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7화 내 심장이 고장 났나 봐 (1)
누군가의 심장에 문제가 생긴 지금, 이현종은 아까 수혁에게 말했던 것처럼 뜨신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편의점에 들러 갈아입을 속옷을 산 직후였다.
“어, 어허 좋다.”
탕이라고 해 봐야 지하 7층에 위치한 헬스장에 딸린 시설일 뿐이었다.
때문에 아침엔 제법 사람이 많았다.
한번 일을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대학 병원 특성상 대부분 운동을 아침에 끝냈기에 그랬다.
물론 이렇게라도 운동을 하려면 어느 정도 지위가 있어야 했다.
환자에게는 맨날 운동하라고 하는 주제에 아랫사람이 운동하는 걸 보면 반사적인 건지 뭔지 저놈이 내가 시킨 일은 다 하고 운동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휴, 좋다.”
해서 지금 탕으로 들어서고 있는 사람도 꽤 지위가 있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내과 과장 김문재였다.
회개한 후 출세까지 하면서 마음가짐을 여러모로 고쳐먹었는데, 그중 하나가 운동이었다.
신장내과는 그 특성상 환자를 오래 보지 않는가.
김문재만 해도 벌써 20년 넘게 보는 환자가 있을 지경이었다.
말로만 운동하라고 할 게 아니라 나도 운동해서 변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보다 효과가 있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응?”
운동은 운동 그 자체로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이 시간에 여기 탕에 들어오는 사람 중 자기가 제일 높다는 것이 더 좋았다.
하루하루 갈수록 탕 속에 사람이 줄더니 지난주부터는 아예 혼자 쓸 수 있었다.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거라도 있어야 병원 생활이 재밌지.’
회개도 했겠다, 신현태의 조언에 따라 병동에서 성질내는 건 자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워낙에 비뚤어진 심성이 어디 가겠는가.
사소한 갑질로 풀리는 게 다행이라고 스스로도 여기고 있었다.
‘뭐야, 누구야.’
한데 오늘은 선객이 있었다.
5키로 정도 달려 상쾌해졌던 기분이 삽시간에 잡치는 듯했다.
머리숱을 보니 절대 자기 위는 아닌 거 같은데, 감히 누가 여기 와 있을까.
“음 음음음 음음음음음.”
심지어 기분이 아주 좋은지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김문재는 씩씩거리며 탕 안에 왈칵 들어갔다.
그리고 이현종을 마주할 수 있었다.
“미쳤나. 탕 혼자 써? 물 다 튀기잖아.”
“아, 앗. 죄송합니다. 못 봤습니다.”
“못 봐? 백내장이 있나. 안과 가 봐. 이제 그럴 나이야. 내 친구 중에 안 갈아낀 놈이 더 적다니까. 자네도 골프 좀 치지?”
“아, 네네.”
“그래, 그럼 가 봐야지.”
“네, 죄송합니다.”
평소의 이현종이었다면 여기서 그치지 않고 좀 더 뭐라고 했을 텐데.
이상하게 혼내는 것도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일단 안 보였다고 하는걸 곧이곧대로 믿어 주는 것도 신기했다.
게다가 백내장 걱정까지 해 줘?
더 이상한 것은 이현종이 계속 어깨춤을 추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대만 생각하면~ 터질 것 같아요~”
괴상한 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이미 낭만과는 담을 쌓은 지 오래인 김문재로서는 아예 처음 듣는 노래이기도 했다.
아니, 아마 들어 봤다고 해도 이현종의 입에서 듣고 있어서 그런가 생소하기 짝이 없었다.
“내 심장이 고장 났나 봐~”
음정과 박자가 이상하다 보니, 마지막 가사를 듣고 나서부터는 혹시 심장 학회 로고송인가 싶을 지경이었다.
그 시각 수혁은 진짜 고장 난 심장에 대한 노티를 듣고 있었다.
“환자가…… 9개월 전부터 심계항진이 있었다고 해요.”
“9개월이요? 꽤 오래됐는데……. 그사이에 무슨 검사는 안 받았나요?”
“받았죠. 심방 빈맥으로 진단되어서…… 베타 블록커 처방했습니다.”
“베타 블록커……. bisoprolol 말하는 거예요?”
“아, 네. 이 경우에는 그게……. 네.”
