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56화 (456/1,303)

456화 새엄마? (5)

“아이씨!”

간성혼수.

언제 잠들었건 간에 의사의 잠을 단박에 날려 버릴 만한 증상이었다.

특히 원래 없던 환자에게 발생했다면 더더욱 그랬다.

[우려했던 일이 터졌군요.]

‘이런 망할……. 몇 시지?’

[5시 반입니다.]

‘5시 반…… 아니, 어떻게 그렇게 급하게 진행이 되지?’

[그렇다기보다는 이미 임계에 달했을 때 보게 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

다시 생각해 보니 바루다의 말이 맞는 거 같았다.

급성 간염은 꾸준히 진행 중이었을 터였다.

아무리 간염에 대한 치료를 해 봐야 별 소용도 없었을 테니까.

애초에 악화 인자가 간이 아니라 갑상샘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지 않은가.

그걸 두고 딴 데서 변죽만 울리고 있던 셈이었다.

그러니 환자가 속수무책으로 나빠진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일단 가자.’

[네. 가 보죠.]

아무튼, 이미 일은 벌어진 마당이었다.

해서 수혁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최대한 빨리 환자에게 도달하는 것.

“잡아, 잡아!”

“으으으, 이 시발놈들아!”

“인턴! 아직 안 돼?”

“지금 넣고 있습니다!”

“뭘 넣는 거야 이 개새끼들아!”

병동에 도착했더니만 처치실이 아주 소란스러웠다.

우선 거친 욕설이 난무했다.

환자 입에서 나오는 것일 터였다.

간성혼수 상태가 되면 주로 전두엽의 억제 기능이 사라져 사람이 폭력적으로 변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드문 일은 아니었다.

원래 간성혼수 환자를 치료할 때는 욕 먹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간혹 맞을 때도 있었다.

“어어. 들어, 들어갔습니다!”

인턴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계속 시도하던 게 잘 된 모양이었다.

“야, 그럼 빨리 약 부어!”

“네! 어어!”

“얘들아 잘 잡자! 이거 놓치면 참사다. 억제대는 어떻게 되어 가요?”

“지금 묶으려고요. 아, 근데 선생님들 힘 좀, 좀.”

“아후. 왜 이렇게 힘이 세냐!”

안대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고함을 치고 있었다.

처치실에서 가까운 병실에 있던 환자들 중 운신이 가능한 사람들은 대체 이게 뭔 일인가 하는 얼굴로 나와 있었다.

병원이라는 곳은, 그중에서도 태화 의료원과 같이 어려운 환자들이 오는 곳은 시도 때도 없이 시끄럽긴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욕설과 고함이 난무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관장하는구나.’

[네. 미리 좀 하지. 처방 아까 내지 않았나요? 이미 암모니아 올라갔다고.]

‘한번 하긴 했을걸. 그걸로 불충분했었나 봐. 몇 번 더 하라고 할걸.’

[근데 또…… 증상 없을 때 반복하기엔 너무 지치는 치료이기는 합니다.]

간에서 암모니아가 분해되지 않아 발생하는 증상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암모니아 수치를 낮춰야만 했다.

수액도 주고 하는데, 관장 또한 암모니아의 원료를 제거하는 것으로서의 의미가 있었다.

또 당장 할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는 경우도 많았다.

문제는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관장도 힘든데, 환자가 난폭해진 상황에서는 더더욱 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었다.

‘조금만 있다가 들어갈까?”

[네, 수혁의 기억 속의 참사를 더듬어 보니 그게 좋겠군요.]

모든 인턴에게 곤욕스러운 기억을 남길 지경이었다.

특히 수혁은 응급구조사와 달랑 둘이서 하다가 사고를 당한 적이 었다.

구조사가 관장을 위해 항문에 고무호스를 꼽고, 수혁은 환자의 몸통을 잡아 눌렀다.

보통은 그렇게 하면 환자가 아무리 발버둥을 치더라도 대개는 고정이 되기 마련인데, 그날은 체격 차이가 좀 있었다.

환자는 아주 건장한 사람인데 급성으로 증상이 발생한 사람이었고, 수혁은 다리 다치기 전에도 그리 건장한 사람은 아니었다.

’어?‘

구조사의 어리둥절해하는 얼굴과 함께 들어가 있던 고무호스를 잡아 뺀 환자는 그걸 이리저리 휘둘렀다.

항문 깊이 들어가 있던 것인 데다가 이미 약까지 주입한 터라 정말이지, 끔찍한 광경이 곧 펼쳐졌다.

