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4화 새엄마? (3)
태화 의료원 응급실은 언제나 그렇듯 터져나가기 직전이었다.
언제랄 것 없이 환자들이 몰려들기에 그랬다.
때문에 CT실도 꽉 차 있었다.
자정이 훌쩍 넘어간 시간임에도 별 상관없었다.
“아우.”
“이거…….”
다시 응급실로 돌아와 찍으려 했던 이들 모두 낭패한 얼굴이 되었다.
특히 펠로우들이 그랬다.
확실히 수혁의 말을 듣고 보니, CT는 찍어 봐야 할 거 같았다.
급성 A형 간염 환자의 대략 30%에서 황달이 발생하고, 이 중 대부분은 Total bilirubin이 10mg/dl 미만이지 않던가.
심지어 그 이상을 가더라도 2주 이내에 정점을 찍고 호전되기 마련이었다.
이 환자는 그렇지가 않았다.
‘왜 담즙 저류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나는 소화기내과인데.’
‘상부 위장관 전공이지, 간담췌는 아니잖아요.’
‘그게 할 소리냐? 우리는 간 아예 안 봐?’
‘교수님들은 그러시잖아요.’
‘그건 인마 태화니까 그렇지. 딴 데 가면 다 봐야 해. 그리고 이게 핑계가 안 되지……. 이수혁 교수님은 펠로우 안 했는데.’
‘음…….’
정점을 넘어 한 달이 다 되어 가도록 여전히 증상이 있었다.
황달 수준은 간염 걸린 지 일 주도 안 됐다고 해도 믿을 지경이었다.
수혁이 한 말은 타당하다 못해 당연하다 여겨질 지경이었다.
“음, 오래 기다릴 거 같으면 우리 센터에서 찍죠. 거기도 CT 있으니까.”
“아……. 네. 그렇게 해도 되나요?”
“되죠. 이왕 있는 기계 놀릴 일 있나요? 일단 노티 온 것도 있고.”
“아……. 네. 감사합니다.”
그냥 똑똑하기만 한 게 아니라 권력도 있었다.
부센터장의 권한으로 놀리는 CT 찍는다는데 누가 감히 반대를 하겠는가.
게다가 반드시 필요한 검사라는 설득도 있었다.
일행은 곧 CT 결과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좀 멍한 얼굴이 되었다.
예상과는 달리 환자의 CT가 퍽 괜찮았기에 그랬다.
“어…….”
“이건.”
펠로우들이 보기에만 그런 게 아니었다.
수혁이 보기에도 그랬다.
아니, 더 뚜렷하게 보였다.
‘정상?’
[구조적인 폐쇄는 전혀 없습니다. 담즙 저류도 그렇게 심하지 않고요.]
‘그래……. 그렇네.’
수혁 또한 당황한 얼굴이 되어 환자를 돌아보았다.
여전히 노랬다.
황달 소견은 저명했다.
하지만 CT상에서는 담즙 저류가 심해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두 가지였다.
‘간염이 진행 중인가? 아니면 황달이 오로지 십이지장에서의 출혈 때문에?’
[후자는 가능성이 작습니다. 그렇다고 하기엔 절대적인 출혈량이 아주 많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자의 경우가……. 정상 면역군에서는 드물지만 가능한 얘기죠.]
확실히 내부 출혈이 있는 경우, 이 때문에 빌리루빈 수치가 오를 수 있기는 했다.
하지만 바루다의 말대로 황달을 일으킬 정도로 극단적으로 오르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려면 내출혈보다는 비장 같은 곳에서 비정상적으로 많은 수의 적혈구가 깨지는 상황이 있어야 하는데, 이 환자에게 그럴 만한 확률은 없어 보였다.
‘잘 봐야겠는데……. 이러다가 급성 간부전이라도 오면…….’
[환자는 죽을 겁니다.]
대개 간염에 있어 급성보다는 만성이 훨씬 심각한 것으로 여겨지기 마련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만성 간염은 아직 이렇다 할 약이 없지 않은가.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간 경화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에 비해 급성 간염은 워낙 회복력이 좋은 장기인 간의 특성상 별다른 합병증 없이 낫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간혹 급성 간부전으로 가게 되면 허망하게 환자를 잃기도 했다.
신장 부전에 대해서는 그나마 투석이라도 하지만 간부전은 간 이식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드문 경우긴 한데…… 환자 간염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이네요.”
“네. 아, 이거…….”
