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48화 (448/1,303)

448화 내 심장이 고장 났나 봐 (2)

“유아 마 하, 하, 하, 하트 브레이커~”

수혁이 막 질문을 이어 나가고 있을 때쯤 센터 저편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수혁은 아니었으나 곽미경 교수의 얼굴은 삽시간에 일그러졌다.

하트 브레이커가 심장내과에서만큼은 완전 금지곡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좀 사정이 나아졌지만 한창 유행할 때는 정말이지 예민하기 그지없었다.

특히 이현종이 이 노래 부르거나 듣는 놈이 있으면 찾아가 야단까지 쳤을 지경이었다.

“아니, 누가 재수 없게 심장 보는데…….”

해서 곽미경은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그러다 기절할 것 같은 얼굴로 변했다.

노래를 부르는 이가 이현종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교수님?”

부르투스에게 칼 맞은 카이사르가 이런 심정이었을까?

곽미경이 배신감에 치를 떠는 순간에도 이현종은 노래를 이어 나갔다.

“유아 마 하, 하, 하!, 하! 하트 브레이커~”

묘하게 악센트까지 넣어서 그런가 더 기분이 나빴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그동안에도 수혁의 문진은 계속되었다.

환자는 아주 놀란 얼굴로 수혁을 바라보았다.

최근 들어 눈이 좀 안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안과 가야지, 가야지 했는데 심장이 더 우선이라 참고 있을 뿐이었다.

“흠, 언제부터 그랬어요?”

“얼마 안 되긴 했어요. 한…… 2주?”

“2주라. 양쪽 다 그래요?”

수혁은 그렇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며 물었다.

자세히 보니 양쪽 눈이 조금 다른 곳을 보고 있어서였다.

둘 다 잘 보이거나, 시력이 크게 떨어진 경우라면 그저 외안근에 의해 움직이기에 이런 현상은 보이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한쪽 눈만 떨어진 경우라면 이럴 수 있었다.

“아, 아뇨.”

“일단 안과 좀 보죠.”

“어……. 심장은요?”

“이것도 이것대로 보고요. 근데 안과도 급해요. 환자분 오래 사셔야죠. 그럴 거죠?”

“그러고 싶긴 한데……. 어……. 눈도…… 아, 이거 심각한 거예요?”

“음.”

수혁은 자꾸 되묻는 환자를 바라보았다.

한 쌍을 이루는 감각기가 이래서 문제였다.

어느 한쪽만 서서히 나빠지는 경우엔 당사자조차 심각성을 잘 인지하지 못할 수 있었다.

해서 수혁은 초점이 조금 어긋나 있는 쪽 눈의 반대편 눈을 슬쩍 가렸다.

“어.”

그러자 대번에 환자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눈앞이 순식간에 까맣게 변한 탓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야의 중앙 부분이 아예 보이질 않았다.

“어……?”

“왼쪽 눈이라……. 아마 주시안이 아닐 거예요. 이러면 모를 수도 있지.”

“이거, 이거 왜 이래요? 고칠 수 있어요?”

“글쎄요. 2주 전부터 심해진 거면……. 이미 늦었을 수도 있는데, 일단 봐야 해요. 어차피 치료 안 하면 더 나빠질 거라.”

“허…….”

수혁은 얼이 빠져 버린 환자를 뒤로하고 곽미경을 바라보았다.

다 같이 봤으니 무슨 의견이 있겠지 싶어서였는데, 예상외로 곽미경도 환자처럼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그래요?”

“네? 아, 아뇨. 그…….”

곽미경은 당연히 방금 본 이현종을 떠올리고 있었다.

홍조를 띤 채 제일 싫어하던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더랬다.

‘말세…….’

세상이 망할 징조로까지 여겨졌다.

심장내과의 거두가 하트 브레이커를 저토록 신나 하면서 부르고 있다니.

저러다 부정 타서 병동 환자들 심장 망가지면 어쩌려고.

아니, 진짜 망가진 환자가 눈앞에 있지 않은가.

“아무튼, 망막 박리가 의심돼서요. 어쩌면 수정체 탈구가 있을 수도 있고요. 안과 협진이랑…… 심장에 대해서는 대동맥 박리 세팅으로 CT 찍어 보겠습니다.”

“아, 네네. 그게. 그게 좋겠군요.”

다행한 일은 곽미경 또한 이현종 밑에서 혹독한 수련을 받은 몸이라는 점이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수혁이 하는 말을 죄 알아먹었다.

해서 일을 나누어서 진행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타과에 대한 영향력은 수혁만 한 사람이 드물었기에 안과에는 수혁이 전화했고, 검사실에는 노상 이 검사를 하는 곽미경이 전화했다.

