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화 내 심장이 고장 났나 봐 (5)
흉부외과 교수는 너 이따 보자는 식으로 수술실을 나섰다.
아무리 아까 박박 닦았다고 해 봐야 옷을 한번 벗고 나면 다시 닦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수술실의 멸균 개념이라는 건 생각보다도 더 빡빡했다.
‘지가 천재면 천재지, 응? 내과가 말야……. 어디 흉부외과한테…….’
그것과는 별개로 교수는 정말이지 온 힘을 다해 손을 벅벅 닦았다.
수혁이 했던 말을 생각하니 열불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이현종이 들어와서 이상한 소리를 해 대더니 이제는 아들이 지랄이었다.
‘내가 이씨랑 상종하면……. 아니지. 하.’
이씨가 싫다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 아내가 이씨고 또 대한민국에 이씨라는 족속이 얼마나 많은지 깨달은 교수는 다시 한번 성질을 부리며 손을 닦았다.
그사이 옷도 벗지 못하고 안과 수술하는 동안 대기 중이던 흉부외과 펠로우와 레지던트는 교수가 오자마자 딱 수술할 수 있도록 나머지 준비를 마쳤다.
드르륵.
그리고 들어오는 교수를 보며 좆 됐다를 연발했다.
평소에도 그리 녹록지 않은 교수인데 오늘은 어째 기분이 더 나빠 보여서였다.
‘개놈들이…… 괜히 들어와서 분위기 흐려.’
‘그러니까요. 내과 새끼들. 개새끼들. 인기 과면 다냐.’
‘솔직히 인기 과는 아니지…….’
‘그런가요? 우리보단 인기 많잖아요.’
‘우리랑 비교하면 모든 과가 인기 과야.’
‘후.’
펠로우와 레지던트는 이 모든 것의 원흉인 이수혁과 이현종을 노려보다가 이내 자조적인 대화로 말을 끝냈다.
올해 흉부외과가 사상 초유의 미달 사태를 겪었기 때문이었다.
내과는 이수혁도 있고 해서 화제가 돼서 그런지 지방 병원 1등들이 몰려서 미달은커녕 경쟁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정말이지 한스러운 일이었다.
“왜 한숨을 쉬냐? 칼도 안 댔는데?”
그런 둘을 보던 교수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안 그래도 기분도 나쁜데 아랫놈 둘이 우거지 죽상을 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특히 레지던트가 그랬다.
‘어……. 이거 쌔한데.’
펠로우는 즉시 어두워지는 1년 차의 얼굴을 보며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니, 그……. 이번에 지원 현황 때문에 얘가 아직도 심란한가 봅니다.”
“응? 지원? 아, 미달 난 거? 그거 눈치 보느라 그런 거라니까…….”
그리곤 교수를 향해 눈짓했다.
정신 차리고 부드럽게 대하라는 뜻이었다.
다른 과 같으면 감히 펠로우가 교수에게, 그것도 레지던트에게 잘하라고 했다간 난리가 나겠지만 흉부외과에서는 예외였다.
여긴 레지던트가 귀한 곳이었다.
그나마 정부에서 몇 년간 흉부외과 레지던트에게 월급을 좀 더 보전해 준 시기가 있어 망정이지, 그 전에는 누가 흉부외과에 관심만 있다고 해도 교수들이 버선발로 뛰어나갔다.
실제로 수혁의 동기가 그랬는데, 당시 술 따르던 교수에게 동기가 술은 못한다고 했더니 아이고 이런 결례가 있나 하고 자기가 원샷 했다는 슬픈 전설도 전해 내려왔다.
“그, 그래. 어 그래. 그…….”
어두운 과거를 떠올린 교수는 필사적으로 1년 차의 이름을 생각했다.
“그래, 우리……. 구자형 선생. 어? 아유, 내가 좋아하는 성우님이랑 이름이 똑같아서 그런가, 일도 잘해. 자네는 그냥 흉부외과가 딱이야.”
“가, 감사합니다.”
지금껏 한 것이라고는 한숨 쉰 거랑 살짝 당기고 있던 게 다였던 구자형은 얼떨떨한 얼굴로 감사를 표했다.
교수는 그 인사를 끝으로 얼렁뚱땅 수술에 돌입했다.
대동맥 치환술이었다.
벤탈 수술에 비하면 쉬운 수술이지만, 비교 대상이 벤탈이라 그런 것이지 결코 쉽다고 하면 안 되는 수술이기도 했다.
