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43화 (443/1,303)

443화 간 독성? (1)

“네?”

레지던트는 정말이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네가 무슨 말 하는 건지 모르겠다, 뭐 이런 뜻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그런 레지던트를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냐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직 네가 말 안 한 답이 있어.”

“그…….”

“생각해 봐. 이 환자의 일과성 의식 소실이 어디서 왔을까?”

“음.”

레지던트는 구원을 바라며 이현종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현종은 내 새끼 잘한다라는 얼굴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빠 교수 아닌 사람은 억울해서 살겠…… 아니지, 이분은 본인도 교수지.’

낙하산으로 된 거 아니냐는 말을 하기엔 너무 능력이 좋지 않은가.

항간에서는 조심스럽게 오히려 아버지인 이현종보다도 더 위가 아니냐 뭐 이런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을 지경이었다.

‘근데…… 이현종 교수님이 막무가내 같아도 의학적으로 오류가 있으면 절대 두고 못 보시는데…….’

어서 말하라는 수혁을 말리기는커녕 종용하고 있지 않은가.

이건 지금 있는 단서만으로 진단명을 더 유추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되었다.

하지만 비만이고 고혈압이 있는 환자에서 심근경색 및 뇌병변이 배제된 상황에서 뭘 더 생각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으려니 수혁이 입을 열었다.

“이 환자 BMI 몇이라고?”

“30입니다.”

“중성지방은 몇이지?”

“어…….”

“아까 보니까 180 정도 되던데. 허리둘레는 90 넘고. 거기에 고혈압이 있지. 그럼 뭐야?”

“대사 증후군입니다.”

“대사 증후군 환자에서 생길 수 있는 합병증에는 뭐가 있지?”

뭔가 술술 얘기가 풀려나가는 기분이었는데, 마지막 질문을 듣자마자 다시 말문이 막혔다.

대사 증후군에서 생길 수 있는 합병증이 바로 심근경색과 뇌 병변이었기에 그랬다.

도돌이표를 걸어온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오려는 것을 겨우 틀어막았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다 말해 봐.”

“어……. 관상 동맥 질환하고 뇌혈관계 질환입니다. 신장도 망가질 수 있고…… 당뇨까지 있으면 발이나 눈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중에서 아까 검사에서 배제된 게 뭐야?”

“관상 동맥 질환과 뇌혈관계 질환입니다. 나머지 질환은 일과성 의식 소실하고는…….”

“아니, 아니지. 관상 동맥 질환이 다 배제됐어?”

“심전도가 정상…….”

“심근경색이 아니란 뜻일 뿐이잖아? 지금 당장 심전도가 정상이라고 이 환자 관상 동맥이 정상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나?”

“아, 그건 아닙니다.”

병원에서는 흔히 수술 전 검사에서 심장 기능을 확인하기 위한 방편으로 심전도를 이용했다.

간편하면서 동시에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혁의 말대로 심전도가 정상이라고 해서 환자의 심장이 정상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이건 말 그대로 단지 심장의 전도를 보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었다.

지금 뛰는 게 정상이라는 얘기지, 안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알기 어려웠다.

“그래, 그럼 심전도에서는 정상인데 관상 동맥 또는 심장에 이상이 있는 질환이 뭐가 있지?”

“부정맥이나…… 협심증이 있습니다.”

“그래. 둘 다 일시적으로 증상을 일으키고 지나갈 수 있지.”

동시에 방치하다 보면 사망할 수 있는 질환이기도 했다.

특히 협심증은 심근경색의 전 단계라고 봐도 무방했다.

실제로 일에 치여 갑자기 찾아온 흉통을 좋아지니까 괜찮겠지 하다가 유명을 달리하는 사람이 많다는 보고도 있었다.

한 번이라도 처음 겪는 형태의 흉통이 있다면 예사로이 생각해서는 안 됐다.

“그걸 확인하려면 뭘 해야 할까?”

“음……. 홀터 모니터링을 하면 될 거 같습니다.”

홀터 모니터링(Holter monitoring)이란 쉽게 말해 심전도를 차고 생활하는 것을 말했다.

