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55화 (455/1,303)

455화 새엄마? (4)

“흠.”

수혁은 환자를 보다 가까이에서 바라보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뭐 하는 짓인가 싶을 만한 행위였다.

그저, 하염없이 환자를 들여다보기만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수혁의 머릿속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그런 생각 따윈 하지 않을 터였다.

‘확실히 심장박동이 강해. 환자만 심계항진으로 느끼는 게 아니라…….’

[네. 객관적으로도 강해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혈류량의 부족으로 인해 뛰고 있는 게 아닙니다.]

‘음, 그렇지?’

혈압도 올라가 있었다.

혈류량의 부족으로 인해 심장박동이 강해지는 경우라면, 불필요하게 혈압을 올리진 않을 터였다.

어차피 혈압을 일정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뛰는 거니까.

그 말은 곧 이 환자 몸속에 심장을 뛰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는 얘기였다.

그걸 육안으로 찾고자 했다.

얼핏 들으면 사막에서 바늘 찾기 같이 막연하게만 느껴질 터였다.

하지만 의심되는 질환명을 떠올린 상태라면 얘기가 달랐다.

수혁은 그게 가능한 사람이었다.

‘갑상샘 아니면 부신이겠지?’

[현재로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아무래도 둘 중에서는 갑상샘 쪽이 가능성이 큽니다.]

‘그건 왜 그렇지?’

예전 같았으면 이런 질문이 있을 때, 바루다는 한차례 훈계를 늘어놓았을 터였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어차피 해 봐야 들어 처먹지도 않을뿐더러, 타격이 있을 만한 실력도 아니게 되어서였다.

해서 바루다는 괜히 시비를 거는 대신 말을 이었다.

[에이형 간염과의 상관관계를 보면 그렇죠. 부신보다는 갑상샘 질환이 있을 때 간염 악화가 더 있을 수 있습니다.]

‘으음. 그렇군. 그래, 그럼 만져 볼까.’

[네.]

수혁은 바루다의 조언에 따라 환자의 뒤쪽으로 다가갔다.

“환자분, 제가 목을 좀 만져 볼게요. 아프시거나 불편하시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아, 네.”

그리곤 환자의 목을 뒤로 살짝 젖히게 한 후, 갑상샘이 있는 부위를 짚어 나갔다.

사실 그냥 만지는 것만으로는 얻을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바루다 덕에 더 예민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감각은 그대로지만 감각의 차이를 파악할 수 있었다.

‘평균에 비해 어때?’

게다가 이때까지 만져 놓은 갑상샘에 대한 데이터와 비교도 가능했다.

[커져 있습니다. 체형 및 인종 고려할 때 대략 30%가량 큽니다.]

‘그래? 음, 이 정도면 커져 있는 거구나.’

[애초에 손으로 대강이나마 만질 수 있는 게 이상한 일이죠.]

‘하긴, 그것도 그래.’

갑상샘은 갑상샘암이 하도 많이 진단되는 바람에 꽤 익숙한 이름의 장기가 된 지 오래였다.

아마 건강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갑상샘이 나비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갑상샘이 정확히 어디에 붙어 있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 녀석은 갑상샘 호르몬이라는 중요한 호르몬을 내뿜어 내는 녀석이니만큼 목에서는 꽤 깊숙한 곳에 있었다.

갑상샘을 자르면 바로 기도가 보일 정도였다.

해서 손으로는 어지간히 세게 누르지 않거나, 커져 있지 않은 이상 만져 보기 어려웠다.

‘그럼 뭘까? 갑상샘이…… 전반적으로 커져 있다면…….’

[그레이브스병을 의심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음. 그레이브스라…….’

그레이브스는 갑상샘 기능항진증의 일종으로 증상 정도는 아주 다양하게 나타낼 수 있는 병이었다.

심하면 목의 미관을 해칠 정도로 커지기도 했고, 안구 돌출까지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로 경미한 경우에는 이 환자처럼 자세히 봐야 티가 날 정도로 있기도 했다.

‘그 경우라면 에이형 간염 등의 감염이 있을 때 악화 될 수 있지?’

[네. 감염은 일종의 스트레스이기도 하니까요.]

