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46화 (446/1,303)

446화 간 독성? (4)

“안 보이는데?”

“저도…… 저도 놓친 거 같습니다.”

“아니, 왜 이렇게 빨라?”

이현종이나 이기자나 이제 곧 정년 나이 아닌가.

심지어 이기자야 누가 봐도 운동 좀 하고 관리한 체형이지만 이현종은 그렇지도 않았다.

뚱뚱하지는 않아도 날씬하지도 않은 그런 몸이란 얘기였다.

한데 어찌나 빠른지 벌써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야, 나야 다리 다치고 수술했다고 치고 넌 왜 그래?”

“저요? 레지던트 생활하다 보니…….”

수혁은 숨을 몰아쉬고 있는 안대훈을 돌아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머리끝까지 벌게져 있었다.

나이도 어린놈이 이러고 있다 보니 화가 나다가도 확 수그러들었다.

‘수혁, 사람입니까?’

[아니, 나는 그냥.]

‘이런 꼴을 보고도 화를 내요?’

[아니, 거참.]

해서 수혁은 한숨 한 번에 화를 털어 내고는 대훈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리곤 근처 식당으로 가 맛있는 것을 사 먹이고는 차까지 같이 타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안대훈은 계속 머리끝까지 붉어져 있었는데, 그제야 수혁은 이놈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자기랑 있어서 상기되어 그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거 같지 않냐?’

[맞는 거 같군요.]

‘이 새끼. 아깐 나보고 어?’

[죄송합니다. 안대훈은 일반적인 인간하고 반응이 너무 다릅니다.]

‘그건…… 그것도 그래.’

수혁은 잠시 벌게진 머리통을 바라보았다.

이 속엔 대체 무슨 생각이 숨어 있나 싶어서였다.

“어이, 깜짝이야.”

때마침 대훈이 고개를 돌렸기에 수혁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뒤로 물렸다.

대훈은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는 표정을 지은 채 입을 놀렸다.

“교수님.”

“왜.”

“이번 3년 차는 좀 어때요?”

약간은 긴장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김석현은 칭찬도 꽤 듣지 않았던가.

아마 간호사들 통해 말이 흘러나갔을 터였다.

수혁은 안대훈이 처세술의 일환으로라도 병동 스테이션 간호사들과 꽤 잘 지낸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때 되면 음료수도 사서 가져오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꽤 잘하지.”

“저보다요?”

“너보다?”

“네.”

“음.”

질문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사실 안대훈과 비교를 해 본 적은 없었다.

원래 너무 앞서가는 사람은 뒤따라오는 사람이 잘 분간이 안 되지 않던가.

건방져서 이런 게 아니라 원래 세상일이 다 그런 법이었다.

해서 이현종이 그랬던 것처럼 수혁도 딱히 레지던트 평가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무심한 교수가 되어 가고 있었다.

또 다른 우연이 있어 수혁같이 괴물 같은 놈이 나오기 전까지는 아마 그럴 터였다.

[수혁,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 이 바루다는 유일무이한 존재입니다.]

‘혹시 모를 일이지.’

[아닙니다.]

‘알았다.’

수혁은 바루다의 시비를 가볍게 무시하고는 본격적으로 비교질에 들어갔다.

본능적으로 비교가 안 된다뿐이지 하려고 하면 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바루다가 굳이 데이터화를 해 둘 필요도 없었다.

수혁 자체의 머리도 우수한 편이었으니.

‘아무래도 대훈이가 진짜 열심히 한 티가 나기는 하지.’

원래도 아슬아슬했지만, 레지던트 2년 하면서 머리 뚜껑이 아예 날아간 게 우연은 아니란 얘기였다.

머리카락 수와 지식을 맞바꾼 느낌이랄까?

안대훈의 실력에는 그만큼 처절한 면이 있었다.

‘그에 비해 김석현은 센스가 있지.’

센스는 어느 정도 타고나는 거 아닌가.

그런 면에서는 김석현이 좀 더 유리하다고 할 수 있었다.

같은 단서를 보고, 같은 지식이 있다고 가정할 때는 확실히 김석현이 더 나을 터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둘이 같은 지식을 쌓을 가능성이 아예 없다는 것이었다.

안대훈은 지금도 쉬지 않고 공부를 이어 가고 있었으니.