그렇게 하면 놓칠 수 있는 에피소드를 잡아낼 수 있어 일시적으로 지나갈 수 있는 질환인 부정맥이나 협심증 진단에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협심증이야 운동부하검사를 하면 진단이 되기야 하겠지만 그러다 심근경색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게 있어 주의하는 편이 좋았다.

해서 수혁은 첫 번째 검사로 홀터를 골랐고, 이현종 또한 동의했다.

“그래. 홀터 달아.”

“네, 교수님.”

“자, 다음은 어떤 환자지?”

숨 막히던 환자 노티가 끝나자 3년 차가 허물어지듯 자리에 앉았다.

‘생각해 보면 부정맥 정도는 나도 떠올릴 수 있었어야 되는데…….’

자책하면서였다.

확실히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원래 객관적인 검사에서 뭐가 아니라고 나왔을 경우 관련된 질환을 떠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2차 병원에서 괜히 이 환자에 대한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했던 게 아니란 얘기였다.

“60세 여환, 주소는 9일 전 발생한 황달입니다.”

그사이 2년 차가 몸을 일으켰다.

눈앞에서 3년 차가 깨지는 걸 본 다음이라 목소리가 떨렸다.

게다가 이 환자는 이현종 환자가 아니라 수혁이 부른 환자였다.

‘황달. 황달.’

어찌나 긴장했는지 속으로 환자 증상을 되뇌고 있을 지경이었다.

“히스토리 얘기해 줘야지.”

“아, 네. 환자 기저질환은 없고, 타 병원 내원 2달 전부터 홍삼 달인 물을 마셨다고 진술했습니다. 6주 전부터 오심이 있어 위내시경 시행 받았고 위염 소견 보여 제산제 복용 중입니다. 5주 전부터 소변 색이 검붉게 변했고 내원 3일 전부터는 눈동자가 노래져 응급실 통해 2차 병원 입원하였습니다.”

“당시 랩은?”

수혁은 이미 환자에 대해 거즘 다 파악한 참이었다.

지금 묻는 건 궁금해서가 아니라 주치의로서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라는 뜻이었다.

뜻을 숨기려면 얼마든지 숨길 수도 있는 게 수혁이었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시험한다, 시험해.’

이현종은 물론이거니와 아까 당했던 3년 차 그리고 당사자 2년 차도 노골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

“아까 보고 있었잖아.”

“아, 네. 그, 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다 보니 벌벌 떨면서 입을 열었다.

다행인 것은 그러면서도 어찌 되었건 다 말은 한다는 점이었다.

“AST 798IU/L, ALT 431IU/L, 빌리루빈은 Total이 19.1mg/dL, direct가 10.6mg/dL로 크게 증가해 있습니다.”

“간 수치랑 빌리루빈이 떴네. 나머지 랩은?”

“PT, aPTT가 살짝 늘어졌습니다.”

“확실히 간 기능이 손상되었다는 걸 의미하지?”

“네.”

“원인은 뭘까?”

“네?”

“원인이 뭐냐고.”

수혁의 말에 레지던트 2년 차는 무척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원인을 몰라서 보낸 케이스가 아니라 생각을 했기에 그랬다.

분명 의뢰서에도 이렇게 써 있었다.

<홍상 달인 물로 인한 급성 간 손상이 의심됩니다. 환자 및 보호자 원하여 전원 의뢰합니다.>

어떻게 보면 통합진료센터에서는 쉬운 케이스라는 얘기였다.

보통은 잘못된 진단을 들고 오거나, 아예 진단이 안 된 상태에서도 많이 오니까.

하지만 이 환자는 너무 그럴싸한 진단명이 붙어 있었다.

기저질환도 없었던 사람이 안 하던 짓 하다가 생긴 간 병변이지 않은가.

게다가 홍삼 우린 물은 드물게 간독성을 일으킨다는 보고도 있었다.

“약물로 인한 간 독성입니다.”

해서 2년 차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그냥 생각하고 있던 바를 얘기했다.

다른 이들도 그 말을 듣고서는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게 맞지, 뭐 이런 얼굴이라고 해야 할까.

불만스러운 건 이현종과 수혁이었다.

의뢰서에 있는 걸 다 믿을 거면 애초에 뭐 하러 전원을 받는단 말인가.

