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462화 (462/1,303)

462화 또 도와주세요 (2)

“아이, 자죠?”

새벽 2시.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와 물었다.

아이야 곤히 잠든 지 오래였으나, 엄마는 그렇지 못했다.

아이가 아파서 검사를 앞두고 있는데 어찌 편안히 잠에 들 수 있을까.

“네.”

엄마는 갈라지지도 않은 목소리로 답했다.

아예 한숨도 자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소아과 병동에서 일하다 보면 자주 보는 일이었다.

해서 간호사는 그리 놀라지 않은 얼굴로 이송요원과 함께 침대를 밀어 주었다.

“이제 내려갈 거예요. 같이 가실 거죠?”

“네? 아, 네. 애 깨면…… 어째요.”

“약 들어갈 거라 너무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예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네. 같이 가겠습니다.”

“네, 어머니.”

그리곤 아이 엄마와 이송요원과 함께 침대를 밖으로 빼 주었다.

다음부터는 이송요원 혼자서도 침대를 운전할 수 있었다.

새벽이라 피곤했으나, 새벽이라 더 수월한 것도 있었다.

거치적거리는 사람들이 없지 않은가.

덕분에 이송요원은 곧 지하 1층 MRI 검사실에 닿을 수 있었다.

“아……. 왔네. 휴.”

도착하자마자 대기 중이던 마취과 당직의가 마중 나왔다.

MRI는 찍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CT와는 달리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검사였다.

동시에 시끄럽기도 했다.

조영제는 CT나 MRI보다 훨씬 편안했지만, 그걸 제외하면 모든 것이 힘든 검사란 얘기였다.

해서 소아들 MRI 검사할 때는 소아 진정 마취라는 걸 행했다.

그걸 위해선 마취과 의사가 필요했다.

“이거 CT면 그냥 찍으면 되겠지만…….”

당직의는 곤히 잠든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다, 검사가 MRI라는 걸 확인한 후 미다졸람을 주입했다.

이미 수액 라인이 확보되어 있던 터라 별다른 통증은 없었다.

게다가 자고 있기도 해서 겉으로 보기엔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마취과 의사는 알았다.

이제 아이는 확정적으로 대략 30분가량은 깨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자, 바로 찍죠. 서두릅시다. 인턴 샘 왔죠?”

“네. 저 여기 있습니다.”

미다졸람은 안전한 약이었다.

프로포폴에 비해 약간의 졸림이나 멍한 느낌이 남기는 했으나, 적어도 호흡기 쪽으로 문제가 생길 확률은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극히 드물다는 건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게다가 여긴 태화 의료원이지 않은가.

상대적으로 상태가 나쁜 아이들이 오는 곳이었고, 그래서 더 사고의 위험이 있었다.

해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마취과가 입회했고, 검사실에는 인턴이 들어갔다.

“어, 그래. 모니터 잘 보고. 밖에서도 보고 있으니까 너무 긴장은 하지 말고.”

“네. 선생님.”

인턴은 늦은 시간, 그것도 MRI실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억지웃음을 지었다.

마취과 지망이기에 그랬다.

옛날엔 마취과가 비인기과라 손만 들면 가던 때도 있었다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마취통증의학과로 개명이 되면서였는데, 이제는 인기과였다.

‘아, 그래도 들어가기는 싫다…….’

인턴은 마취과 레지던트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한숨을 푹 쉬고는 귀마개를 집어 들었다.

CT처럼 방사선에 피폭될 일은 없지만, 워낙에 시끄러워서였다.

아이의 귀에도 헤드폰이 씌워져 있었다.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이었는데 당연히 귀마개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고가의 물건이었다.

아마 아이에게 MRI 소음은 그저 둥둥 거리는 진동으로만 전해질 터였다.

딩딩딩딩딩.

그에 반해 인턴은 거의 귀에 대고 북 치는 느낌을 받아야 했다.

‘애가 머리 아프다고 했지?’

이번 달은 소아과를 돌고 있어서, 아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았다.

다른 병원처럼 인턴이 주치의를 해야 할 만큼 레지던트가 부족한 병원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인턴 및 레지던트 교육에 관심을 쏟아서였다.