어느 정도였냐면, 왜 이렇게 처치실에서 안 나오냐고 화를 내려고 들어왔던, 아마도 병원 내에서 가장 성질이 더러울 털보조차 문을 열었다가 다시 조용히 닫고 나갔을 지경이었다.

“어?”

순간 데자뷔인가 싶을 만큼 그때 구조사가 내질렀던 외마디 비명과 비슷한 억양의 어?가 들려왔다.

“아, 안 돼!”

그 후로는 잠시 아수라장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안에 사람들이 꽤 있었다는 점이었다.

아주 커다란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모두들 환자를 억제했고, 다행히 응급실 처치실에서 있던 만큼의 사고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처치실 안에 들어선 수혁은 쿰쿰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래도 암모니아 될 만한 것들이 나오긴 했네요…….]

바루다의 말이 조금은 도움이 됐으나 그럼에도 얼굴은 자동으로 찡그려졌다.

마스크를 두 개 써도 별 소용은 없었다.

그럼에도 진료는 계속되어야만 했다.

마찬가지로 표정이 그렇게 좋지만은 못한 안대훈이 쪼르르 달려왔다.

영 찝찝한지 손을 여러 번 씻은 모양이었다.

여전히 물기가 아른거렸다.

“으. 아, 교주님.”

정신이 없어서 그런가, 본심이 툭툭 튀어나왔다.

수혁은 지적하려다가 말았다.

어차피 여기 대훈이 그렇게 부르는 걸 모르는 사람도 없지 않은가.

환자가 들으면 진짜 이상한 말이겠지만, 환자는 간성혼수였다.

한바탕 난동을 부린 후라 그런지 이제는 의식 레벨이 오히려 낮아져 있었다.

“응, 언제부터 이랬어?”

“노티 처음 온 것은 세 시였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그때 좀 졸려 한다고 들었는데, 새벽이라 당연하다고 판단하고 미스 했습니다.”

“아……. 그거야……. 근데 뭐 딱히 실수라고 하기는 그런데.”

새벽 3시.

인간이 가장 힘들어하는 시간이지 않은가.

그때 졸려 한다는 걸 이상하다고 판단한 게 오히려 대단한 것이었다.

“근데…… 담당 간호사가 이상하다고 노티 했거든요. 그럼 와서 보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건…… 인정. 그래, 간호사 판단을 무시하면 안 되지.”

의사와 간호사 관계만큼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도 드물 터였다.

또 생물처럼 유기적으로 변하기도 했다.

인턴 때는 아무래도 인턴보다 밑바닥은 없으니 간호사보다 한참 아래인데 또 레지던트가 되면 역전되기도 했다.

하지만 원칙적으로도 그렇고, 교수가 되어서 보기도 그렇고 둘의 관계는 협력 관계로 봐야 했다.

특히 병동 간호사는 주치의를 가장 많이 도와주는 존재였다.

압도적으로 오랜 시간 환자와 가까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리고?”

“4시에 다시 노티가 왔습니다. 환자가 깼는데 좀 이상하다고요. 그래서 와 봤는데……. 그때부터는 수액 달고 해도 계속 진행을 하더니 이렇게 됐습니다.”

“음……. 진행이 빠른데……. 아, 왜 그런지는 알겠다.”

“아, 그런가요?”

대훈은 내내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출혈은 전신상태를 악화시키기도 하거니와 피가 소화되는 과정 때문에도 간성혼수를 일으킬 수 있는 아주 강력한 위험인자였다.

하지만 그건 교정이 되지 않았던가.

근데 오히려 상태가 더 나빠져?

‘와……. 역시 교주님이 오시니까 뭐가 좀 다르구나.’

그 상황에서 수혁이 알겠다고 하니 자연히 눈이 돌아갔다.

사실 아무 말도 안 했다 해도 눈이 돌아갈 놈이라 더더욱 그랬다.

“여기 변을 보면 멜레나잖아. 양이 적지가 않아. 이게 소화가 계속 진행이 됐을 테니…….”

“아.”

“출혈을 빨리 인지하지 못한 게 주된 이유지, 뭐. 다행히 잡았으니 지금은 안심이 좀 되기는 하는데…….”

“그렇군요. 아, 이게 더 예민하게 봤어야 하는데…….”

안대훈은 사실 환자가 응급실에 온 이래 쭉 예민하기 그지없는 눈으로 환자를 본 마당이었다.

하지만 환자가 안 좋아지는 상황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후회가 남기 마련이기도 했다.