여기가 왜 통합진료센터인지 잊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근거는 뭐지?”

“네?”

“근거가 뭐냐고.”

“홍삼 우린 물을 먹고 증상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다야? 그럼 홍삼만 먹으면 다 간 독성이 오나? 그렇게 생각해?”

“아, 아닙니다.”

수혁의 반응이 생각보다 더 날카롭자, 레지던트는 비로소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얼굴이 되었다.

수혁은 그런 레지던트를 보면서 재차 물었다.

“의뢰서 생각하지 말고, 네가 생각할 수 있는 근거를 대.”

“아, 네.”

“일단 지금 간 수치가 어때.”

“798에 431입니다.”

“정상 수치 대비 15배 이상 높지?”

“네, 그렇습니다. 아.”

간 수치가 오르는 경우는 진짜 많았다.

간이라는 장기가 하는 일이 워낙에 많아서였다.

하지만 15배 이상 뜨는 경우는 확 한정 지을 수 있었다.

레지던트는 그제야 언젠가 수혁이 레지던트 시절 해 주었던 강의를 떠올릴 수 있었다.

“바이러스성 간염, 약제 유발성 및 독성 간염, 허혈성 간염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허혈성 간염은 지금 이 환자에서 의미가 있나?”

“아닙니다. 혈압이 떨어졌던 적은 없습니다. 이건 배제가 가능합니다.”

“그럼 바이러스성 간염은? 이건 배제가 돼?”

“아닙니다. 검사를 해 봐야 합니다.”

“그래. 그렇지. 아니, 안 들춰 봐도 돼. 내가 처방 냈어. 그리고 CT도 냈어. 그건 찍었을걸.”

“네? CT를요?”

방금 말했던 약물 독성이나 바이러스성은 CT로 진단되는 게 아닌데.

CT를 대체 왜 찍었을까?

레지던트는 이상하다 싶은 얼굴이 되어 수혁을 바라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그랬다.

지금까지 얘기했던 거랑 잘 안 맞아서 그랬다.

“어, 열어 봐.”

“네.”

하지만 열라는데 열어야지 어쩌겠는가.

“나도 안 봤으니까 빨리 열어 봐. 감별점이 있을 거야.”

“그래, 수혁이가 열라는데 왜 안 열어.”

“네, 교수님.”

게다가 이현종도 채근하는 바람에 서두르기까지 해야 했다.

해서 일행은 곧 영상을 볼 수 있었다.

교육용으로 마련한 커다란 화면을 통해서였다.

“스크롤 굴려서 내려 봐.”

“네.”

“자, 지금. 지금 멈춰 봐.”

“네.”

2년 차는 수혁이 시킨 대로 슥 내리다가 수혁이 멈추라는 곳에서 손을 멈추었다.

수혁은 옆에 놓인 마우스를 이용해 담관을 가리켰다.

“여기 보면 확장은 없지?”

“아, 네.”

“물리적으로 막혀서 황달이 온 건 아니란 거야.”

“네, 그렇습니다.”

당연한 얘기였기에 2년 차는 좀 시큰둥했다.

CT는 왜 찍은 건가 싶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어지는 말을 듣자마자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역시…… 간 표면 잘 봐. 결절성 변화가 있지. 이 환자 급성이 아냐. 만성 간 질환이 있어.”

“어…….”

“그렇네. 확실히 이 환자 간 경화가 있네.”

“그럼…….”

레지던트는 아까 자신이 말했던 약물 독성이나 바이러스성이 둘 다 아닌가 싶어졌다.

아니, 이게 뭐지 싶었다.

만성 간 질환 환자라면 왜 갑자기 증상이 이런 식으로 나타났단 말인가.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와중에 수혁이 입을 열었다.

“히스토리를 보면 환자가 계속 우린 물을 먹은 게 아냐. 내시경 했을 때 이미 끊었다고. 약물 독성으로 인한 간 병변이었다면 지금쯤 증상이 좋아졌어야지. 안 그래?”

“아…….”

“그런데 이 환자는 진행했어. 그 말은 약물 독성이 아니거나, 적어도 병발한 질환이 있다는 거지.”

“아…….”

“그걸 알아내는 게 우리 센터의 몫이야. 내일까지 너도 생각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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