특히 소아과에서 가장 시니어인 이기자 교수의 마인드가 좋아서 밑에 있는 교수들도 그랬다.

‘아직 원인은 알 수 없다고 하고…… 양상은 절대 긴장성 두통은 아닌 거 같다고 했어.’

김수민 교수도 예외는 아니어서 회진 돌 때마다 주치의 및 인턴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그래야 소아과에 대한 관심이 하나라도 더 생기고 그러다 낚이면 좋다는 생각에서였다.

지금 인턴이야 마취과에 대한 생각이 확고했으나, 그렇다고 아예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인턴 생활하다 보면 대개는 의사가 해야 하는 일 중 어느 누구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만 하기 마련인데, 그나마 소아과에서는 환자에 대해 듣고 왜 이런 검사를 하는지 알게 되어서였다.

뭔가 의사다운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는 얘기였다.

‘기왕 찍는 거……. 뭐라도 나와라.’

인턴은 두 귀에 끼워 넣은 3M 귀마개를 좀 더 안으로 밀어 넣으며 생각했다.

간밤에 이게 뭔 고생이란 말인가.

뭐라도 나와야 보람이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자마자 김수민 교수에게서 절망적인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아, 없네. 아무것도 없어.”

“그렇네요. 구조적인 이상은 없습니다.”

김수민 교수 하나의 의견이라면 그래도 어떻게 무시를 해 보겠는데, 이날따라 아침부터 남의 병동에 찾아온 이수혁도 똑같이 말했다.

‘아, 이 사람은 좀……. 유명한데…….’

인턴이라 해서 수혁에 대해 모르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몇 학번 차이가 안 나기도 하고, 워낙에 레지던트들이 떠들어 대서 더 잘 알았다.

해서 인턴은 어제 자신의 생고생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끝났단 생각만 들었다.

MRI라고 하는, 일종의 최종 병기 격인 검사가 꽝이 나왔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성급하다고 하기도 뭐한 것이 인턴 수준에서는 이런 생각이 당연했다.

하지만 내과 교수나 소아과 교수도 이렇게 실망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되었다.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다면, 그 음성도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 것이기에 그랬다.

“환자는 좀 어떻죠?”

“여전히 아파합니다. 이 아이도 주기가 더 빨라지고 있어요.”

“음……. 증상은 분명히 있는데 기질적인 이유는 아예 안 보인다라.”

“네.”

“혹시 실례가 안 되면 아프다고 할 때 제가 좀 볼 수 있을까요? 연락 주시면 바로 오겠습니다.”

“물론이죠. 혹 시간이 걸릴 거 같으면 녹화라도 시키겠습니다. 저도 오늘 외래라.”

증상이 실존한다면 기질적 원인이 다 꽝 나온 것도 분명 한 가지 소견이라 봐야 했다.

다만 수혁은 아직 아이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에 일말의 의심은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보고 판단하는 게 좋겠지?’

[네. 통증의 양상을 보면 확실해질 겁니다.]

통증이 아예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김수민 교수도 그렇겠지만, 일단 소아과 병동에 있는 간호사들은 보통내기들이 아니지 않은가.

환아 앞에서야 생글생글 웃기만 하겠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엄청난 베테랑들이었다.

아이들의 증상 정도를 파악하는 덴 도사란 얘기였다.

하지만 아이가 두통 정도를 조금 과장한다면, 그건 감지가 어려울 거 같았다.

해서 수혁은 번호를 남겨 두고 센터로 돌아왔다.

센터 내의 환자들이 지금이야 안정적이라지만, 그래도 교수가 되어 가지고 하루 두 번은 얼굴을 비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만으로도 환자 상태가 좋아진다는 보고가 있었다.

“아, 교수님. 오셨습니까.”

“응. 별일 없지?”

“아, 네. 근데…….”

“근데?”

“이현종 센터장님이 아직 안 오셔 가지고요.”

“응? 아이고.”

수혁은 이현종이 출근을 안 했단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어제 이기자 교수와 스리슬쩍 사라졌었단 것을 떠올렸다.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이게 뭔 일이여.’

이현종이 물론 병원 생활을 아주 완벽하게 해 온 것은 아니었다.

