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0화 내 심장이 고장 났나 봐 (4)
흉부외과 교수는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하는 얼굴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마취를 담당한 마취과 교수도 그랬고, 체외 순환기를 돌리기 위해 들어온 이도 그랬다.
‘뭐여.’
이 순간만큼은 다들 한마음 한뜻이 되어 이현종을 바라보았다.
저 인간이 돌았나 싶어서였다.
‘새끼들이, 어른 된 기념으로 화해하자는데 이런 반응을 보여?’
문자 그대로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이현종조차 느낄 수 있는 만큼 노골적인 시선이었다.
하지만 이현종은 이미 상상 속에서만큼은 이기자 교수와 결혼해서 지금 있는 이기자 교수 딸내미의 자식 손주까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수혁의 자식 손주도 다 본 마당이었다.
무엇 하나 허투루 하고 싶은 게 없었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결혼식 하객이었다.
원래 태화 의료원 원장쯤 하게 되면 하객 걱정 따위는 하찮은 것이 되어야 옳았지만.
살아온 인생을 반추해 보고 나니 아주 자신이 있진 않았다.
‘적어도 원수는 만들지 말았어야 하는데.’
인생에 의학적인 성취 외에 좋은 일이 없을 거라 여기지 않았던가.
그래서 인간관계에 있어서만큼은 신현태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강 살아왔다.
한데 수혁을 알게 된 후부터는 그게 아니게 되었다.
아들이 생기고, 애정을 쌓아 가다 보니 이기자 교수에 대한 짝사랑도 점차 되살아났다.
어차피 다 늙은 마당에 한번 질러나 보자 하고 냅다 고백했더니만 일이 이렇게 됐다.
‘그래……. 내가 하객 모으는 셈 치고 또 참는다.’
해서 이현종은 다시 한번 껄껄 웃었다.
“미안하다니까 왜 그렇게 봐. 하하. 일단 수술해. 수술. 우리 병원 흉부외과가 최고라는데……. 나도 솜씨 좀 보자.”
정말 좋은 뜻에서 말을 꺼내면서였다.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반드시 그렇게만 들리지가 않았다.
애초에 이현종이라고 하면 흉부외과에서는 색안경을 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안 보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이 새끼가 어쩐 일로 여기까지 와서 화해 운운하나 했더니……. 실력 좀 보자 이거지?’
흉부외과 교수만 이렇게 받아들인 게 아니라 체외 순환기 기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흉부외과 수술에 있어 중추적 역할을 하는 사람이니만큼 그도 이현종의 발언을 도전으로 여겼다.
‘음!’
‘음.’
둘은 무언의 신호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최선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했다.
어떻게든 이 무지렁이 내과 놈에게 흉부외과 수술의 위엄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둘의 결의는 곧 마취과 의사에게도 전해졌다.
“자, 이제 시작합니다.”
해서 마취과 의사 또한 어쩐지 결연한 얼굴로 환자를 재우고 목에 튜브를 꽂아 넣었다.
태화 의료원 정도 되면 누구 하나 실력으로 빠지는 사람은 없었기에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잘 들어갔습니다.”
“좋아. 개흉 준비 한다. 안과 샘들?”
“아, 네.”
흉부외과 교수는 삽관이 잘 된 것을 확인하자마자 안과 측을 바라보았다.
아직 최다예 교수는 들어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심장 수술하는데 안과 수술은 작게만 느껴져서였다.
방해가 안 되게끔 하면서 최대한 빨리 치고 빠질 수 있을 때 불러 달다는 말만 남기고 대기 중이었다.
“이거 체외 순환기 돌면 그때 시간이 좀 있어요. 세팅하고 하는 게 시간이 걸리거든. 수술 얼마나 걸리지?”
“아……. 전신마취라 거의 30분 내지 1시간이면 끝납니다.”
“좀 더 빨리는 안되나?”
“제가 교수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연결 자체는 빨리 시작하니까, 지금 부르시고.”
“네. 그, 소독은 함께 해도 되겠죠?”
“아, 물론이지.”
흉부외과 교수는 그 말을 마친 후 바로 환자 소독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개흉이다 보니 소독 범위도 넓었다.
‘와……. 장난 아니구나.’
눈만 하던 안과 레지던트가 보기엔 거의 무슨 세상 전부를 닦아 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흉부외과 측에게는 일상일 뿐이었다.
