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57화 (457/1,303)

457화 새엄마? (6)

대훈은 한 30분 정도 눈을 붙이고 당직실을 나섰다.

다행히 수혁의 처방이 있고 나서부터는 환자 상태가 급격히 안정되고 있었다.

아직 고비를 넘겼다고 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확실히 원인이 될 만한 것들을 모두 교정하기 시작하자 변화가 보였다.

그 덕에 30분이라도 잔 참이었다.

‘감사합니다, 수멘.’

대훈은 이 모든 것이 수혁의 은혜라는 것을 가슴속 깊이 아로새기며 병동으로 향했다.

당연히 어젯밤 있었던 수혁의 신화적인 행위에 대해 이런저런 평들이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였다.

“진짜야?”

“아니, 진짜?”

“와……. 미쳤네.”

예상대로 병동은 소란스러웠다.

스테이션에 있는 간호사들은 물론이거니와 회진 준비를 한창 하고 있던 레지던트들도 그랬다.

“정말이냐?”

“와……. 대박.”

뿐만 아니라 아침 정규 동맥혈 채혈 검사 및 심전도 등을 챙기고 있는 인턴들도 같았다.

녀석들은 품에 해야 할 일들을 한 아름 안고서도 입을 쉬지 않았다.

“미친? 진짜?”

“꿈에도 몰랐네, 진짜.”

처음엔 이런 반응들이 그저 흡족하기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짧았지만 동시에 강렬했던 잠에서 깨면서부터는 뭔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수혁이 밤새 했던 진단과 치료가 대단했던 것은 맞았다.

아무도 상상조차 못 했던 실마리를 찾아냈으니까.

하지만 해낸 사람이 대훈이 아니라 수혁이란 게 문제였다.

‘내가 했으면 이 정도 반응이 있을 수 있지.’

대훈이 아무리 3년 차고 또 3년 차 중에 똑똑한 사람이라고 해도 소화기 펠로우 2년 차도 모르는 걸 진단하는 건 이상하고 대단한 일이니까.

하지만 수혁은 전혀 얘기가 달랐다.

그가 이만한 일을 해낸 게 처음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훨씬 더 어려운 케이스조차 진단해 낸 적이 많았다.

‘뭐지? 이럴 정도는 아닌데?’

해서 대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옆에 있던 친구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 안녕하세…… 아, 대훈이야?”

얼핏 머리만 보고 고개를 조아리던 동기는 김 샜다는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어제 일을 알았다면 이런 반응도 이상한 일이었다.

“야, 뭔 일 있냐? 이수혁 교수님 말고 또 뭐 있어?”

“이수혁 교수님? 아, 연관은 있지?”

연관이 있긴 했다.

대훈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연관이지만.

하여간 밤새 똥 파티에 더해 갖은 고생을 했던 안대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술자리 가서 떠들어 보면 아마 그 자리에서는 독보적인 썰이 되겠지만, 병원에서는, 특히 내과에서는 별거 아닌 고생이었다.

“그래?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야, 넌 안 놀라? 아, 알고 있었나?”

“뭘…… 뭘 알아?”

하지만 대화를 이어 나가면 이어 나갈수록 뭔가 둘의 대화에 엇나간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같은 주제라면 반응이 이토록 다를 수가 없었다.

애초에 의대 들어온 것만으로도 비슷한 종류의 인간인데 거기서 같은 병원, 같은 과를 골랐다?

거의 같은 사람이라고 보면 되었다.

“그…… 이현종 교수님하고 이기자 교수님.”

“응?”

뭔가 다른 얘기일 거라 예상하고 물었는데 정말 너무 다른 얘기가 튀어나왔다.

의심을 하고 있기는 했더랬다.

둘이 같은 차에서 내리는 걸 봤으니까.

하지만 이게 다른 사람 입에서 나오리란 상상은 못 했다.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을 털었나?’

술 마신 기억은 없지만, 정신은 없지 않은가.

만약 그랬다면 이건 대형 사고였다.

끌려가서 문책을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물론 허위 사실을 유포한 건 아니라지만, 원래 낯부끄러운 이야기는 그게 설령 사실이라도 입을 좀 다물어 주는 게 예의였다.

“뭐야, 선생님 몰라요?”