특히 회의라면 개판만 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진료의 영역에서만큼은 그처럼 열과 성을 다해 온 교수도 드물었다.

그런데 9시가 넘도록 오질 않다니.

“일단 이현종 교수님 환자도 내가 돌게. 파악은 다 하고 있으니까.”

“네. 교수님.”

다행인 것은 수혁이 어느 정도 커버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매번 이렇게 하는 거야 육체적인 한계로 인해 불가능하겠으나, 하루 이틀 정도는 괜찮았다.

어차피 지금 센터 내 환자들은 대강 다 정리가 되어 있기도 했으니.

“음……. 네. 내일 퇴원하시면 되겠네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환자분은 하루만 더 지켜볼게요. 이게 약 먹으면 반응이 좋기는 한데, 그래도 혹시 몰라요.”

“네네. 그럼요. 이런 병인 줄도 모르고 몇 년을 글쎄…….”

해서 수혁은 빠르게 회진을 돌았다.

몇몇 환자들의 질문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저 감사 인사만 해 오기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대개 다른 병원에서 고생하다가 여기 와서 단박에 진단이 된 환자들이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하여간 센터에서는 단 며칠이라도 헤맨 환자들이 없었다.

원인 모를 열이나 원인 모를 통증 등에 딱딱 시원하게 진단명이 붙고 치료가 시작되는 것만으로 환자들은 만족했다.

비록 진단명에 따라 예후가 크게 갈리긴 했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죽어 가는 것과 날 죽이고 있는 게 뭔지 아는 건 천지 차이였다.

띠띠띠.

그렇게 한창 회진을 돌고, 특이 환자에 대해 레지던트들에게 설명하고 있으려니 전화가 울렸다.

번호를 보니 소아과 병동이었다.

수혁은 일단 걸음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옮기며 전화를 받았다.

눈치 빠른 3년 차의 명으로 1년 차가 후다닥 달려 버튼을 눌렀다.

“네, 이수혁입니다.”

“네, 교수님! 저 소아과 레지던트 김희성입니다.”

“어어, 지금이야?”

“네! 일단 약 안 주고 보고 있습니다. 녹화만 할까요? 아님…….”

“아니, 지금 바로 갈게.”

“네.”

덕분에 수혁은 전화를 끊기도 전에 엘리베이터에 올라탈 수 있었다.

“음.”

그렇게 올라탄 후,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레지던트들을 마주했다.

얘들을 그냥 두고 갈까 말까 하다가 이내 손짓했다.

이번 케이스는 희귀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는 센터니만큼 이럴 땐 데려가야 했다.

커피라도 한 잔 때릴 생각이었을 테니 무조건 싫어하겠지만.

솔직히 알 바 아니지 않은가.

교수는 가르치는 사람이지, 제자들에게 사랑받는 사람은 아니니까.

[와……. 진짜 싸가지 없네.]

‘뭐, 인마.’

바루다의 반발이 살짝 있었으나, 이내 레지던트들은 수혁을 따라 소아과 병동으로 향하게 되었다.

아무리 태화 의료원이 크다고 해도 7, 8명에 달하는 의료진이 한번에 이동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꽤나 눈길을 끌었다.

“와……. 멋지네.”

“이수혁 교수님이시지?”

“젊은데……. 완전 성공하셨다.”

“그니까, 근데 그만큼 똑똑하시지.”

물론 환자나 보호자들은 별생각 없었고, 의대생들이나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댔다.

하여간 그렇게 도착한 병동에서 수혁은 비로소 아파하는 아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으, 으.”

아이는 거즈를 입에 물고 신음하고 있었다.

이마에는 구슬땀이 흘러내렸다.

통증 정도로만 따지면 앨리스 증후군이었던 아이보다 심한 듯했다.

이건 절대로, 절대로 연기나 과장이 아니었다.

‘야, NRS 몇 점 같아?’

[적어도 8점.]

‘이게 긴장성 두통일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시발, 그럼 뭐지? 뭐길래 기질적 원인도 없이 이렇게 아파해?’

[그걸 이제부터 찾아야죠. 일단 약부터…… 주라고 하죠. 애가 너무 아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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