갑상샘 호르몬이 하는 일은 굉장히 다양하지만 대개 열을 내고, 힘을 내는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되었다.

당연히 우리가 아프거나 스트레스가 심한 환경에 처했을 때 항진되는데, 원래도 항진이 있는 경우엔 이게 정도를 지나칠 수 있었다.

‘출혈도 이것 때문이었을까?’

[네,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과민한 반응은 오히려 해가 되는 법이었다.

감염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도 못 하게 할뿐더러 쓸데없이 위산 분비를 촉진 시켜 피가 나게도 만들었다.

‘그 말은 이걸 조절 안 하면 말짱 꽝이라는 거네?’

[네.]

‘환자 간염 수치가 어땠지?’

[별로 좋지 않습니다. 이러다 자칫하면 간부전으로 갈 수도 있죠. 암모니아 수치도 아주 적지는 않았습니다. 간성혼수로도 갈 수 있어요.]

간성혼수는 그 자체로도 위험한 증상이었지만, 또 나쁜 예후를 예측하게 하는 인자이기도 했다.

즉 바루다는 지금 환자 상태가 안 좋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수혁이 보기에도 그랬다.

아까부터 나는 묘한 냄새는 아마도 환자 입에서 나는 거 아니겠는가.

달걀 썩는 냄새가 가글 향에 가려 묘하게 퍼지고 있었다.

목 가까이에 와 보니 더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음……. 새벽이라 안 될 거긴 한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수혁은 환자의 목을 쥔 채 한 5분 이상 가만히 있는 상황이었다.

적어도 남들이 볼 때는 그랬다.

해서 보호자들은 이 사람이 환자 보다 말고 자나 싶었다.

갑자기 눈을 감고 중얼중얼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만 레지던트 때처럼 누군가 그를 방해하진 못했다.

교수라는 직함은 적어도 병원에서만큼은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음, 환자분?”

갑자기 입을 다물었을 때처럼 말이 나오는 것도 갑작스러웠다.

보호자 중 한 명은 어깨 안 흔들어 보길 잘했다 여기며 한숨을 쉬었다.

내내 목이 잡혀 있던 환자는 기다렸다는 듯 수혁을 돌아보았다.

“네.”

“지금 피 검사 하나만 더 해 볼게요.”

“아……. 피 검사요?”

“네. 하나 놓쳤을 가능성이 있는 게 있어요. 확실하진 않지만……. 치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수혁은 그런 환자의 노란 눈을 보며 말을 이었다.

느낌인 줄 알았는데, 바루다의 말을 들어 보니 확실히 아까보다 진해져 있었다.

아무래도 출혈이 있었고, 그 출혈을 멎게 하기 위해 내시경을 했고, 또 CT까지 찍었다 보니 몸이 힘든 모양이었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단 느낌이 들었다.

[아, 이거 안 좋은데.]

‘왜.’

[수혁의 촉이 좋은 편이지 않습니까?]

‘언제는 그런 거 없다더니?’

[통계적으로 증명된 사실은 인정해야 하죠. 모든 것을 이론으로 설명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아무튼, 그럼 서두르자.’

[네.]

급한 거 같으면 검사 확인 없이 냅다 갑상샘 호르몬 길항제를 쓰면 되지 않나 싶을 수도 있겠으나, 호르몬은 그렇게 막무가내로 접근하면 안 되었다.

워낙에 미량으로도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했기에 그랬다.

자칫 약 때문에 환자를 죽게 할 수도 있었다.

해서 수혁은 환자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병동 스테이션으로 나왔다.

어느새 시간은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워낙에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대훈도 사라지고 없었다.

오로지 간호사 몇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아, 교수님.”

그중 하나가 수혁을 알아보고 인사를 해 왔다.

이 시각에 교수가 병동에 있는 게, 그것도 처치실에 빠질 만한 환자도 아니고, 심지어 담당 교수도 아닌 게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였다.

“네. 그…… 저기 환자 말입니다. 간염.”

“아……. 네. 이기철 환자분.”

“아, 이름이 이기철이구나.”

간호사의 얼굴에 놀라움이 더 크게 번졌다.

여태 보더니만 이름도 몰랐나, 뭐 이런 표정이었다.