“안녕하세요, 통합진료센터 이수혁입니다.”

“네, 교수님. 안과 2년 차 황유리입니다.”

“아……. 네. 말판 증후군으로 망막 박리 의심되는 환자가 있는데 봐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제가 알기로 오늘 최다예 교수님 스케줄이 괜찮을 텐데.”

“아, 네. 교수님.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협진 진료는 3년 차나 4년 차가 갈 수도 있는데, 괜찮을까요?”

“네, 뭐 상태만 볼 수 있다면 상관없죠.”

“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확실히 교수가 된 후론 이게 좋았다.

그냥 교수도 아니고 끗발 날리는 교수다 보니 그 누구도 수혁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무엇보다 실력까지 최고란 소문이 점차 빠르게 번지고 있어, 수혁의 입에서 해당 과 진단명이 나오면 누구나 빠르게 움직였다.

이번에도 그랬다.

“아…….”

전화가 끊기고 거의 15분쯤 지났을 무렵 달려온 3년 차가 미간을 찌푸렸다.

수혁이 말했던 것처럼 망막 박리도 있었고, 또 수정체 탈구도 있었던 탓이었다.

왼쪽 눈의 박리는 이미 진행을 꽤 해서 수술을 한다 해도 이전으로 돌아가긴 어려워 보였다.

오른쪽 눈이라고 해서 사정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이거 지체하기 어렵겠는데요?”

태화 의료원 응급실에서만 도는 괴담 중에 안과에는 응급이 없다는 말이 있다.

눈알이 터지면 이미 터졌는데 뭐가 응급이냐, 안 터졌으면 터지지도 않았는데 뭐가 응급이냐고 화를 냈던 전설의 선배 때문이었다.

“그렇지? 응급으로 들어가나?”

“네, 그래야죠. 지금 최 교수님 외래 중이신데……. 끝나는 대로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근데…….”

당연히 응급이 없지는 않았다.

안과이니만큼 시력 소실의 위험이 있을 경우엔 다들 마음이 급해졌다.

우리 삶에 눈이 미치는 영향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제일 잘 아는 이들이 바로 안과인 덕이었다.

“근데요?”

“진단명에 말판 증후군, 망막 박리에…… 어……. 대동맥륜 확장(Annuloaortic ectasia)……. 이거 때문에요.”

“아, 수술 전 위험도?”

“네네. 위험하지 않을까요?”

“위험하죠.”

“아.”

대동맥륜 확장이 말이 좋아 확장이지, 사실상 대동맥류의 일종이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물론 아직은 CT를 찍지 않아 확실한 위험도 측정은 어렵지만.

초음파에서 본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다.

이 환자는 최대한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죽는다.

당연히 마취도 함부로 걸면 위험하다.

“그럼 어떻게…….”

“일단, 이제 곧 CT 찍을 텐데……. 그럼 바로 흉부외과에 협진 수술 요청할 예정이에요.”

“아…….”

“그때 조인트 수술 가능할까요?”

“심장 하는 사이에 눈을 한다고요?”

“네.”

“음.”

심장과 눈이라.

안과 레지던트는 저도 모르게 처치실 안에 들어가 있는 환자의 심장을 돌아보았다.

저런 거 보기 힘에 겨워서 안과에 온 것도 있는데, 그 수술에 들어간다 이 얘기였다.

당연히 마음이 불편해졌다.

하지만 수혁이 뻔히 보고 있는데 안 된다는 말을 어찌한단 말인가.

“해, 해야죠.”

“그렇죠? 심장 고쳐서 살았는데 눈이 안 보이면 안 되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요.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해서 안과 레지던트는 강매당한 얼굴로 센터를 나섰다.

마침 이송 요원이 와서 환자와 거의 같이 나서야만 했다.

수혁과 곽미경 그리고 여러 레지던트들이 그 뒤를 따랐다.

원래 영상 찍는 거까지 따라가는 경우가 흔하진 않지만, 센터는 교육 목적을 겸하고 있었기에 가서 입을 좀 털어 주는 게 모양이 더 나서 그랬다.

‘그러고 보니 나는 왜 가지? 어차피 바로 뜰 텐데.’

한편 곽미경은 중간에 이런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일단 따라가기로 했다.

지금 센터에 남아 있다가 이현종과 단둘이 마주하게 되는 것보다는 쓸데없이 걷는 게 더 나을 거 같아서였다.

하트 브레이커를 연발하는 우상과 한자리에 있는 건 너무 괴롭지 않겠는가.

“그럼 검사 시작합니다.”