“아유, 선생님 어제도 밤새 환자만 보시고……. 병원 돌아가는 일에도 좀 관심을 두셔야지.”

도둑 제 발 저린단 느낌으로 안대훈의 눈이 동그래지자, 근처에 있던 병동 간호사들도 합세해서 그를 몰아세웠다.

그만큼 핫한 소문이라는 얘기였다.

안대훈은 애써 당황스러운 감정을 숨기고 모르쇠를 쳤다.

“뭐, 뭔데요. 두 분이.”

“두 분 사귀신대요. 공개 연애.”

“네에? 공개 연애?”

“네. 이런 걸 굳이 뭐 알리나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뭐 이현종 교수님은 월드 스타고 이기자 교수님도 소아과에서 진짜 입지전적인 분이시잖아요.”

“어어? 그럼 진짜…… 진짜로 두 분이? 공개적으로?”

“네. 아, EMR 안 틀어 보셨구나. 자 이거 닫고. 다시 눌러 봐요.”

“어……. 네. EMR에……?”

EMR이란 전자 의무 기록 차트를 의미했다.

물론 태화 의료원은 다른 병원들과는 달리 태화라고 하는 거대한 병원에 속한 일종의 브랜치여서 이 EMR를 통해 이런저런 공지 사항들도 받아볼 수 있었다.

대개는 오너 일가에 대한 칭찬이 주를 이뤘지만, 그 외에 그룹사 차원의 소식도 접해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태화 물산에서 건설 중인 아파트들 우선 분양 정보도 뜨기에 한 번씩 확인해 주는 게 습관이 된 사람들이 많았다.

대훈도 그랬다.

‘요새 서울 집 사려면 분양 말고는 답이 없지.’

태화에는 시공사 우선 배정 물량 중 일부를 사원들에게 푸는 제도가 있었다.

그래 봐야 중요도가 떨어지는 계열사라 할 수 있는 병원은 뒤로 밀려도 한참 밀리기 마련이었지만.

간혹 한 명씩 어디에 넣었는데 됐다더라 하는 소문이 돌면 그때부터는 또 부랴부랴 알아보게 되었다.

해서 대훈은 꽤 능숙하게 공지 사항란에 들어갔고, 어떤 게시판에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허.”

“대박이죠? 두 분이 이런 사진을 올렸다니까요?”

“자, 작성자가 누구예요?”

분명 처음 보는 사진이지만 잠도 못 잤겠다, 정신이 나간 대훈은 혹시 자기가 저도 모르게 보안을 뚫고 올렸나 하고 물었다.

“네? 당연히 홍보팀 직원이죠.”

“이런 걸 홍보씩이나 하나……?”

“할 수 있죠, 뭐. 사내 결혼 같은 거는 다 올라오잖아요.”

“그건 결혼이고…….”

“두 분 나이에 어련히 고민 많이 하셨겠어요?”

“그런가……?”

대훈은 분명 둘이 사귄 지 얼마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전해 들은 게 아니라, 두 눈으로 직접 본 사안이니만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런가는 무슨. 아, 근데 축하 메시지 안 남기셔도 되겠어요?”

“뭔…… 축하요?”

“이수혁 교수님이요. 새어머니 생기는 건데.”

“아. 아…….”

대훈은 그제야 부랴부랴 톡을 열고 선물하기를 눌렀다.

그리곤 고민 없이 수혁이 제일 좋아하는 치즈케이크를 선물했다.

띠링.

곧 수혁의 폰이 울렸다.

치즈케이크가 도착해 있었다.

평소라면 마냥 기쁘겠지만, 지금 수혁은 이현종과 있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급하게 열린 교수 회의에 들어와 있었다.

원장 신현태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이현종 교수님…….”

목소리가 떨렸다.

공지 사항이라는 게 사내 공지라 병원뿐 아니라 전체 계열사가 다 볼 수 있는 곳이기에 그랬다.

결혼 소식이야 그런갑다 하겠고, 설령 우리 사귀어요라는 글이 올라온다고 해도 어린 친구들이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갈 수 있을 텐데.

이 둘은 둘 다 60이 훌쩍 넘지 않았던가.

거의 회사 사장급 둘이 사귄다고 주접을 떤 셈이었다.

당연하게도 파급력이 상당했다.