슥슥.
해서 능숙하기 이를 데 없는 얼굴로 닦아 내고 있는데, 물끄러미 그걸 지켜보고 있던 이현종이 입을 열었다.
화해한답시고 들어오긴 했는데 심심하기도 하고 해서 원래 계획했던 것보단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이야, 소독도 잘하네. 어? 완벽해. 꼼꼼하고.”
진짜 칭찬이었다.
이현종이 비록 내과긴 하지만 어찌 되었건 시술하는 입장이지 않은가.
소독의 중요성은 어지간한 수술 과만큼 잘 알았다.
‘저 새끼가?’
하지만 흉부외과가 듣기엔 비아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떻게 수술과 교수에게 소독 칭찬을 한단 말인가.
무조건 맥인다고 봐야 했다.
‘진심이라고 해도 기분 나쁜데?’
흉부외과를 얼마나 무시했으면 소독하는 걸 보면서 칭찬을 한단 말인가.
혹시 소독도 못 하는 놈들이라고 여겼단 건가?
뭐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웃네. 허허.’
사실은 인상을 찌푸린 건데, 마스크를 쓰고 있다 보니 조금 헷갈렸다.
또 이현종은 워낙에 지금 긍정적인 생각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인지라 멋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행동거지를 고쳐먹을 생각 대신 계속 이어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이 말이었다.
“좋아. 칼.”
그사이 흉부외과 측은 빠르게 드랩을 친 후, 메스를 받아 들었다.
‘봐라, 새끼야.’
그리고 교수는 이현종을 힐끔 바라보고는 메스로 흉골 가운데를 그었다.
아주 빠른 속도였다.
이현종은 물론이거니와 수혁조차 움찔했을 지경이었다.
‘시벌, 왜케 빨러?’
[그러니까요? 가슴도 맨날 째면 저렇게 되나?]
계속 이현종만 바라보고 있던 곽미경과 신현태만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었다.
‘지금 이현종 교수님이 먹이는 거예요?’
‘그런 거 같은데…….’
‘그럼 평소랑 같은 거 아닌가요?’
‘그러니까?’
이현종이 자꾸만 헷갈리게 해서 더 그랬다.
환자에게는 좀 미안했지만, 개흉보다는 그게 더 신경 쓰였다.
이현종은 둘에게 그만큼 중요한 사람이었다.
“좋아……. 거기 안과.”
“네, 네.”
“심장 보이지?”
“와……. 네.”
그사이 흉부외과 교수는 둥근 전기톱으로 환자의 흉골을 갈라 좌우로 펼쳐 놓았다.
콩닥거리는 심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흉부외과가 아닌 이들에게는 아주 생경한 광경이었다.
심지어 심장내과인 이현종과 곽미경에게도 그랬다.
애초에 개흉하지 않고 심장에 관한 처치를 할 수 있도록 한 게 이현종이니 더더욱 그랬다.
‘새끼……. 이런 거 보고도 어? 흉부외과를 무시할 수 있냐?’
흉부외과 교수는 부르기는 안과를 불렀지만, 눈은 이현종을 보고 있었다.
기대처럼 이현종은 심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가지 어긋난 점이 있다면 이번엔 칭찬이 아니라 수혁과의 대화가 이어졌다는 것 정도였다.
“아……. 진짜 이렇게만 봐도 대동맥륜이 확장되어 있네.”
“네. 오히려 실제로 보니까 확 늘어난 게 체감이 되네요.”
정상적인 대동맥륜을 직접 본 적은 있나? 뭐 이런 말이 고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너무 바빴다.
환자에게는 별거 아닌 수술인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어려운 수술이지 않은가.
뭐가 되었건 간에 체외 순환기가 필요한 수술은 다 그랬다.
여전히 환자가 수술대 위에서 죽을 수 있는 과가 바로 흉부외과였다.
“근데 아까 네가 뭐라고?”
“아……. 지금 예정된 수술은 대동맥 교체술인데……. 아무래도 밸브에도 문제가 있을 거 같아서요. 벤탈 수술을 해야 할 가능성도 있어 보여요.”
“벤탈이라……. 음……. 이렇게만 봐서는 모르겠는데. 초음파에서 역류가 보였어?”