해서 대훈은 하 하고 탄식을 흘렸다.

그사이 수혁은 무의미한 동조를 해 대는 대신 구석에 놓여 있던 컴퓨터를 향해 걸었다.

‘오, 떴다.’

[그렇네요? 약속을 지켰군요.]

‘진검 이혜영. 좋네.’

아직 약조했던 시간이 아닌지라, 설마 하며 봤더니만 딱 떠 있었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갑상샘 항진증이었다.

호르몬이 전반적으로 떠 있었고, 호르몬을 만들라는 신호 격인 호르몬만 아주 줄어들어 있었다.

“좋아.”

수혁은 흡족한 미소와 함께, 저도 모르게 좋아를 연발했다.

어떻게 봐도 좋은 상황은 아니었기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특히 바닥에 흩뿌려진 무언가를 닦아 내던 병동 여사님의 얼굴은 볼만했다.

뭐 저런 미친놈이 다 있나, 하는 표정이었다.

“아.”

그제야 수혁은 설명이 부족했음을 깨닫고 급히 말을 이었다.

언제고 그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안대훈을 향해서였다.

“이 환자 간염 악화인자가…… CT에서는 확인이 안 됐지?”

“아, 네. 그렇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것도……. 하…….”

“갑상샘 항진증이 있어. 랩 보니까 그레이브스병이네.”

“아?”

“메티마졸하고 프로프라놀롤 추가해서 쓰자. 당장 좋아지지는 않을 거야. 다른 랩 나왔나?”

“아……. 아직, 아직입니다. 아까 5시쯤 나갔으니까 7시 전에는 나올 겁니다.”

“그래? 음.”

수혁은 검사 결과를 통해 확인한 환자의 그레이브스병과 지금 현 상태를 떠올렸다.

호르몬은 전신 상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했기에 그저 간만 생각해서는 안 되었다.

더욱이 환자의 상태가 이렇게 나쁠 땐 더더욱 그랬다.

‘환자 전해질이 어땠지?’

[포타슘이 좀 줄어들어 있었습니다. 환자가 설사 했다고 증언했기에 그것으로 인한 하이포칼레미아라고 판단했는데…….]

‘이제 그레이브스병이 진단되었으니 임프레션 싹 정리해야지.’

[네, 그렇군요. 갑상샘 폭풍에 의한 설사였군요. 루골 솔루션까지 고려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 설사까지 일으키는 경우엔 위험하지.’

그 외에도 몇 가지 환자에 대해 잡고 있던 문제 목록 및 진단명이 뒤바뀌었다.

딱 하나 검사 결과가 나왔을 뿐이었지만 거의 모든 것이 바뀐 셈이었다.

그와 함께 처방도 따라 바뀌었다.

“환자 바이털 4시간 동안은 15분마다 체크하고 그 후로는…… 30분 간격으로 합시다.”

“아.”

담당 간호사가 나라 잃은 표정이 되었다.

바이털 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그랬다.

15분마다 재라고 하는 건 4시간 동안 내내 붙어 있으란 뜻이나 다름없었다.

“미안해요. 근데 지금은 어쩔 수가 없어. 간염 악화에 갑상샘 폭풍이 같이 동반되었어요. 이러다 환자 잃을 수가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환자가 안 좋다는데 어쩐단 말인가.

힘을 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약은…… 일단 아까 말했던 중 메티마졸 대신 프로필티오우라실로 주고, 루골도 주자.”

“아……. 네!”

“간염에 대한 처치는 계속 유지하고. 이게 약이 들기 전에는 뭔 짓을 해도 설사가 나올 거야. 그렇다고 로페라마이드 같은 거 쓰면 또 간성혼수 올 테니……. 일단은 그냥 나오는 대로 줘. 따라가면서 보자고.”

“네.”

안대훈 또한 힘차게 외쳤다.

별거 아닌 환자로 인식했다가, 조금 심각한 환자로 격상되었고, 그 후로는 뭔지 모를 곧 죽을 거 같은 환자가 돼서 우울했는데.

과연 수혁이 오자 상황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와 함께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니, 갑상샘 검사는 대체 언제…… 그보다 왜 낸 거지……?’

진짜 대단한 인간이었다.

이런 건 소문을 바로바로 내주어야만 했다.

해서 대훈은 우하윤을 비롯한 이수혁 교단 사람들에게 톡을 날렸다.

의외로 교단 사람들이 내과 내에서 꽤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라 출근 시간이 되기 전에 소문이 퍼졌다.

이번에도 수혁이 한 건 했다는 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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