‘그러고 보니까 얘가 작년 시험 그거…… 벌써 합격점 나왔다고 했지.’

어느 정도였냐고 하면 결국 합격률 50%, 그러니까 사상 최악의 합격률을 기록한 작년 시험에서조차 합격점이 나왔을 정도였다.

그것도 아슬아슬한 게 아니라 꽤 넉넉한 점수로였다.

말도 안 되는 문제들이 간간이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퍽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아마 전국을 다 뒤져도 안대훈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녀석은 몇 없을 터였다.

“너랑 비교하기는 어렵지.”

“헙.”

“네가 지난 2년간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쌓은 지식이 달라. 그리고 넌 나 따라서 얼마나…… 너 우냐?”

“아뇨, 뭐가 들어갔네요.”

“그래, 그런 거라고 믿을게. 제발 그런 거지?”

“네.”

“그래. 다 왔네. 내일 보자.”

“네, 교주님.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감사는 무슨, 일 시킨 게 난데.”

“아닙니다! 교주님 명이라면 제가 진짜! 수멘!”

“아니…… 사람들 앞에서는 제발 그런 말…….”

수혁은 대훈 앞에서 쩔쩔매다가 오랜만에 당직실로 향했다.

당직실이라기보다는 교수 휴게실 비슷한 시설이었다.

원래 교수면 당직과 거리가 멀어 보이고 또 실제로도 그랬었는데, 현대 의학이 점점 고도화되면서 그렇지 못하게 되어 병원 차원에서 마련했다.

흉부외과나 신경외과 등등 자다가도 부르면 와야 하는 과들이 얼마나 많던가.

당장 이현종만 해도 심심하면 불려왔다.

[오 여기는 좋네요?]

‘그러니까. 꽤 좋네. 이거 안마 의자인가?’

[한번 해 보시죠. 광고 엄청 하던데.]

‘왜 네가 기대를 하냐.’

[궁금해서요. 저는 수혁과 감각을 공유하니까.]

‘그…… 그 말 묘하게 기분 나쁜 거 알지?’

[하여간 해 봐요.]

응급이 있는 과 교수라면 그 직급과 관계없이 불려온다는 얘기였다.

원래 사람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잠이 주는 법 아닌가.

최소한 시설이라도 좋아야 어떻게든 피로를 풀 수 있었다.

해서 별것이 다 있었는데 수혁은 그중에서 안마 의자에 누웠다.

‘오.’

[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이상한 용품들도 있어 하나하나 해 보다가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아마 잠들기 그리 쉬운 밤은 아니었을 터였다.

‘대체 누굴까.’

이현종 옆에 있던 여자 때문이었다.

뒷모습만 봐서는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이현종보다는 한참 어린 거 같던데요. 보기보다 응큼한 면이 있군요.]

‘하긴 체형이…… 나이 든 사람 같지는 않았지?’

[네.]

깨고 나서도 계속 그 생각뿐이었다.

“어, 수혁아.”

“아, 네. 아빠…….”

그렇다 보니 마주한 이현종을 보면서도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자꾸 팔뚝에 눈이 갔다.

흔적이 남아 있을 리가 없는데도 그랬다.

우웅.

그때 문자가 울렸다.

대훈이었다.

<아까 원장님 봤는데, 어제랑 같은 옷 입고 오셨습니다, 대박.>

수혁과 바루다의 눈동자가 동시에 흔들렸다.

그러고 보니 진짜 그랬던 것.

이현종은 어제 사라질 때 입고 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이 양반이 이거.’

[아빠한테 이 양반이라뇨?]

‘너 말대로 응큼하잖아? 얌전한 강아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더니.’

[엄밀히 말하면 이현종은 늦어도 한참 늦은 겁니다만. 설마 진짜 아빠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

‘아, 그렇지. 결혼 한 번도 안 했지.’

[그러니까요.]

수혁은 이제 이현종 전체에서 아예 눈을 떼지 못했다.

이현종은 그런 수혁이 처음에는 마냥 좋았지만, 계속 마주하고 있으려니 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평소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왜 그러냐? 나 뭐 묻었냐?”

게다가 오늘은 뭔가 켕기는 것도 있었다.

‘이기자…….’

