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1화 또 도와주세요 (1)
서아에 대한 치료는 잠시 후 변경되었다.
주치의의 노티를 받은 김수민 교수가 즉시 달려온 덕이었다.
“이상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이라고?”
너무 긴 데다가, 묘하게 익숙해서 오히려 더 발음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김수민 교수에게는 적어도 아주 낯설기만 한 병은 아니었다.
분명 어떤 학회에선가 발표되었던 적이 있지 않은가.
물론 그때 발표했던 교수조차 말미에 이 강의를 끝으로 이 질환명을 다시 못 들어 볼 가능성이 클 거란 말을 하긴 했더랬다.
그만큼 드문 병이란 얘기였다.
“아, 네. 이거 그림…….”
“이거 서아가 그린 거야?”
김수민 교수는 우리가 소아과 교수라고 했을 때 전형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의 교수였다.
이기자 교수와는 상반된 이미지라고 볼 수 있었다.
이기자 교수도 당연히 아이들에게 살가운 편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더 차갑고 이지적인 느낌이 들지 않던가.
김수민은 정말이지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네. 서아가 아까 아플 때 어떻게 보이냐고 했더니.”
“아……. 이거…… 이건 전형적이구나.”
동시에 좀처럼 놀라는 일이 없기도 했다.
의사가 놀라면 보통 환자도 당황하기 마련인데, 소아는 더하기 때문에 그랬다.
‘와……. 교수님 손톱 무시네.’
늘 웃으며 아이를 안심시키던 교수가 눈앞에서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으니 주치의도 덩달아 놀랐다.
애초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이라는 진단명에 한차례 놀랐던 터라 감정 변화가 아주 자연스러웠다.
태연히 앉아 있는 건 오직 하나, 이수혁뿐이었다.
[엄청 놀라워하네요?]
‘그럴 만도 하지. 나도 아까 네가 눈동자 분석 안 했으면 한참 헤맸을걸?’
[이 바루다의 능력을 오랜만에 인정하시는군요.]
‘아닌데? 늘 인정하는데?’
[요사이 불손했던 건 사실입니다. 정식으로 감사를 표하십쇼.]
‘불손이라는 단어가 너랑 나 사이에서 어울리는 단어라고 보냐?’
[더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까요? 사실 확신이 없긴 합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제 데이터베이스는 오로지 수혁의 기억인데 수혁이 그렇게 책을 많이 읽지는…….]
‘아, 닥치고.’
내심 바루다의 신묘한 능력에 칭찬을 할까 말까 하고 있던 수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한참을 수선을 떨고 있으려니, 그제야 안정을 되찾은 김수민 교수가 수혁에게로 다가왔다.
“아, 이수혁 교수님. 아까 이기자 교수님한테 살짝 들었습니다. 한번 가 보시라고 했다고요.”
다행히 기분 나빠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일단 결과가 좋지 않은가.
알 듯 말 듯 한 상황에서 새치기당한 것도 아니었다.
앨리스 증후군이라니.
단 한 번도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그린 그림은 학회에서 봤던 그 그림과 아주 유사해 보였다.
이젠 오히려 다른 질환을 떠올리기 어려울 터였다.
“네. 이거 제가 괜한 일한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 생각은 하고 계셨을 텐데.”
수혁 또한 어느새 김수민 교수의 얼굴 표정을 분석하기 시작한 바루다 덕에 김수민 교수가 아예 감을 못 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낸 참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여느 때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겸손한 연기를 해내었다.
[정말 대단하군요. 어떻게 속마음과 겉모습이 이토록 따로 놀 수 있을까요?]
‘내 재능이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수혁은 타고났군요.]
‘응, 타고났어.’
[하.]
바루다가 그 모습에 역겨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무렵, 김수민 교수는 고마움을 표했다.
어차피 계속 붙어 지내던 레지던트나 담당 간호사들은 김수민 교수가 감을 못 잡고 있었다는 거 정도는 알아차렸을 터였다.
하지만 말만이라도 이렇게 해 주면 조금 낫지 않은가.
“아뇨, 하하. 아무튼, 약은 그렇게 변경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아마 좋아질 겁니다. 다른 질환일 가능성은 무척 적어 보입니다.”
“네, 제가 생각하기에도 그렇습니다.”