“초음파만으로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심장 크기나 질환의 경과 등을 보면……. 가능성이 작을 거 같지 않아요.”
“그래? 음. 네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그거 흉부외과에는 말했지?”
“네, 아까. 혹시 몰라서 수술방에도 얘기해 놔서 기구는 준비되어 있을 거예요.”
해서 신경 끄고 수술을 진행하려다 보니 자꾸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내과 주제에 왜 수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든단 말인가.
이현종이 했다면 원래 그런 놈이니까 하고 넘어가겠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수혁이 저러고 있었다.
‘역시……. 피가 어디 가니…….’
해서 흉부외과 교수는 수혁에 대한 호감도 서서히 지워 나갔다.
“다 됐다.”
그것과는 별개로 그는 귀신같은 솜씨를 발휘했다.
잠시 딴생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체외 순환기를 연결했던 것.
“자, 그럼 저희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네.”
동시에 안과가 돌입했다.
환자가 죽고 사는 것과 연관이 있는 문제는 아닐지라도, 만약 환자가 살아난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관해서는 눈만큼 연관이 깊은 것도 드물었다.
앞이 보이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은 확연히 달랐다.
“일단…… 이쪽은 망막 박리가 너무 오래됐어. 여기서 멈추는 게 최선이야.”
“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본격적인 전신마취 세팅이라 그런가 수술하기엔 훨씬 편했다.
“피가 좀 나는데……. 혈압 얼마지?”
다만 문제가 있다면 피가 좀 났다.
그래 봐야 면봉으로 닦으면 되는 수준이지만, 수술 시야가 워낙에 좁은 부위였기에 그만한 출혈도 큰 방해가 되었다.
“아……. 이거 체외 순환기 때문에 헤파린 들어가서 그럴 겁니다.”
답은 마취과 대신 흉부외과 교수의 입에서 나왔다.
잠시나마 얻게 된 휴식 시간 동안 옷이라도 벗고 있자는 심정으로 있던 그는, 천천히 수혁과 이현종 부자에게 향하고 있었다.
“아……. 헤파린. 알겠습니다. 제가 감안해서 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최다예 교수는 낭패라 여기는 대신 전의를 불태웠다.
한때 망막 하는 사람들은 앞길이 막막하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열정 하나로 망막을 전공한 사람이지 않은가.
그만큼 자기가 하는 수술에 자부심도 있었고, 자신도 있었다.
실제로도 잘하고 있었다.
흉부외과 교수야 본다고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보여도 알 수도 없는 분야이기도 해서 완전히 맡기겠다는 마음으로 부자간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까 듣자니 자꾸 벤탈 수술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게 얼마나 큰 수술인지는 알아요?”
간신히 반말을 참았다.
이제 수혁도 교수란 사실을 가까스로 떠올린 덕이었다.
저변에는 나는 너네 같은 놈들과는 다르단 생각도 깔려 있었다.
수혁은 그런 교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알죠.”
당연한 걸 묻고 있다는 표정을 지어 가면서였다.
‘이놈 봐?’
흉부외과 교수는 또다시 참을 인 자를 그리고 말을 이었다.
“어떤 수술인데요?”
“일단 관상동맥 두 개를 짧은 인조혈관으로 이어 줘야 하는 차이가 있죠. 또…… 대동맥 판막도 교체해야 하죠. 큰 수술입니다.”
“그렇게 잘 알면서 그걸 해야 된다고 해요? 명확한 근거도 없이?”
“음…….”
수혁은 말할까 말까 망설였다.
바루다 덕에 초음파 분석에 있어 남들은 보지 못하는 걸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이건 말한다고 믿어 줄 리가 없는 종류의 것이어서 그랬다.
더욱이 안과까지 들어와 있는 상황이지 않은가.
‘이런 말 했다가 밝혀지면 검사나 당할지도 모르지.’
해서 수혁은 일단 모르쇠를 치기로 했다.
“한 개의 근거는 아니지만 여러 근거가 있긴 있습니다. 우선 환자의 안과적 진행이나 대동맥륜의 환장 정도를 보면 밸브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90% 이상이에요.”
“초음파에서는 안 보이던데.”
“수술장에서는 다를 수 있죠. 안 그런가요?”
“그런 경우도 있지만…….”
“아, 지금 안과 수술 끝났네요. 한번 보시고 얘기 다시 하죠.”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