상대는 이현종과 같이 심장 내과에 있던 곽미경 교수였다.
심장 내과 특성상 워낙에 펠로우가 길어서 수혁보다 몇 년이나 위임에도 불구하고 수혁과 같이 올해 임용된 동기 교수였다.
이현종이 나름 제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만큼 실력이 썩 괜찮았다.
“그거 먹고 호전되었는지 자의로 약을 끊었더라고요.”
“아.”
하여간 자의로 약을 끊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게 문제였다.
수혁은 개인적으로 자기 몸은 자기가 제일 잘 안다는 말부터 없애고 싶었다.
자기 몸을 어떻게 자신이 제일 잘 알 수 있겠는가.
몸만 수십 년 공부한 의사들조차 종종 실수하는 게 의학이라는 분야인데.
수혁은 탄식과 함께 곽미경 교수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증상이 다시 생겼는지, 응급실로 왔길래 와서 봤는데 초음파 소견이 아무리 봐도 이상해서 상의 좀 드리려고 합니다.”
“아……. 근데 지금 어딜 가신 건지…… 씻는다고 하신 거 같은데.”
“씻어요? 출근하시고?”
“네.”
“이상하네. 그러신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그렇지 않아요?”
“그렇죠. 맨날 집, 병원……. 주말에 골프장 가는 거 말고는 어딜 안 다니시는데 못 씻고 오실 리가 없죠.”
수혁은 말해 놓고 혹 상대가 이현종의 외박을 눈치챌까 두려워져 다른 말을 더했다.
다행히 곽미경에게 이현종은 신 그 자체였기에 거기서 더 질문이 들어오진 않았다.
“그럼 일단 환자 보내 주시면 같이 보실까요? 뭐 어디 나가시진 않을 테니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아……. 그럴까요? 거기도 설비가 다 있죠?”
“네. 물론이죠. 이현종 교수님이 심장 관련해서는 뭐 엄청 구비해 두셨죠.”
“그건 잘됐네. 알겠습니다.”
대신 환자를 보내기로 했다.
수혁은 전화를 끊자마자 방금 전화 받았던 환자에 대한 기록을 띄웠다.
과연 곽미경 교수의 말대로 처음 입원해서 시행한 검사는 심방 빈맥을 가리키고 있었다.
약도 적절히 들어간 모양이었다.
증상 조절이 잘 되었던 것을 보면.
[단순히 심방 빈맥이 재발한 것처럼 보이진 않는군요.]
‘그러게. 초음파…… 이건 확실히 이상해.’
하지만 뭔가 더 있었던 것 같았다.
이번에 와서 찍어 둔 심장 초음파를 보니 확신할 수 있었다.
[대동맥 뿌리 부분이 확장되어 있습니다. 환자 BMI가 어떻게 되죠?]
‘잠만…… 키가 181에 82키로. 21 정도 되네.’
[그럼 나이와 체격 고려할 때 이 정도의 확장은 이상합니다.]
‘그렇지. 정상 범위가 35mm 정도인데……. 이 환자는 45mm가량 되잖아.’
우연히 그럴 수도 있겠지만, 환자는 나이가 겨우 35밖에 안 된 상황이었다.
무언가 이러한 변화를 일으킬 만한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것이란 얘기였다.
드르륵.
그때 환자가 도착했다.
곽미경 교수도 아예 응급실에 있었는지 함께였다.
“아, 오셨습니까.”
“아직 이현종 교수님은 안 오셨구나.”
“네.”
곽미경이야말로 사실 수혁이 우수하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현종보다는 못하다 굳게 믿고 있었다.
왜냐하면 곽미경에게 이현종은 그야말로 신이었기에 그랬다.
지금껏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진단과 치료 모두 해내는 것을 옆에서 두 눈 똑똑히 뜨고 보아 온 바 있었다.
“일단 여기서 다시 한번 보시죠, 초음파.”
“음.”
“저도 트레이닝 받았으니, 하는 건 몰라도 판독에는 도움이 될 겁니다.”
“음……. 그럴까요? 근데 경식도로 할 건데, 그만한 시설이 있나?”
“있죠, 당연히.”
“아……. 여기 진짜 장난 아니구나. 어쩐지 아예 안 오시더라니.”
곽미경은 조금은 서운하다는 얼굴로 센터 내에 있는 초음파실 안으로 들어섰다.