아무리 이현종이 무던한 사람이라고 해도 속옷까지 입었던 거 입는 사람은 아닌데, 오늘은 그랬다.

이상하게 감각이 예민한 수혁이라면 혹 눈치채지 않았을까, 뭐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이게…… 어른의 사랑인가…….’

그러다 자연히 어제 일로 사고가 넘어갔다.

정식으로 고백하면 생각해 보겠다고 하더니만, 정말 고백했더니 집으로 가게 됐더랬다.

그리고 오늘 출근을 같이했다.

‘너 설마 처음이냐?’

약간 민망한 얘기도 듣기는 했지만.

하여간 과장 조금 보태면 이제야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아뇨. 묻은 건 아니고요. 그런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왜 얼굴이…… 얼굴이 붉어요?”

“응? 내가?”

“네. 새빨간데.”

“그, 그래? 몸이 안 좋아서 그런가. 허허.”

“몸 안 좋다면서 왜 그렇게 웃어요.”

“아냐, 아냐. 진짜 좀 찌뿌둥하긴 해. 오늘 오는 환자들…… 아직 멀었지?”

이현종은 슬쩍 모니터에 얼굴을 비쳐 보고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몸을 일으켰다.

“아, 네. 아직…… 오전에 오진 않을 거예요.”

“그래, 그럼 나는 일단 좀 씻고 올게.”

“못…… 씻으셨어요?”

“아니, 아니. 한번 몸이나 좀 담그고 오려고.”

“아…….”

그럴수록 수혁은 어제 일에 대한 의심만 깊어졌다.

아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해도 의심할 만한 태도 아닌가.

한데 팔짱 낀 것까지 봤으니 이제는 의심을 넘어 확신에 다다르고 있었다.

[수혁, 일단 환자부터 봅시다. 설마 잘되면 수혁에게 숨기겠습니까?]

‘음, 그렇지?’

[네. 이상한 관계만 아니면 말해 줄 겁니다.]

‘그래.’

아마 바루다가 없었다면 오전 정도는 이 생각에 매몰되어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수혁에게는 바루다가 있었고, 어렵지 않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게다가 이현종이 사라진 지금, 모든 레지던트가 수혁만 보고 있었다.

“교수님 어제 이 환자 말입니다.”

그중에서도 간 독성 환자를 맡았던 녀석이 적극적이었다.

수혁의 메모대로 하자 환자가 기가 막히게 좋아지고 있다는 점이 놀라운 모양이었다.

“벌써 간 기능 호전세에 들어갔습니다. 검사 결과…… 자가 면역 항체가 크게 올라가 있고요.”

“그치? 가능성을 하나하나 지우다 보면 결국, 답이 나오는 거야. 이 환자는 그러니까……. 음. 원래 그리 심하지 않은 자가 면역성 간염이나 원발성 쓸개관간경화증이 있었겠지. 검사 어떻게 나왔어?”

“아……. anti-mitochondrial antibody는 음성 나왔습니다. ANA는 1:320, IgG는 2580mg/dl, IgA 322mg/dl, IgM 365mg/dl로 증가했고요.”

“그래, 그럼 원발성 쓸개관간경화증은 아니네.”

“네.”

“원래 있던 자가면역성 간염이 홍삼 우린 물 먹고 악화되면서 급성 증상을 일으킨 거야. 여기에 맞춰서 치료하면 금방 좋아질 거야.”

“네, 교수님.”

레지던트는 대체 이걸 어제 그 한정된 검사만 보고 알았을까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감탄을 이어 나갔다.

수혁의 진단과 지시가 하나같이 주옥같아서였다.

그러던 중 전화가 울렸다.

“통합진료센터입니다.”

대기 중이던 레지던트가 받았는데, 그 즉시 상대방이 소리쳤다.

“이, 이현종 교수님 계신가?”

심장 문제인 모양이었다.

그것도 꽤 급한.

해서 수혁이 전화를 넘겨받았다.

“지금 잠시 자리 비우셨습니다. 이수혁입니다.”

“아……. 어디, 어디 가셨지? 전화도 안 받고.”

“일단 저에게 말씀해 주시죠.”

“이건…… 이건 심장인데.”

“제가 전달해도 되죠.”

“그…… 알았어요. 알았습니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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