김수민 교수는 벌써 다 나은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서아와 보호자를 돌아보았다.
아마 성인 환자였으면 이 상황에서 좀 더 마음 단단히 먹으시라는 말을 해야 할 터였다.
하지만 소아는 조금 달랐다.
급격히 나빠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급격히 좋아지기도 했다.
심지어 정말 심각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후유증을 남기지 않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죽을 거 같은 얼굴로 병원에 왔다가 퇴원할 때는 해맑게 웃으며 갈 수도 있는 게 소아과라는 얘기였다.
‘이게 내가 소아과를 택하고 또 버틸 수 있는 이유지.’
보통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소아과를 많이 간다고 생각하기 십상인데, 반만 맞는 얘기였다.
오히려 아이를 너무 이뻐만 하는 사람은 아픈 아이들만 즐비한 소아과 병동을 견디지 못했다.
그걸 참아 내고 끝내 좋아지는 아이를 단지 몇 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만이 소아과 병동에 계속 남을 수 있었다.
다행히 이곳 태화 의료원 소아과는 이기자 교수라는 탁월한 사람이 있어 김수민 교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제법 많았다.
소아과가 비인기과를 넘어 기피과로 전락한 지금도 태화만큼은 미달을 면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아, 그런데 말이에요.”
김수민 교수는 그렇게 잠시 아이를 보고 있다가, 조심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응? 뭔가 고민이 있는 모양인데요?]
‘고민? 그래?’
[네. 분석 결과로는 그렇습니다.]
‘대체 뭐지.’
원래의 수혁이었다면 영문도 모르고 대화를 받았을 터였다.
여러 가지 이유로 감정에 서툴렀던 탓인데, 이젠 바루다가 수혁보다 훨씬 인간 감정에 대해 통달한 상황 아닌가.
덕분에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말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네, 교수님. 말씀하시죠. 듣고 있습니다.”
효과는 꽤 좋았다.
김수민 교수는 소문보다 수혁이 더 친절한 사람이라 여기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사실 두통 환자가 하나 더 있어요. 외래로 의뢰받아서 온 환잔데…… 약이 잘 듣지 않아서요.”
“약이 잘 안 듣는다……. 혹시 의심하시는 진단명은 무엇인가요?”
“처음엔 그저 긴장성 두통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달리 동반되는 증상도 전혀 없고, 두통 정도가 아주 심하지도 않았거든요.”
“음, 그런데 약이 안 듣습니까?”
“네. 긴장성 두통이라면 정도의 차이를 보일 수는 있어도 진통 소염제나 타이레놀에 호전을 보여야 하잖아요?”
맞는 말이었다.
긴장성 두통은 종류에 무관하고 진통제라면 어느 정도의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잘 맞는 약을 찾는 게 의사와 환자의 숙제긴 하지만, 하여간에 약을 먹는 데도 아예 반응이 없다는 건 좀 이상한 일이었다.
“네.”
“근데 아무 효과가 없대요.”
“아이가 그저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닐까요? 혹시 몇 살이죠?”
원래 의사는 환자의 말이라면 100% 다 믿어야만 했다.
하지만 예외를 두는 경우가 몇 가지 있는데, 질병으로 인해 이득을 볼 수 있는 환자가 대표적이었다.
“9살이에요. 한창 학교 가기 싫어할 나이이기는 하죠. 하지만…….”
이른바 꾀병 증후군인데, 크게는 보험료 지불부터 이렇게 결석 처리까지 다양한 보상에 따라 환자의 진술이 달라질 수 있었다.
특히 아이는 단지 결석뿐 아니라 부모나 주 양육자로부터의 관심도 얻을 수 있어 아프단 말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하지만……?”
“이건 제 감이에요. 소아과 의사 일을 하다 보면 느낌이 오거든요. 얘는 진짜 아픈 거예요.”
김수민 교수는 아예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인공지능인 바루다는 그런 김수민 교수를 보며 의문을 품었다.
[이것도 뭐 수혁이 촉이라 말하는 것과 같은 종류입니까?]
‘그렇지. 감이라는게 뭐…… 그런 거지.’
[과학적으로 설명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겠군요?]
‘그렇지. 이만한 경력자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무시하는 건 말이 안 돼.’