규모가 작긴 하지만 심장내과에 있는 것과 설비 자체는 같았다.
아니, 오히려 새 거라 더 좋아 보이기까지 했다.
‘정말 아들 사랑 극진하시구나.’
곽미경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젊은 데다가, 체격도 좋은 환자는 조금 얼떨떨해 보였다.
“저 뭐 어디 많이 아픈 거예요?”
팔다리도 길고 얼굴도 잘생긴 편이었다.
딱히 여자가 아닌 수혁마저도 호감이 갈 지경이었다.
“일단 그런지 안 그런지 보려고 그럽니다. 조금 힘든 검사예요. 조치를 취해 드릴게요.”
“어……. 네.”
해서 수혁은 부드럽게 설명을 이어 간 후, 곽미경이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자세 및 전 처지를 해 주었다.
곽미경은 괜히 이현종 제자가 아니라는 듯 준비가 되자마자 경식도 초음파를 시작했다.
우선 아까 보았던 대동맥 확장부터 더욱 확실히 들여다보았다.
“음……. 이렇게 보니 더 확연한데.”
“아, 기록 봤어요?”
“네. 거기선 한 45mm로 보였는데……. 50mm 정도 되어 보이네요.”
“그러니까요. 음…….”
곽미경 교수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대동맥 뿌리의 확장은 굉장히 위험할 수 있는 소견이기에 그랬다.
[말판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구요.]
그때 바루다가 뜬금없이 진단명을 말했다.
‘응?’
[환자의 몸을 잘 보십시오.]
‘어…….’
바루다의 말에 따라 몸을 보니 확실히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냥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라, 바루다가 수혁의 시야에 붉은 선을 남겨 둔 덕이었다.
[상하지의 비율이 0.84 정도 됩니다. 백인 기준으로도 0.85 이하면 비정상인데, 동양인에서 이러면 무조건 이상하다고 봐야겠죠.]
‘아. 잠깐만.’
[검진해 보려고요? 해 보시죠.]
‘아니, 초음파 중이니까……. 딴것도 봐 달라고 해야지.’
[딴거? 아…….]
말판 증후군은 쉽게 말해 신체의 결체조직에 문제가 생기는 질환이었다.
결체조직이 뭔가 할 텐데 몸 여기저기 분포되어 있는 조직이라고 보면 되었다.
당연히 여기저기서 문제를 일으켰다.
“저 교수님.”
“네?”
“판막도 좀 자세히 봐 주시겠어요?”
“아……. 네네. 아무래도…… 음. 으음.”
“경미하기는 하지만……. 탈출이 있는 거죠?”
“네. 그렇네요.”
승모판막의 탈출이 보였다.
이거야 뭐 다양한 질환에서 나타날 수 있는 소견이었지만 말판에서 더 두드러지는 소견이었다.
그렇게 의심을 확신으로 끌어낸 수혁은 초음파가 끝나자마자 이런저런 검진을 했다.
“환자분.”
“네.”
“엄지손가락을 최대한…… 이렇게 해 볼래요?”
“이렇게요?”
“네.”
“음, 이건 아니고. 이번엔 오른손 엄지랑 새끼손가락으로 왼손 손목 감싸 보세요.”
“어……. 네.”
“이건 되네.”
Thumb sign은 음성이었으나 wrist sign은 양성이었다.
이에 더해 아까 보았던 대동맥 뿌리의 확장이나 승모판막의 탈출 그리고 상하지 비율을 토대로 보면 말판을 특정할 수 있었다.
물론 확진이야 유전자 검사를 해 보아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기다릴 수도 없었다.
환자는 이미 증상이 나타난 다음이지 않은가.
특히 판막 질환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이렇게 멀쩡한 듯하다가 갑자기 죽어 버릴 수도 있었다.
“말판 의심하는 거예요?”
“네.”
“음……. 확실히 지금 보니까…….”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아, 네.”
곽미경 또한 이현종의 제자답게 딱 검진하는 것만으로 어떤 질환을 의심하는지 알아보았다.
수혁은 그녀를 잠시 조용히 시킨 후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심장의 진행 상황을 보고 있자니, 다른 장기에도 문제가 생겼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눈. 눈은 잘 보이세요?”
“아.”
동시에 환자는 이 사람이 점쟁이 빤스라도 입었나 하는 얼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