“후.”
심호흡을 한 후, 메스를 받았다.
이미 피는 체외 심장 대신 체외 순환기를 통해 돌고 있기에, 절개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백강혁……? 그 인간은 이걸 그냥 한다고 했지?’
체외 순환기가 나오기 전에는 대체 어떻게 했을까 싶은데.
영상을 보니 과연 할 수는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게 사람이야? 싶은 장면이 몇 있기는 했지만 하여간 그랬다.
지이익.
하여간 교수는 원래 예정대로 대동맥을 가르고 들어갔다.
확장된 부분을 인조혈관으로 대체하기 위함이었다.
그때 수혁이 입을 열었다.
“저 교수님?”
“응?”
묘하게 텀이 있을 때 불러서 아주 거슬리지는 않았다.
다만 수술하는 데 불렀다는 거 자체가 어찌 보면 무례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교수는 일부러 수혁을 째려보았다.
별로 효과적이진 않았다.
루페를 끼고 있어서 그런가 눈알이 잘 보이지 않아서였다.
게다가 수혁은 이현종의 아들은 아니지만, 일정 부분 닮지 않았는가.
여간해서는 쫄지도 않았다.
“밸브 확인 부탁드립니다.”
“아니, 또 그 소리야? 어련히 알아서 할까.”
“제 말은 잊으시고, 그냥 한 번만 봐 주세요.”
“알았어요, 알았어. 거참. 다음부터는 어?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해. 자기 환자라도 말야. 보호자도 아니고 수술하는데 이거.”
교수는 수혁과 이현종에게 하는 말을 수술실 간호사들에게 했다.
큰소리 나는 게 아주 없는 일은 아닌지, 별로 충격받는 사람은 없었다.
시니어 간호사는 시큰둥한 얼굴로 네, 그럴게요 라고 하기도 했다.
흉부외과 교수는 이래저래 요새 기강이 엉망이라는 생각을 하며, 이게 다 이현종 때문인가 하면서 밸브를 살폈다.
수혁이 보라고 해서 보는 게 아니라 원래 째고 들어갔으면 확인을 해야 해서 하는 것이라 중얼거렸다.
끝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어…….”
밸브가 망가져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늘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말판 증후군의 영향인 듯했다.
“이거…….”
“아.”
이상한 반응을 보이자, 펠로우도 고개를 들이밀었다.
시야가 별로였지만 그 또한 심장만 만지게 된 지 벌써 수년째인 인재였다.
딱 보자마자 알았다.
이 밸브는 바꿔야 한다는 걸.
그 말은 곧 수술을 벤탈 수술로 변경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하씨. 이게 뭐야?’
펠로우야 수술이 더 어려운 수술이 되어 기분이 나빠진 정도였지만 교수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주구장창 그럴 리가 없다고 했는데 벤탈로 바꿔야 하게 생기지 않았나.
모른 척 그냥 원래대로 할까 하는 생각마저 잠시 들었을 지경이었다.
‘아니지……. 그럼 이 환자 죽어.’
하지만 살인이나 다름없는 행위를 의사가 돼 가지고 알량한 자존심 하나 지킨답시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밸브 어떤가요?”
“그, 어. 망가졌네?”
“그렇죠? 아무래도 그럴 거 같더군요.”
“아니, 근데 이걸…… 이걸 어떻게 알았지?”
“아까 말씀드렸듯 질병 경과를 보니 그럴 거 같았습니다.”
“음.”
흉부외과 교수는 말판이 원래 그런가 싶었다.
수술이야 많이 하지만 사실 말판 같은 병을 많이 보는 과는 아니라 그랬다.
하지만 옆에 있던 곽미경이나 이현종은 그럴 수가 없었다.
‘우리 아들이 또 하나 진화했나?’
‘그런 논문이 있었나?’
경험도 많고 지식도 많이 쌓은 그들도 도무지 예측할 수 없던 것을 오직 수혁만 떠올린 탓이었다.
하여간 수술은 수혁이 미리 수술실에 말해 둔 덕에 빠르게 변경되었다.
애초에 흉부외과 측의 실력이 좋아서인 것도 있었다.
어렵다, 어렵다 엄살을 부렸던 것치고는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가슴 닫고 나왔는데도 아직 하루가 끝나지 않았을 정도였다.
뎅.
물론 딱 나오자마자 12시를 넘기긴 했지만.
‘어떻게 하죠? 아까랑은 좀 다른데?’
