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45화 (445/1,303)

445화 간 독성? (3)

이현종을 태운 택시는 미친 듯이 달렸다.

혹시 몰라 병원을 빨리 벗어나기 위함이었는데, 오해 사기 딱 좋았다.

특히 지금 막 그 뒤를 따라붙은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어디 뭐 빚쟁이예요?”

택시 기사는 별일이라는 얼굴로 안대훈을 돌아보았다.

그냥 딱 자기 나잇대로 봤다면 이런 질문도 안 나왔을 텐데, 아쉽게도 대훈은 이제 모자를 벗은 상황이었다.

높게 보면 40 아니라 50도 가능한 외모였다.

“아, 그…….”

뭐라고 해야 할까.

전임 원장의 체면을 생각한다면 여기서 아니라고 해야겠지만.

그랬다간 택시 기사의 열정이 좀 사그라들 것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까지는 영화 추격 신처럼 잘 따라가 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거 실패하면 밥 같이 못 먹겠지?’

게다가 보통 명령도 아니고 수혁의 명령이었다.

수혁이 병원 외의 일로 뭐 하라고 한 게 처음이라는 걸 상기하고 나자 결심이 섰다.

“네, 저 새끼 오늘 놓치면 언제 잡을 수 있을지 몰라요.”

해서 말이 좀 세게 나갔다.

이현종에게 감히 저 새끼라고 하다니.

교주님만 아니었다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구, 알겠습니다. 나도 이런 거 좋아해.”

다행히 기사는 그 말에 의욕이 나는지 쉴 새 없이 밟았다.

곧 강남 도산대로 일대에 때아닌 레이싱이 펼쳐졌다.

아마 둘 중 어느 하나라도 택시가 아니었다면 강한 의심을 샀을 텐데, 다행히 지금은 둘 다 택시였다.

해서 이현종이 타고 있는 택시를 모는 기사도 그저 급한 콜이 있나 할 뿐이었다.

이현종은 아예 바깥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웬일이냐고? 뭔 웬일. 동기끼리 어? 밥도 못 먹냐? 아냐……. 아냐…….”

대사를 준비하느라였다.

그로서는 실로 드물게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려 대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택시는 달렸고, 곧 목적지에 닿았다.

요새 청담동에서 뜬다는 퓨전 한식집이었다.

“손님 다 왔습니다.”

“아, 아 네.”

“오늘 뭐 중요한 일 있으신가 본데 파이팅입니다.”

“아, 감사합니다.”

이현종은 때아닌 응원에 힘입어 아까보다는 나아진 얼굴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예악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파인 레스토랑인 만큼 들어가자마자 말쑥하게 차려입은 종업원 하나가 따라붙었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존함이?”

“이, 이현종입니다. 태화 의료원 이현종.”

“아……. 일행분 와 계십니다.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와, 왔어요?”

“네.”

“음.”

이현종은 바로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망설였다.

종업원은 이런 게 아주 처음 있는 일은 아닌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이현종은 그런 종업원을 향해 물었다.

“저 지금 어떻습니까?”

아주 진중한 얼굴이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답하기 어려웠다.

‘그…… 꾸민 거 같긴 한데, 멋은 없어요, 손님. 아까 들어가신 분에 비하면……. 어휴.’

이렇게 말했다간 어떻게 될까.

한 대 맞지 않을까?

아니, 지금 분위기상으론 울릴 거 같았다.

종업원은 흠흠 하고 목소리를 정리한 후 최대한 정중한 목소리로 답했다.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면서였다.

“아주 멋집니다, 손님.”

“그래요? 후. 알겠습니다. 가죠.”

이현종은 그 말을 믿기로 작정하곤 종업원의 뒤를 따랐다.

그리곤 본인이 예약한 방, 화 앞에 서서 또 망설였다.

‘나이도 많아 보이시는데 얼마나 좋아하시는 거야?’

종업원은 저도 모르게 응원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무래도 고급 식당이다 보니 청혼 등의 이벤트가 종종 있는데, 이렇게 나이 많은 사람이 이렇게까지 두근대는 건 또 처음 보는 일이라 그랬다.

“손님, 잘될 겁니다.”

“아이구, 감사합니다.”

해서 생전 안 하던 파이팅까지 날린 후 문을 열었다.

안에는 이기자 교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현종과는 달리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워낙 평소에도 멋쟁이였기에 그랬다.

다만 이현종은 눈치채지 못한 변화가 있기는 했다.