벌써 블라인드에도 글이 올라왔고 심지어 조회 수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었다.

‘원장님,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신현태는 7시쯤 김다현 사장과 남지연 사장에게 받았던 전화를 떠올렸다.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면서 동시에 어이가 없었다.

나는 원장인데 왜 이런 일로 이런 전화까지 받아야 할까.

이현종 이 사람은 대체 언제까지 사고를 칠 생각인 걸까.

“왜요?”

복잡한 심경의 신현태와는 달리, 이현종은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대체 뭘 잘못했냐는 얼굴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도 했다.

같은 과도 아니면서 당당히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기자도 그랬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세상 모든 사람이 잘못됐고 저 둘이 옳은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이거…… 이거 청첩장을 잘못 올린 건가요?”

“아뇨. 사귄 지 며칠이나 됐다고. 그냥 우리 사귄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한 겁니다.”

“그…… 그런 걸 왜, 굳이?”

신현태는 말하면서 슬쩍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친한 기자 하나가 메디 포스트에 기사가 떴다고 보내 주었다.

<의학과 결혼했던 이현종, 이기자 교수와 열애 공개>라는 제목이 선명했다.

‘미친놈들이……. 아무리 인생이 심심해도 그렇지 이게 뭐 하는 거야.’

아마 다른 계열 사람들이었으면 그냥 웃고 넘어갔거나 축하만 했을 터였다.

하지만 병원은 아무래도 좀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마냥 보수적이라고만 하기도 뭐했다.

작은 세상에 갇혀 있다 보니 다들 좀 별나다고 해야 할까?

하여간 여기만큼 남 얘기 좋아하고 또 확대 재생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이러쿵저러쿵 말 나오는 게 싫어서요.”

“그것 때문에 더 나온다는 생각은…….”

신현태의 말을 이기자 교수가 자르고 들어왔다.

언제나 그렇듯 고고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그래서 그런지 괜히 옳은 말씀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더 들었다.

“이러다 말겠죠. 그리고 우리 둘이 잘 만나면 될 일 아닐까요? 볼썽사납게 헤어지면 몰라도요.”

“그…… 이렇게 묻는 게 좀 이상하지만 그럼 두 분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시고 올린 겁니까?”

“하하. 원장님. 제가 나이가 육십이 넘었어요. 그럼 설마 이 나이에 막 할까요?”

“그, 그것도 그렇군요. 음.”

나이 공격은 언제나 잘 먹혔다.

특히 유교 사상이 아직 투철한 세대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이기자는 깨갱 하는 신현태를 보다가 이현종에게 눈짓을 보냈다.

거보라는 뜻이었다.

이현종은 이기자를 마주 보면서 아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나이 들고 좋은 점 중의 하나가 나이 핑계로 대부분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거죠.’

이런 식으로 실천을 할 줄이야.

‘역시 멋지다, 음. 멋져.’

이현종이 과연 일생을 바쳐 짝사랑할 만한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이, 안건이 넘어갔다.

아무리 이상한 일이라고 해도 이것만으로 회의를 여는 건 좀 낭비였기에 밀려 있던 다른 안건들도 처리하기로 한 덕이었다.

“아, 수혁아.”

물론 이현종은 다른 안건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해서 수혁에게 말을 걸었다.

수혁은 한창 회의 중인데 떠드는 게 영 불편했지만, 이현종의 말을 씹기도 애매했다.

특히 오늘처럼 이상한 안건으로 불려온 날에는 더더욱 그랬다.

“네, 아빠.”

“늦었지만, 인사해. 네 엄마다.”

“아…….”

수혁은 가까스로 소리 지르려던 것을 참았다.

바루다도 그의 감정에 크게 동조했다.

[잘 참았습니다. 이현종 이상한 게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오늘은…….]

‘와, 무슨 회의 시간에 엄마를 소개해? 이게 원래 이런 건가?’

[수혁, 저는 인공지능입니다. 원래 어떤지 모릅니다.]

‘그건 그렇지. 아무튼…… 그…… 인사드려야지?’

[네. 해야죠. 기다리고 있는 거 같은데요?]

‘이기자 교수님도 보통 이상한 게 아니구나.’

수혁은 턱을 살짝 든 채,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 이기자를 보며 생각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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