셨습니다. 그런데 아까 이수혁 교수님이 진단명이랑 치료 알려 주시면서 따로 보고할 필요는 없다고…….”
“아, 그래? 이수혁 교수가 그랬으면 그런 것이지. 넘어가.”
수혁의 실력은 이미 레지던트였던 시절부터 인정하다 못해 애정하던 이현종 아닌가.
진짜 넘어갔다.
“그래, 4명. 하나씩 해 봐.”
“네.”
그리곤 레지던트들에게 발표를 시켰다.
수혁과 함께 자리에 앉으면서였다.
“네. 임병수 남자 44세. 1주 전부터 시작된 일과성 의식 소실을 주소로 내원…….”
“아, 그 환자.”
“네.”
“일단 해 봐.”
“네, 교수님.”
아무래도 신생 센터다 보니 레지던트 교육이나 운영이 거의 매달 변하고 있었다.
교육적인 목적을 강조했던 만큼 그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현종은 어떻게 하면 추가로 사람을 뽑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기에, 매일 교육 방안을 고심하고 있었다.
정작 레지던트들은 지금도 충분히 도움이 된다고 울부짖고 있음에도 그랬다.
그 결과, 통합진료센터를 도는 레지던트들은 회진 돌기 전에 환자를 발표 형식으로 노티 해야만 했다.
“환자 고혈압 외에 병력 없는 분으로…….”
“고혈압 얼마나 됐는데?”
쉽지는 않았다.
이현종이 매의 눈으로 질문을 던져서였다.
특히 심장 쪽 문제다 싶으면 가차 없었다.
“12년 됐습니다.”
“약은 뭐 먹지?”
“약은…….”
“고혈압이 있다고 하면 땡이야? 어제 진단받은 사람하고 12년 전에 진단받은 사람하고 같아? 약도 그렇지. 어떤 약을 얼마나 먹는지, 조절은 잘 되는지 이런 걸 잘 봐야지?”
“그…… 확인하겠습니다. 아, 네. 안지오텐신 수용체 길항제 복용 중입니다.”
틀린 말은 단 하나도 없었다.
확실히 기저질환에서 고혈압이나 당뇨는 유병 기간이나 조절 정도에 따라 환자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합병증이 천차만별이었기에 그랬다.
“환자 1주 전 스크린 골프장에서 골프 치다가 갑자기 어지러워서 집에 왔다고 진술했습니다. 2일 전 산책하다가 정신을 잃고 넘어져 행인의 신고로 앰뷸런스 타고 타 병원 응급실 내원했습니다. 입원해서 시행한 brain CT, brain MRI, 심전도 모두 이상은 없었습니다.”
다행히 3년 차는 3년 차였다.
잘한다기보다는 멘탈이 좋았다.
이현종에게 꾸중을 들은 마당에도 해야 할 말은 이어 나갔다.
이현종의 캐릭터를 잘 알아서였다.
‘혼났다고 우물쭈물거리다가는 더 혼난다…….’
이현종은 워낙에 천재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평범한 사람들 얘기 듣다 보면 답답한데 거기서 멈춘다?
환장 돌아가셨다.
물론 레지던트들이 이런 이현종의 속내를 아는 건 아니었지만 대강 파악은 된 후라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었다.
“그래, 그럼 네가 생각하는 진단명은?”
“아.”
당연히 모든 질문에 대응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건 좀 심하지 않냐?’
레지던트는 무섭다기보다는 황당하단 생각이 들었다.
환자 오늘 왔는데 벌써 뭐 같냐고 하는 건 진짜 뭐 같은 일 아닌가.
하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진심으로 답을 기대하고 있는 듯했다.
심지어 옆에 있는 이수혁도 그랬다.
‘설마 벌써……?’
여기서 진단명이 나왔나?
내가 뭘 말했다고?
레지던트는 이제 황당함에서 다시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동규야.”
“네, 교수님.”
그때 수혁이 그를 불렀다.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서였다.
여기에 속으면 안 됐다.
‘독사 같은…….’
기본적으로 착한 거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편한 사람은 아니란 평이 자자했다.
‘안대훈이야 세상에 없는 천사라고 하지만.’
그건 수혁교 신자라서 그런 거 아니겠는가.
해서 레지던트는 긴장한 얼굴로 수혁을 바라보았다.
수혁은 그런 레지던트를 별 감정 없이 마주한 채 입을 열었다.
“이 환자 고혈압이 오래됐지. 고혈압 원인이 뭐지?”
“아……. bmi가 30입니다.”
“그래. 그 상태에서 일과성 의식 소실이 있으면 뭘 의심해야지?”
고혈압과 비만.
나이가 좀 젊기는 하지만 급사할 수 있는 요건은 갖추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중에서 일과성 의식 소실, 즉 저절로 회복이 되는 의식 소실을 일으킬 수 있는 건 뭘까.
“뇌출혈, 뇌경색 그리고 심근경색이 있습니다.”
“그런데 타 병원에서 시행한 검사에서는 어떻게 나왔지?”
“어…….”
CT, MRI 모두 꽝이었다.
심지어 심전도도 그랬다.
다 아니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어려운 거 아닌가?’
레지던트는 내가 모르는 건 문제가 아니란 생각을 하며 답했다.
“다 정상 나왔습니다.”
“좋아. 그럼 뇌경색, 뇌출혈, 심근경색은 아니지?”
“네.”
“그럼 뭘까?”
“네?”
여기서 또 뭐냐고 묻는다고?
잘못 들었겠지 했다.
“뭐냐고.”
“어…….”
하지만 수혁은 여전히 아까와 같은 얼굴이었다.
넌 반드시 답을 말해야 한다, 뭐 이런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