물론 수혁은 개의치 않았다.

누군가를 치료함에 있어 이름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그분 처방 방금 낸 거 있거든요? 검사 좀 나갈게요. 피 검사.”

“아……. 지금 바로 나가나요?”

“네. 환자 깨어 있어요.”

“아……. 네.”

간호사는 하여간 늦게까지 있다 싶었단 얼굴로 주사기를 뒤적거렸다.

야밤에 피 검사라니.

아침 정규로 나가면 혈액 채취 팀에서 해 줘서 더 편하지 않은가.

아주 급한 게 아니라면 그렇게 하는 게 환자에게도 좋았다.

병동 간호사들은 병동 일과 혈액 채취를 겸하지만, 채취 팀은 그것만 하는 팀이다 보니 아무래도 기술이 달라서였다.

‘그래도…… 얘기 꺼내는 건 오바지?’

하지만 상대는 레지던트가 아닌 교수였다.

게다가 교수 중에서도 부센터장이었고, 똑똑하다는 소문이 자자한 사람이었다.

이런 인간이 새벽에 환자를 괜히 봤을까?

지인도 아닌 거 같던데?

다 이유가 있어서 했을 터였다.

해서 간호사는 부리나케 병실로 들어가 피를 뽑았다.

‘음.’

아까보다 역한 냄새에 당황하면서였다.

이 냄새를 어디서 맡아 봤더라.

그래, 달걀 썩는 냄새였다.

족보에 간 질환에서 날 수 있는 냄새라고 했는데, 그 말은 이 환자의 간이 더 나빠지고 있다는 것 아닌가.

‘이상하네? 치료가 들어가는데 이런다고?’

그래서 이 검사를 하는 건가?

간호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라벨을 봤다.

검사는 간이 아니라 갑상샘 호르몬 수치였다.

‘뭐여.’

간호사는 짐짓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내 뽑아낸 혈액을 검사 통에 넣고 검사실로 내려보냈다.

그사이 수혁은 진단검사의학과와 통화 중이었다.

“네, 급해서요. 언제까지 결과 볼 수 있을까요?”

작은 병원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진단 검사 의학과 의사가 하나라도 있으면 다행인데, 그 사람이 당직까지 서는 걸 기대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에 그랬다.

하지만 태화는 모든 인력이 넘치게 있는 곳이었다.

모든 과 당직이 존재한다고 보면 되었다.

물론 상대는 이렇게 새벽에 깨우는 전화가 낯선지 잠시 횡설수설했다.

“네? 아, 근데 누구…….”

“아, 통합진료센터 이수혁입니다.”

“이…… 수혁? 아, 교수님?”

“네.”

“아이고, 네네. 저 진검 이혜영입니다.”

영상의 이혜영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나이가 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학생 때 결혼도 했던가.

하여간 선배였다.

해서 수혁은 존대를 이어 나갔다.

“네, 늦은 시간 죄송해요. 원래 숙직…… 이죠?”

“아, 아뇨아뇨. 당직은 당직이죠. 네네. 말씀하세요.”

“네. 갑상샘 호르몬 검사가 좀 급한 환자가 하나 있어서요. 바로 좀 봤으면 하는데, 될까요?”

“바로요? 바로는 어렵지만…… 지금 검사 돌리면…… 몇 시지?”

“2시입니다.”

“아, 네. 2시……. 그럼 6시 전에는 나올 거 같습니다.”

“6시라. 음.”

“늦나요? 그게 최선일 거 같은데…….”

“아뇨. 원래 정규면 내일 오후죠?”

“네. 그렇습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6시면 4시간도 채 안 남은 셈이었다.

환자가 그때까지 잘 버틸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지만, 하여간 정규로 들어갈 때보다는 한나절 가까이 빨라진다는 얘기였다.

수혁은 그걸로도 만족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모자란 잠을 보충하기 위해, 아예 늦잠을 잘 요량으로 당직실 침대에 몸을 뉘었다.

따르릉.

하지만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5시, 안대훈의 전화가 그를 깨웠다.

“뭐야, 왜.”

“화, 환자 간성혼수입니다! 출혈 때문일까요?”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