검사실에 있던 방사선사는 태화 의료원의 다른 인력들과 마찬가지로 충분히 숙련된 사람이었다.

딱 검사 목적 및 세팅만 듣고도 순식간에 자세도 잡고 기기 세팅도 뚝딱 바꿨다.

거기에 더해 환자가 젊다 보니 조영제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도 큰 부담은 없었다.

물론 심장에 문제가 있을 테니, 그게 좀 걱정이긴 했지만.

의학에 있어서만큼은 나이가 절대적 깡패였다.

슈우욱.

조영제가 들어갈 때 환자가 불편감에 의해 눈을 질끈 감았던 것 말고는 이변이 없었다.

“음.”

“으음.”

넘어오는 영상을 확인한 수혁과 곽미경 모두 인상을 썼다.

초음파에서 확인했던 것보다도 더 노골적인 대동맥 뿌리의 확장이 확인되어서였다.

[1주일도 못 견디겠는데요?]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나쁘다고 해야 할지…….’

[죽기 전에 와서 치료가 시작되었으니 운이 좋다고 해야죠. 태화 말고 딴 데 갔으면 이렇게까지 검사 못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야겠지.’

말판 증후군 자체는 아주 유명한 병이다.

학생 시절에도 족보로서 나오는 병이니만큼 많은 의사들에게 익숙한 병이기도 했다.

하지만 말판 증후군에서 동반될 수 있는 소견을 전부 꿰고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아마 바루다의 말대로 높은 확률로 다른 병원에 갔다면 진단이 안 되었을 터였다.

“바로 흉부외과 콜 해야겠는데요?”

“네, 그렇네요. 하……. 이거…… 치환술을 해야 될 거 같은데…….”

“보호자 와 있나요?”

“불러야죠. 30대라 일단은 혼자 온 거 같아요.”

“음, 네. 불러야겠어요. 위험한 수술이니까요.”

“네네.”

곽미경은 흉부외과 전화번호를 뒤지다가, 이내 수혁에게 넘겨주었다.

생각해 보니 곽미경은 이현종의 애제자로서 흉부외과와의 사이가 최악이지만 수혁은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연구도 같이하고 해서 꽤 관계가 좋아서였다.

어차피 흉부외과 의사라면 이 환자의 CT를 보고도 안 하겠다는 말을 할 수는 없을 게 뻔해도 기왕이면 사이좋은 사람이 전화하는 것이 좋았다.

병원도 다 사람 사는 곳이라 그랬다.

“네, 교수님. 이수혁입니다. 오랜만입니다.”

“아, 이 교수. 부센터장 된 거 축하해. 직접 가야 되는데, 이거 너무 바빠서 이쪽도…….”

“아뇨, 아뇨. 흉부외과 바쁜 거 다 알죠. 하하.”

“근데 무슨 일이지? 거기가 요샌 더 바쁘다던데?”

확실히 대화 자체가 자연스럽고 또 부드러웠다.

곽미경이 했다면 또 한바탕 옛날얘기 나왔을 텐데, 곽미경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리 옛날에 한번 보고 안 온 환자라고 하지만 어찌 되었건 책임감이 느껴진 탓이었다.

빨리 좀 나았으면 좋겠단 소망이 있었다.

“말판 증후군 환자가 있는데……. 지금 대동맥륜 확장증이 있어서요.”

“오, 너비가?”

“60mm로 보이는 지점도 있습니다.”

“어? 그럼 터질 수도 있겠는데? 오늘 해야겠는데?”

“네. 그래서 좀 부탁드리려고요.”

“해야지, 해야지. 근데 나 외래라, 오후가…… 5시쯤에나 들어갈 거 같아. 괜찮나?”

“네, 괜찮습니다. 어차피 환자 금식도 오전부터라……. 그때 되어야 합니다. 환자 등록번호가…….”

흉부외과 교수는 등록번호를 듣고는 바로 영상부터 확인했다.

지금 찍은 영상이었는데, 그걸 본 교수는 딱 곽미경도 생각하고 있던 수술명을 언급했다.

“그래, 그럼 음. 밸브 살리고 대동맥 치환술로 가면 되겠네.”

“네, 그렇게 보이는데……. 혹시 모르니 벤탈 수술도 염두에 두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응? 여기서?”

“일단 들어가 보시면……. 어찌 될지 모르니까요.”

오직 수혁만 그보다 한 단계 위의 수술을 얘기했다.

곽미경은 누가 아들 아니랄까 봐 이현종 따라 선을 넘은 거 아닌가 싶었고, 흉부외과 교수는 수혁의 실력을 알기에 긴가민가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