머리에 뽕이 좀 더 들어가 있었다.

“어, 왔네.”

“어어. 먼저 왔네. 미안.”

“아니, 내가 일찍 와서 그렇지. 외래 끝나고 막힐까 봐 바로 왔는데 오늘따라 길이 좋더라.”

“어, 그래 길 좋더라. 하하.”

뽕이 있건 없건 이현종이 볼 때는 그냥 수십 년간 세상에서 제일 이쁜 사람이었다.

딱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평소의 모습은 간 곳 없고 횡설수설할 정도였다.

‘아, 역시 인데놀 먹을걸.’

약 생각이 간절하게 났다.

하지만 그 약을 처방받았다가는 소문이 날까 봐 피했더랬다.

심장박동 수를 줄이는 약이지만 무대 공포증 극복을 위해 더 많이 처방되는 약이라 그랬다.

“근데, 웬일이야? 맨날 피해 다니더니 웬일로 밥을 먹자고 불렀어?”

이기자 교수는 이현종이 정장 마이도 벗지 못한 채 자리에 앉자, 질문부터 던졌다.

정말 궁금하다는 얼굴이었다.

눈이 반짝였다는 뜻인데, 거기서 또 심장이 내려앉았다.

‘아니 얘는 왜 할머닌데 이쁘지.’

60이 넘었으면 인간적으로 어? 좀 어? 나처럼 망가져야 되는 거 아닌가.

이현종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까 택시에서 오는 내내 연습했던 대사를 쳤다.

“웨, 웬일은 무슨. 동긴데 너무 데면데면 지내는 것도 별로잖아.”

“지가 먼저 피해 놓고선.”

“그건…….”

“근데 이런 집은 또 어디서 알았대? 척 봐도 연인끼리 오기 좋은 집 같은데. 우리 원장님 늦장가라도 가려고 노력하셨나?”

“아, 아니. 늦장가라니. 나는…… 나는 여자 만난 적 없어.”

“수혁이는 어떻게 낳았는데.”

“그건…….”

이현종의 얼굴에 ‘낭패’라는 두 글자가 아로새겨졌다.

제일 걱정했던 질문이 단박에 튀어나와서였다.

역시 이기자 교수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됐어. 대답하기 곤란하겠지. 너라고 뭐 평생 짝사랑만 했겠니.”

이현종은 속으로만 맞다고 했다.

평생 짝사랑한 거 맞다고.

심지어 결혼식에 가서도 그랬다고.

하지만 여기서 양아들 삼았다고 하면 수혁에게 혹시 누가 될까 봐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이현종이 고난의 행군을 걷고 있는 동안 안대훈은 식당 종업원에게 잡혀 있었다.

“아, 글쎄…… 손님, 예약하셔야 들어가실 수 있다니까요?”

“안에 누구 있나만 보고 나올게요.”

“그게 되겠습니까? 형사예요?”

“그…….”

종업원의 말에 허점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성이라도 내 볼 텐데.

그럴 수가 없었다.

오히려 화를 낸 것은 택시 기사였다.

“아니, 여기 어떤 개새끼가 우리 손님 돈 갖고 튀었다니까?”

“그래요? 그럼 경찰을…….”

이럴수록 대훈은 곤란해졌다.

편들어 주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진짜 경찰이 왔다간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교주님이 구해 주시겠지만…….’

자기 안위가 걱정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수혁에게 누가 될까 염려스러웠다.

“아, 그럼 기다릴게요.”

“뭐 그거까지 제가 막을 순 없죠.”

“아니, 손님! 밥 먹는 걸 기다려 줘요? 개새끼라며.”

“그래도 밥은 먹고 살아야죠.”

“아이고……. 이렇게 착한 사람이 오죽했으면 머리가 빠져. 하여간 힘내십쇼. 오늘 다 받으라고.”

“네.”

대훈은 간신히 택시 기사를 보내고 난 후, 식당 밖에 섰다.

그리곤 바로 수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혁도 기다리고 있던 참이라 곧 받았다.

“어. 어떻게 됐어?”

“식당에 갔어요.”

“식당?”

“네. 엄청 고급 음식점 같아요. 검색해 보니까 일 인분에 최소 15……. 와인까지 페어링 해서 마시면 30만 원도 나오겠어요.”

“음.”

이현종이 미식가이기는 했다.

하지만 신현태도, 수혁도 없이 저렇게 비싼 곳에 갈 사람은 아니었다.