다만 워낙에 수혁 떄문에 촉이니 뭐니 하는 것에 익숙해진 바루다였기에 금세 협조적으로 나왔다.
[그럼 한번 보러 가자고 하죠. 궁금하네요.]
‘그래, 가 보자.’
해서 수혁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지금 입원해 있습니까?”
“네. 오늘 외래에서 입원 수속 밟으라고 했어요. 아무래도 검사를 좀 해 봐야 할 거 같아서요. 아, 입원 전에 CT랑 혈액 검사는 했을 겁니다. 그거부터 보실까요?”
“네, 좋죠. 거기서 뭐라도 나오면 좋겠네요.”
그리곤 김수민 교수의 안내에 따라 컴퓨터 모니터 앞으로 향했다.
김수민 교수는 환자 등록 번호를 외우고 있는지 바로 번호란에 치고 차트를 띄웠다.
보아하니 벌써 외래에 네 번인가 온 모양이었다.
말이 네 번이지, 태화가 어디 동네 병원은 아니지 않은가.
9살짜리 아이가 이만한 병원 외래에 네 번이나 왔다는 건 보통 일은 아니란 얘기였다.
“음……. 네, 여기 CT. 옳지, 영상은 떴네요. 따로 판독은 내일이나 모레 뜨겠지만, 일단 보시는 게 좋겠죠?”
김수민 교수는 수혁이 어지간한 영상의학과 의사보다 영상을 잘 본다고 들은 바 있었다.
머리 쪽은 아무래도 좀 얘기가 다를 수도 있겠지만, 하여간 명백한 이상이 있다면 알아볼 수 있을 거 같았다.
명색이 교수가 둘이나 있지 않은가.
“네, 보죠.”
아닌 게 아니라 수혁도 자신이 있는 편이라 바로 영상을 띄웠다.
그리곤 수혁과 김수민 교수 둘은 아무 말 없이 한동안 영상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드르륵.
스크롤을 위아래로 움직이면서였는데, 아무리 봐도 이상 소견이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수혁이 보기엔 그랬다.
‘야, 네가 보기엔 어떠냐?’
[이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완벽히 정상입니다.]
‘음.’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죠. 두통인데 CT에서 이상 소견이 보이는 경우는 드무니까요.]
‘그렇긴 한데, 느낌이 쌔해서.’
[이것도 촉입니까?]
‘어.’
[안 좋은데.]
아마 예전 같았으면 이따위 수혁의 말은 싹 무시했을 터였다.
하지만 이젠 그럴 수도 없었다.
통계적으로 수혁의 촉은 입증되었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가슴 한켠에서는 개소리겠거니 하고 있었으나, 오히려 인공지능이기에 통계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해서 바루다는 제발 이번엔 틀리긴 바라며 수혁이 다른 검사 결과도 확인하길 종용했다.
물론 수혁은 실존하는 사람이었기에 무작정 결과를 띄울 수는 없었다.
“제가 볼 때는…… 이상이 없어 보이네요.”
“네,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혈액검사도 한 것 같던데, 그것도 볼까요?”
“네네.”
해서 결과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눈 후에야 검사 결과를 띄울 수 있었다.
“일단 cbc 포함해서 crp, esr 등 나가 볼 만한 검사는 다 나갔습니다.”
“음…….”
“근데 이상은 없군요.”
“급성 염증은 아닐 가능성이 크겠네요.”
“네.”
“혹시 모르니 밤에 가능하면 MRI도 찍는 게 좋겠는데요?”
“네, 예약은 걸어 놨습니다. 아시다시피 요새 병원 MRI 예약이 완전히 밀려서……. 입원 환자들은 새벽에만 찍으라고 하더라고요.”
“아, 맞네. 그렇죠.”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신현태의 밝은 얼굴을 떠올렸다.
원장 교체 타이밍이 기가 막혀서 집단감염이니 뭐니 하는 것의 효과가 매출로 나타날 때쯤 신현태가 원장이 되지 않았던가.
취임 이래 매출이 계속 오르고 있었다.
‘흐음.’
원래 신현태의 웃음을 생각하면 기분이 좀 좋아져야 정상인데, 오늘은 그렇지가 않았다.
어쩐지 MRI에서도 뭐가 안 나올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