‘그래도 상담은 받아 봐야 해. 내가 문자는 해 놨어. 오늘 어차피 할 일 있어서 퇴근은 안 한대.’
‘오……. 오진승 교수님이요?’
‘응. 걔가 애가 착해.’
‘그쵸. 착하죠.’
‘논문만 더 쓰면 좋은데……. 뭘 쓰는 걸 그렇게 싫어하네.’
동시에 곽미경과 신현태는 자연스럽게 이현종을 어디론가 끌고 갔다.
남들의 이목을 끌지 않으면서도 으슥한 곳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저항을 했을 텐데 졸려서 그런가, 이현종도 별말이 없었다.
수혁은 그런 셋을 잠자코 따랐다.
어차피 환자는 이제 한동안 흉부외과가 보지 않겠는가.
수술 후 관리는 일반적인 중환자 케어와는 궤를 달리하기에 내과는 요청이 있을 때나 가서 보면 되었다.
“뭐야, 밥 어딨어.”
3층 구석에 도착한 이현종은 텅 빈 테이블을 보고 외쳤다.
오진승 교수는 신현태의 요청에 의해 숨어 있어서 보이지도 않았다.
“밥? 뭔 밥?”
신현태는 그런 이현종을 보며 물었다.
역시 이 형이 정신이 나갔다고 확신을 하면서였다.
그 왜 치매 환자들이 밥 먹고선 돌아서면 밥 왜 안 주냐고 하지 않던가.
“우리 밥 안 먹었잖아. 어디 가자고 하길래 난 밥 시킨 줄 알았지.”
“아. 우리 안 먹었지.”
하지만 생각해 보니 이 환자에게는, 아니, 이 형에게는 오늘 저녁을 주지 않았다.
‘이쪽으로는 또 머리가 맑네? 아닌가?’
오히려 정신없는 건 이쪽인가 싶기도 했다.
헷갈려서 미리 불러다 놓은 오진승 교수를 부르지도 못했다.
그때 이현종이 배를 이리저리 문지르더니 곽미경을 돌아보았다.
“곽 교수. 일단 우리 밥부터 먹자. 그…… 내가 전에 맛있다고 한 데가 어디더라.”
“닭한마리요.”
“어, 거기. 거기 시키자. 안 그래도 내가 긴히 할 말이 있어 가지고……. 다들 불러 모으려고 했었는데 잘 됐어.”
“네?”
“현태도 부르려고 했는데 와 있어서 다행이라고. 이 자식은 원장씩이나 된 놈이 어? 수혁이 하루라도 안 보면 가시가 돋냐? 할 일은 다 하고 왔어?”
“어…….”
이현종은 어느새 원래 이현종으로 딱 돌아와 있었다.
‘뭐야.’
‘뭐지.’
곽미경은 당황한 얼굴로 일단 닭한마리를 시켰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숨어 있던 오진승이 신현태에게 눈으로 물었다.
‘나가요?’
‘아니, 아직 보류.’
‘어…….’
‘보류, 보류.’
그리곤 황급히 젓는 손길을 보고 다시 멀찌감치 돌아앉았다.
그사이 이현종은 빈 테이블 앞에 자리했다.
원래는 보호자들 병실 가지 말고 여기서 만나라고 만들어 놓은 자리라 테이블이 그리 크지가 않았다.
해서 몇 개 모으기도 해야 했고, 또 컵으로 쓸 소변 컵도 세팅하고 하느라 시간이 금세 흘렀다.
“배달이요! 어, 교수님들이시네.”
이현종은 닭한마리를 딱 앞에 두고는 젓가락을 집어 드는 대신 목을 가다듬었다.
‘그래, 얘들은 다 들을 자격이 있지.’
하나는 애제자, 하나는 동생, 하나는 아들.
장가간다고 밝히기 딱 좋은 인원이지 않은가.
게다가 다들 입이 무겁기로 소문난 애들이었다.
무슨 말을 해도 흘러나가지 않을 거란 확신을 할 수 있다, 이 말이었다.
“야, 다들 모여 봐.”
해서 이현종은 조금 진중한 얼굴이 되어 모두를 불렀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현종 걱정에 밥맛도 없던 신현태와 곽미경이었지만, 막상 닭을 앞에 두고 보니 배가 고파 오던 참이었다.
그런데 못 먹게 해?
딱 열이 오르려는 순간, 이현종이 말을 이었다.
“나 장가갈 거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