게다가 숨겨진 맛집, 그러니까 노포집을 더 선호하는 편 아닌가.

수상했다.

매우.

“제가 기다리겠습니다.”

“응? 거기서?”

“네.”

“아니, 그렇게까지는…….”

“아뇨, 한번 칼 뽑았으면 끝장을 봐야죠.”

“그…….”

계속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옳은 일일 텐데.

궁금증이 수혁의 입을 가로막았다.

그렇다고 안대훈만 밥도 못 먹게 하고 내버려 두는 건 못 할 짓이지 않은가.

해서 수혁은 몸을 일으켰다.

“나도 갈게. 환자 경과 기록만 살짝 남기고.”

“어, 정말요? 여기로?”

“응.”

“아, 알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그래.”

수혁은 말한 대로 했다.

일어선 채로 몸을 숙인 채 타자를 두드렸다.

지금껏 앉아서 고민했던 것의 나열이었다.

어찌 보면 그저 혼자만의 생각을 늘어놓는 것뿐인데, 남들이 볼 땐 그게 아니었다.

“어, 경과 기록 추가됐습니다.”

“잉? 저 아직 안 썼는데…….”

스테이션에 있던 1년 차가 2년 차에게 보고했다.

2년 차는 이상하단 표정을 지었다.

기록은 원래 주치의들이 쓰는 게 원칙이었기에 그랬다.

물론 교수들 가운데 가끔 경과 기록 정도에 이런저런 지침을 적어 두는 사람도 있기도 했고, 수혁이 딱 그런 타입의 교수긴 했지만.

방금 입원한 환자를, 그것도 방금 회진까지 돈 환자에 대해 무슨 지침이 더 생겼겠는가.

‘어떤 놈이야. 어떤 놈이 지 환자 얘기를 내 거에 썼어?’

오히려 누군가 실수했을 거라 믿는 게 더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해서 씩씩대며 들어갔는데, 들어가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수혁이 쓴 기록이 남아 있었다.

“아니, 아까 다 말씀해 주시곤 또 뭘……. 어?”

환자가 산과 기록이 있다는 것 정도는 2년 차도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간호 기록에서 빼놓을 리가 없는 내용이지 않은가.

태화 의료원의 간호사들은 꽤 숙련된 사람들인 데다가 원리원칙대로만 하는 사람들이기도 해서 신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뭔가 더 캐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못 했다.

‘아……. 그래, 그렇구나. 맞아 당연히 바이러스 검사를 했겠지. 근데 기록이 없다는 건 최소한 35살까지는 뭐가 없었다는 거야. 만성 소견을 보이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확실히 만성 간 병변의 원인이 바이러스일 가능성은 떨어지지.’

읽다 보니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같은 내용을 봤는데 추론하는 깊이와 넓이가 이렇게까지 다를까.

‘그럼 세 가지 원인 중 두 개가 나가리 된 거고……. 나머지 하나도 단독은 아닐 테니까 병발 되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겠네. 환자가 여자고 또 중년이니까 자가면역질환 가능성이 있을 거고. 와……. 그래서 자가면역질환에 대한 검사를 추가한 거구나. 이게 맞을 거 같은데?’

사실 지금 환자에게 추가된 검사는 CT뿐이었다.

그런데 2차 병원급에선 아예 감도 못 잡고 있던 환자를 제대로 진단해 낸 기분이었다.

여전히 검사 결과가 부족하기에 틀릴 가능성도 조금은 있겠지만 2년 차는 그럴 거 같지 않았다.

이미 수혁의 논리에 설득된 지 오래였다.

“와…….”

2년 차가 수혁의 경과 기록에 감탄하고 있는 동안, 수혁은 운전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택시를 탔다.

주차장 찾다가 놓치면 삽질이 될 거란 생각에서였다.

다행히 파인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마련이었고, 수혁이 대훈과 접선할 때까지 둘은 나오지 않았다.

“힘들지? 이거라도 마시면서 기다리자.”

“아, 네. 감사합니다.’

대훈은 수혁이 건넨 음료를 무슨 성수라도 되는 듯 아껴 마셨다.

그러다 수혁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현종이 누군가와 함께 나온 탓이었다.

“뭐야, 뭐야.”

“팔짱 끼고 있는 거예요?”

“어……. 어…….”

“와 교주님 새엄마 생기는 거예요?”

“어…….”

헌 엄마도 없는데 갑자기 새엄마?

수혁은 저도 모르게 이현종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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