“출혈 같은 것이 더 악영향을 미쳤을 수 있어요. 혹시 다른 기저질환은 아예 없었나요?”
“아, 네.”
수혁의 말에 펠로우 2년 차가 잠시 대훈을 돌아보았다.
대훈은 문진상 전혀 기저질환이 없었다는 걸 기억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훈이 열심히 하는 건 비단 수혁만 알고 있는 일은 아니었기에, 펠로우는 그런 대훈을 보고는 안심하고 수혁에게 답할 수 있었다.
“흠.”
하지만 수혁은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물론 이 자리에서 그럴 리가 없다고 하진 않았다.
‘이따 내가 좀 다시 봐야겠다.’
[네. 기저질환 없이도 뭐 이렇게 될 수 있겠지만 확률이 희박합니다. 그것보다는 우리가 모르는 기저질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다만 이따 한번 따로 보겠다고 다짐할 뿐이었다.
이 자리에서는 해야 할 일이 따로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심각해질 수 있겠어요. 힘들겠지만 간염에 대해서 보다 유의해서 봅시다.”
“네, 교수님.”
“대훈아, 너 일단 처방 내고 내가 한번 확인해 줄게.”
“네. 교주…… 아니, 교수님!”
교수는, 그러니까 환자를 보는 데 있어 가장 상급자는 지침을 잘 세워 주어야만 했다.
이 경우는 다른 것보다 우선 간염을 순위에 둬야만 했다.
해서 수혁은 대훈으로 하여금 혈장 빌리루빈 수치와 PT 수치를 잘 보도록 얘기하고 또 비타민 K 보충 및 덱스트로즈 수액을 줄 것을 지시했다.
그래 봐야 다 대증적인 치료일 뿐이었다.
A형 간염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라 이렇다 할 치료제가 없기 때문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일단 이게 최선이야.’
[간염에 대해서는 그렇습니다만……. 기저질환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죠.]
‘응, 그건 알아보지 뭐. 근데…….’
[근데 뭐요?]
‘수면 괜찮나? 지금 안 자도 돼?’
얼핏 들으면 방금 수혁의 말이 정말 이상하게 느껴질 터였다.
대체 왜 자신의 수면에 대해 묻는단 말인가.
졸리면 자야지.
하지만 상대가 바루다라면 제법 타당한 질문이라 할 수 있었다.
바루다는 수혁의 일거수일투족 정도가 아니라 장기 움직임까지 다 파악하고 있기에 그랬다.
[약간 심장박동 수가 오르고 있긴 하지만, 한 시간가량은 괜찮습니다. 내일 한 시간 더 자면 되죠.]
‘그래도 되나?’
[부세터장이잖아요. 센터장은 이현종이고. 누가 뭐라 그러겠습니까. 어차피 한 시간 더 잔다고 지각도 아닌데.]
‘하긴, 그것도 그렇네.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하더니 진짜 그 말이 딱 맞네.’
수혁은 껄껄 웃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환자는 이송 요원과 대훈이 데리고 병실로 간 상황이었다.
아마 대훈은 그 후로 수혁이 얘기한 대로 처방을 정리할 터였다.
아무도 없는 시간이 생길 거라 이 말이었다.
수혁은 그 틈을 타서 혼자 환자를 볼 생각이었다.
맨날 교육이다 뭐다 하면서 다 같이 봤더니, 이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조금은 설렜다.
[제가 할 소리는 아닌 거 같지만 수혁도 이제 진짜 이상해졌군요.]
‘뭐, 뭐 인마.’
[생각해 보십쇼. 1년 차 3월엔 환자 보는 게 그렇게 싫어서 징징거리더니 이제는 환자 보려고 하니까 떨려 하잖아요.]
‘아……. 그렇네.’
수혁은 잠시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사실 교수를 포기한 다음에는 얼른 전문의 따고 나가서 1인 개원을 하건 뭘 하건 해서 돈이나 벌 생각이지 않았던가.
그때는 정말이지 지금의 모습은 상상도 못 했더랬다.
‘뭐……. 잘된 일이지.’
[뭐가요?]
‘아냐.’
잘된 일이란 말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의대에 처음 들어갈 때 떠올렸던 모습이 되어 있었으니까.
아니, 그때보다도 더 잘되어 있었다.
수혁은 내심 바루다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그러나 겉으로는 전혀 티 내지 않으면서 환자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들어섰다.
“누구……?”
이런 저런 검사에 시달렸으니 이제 그만 잠들 법도 한데, 환자는 아직 깨어 있었다.
오히려 너무 힘들면 잠도 안 오지 않던가.
스트레스 호르몬이 흘러나와서 그런데, 심지어 이곳은 낯설기 그지없는 병원이었다.
어지간히 신경이 굵은 사람 아니고서는 바로 잠들기가 쉽지 않았다.
환자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수혁에게는 잘된 셈이었다.
“아, 네. 내과 이수혁입니다.”
“아……. 아까…… 교, 교수님이시죠?”
환자는 어떻게 봐도 교수라기엔 너무 어려 보이는, 하지만 분명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이들이 교수라고 했던 수혁을 보며 반가워했다.
누군가 찾아오기엔 지나치게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하여간 높은 사람이 왔다는 생각에 그랬다.
별 상관은 없겠지만 어쩐지 이럴수록 더 빨리 나을 거 같기도 했다.
“몇 가지 좀 여쭤볼 것도 있고……. 환자분을 좀 보고 싶기도 해서요.”
“아……. 네.”
“늦은 시간이지만 괜찮을까요?”
“네네. 물론입니다.”
보호자들 또한 수혁을 위해 자리를 비켜 주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이 늦은 시간에 이 사람은 퇴근도 안 하고 일하고 있는 거 아닌가.
어디 막내면 또 모르겠으나, 환자보다도 보호자들은 똑똑히 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수혁을 어떻게 대했는지.
‘젊은 양반이 똑똑한가 보네.’
‘TV에도 나왔다잖아.’
‘아, 그러고 보니…….’
반드시 TV에 나오는 것과 실력의 뛰어남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비슷한 이미지를 심어 줄 수는 있었다.
특히 대상이 나이가 좀 있을수록 그랬다.
지금 보호자들에게는 치명적인 수준이었다.
해서 수혁은 무척 협조적인 환경에서 질문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환자분, 이제 출혈이 멎었는데……. 좀 어떻습니까?”
“네?”
“출혈이 있을 땐 제일 힘든 게 복통이었죠? 지금은 좀 어떻습니까?”
“아……. 나아졌습니다.”
“얼마나 나아졌을까요? 아까 통증을 1점에서 10점 사이로 주시고, 지금 통증도 같은 점수 내에서 주시면 어떨까요?”
“아……. 아까는 8점? 지금은 뭐 4점?”
“그렇군요.”
확실히 출혈이 줄면서 통증도 가라앉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통증이 남아 있다는 얘기도 되었다.
‘심장박동 수는 여전히 빠르지?’
[네. 모니터상으로도 110을 넘습니다. 그리고 경동맥을 보시면 살짝 튀는 것이 보입니다.]
‘난 안 보여.’
[강조해서 띄워 드리죠.]
‘아. 그렇네. 어……. 이상하네. 생각보다 헤모글로빈은 그렇게까지 안 떨어져 있었던 거 같은데? 피도 들어가고 있잖아?’
[네. 헤모글로빈은 8.9였습니다. 낮은 수치지만 환자 나이 고려하고 피 들어가고 있는 거 고려하면 이 정도로 바이털이 움직일 정도는 아니죠.]
‘음……. 뭔가…….’
수혁은 여상 문답을 하면서 동시에 바루다를 이용해 환자 상태를 분석해 나갔다.
그럼으로 더욱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그런데, 환자분.”
“아, 네.”
“심장이 두근거리진 않으시나요?”
“아……. 네. 아유, 이거…… 배 한창 아플 때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지금은……. 아유.”
뭔가 쌔했다.
분명 원인인 출혈은 교정했을 텐데 지금 더 불편하다는 거 같지 않은가.
물론 애매한 표현이었으므로 이것만 갖고 덥석 물 수는 없었다.
해서 질문을 보다 자세하게 던졌다.
“그럼 그 두근거리는 것으로 인한 불편감을 1점에서 10점으로 했을 때는 몇 점일까요? 아까 점수도 같이요.”
“음……. 글쎄요. 지금 한 7점. 아까도 뭐……. 비슷한데.”
“그렇습니까?”
“어……. 왜요? 뭔가 문제…… 문제라도…….”
“아뇨. 잠시만요.”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루다와의 대화를 재개했다.
아까보다 훨씬 활기찬 얼굴을 하고서였다.
‘어쩌면 두근거림의 원인은 출혈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는데?’
[네, 아예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원래 실마리를 찾은 탐정은 누구나 이렇게 되는 법 아니겠는가.
수혁은 저도 모르게 환자에게 바짝 다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